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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개미들에게 보내는 편지(2)...반복되는 기축통화 붕괴의 역사(고대 그리스편)

홍익희  세종대 교수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탈중앙화와 초연결사회를 표방하며 달러로 대표되는 기존 화폐시스템에 강력한 도전자로 부상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나오게 된 시대적 상황을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기축통화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았다.
역사상 최초의 기축통화 만든 그리스의 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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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의 기축통화인 고대 그리스 드라크마 은화

기원전 6세기 아테네 드라크마 은화 속 부엉이는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상징한다. 부엉이는 어두운 곳에서 남이 보지 못할 때 홀로 잘 볼 수 있어 남이 못 보는 것을 보는 통찰력을 뜻해 현명하다는 의미이다. 이 드라크마 은화가 역사상 최초의 기축통화였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정치가 솔론은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아테네와 페르시아 간 무역을 증대시킬 방안을 찾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양국 간 화폐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테네 드라크마와 페르시아 은화를 등가로 만들어 서로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으면 교역을 늘릴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페르시아 은화와 가치를 맞추기 위해 드라크마 은 함유량을 줄였다.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 이로써 당시 최대 무역국인 페르시아와 교역이 증대되었을 뿐 아니라 아테네 은화가 지중해 교역에서 가장 널리 유통되는 화폐 곧 기축통화가 되었다. 
 
그 뒤 아테네는 그리스 화폐주조의 중심지가 되었다. 더구나 기원전 483년에 발견된 라우리움 은광은 국부를 획기적으로 높여주었을 뿐 아니라 아테네 해군력을 향상시켜 페르시아군을 무찌르는 계기가 되었다. 더 나아가 이는 시민들에게 풍요를 안겨주어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시스템을 탄생시켰다. 
 
아테네는 주변 도시국가들의 화폐와 도량형을 표준화시키기 위해 기원전 449년 그리스 전역에 아테네식 주화와 도량형 사용을 강제하는 통화법령을 반포했다. 이는 교환에 드는 거래비용을 최소로 줄여주었다. 이로써 기원전 5세기 아테네 항구 피라우스가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기축통화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를 계기로 지중해상권이 페니키아와 히브리왕국으로부터 아테네로 넘어왔다. 해상무역뿐 아니라 지중해 경제권 중심축이 완전히 아테네로 이동했다.
 
아테네 항구 피라우스는 무역상과 환전상의 본고장이 되었다. 피레우스에서 일하는 큰 상인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는데 특히 유대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유대무역상들은 어디에서 어떤 상품을 구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정보 수단을 갖고 있었고 유대인 환전상들은 각국 화폐에 정통했다. 아테네 '시장경제'는 오늘날 뉴욕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개인 창고업자,화물운송인,은행가 같은 서비스들이 피레우스 항구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화폐 전성시대 도래
 
기원전 5세기 말에는 아테네 주화를 본 따 그리스 도시국가들 거의가 독자적 화폐를 만들어 사용했다.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쓰였던 화폐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각종 생활필수품은 쉽게 가지고 다닐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철이나 은 같이, 본질적으로 유용하고 생활을 위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서로의 거래에 이용할 것에 합의했다. 이러한 물건의 가치는 처음에는 크기나 중량으로 측정됐으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일일이 계량해 가치를 기재하는 수고를 줄이기 위해 사람들은 그 위에 각인을 하게 됐다.” 
 
그 뒤 동전에 국가권력을 상징하는 도안을 집어넣었다. 고대사회에서 돈은 상업과 교역뿐 아니라 군인 급료로 쓰였으며 사회 전반의 교환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화폐 발명 덕분에 똑 같은 기준에 의거해 모든 물건의 가치를 측정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솔론의 혁신적 개혁
‘유대인 희년제’를 본받은 솔론의 개혁
 
아테네가 경제사에 크게 공헌한 것이 있다. 다름 아닌 민주주의와 토지사유제의 인정이 그것이다. 이는 훗날 자유시장경제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기원전 594년 그리스 집정관 솔론은 이른 바 ‘솔론의 개혁’을 단행했다. 아테네 시민들에게 역사상 최초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법령을 공포했는데 개혁내용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먼저 빚진 자들에게 빼앗겼던 땅들을 모두 돌려주고, 노예들을 해방시켰다. 당시 귀족들이 독점했던 정치를 시민들도 부의 정도에 따라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이로써 아테네에서는 직접민주정치가 시행되었다. 

솔론의 개혁이 나온 배경을 보자. 기원전 6세기 초는 아테네인들에게 어려운 시기였다. 귀족계급이 좋은 땅을 소유하고, 정치를 독점하며, 파벌싸움에 골몰해 있었다. 가난한 농민들은 쉽게 그들의 채무자로 전락해 빚을 갚지 못할 때는 자기 소유의 땅에서 농노 신세가 되거나 심한 경우에는 노예로 팔려갔다. 중간 계급인 중농·수공업자·상인은 정치에서 배제되어 불만이었다. 이렇듯 아테네는 유력자들과 데모스(demos;시민) 사이에 알력이 있었다. 
 
