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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규제'로 인해 뒤바뀐 제국의 운명

홍익희  세종대 교수

과거 수출금지로 인해 뒤바뀐 제국의 운명이 있었다. 16세기 영국과 스페인 제국의 이야기이다. 영국 헨리 8세 때의 일로, 그 무렵 영국은 유럽 대륙에 비해 형편없는 후진국이었다.   

국가의 주 수입원은 양털 판매와 해적질이 전부이다시피 했다. 그나마 양털 수출도 유대 상인들에 의존해야 했다. 해적질에 필요한 무기도 모두 대륙에서 수입해 쓰던 시절이었다. 다만 해적질에 특화하다 보니 배의 성능이 치고 빠지기에 알맞게 진화해 기동력이 좋았다. 유일한 경쟁력이었다.

자급화 정책으로 철대포 개발

그 무렵 영국은 값비싼 청동대포를vc 비롯한 무기 대부분을 대륙에서 수입해서 쓰던 시절이었다. 당시 스페인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 5세는 플랑드르 공업지대의 대영국 수출금지를 단행해 영국은 무기를 수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영국 왕 헨리 8세는 자구책으로 자급화 정책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자체적인 대포 제작에 나섰다. 당시 청동 가격은 철의 4배에 달해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는 청동대포 대신 철대포 개발에 나섰다.   

그는 먼저 철광맥과 거대한 숲이 있는 서식스 지역에 제철소 건립을 적극 지원하여 제철업자들에게 거액의 지원금을 주어 철제대포와 포탄을 만들 수 있는 품질 좋은 철을 생산케 했다. 그 결과 1549년에 서식스 지역에서 가동되는 제철공장은 53곳에 이르렀다. 마침내 균질한 품질의 철 생산에 성공했다. 이는 훗날 산업혁명의 토대가 된다.  

당시 영국은 효율적인 해적질과 화력이 월등한 스페인 무적함대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사거리가 긴 장거리 함포가 절실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대륙의 청동대포 보다 포신이 긴 장거리 철대포 개발이 목표였다.   

왕은 장인들을 끌어 모아 마침내 장거리용 철대포 개발에 성공했다. 여기에는 운도 따랐다. 서식스 지역 광산에서 채굴된 철광석 속에 포함된 인(隣)이 대포의 내구성과 효율성 증진에 크게 도움이 되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평저선이 역사를 바꾸다

그런데 문제는 어렵게 개발한 장거리 함포의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함포 발사 시 배가 너무 흔들려 조준 사격이 소용없었다. 이를 극복한 게 유럽 최초의 평저선 개발이었다. 이는 영국의 운명을 바꾸었다.
   
함포 발사 시의 반동을 흡수할 수 있도록 캐러벨 범선의 밑바닥을 비교적 크고 편평하게 만들라는 아이디어는 당시 헨리 8세 왕이 직접 냈다고 한다. 후발국 영국이 이후 당대 최강의 스페인 무적함대를 깰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평저선에 장거리 철대포를 장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뒤 헨리 8세의 딸인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휘했던 1588년 칼레 해상전투 때 영국은 전투선 34척, 상선을 무장 시킨 무장상선 163척 이외에도 캐러벨 평저선 30척으로 스페인 제국의 무적함대와 맞섰다.   

영국의 평저선은 함포 명중률도 스페인 무적함대의 첨저선 보다 월등히 높았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사거라가 길었다. 더구나 평저선은 수심이 얕은 연안가에 정박이 가능하여 인근 해안가에서 보급품 나르기도 수월해 영국 함선들에 탄약과 식량 등의 보급이 원활해졌다. 특히 당시 칼레 항구는 수심이 낮아 흘수가 깊은 대형선박이 안심하고 정박할 만한 시설이 없었는데, 이런 조건에서 평저선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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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 해전)


그 무렵 해전은 백병전을 위주로 하는 근접 전투였는데 영국 함선들은 평저선에 장착된 장거리 함포 덕분에 80미터 밖에서 치고 빠지는 전술로 스페인 무적함대를 괴롭혔다. 결국 쫓고 쫓기다 지친 무적함대가 항구에 정박해 모여 있을 때 평저선을 이용한 기습 화공작전으로 영국은 칼레 해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칼레 해전은 유럽에서 전함에 대포를 장착해 적함을 화력으로 격파시킨 최초의 해전이었다.   
마침내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것이다. 이는 세계 권력의 이동이자 해상권의 장악을 뜻했다. 그간 스페인 제국의 기세에 눌려 살았던 영국이 이를 계기로 중상주의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게 되었다. 해상권의 장악은 해상무역의 제패를 의미했다.   
영국인들은 그들 영해에서만 스페인 배를 몰아낸 게 아니라 미국과 인도의 항구에서도 스페인 상선을 공격해 쫓아내 버렸다. 이로써 이들은 북미에 식민지를 많이 건설할 수 있었다. 이것이 세계사의 분수령이었다. 스페인 제국이 지고 영국의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평저선이 해전에 강한 이유  

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서해 갯벌 덕에 개발된 배가 밑바닥이 편평한 평저선이다. 우리의 전통 배 평저선은 세계 조선사(造船史)에서 아주 예외적인 배다. 선박 구조가 물살을 가르는 유선형이 아니고 특이하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 배들은 물살을 쉽게 가르기 위해 배 아래가 뾰족한 역삼각형인 첨저선이다. 유선형이기 때문에 평저선에 비해 속도가 빠르다. 따라서 해상 운행에 유리할 뿐 아니라 해상전투 시에도 기동력이 좋았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의 배는 첨저선이다. 
  