가난한 자들은 예속민이라 불렸는데 유력자 농지에서 일하고 소출의 6분의 1을 바쳤다. 만일 임대료를 내지 못하면 감옥에 갇히고 심하면 노예가 됐다. 모든 부채는 인신(人身)이 담보로 설정되었다. 따라서 시민이 가장 공포를 갖는 것이 바로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다수가 노예가 되자 시민들이 유력자들에 대해서 반기를 들어 격심한 분쟁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결국 양측은 기원전 594년에 솔론을 조정자이자 집정관으로 추대했다. 
 
솔론은 집정관이 되자 개혁을 단행했다. 솔론은 귀족계급의 권력독점을 막고 대신 부유한 시민이 같이 통치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는 연간소득을 조사해 시민을 4등급 소득계층으로 나누었다. 이때부터 참정권과 군사의무는 소득등급을 토대로 배분되었다. 모든 시민은 민회에 참석할 권리가 주어졌다. 최하층에게도 참석할 권리를 주어 평민의 불만을 해소했다. 이리하여 장차 민주정치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또한 각 부족으로부터 100명씩 400인회를 만들어 민회에 제출할 안건을 마련케 했다. 
 
솔론은 유대 희년제를 본받아 부채탕감을 시도했다. 희년제란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 모든 걸 원 상태로 돌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곧 부채를 탕감하고, 토지를 원 소유주에게 돌려주며, 죄수들에게도 사면을 베풀고, 모든 노예를 해방시키는 아름다운 제도이다. 더 나아가 가축과 땅까지 휴식기간을 주었다. 희년은 유대인의 이상인 평등공동체의 회복을 뜻한다. 
 
솔론은 기원전 594년에 모든 채무자의 빚을 말소했다. 그리고 채무자를 노예로 삼는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법률을 통과시켜 빚을 탕감하고 땅을 재분배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소작농노들이 경작했던 땅은 귀족들이 계속 소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일부 토지를 귀족들의 양해 아래 농민들에게 돌려주는 상환제도를 시행했다. 그리고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토지의 상한선을 정하여 부의 집중을 막았다.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원래 솔론의 개혁은 고리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채무자들이 처음에는 자녀를, 나중에는 자기 자신을 노예로 팔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노예 수가 증가하면서 시민 사회가 붕괴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솔론은 채무 무효를 선언해 채무 때문에 외국으로 팔려간 자들과 도망간 자들을 돌아오게 했다. 구약에 나오는 유대교의 희년도 고리채와 관련이 깊다. 희년이 되면 몸이 팔려 나간 자들에게 자유를 선물함으로써 고리채에 의해 유대인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을 막았다.
 
솔론은 또한 인신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대부행위를 금지했다. 그러나 토지 재분배를 요구하는 빈민들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대신에 농업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대체할 직업을 제공해주었다. 예컨대 상업과 전문직이 장려되었으며 올리브유를 제외한 농업 생산물의 수출을 금지시켜 인플레이션을 억제 시켰다. 한편 주화 사용이 촉진되었고 새로운 도량형이 도입되었다. 그의 조치는 100년간 효력을 갖는 것으로 선포되었고 회전 나무판에 새겨져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게시되었다. 그 뒤 그는 더 이상의 논란과 해명을 피해 유유히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리스의 통화붕괴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그리스 지배권을 놓고 다툰 패권전쟁이었다. 27년간 지속된 이 전쟁에서 아테네는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통화량을 편법으로 늘렸다. 금화 주조에 구리를 섞은 것이다. 처음에는 국민들이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구리의 양이 점차 늘어나면서 원래의 금화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것이다. 
 
시장에 갑자기 늘어난 ‘동화가 된 금화’는 푸대접을 받고 역사상 최초의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아테네 통화시장이 붕괴되었다. 결국 아테네는 통화시장 붕괴로 용병들로 구성된 전투부대에 더 이상의 전비를 보낼 수 없어 스파르타가 승리했다. 그러나 모두가 탈진한 나머지 새로이 부상하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왕에게 지배권을 내주고, 종국에는 신흥 로마에게 정복되어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시대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입력 : 2017.12.29 | 조회 : 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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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의 세상만사

서울고와 외대 스페인어과를 나와 1978년 KOTRA 입사하다. 이후 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무역관 근무를 거쳐, 경남무역관장, 뉴욕무역관부관장, 파나마무역관장, 멕시코무역관장, 마드리드무역관장, 밀라노무역관장을 역임하고 2010년 정년퇴직했다. 배재대학에서 서비스산업의 역사와 미래’, 유대인의 창의성’, 기업가 정신’을 가르친 바 있으며 현재는 세종대학에서 유대인의 창의성과 리더십’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32년간 수출전선 곳곳에서 유대인들과 부딪치며 그들의 장단점을 눈여겨보았다. 우리 민족의 앞날도 제조업 보다는 그들이 주도하는 서비스산업에 있다고 보고 그는 10년 전부터 유대인 경제사에 천착해 아브라함에서부터 현대의 월스트리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궤적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 경제사 시리즈 10권을 썼다. 그 축약본 유대인 이야기가 2013년 초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예스24 네티즌 투표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듬해 출간한 세 종교 이야기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2년 연속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또 같은 해 화폐금융시리즈 곧 달러 이야기, 환율전쟁 이야기, 월가 이야기를 동시 출간했다. 최근에는 세상을 바꾼 다섯가지 상품이야기를 펴냈다. 그는 종이책 이외에도 금융산업 등 각종 서비스산업에 대한 이야기와 한민족 이야기 등 103권을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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