우리나라에서 평저선 같은 독특한 배가 탄생한 이유는 갯벌 때문이다. 우리 서해안에는 조수 간만의 차가 커 갯벌이 널리 퍼져있었다. 서해 갯벌이 유라시아 대륙의 거의 유일한 대형 갯벌이다. 서해안에는 6시간에 한 번씩 밀물과 썰물의 변화가 있는데 간조와 만조 때의 조수 차이는 최고 9미터 이상에 달한다. 이런 조건에서 어업을 하거나 운항을 하려면 배 밑바닥이 편평해야 했다. 배 밑이 역삼각형인 V자형 첨저선은 썰물이 나가면 갯벌에 쓰러진다. 그래서 밑바닥이 편평한 평저선이 자연스럽게 발달했다.   

게다가 평저선은 바다 항해에 굉장한 장점을 가졌다. 앞쪽이 물에 30센티 박에 잠기지 않아 연안에 접근하더라도 해안 바닥에 걸리지 않고 접안시설이 없더라도 어디에나 정박할 수 있었다. 반면에 첨저선은 연안 접근 자체가 어렵고 접안시설이 건설된 항구에만 정박할 수 있었다. 따라서 고대의 중국 배는 주로 강을 오르내리는 도강선이었다. 고대 바닷가에는 접안시설이 부족해 첨저선은 연안항해도 쉽지 않았다. 고대에 동남아 바다 전체가 한민족의 바다였던 이유다.  

따라서 고대에는 평저선만이 어느 바다나 겁내지 않고 사방을 휘젓고 다닐 수 있어 그 무렵 바다를 돌아다닐 수 있는 배는 평저선 뿐이었다. 고대로부터 우리 평저선이 먼 거리 바다 항해를 하며 파도와 해류에서 안정성을 높이다 보니 다른 나라 배에 비해 키가 길어졌다. 그리고 물에 잘 가라앉지 않는 평저선이다 보니 배의 무게 중심을 아래로 내려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배에 돌을 싣고 다녔다. 이로써 먼 바다 항해를 안전하게 할 수 있었다. 또 평저선은 높은 파도에 강했다. 한선은 파도가 높을 때 파도 위를 타고 나아가기 때문에 바닷물 속에 빠지지 않으나 선수가 뾰족한 첨저형 배는 큰 파도를 만나면 가르고 간다는 것이 잘못하면 오히려 파도에 휩쓸려 물속으로 처박히게 된다.  

게다가 평저선은 해상전투에도 강했다. 평저선은 흘수 곧 물에 잠기는 부분이 적어 험한 파도와 세찬 물결의 바다 위에서도 방향 돌리기가 쉬워 민첩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선체가 크고 무거워 고대의 해상 싸움에도 유리했다. 당시는 배끼리 들이박는 박치기 싸움이었다. 평저선이 해상전투에서 강했던 이유다.
  
고려 때 최무선의 함포가 강했던 이유도 평저선 덕분이었다. 장군은 왜구들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이를 물리치기 위해 먼저 제조방법이 유실되었던 화약 제조기술을 복원했다. 그리고 대포를 만들어 평저선 위에 설치했다. 이로써 왜구들을 섬멸하여 바다를 지킬 수 있었다.   

그 뒤 왜구들도 대포를 만들어 배 위에 장착했지만 우리 한선을 당해낼 수 없었다. 평저선은 첨저선에 비해 배 위에서 대포를 쏠 때 반동 흡수에 유리하여 명중률이 높았다. 반면 왜구의 배는 첨저선이라 흔들림이 심해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자 최무선 장군이 재평가 받아야 되는 이유이다.  

게다가 평저선은 안정감이 있어 파도에 강하고 선회력이 좋았다.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이 가능했다. 반면 첨저선은 파도나 물살이 강한 곳에서 무리한 선회를 하다가 침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순신 장군이 물살이 빠른 곳을 주로 활용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이런 평저선의 선회력을 이용하면, 한쪽에서는 발사를 다른 쪽에서는 장전을 하는 식으로 해서 상대방보다 훨씬 포를 빠르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평저선이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일등공신이었다.

입력 : 2019.08.05 | 조회 : 2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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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의 세상만사

서울고와 외대 스페인어과를 나와 1978년 KOTRA 입사하다. 이후 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무역관 근무를 거쳐, 경남무역관장, 뉴욕무역관부관장, 파나마무역관장, 멕시코무역관장, 마드리드무역관장, 밀라노무역관장을 역임하고 2010년 정년퇴직했다. 배재대학에서 서비스산업의 역사와 미래’, 유대인의 창의성’, 기업가 정신’을 가르친 바 있으며 현재는 세종대학에서 유대인의 창의성과 리더십’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32년간 수출전선 곳곳에서 유대인들과 부딪치며 그들의 장단점을 눈여겨보았다. 우리 민족의 앞날도 제조업 보다는 그들이 주도하는 서비스산업에 있다고 보고 그는 10년 전부터 유대인 경제사에 천착해 아브라함에서부터 현대의 월스트리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궤적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 경제사 시리즈 10권을 썼다. 그 축약본 유대인 이야기가 2013년 초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예스24 네티즌 투표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듬해 출간한 세 종교 이야기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2년 연속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또 같은 해 화폐금융시리즈 곧 달러 이야기, 환율전쟁 이야기, 월가 이야기를 동시 출간했다. 최근에는 세상을 바꾼 다섯가지 상품이야기를 펴냈다. 그는 종이책 이외에도 금융산업 등 각종 서비스산업에 대한 이야기와 한민족 이야기 등 103권을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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