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간조선 로고     [2175호] 2011.10.03


[10·26 서울시장 보선] “연수원 시절 후배들 고민상담사 갈등조정 잘하는 판사로도 명성”

내가 본 나경원

이두아  한나라당 국회의원·비례대표·초선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내가 나경원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재학 때였다. 나경원·김재호 선배는 서울대 법대의 전설적인 선남선녀 커플로 회자됐다. 나경원 선배는 82학번이고 나는 89학번이어서 학번 차로 인해 함께 학교에 다닌 적은 없었다. 하지만 두 선배에 대한 여러 가지 일화는 20대 초반이었던 우리 후배들에게는 너무나도 낭만적인 캠퍼스 스토리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경원 선배를 실제로 직접 만나게 된 것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했던 때로부터 몇 년이 흐른 뒤인 사법연수원에서였다. 내가 연수원 1년차를 시작할 때 나 선배는 나보다 한 해 앞서 연수원 생활을 시작했다. 함께 연수원에 다니는 가운데 도서관 등에서 마주칠 기회가 많았으며 이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첫 느낌은 피상적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따뜻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 선배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선배, 고민상담을 잘해주는 등 후배들을 잘 챙겨주는 선배로 통했다.
   
   선배는 연수원 1년차 중에 첫 아이인 유나를 출산했는데, 학업과 보육을 동시에 감당해 내야 하는 등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1년차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연수원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등 화제가 되었으니, 특유의 인내력과 끈기를 발휘함으로써 이른바 ‘공신’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연수원 2년차, 도서관 붙박이처럼 공부하던 선배는 그해 성적을 동기생 중 전체 8등의 석차로 마무리했고 ‘역시 나경원’이라는 주위의 찬사를 받으며 1년차에서의 부진을 만회했다. 전년도 대비 성적이 그렇게 상승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인데, 그로 인해 선배는 잠시나마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아이 키우며 연수원 8위
   
   학업 성적을 만회하느라 연수원 2년차를 매우 바쁘게 보내던 와중에도, 나 선배는 첫째 아이 유나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연수원과 기타 곳곳에 유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동료 선후배들에게 아기 유나를 보여주기도 했다. 엄마의 사랑을 딸에게 가득 쏟아붓는 그 당시 선배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이어 연수원을 나온 이후 나 선배는 판사의 길을 걷게 되었고 나는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법조계 선후배로서의 인연을 이어가면서 각자 바쁘게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경원 선배가 둘째 현조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친정에서 산후조리 중이었던 선배와 갓 태어난 아기를 보러갔는데, 오랜만에 마주한 우리들은 신나게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나 선배가 이날 우리 후배들에게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 선배는 “건강한 둘째 아이를 낳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고, 한편으론 이 아기에게 미안해. 누나인 유나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부모가 먼저 떠나면 남동생으로서 혼자 누나를 도와줘야 할 텐데, 그게 너무나 안타까워”라고 말하며 누워 있는 아기를 향해 눈물을 글썽였다. “사시 합격 후 첫 아이 유나를 가졌을 때, 시기적으로 중요한 지금 아이를 갖는 게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자문하곤 했던 것이 유나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 것 같다”며 미안해 했던 선배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연하다.
   
    1990년대 중반 당시 법조계에는 장애아 자녀를 둔 법조인 선배들이 나경원 선배 말고도 더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편견 등 기타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자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 선배는 유나를 부끄러워 하거나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데리고 다니며 우리 후배들에게 소개시키면서, 밝고 씩씩하게 키우려 노력했다. 유나와 곧잘 재밌게 놀았던 나를 비롯한 후배들은 유나를 통해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엘리트 의식이 있던 당시 우리들은 유나를 통해 장애를 가진 분들에 대한 편견을 씻어 낼 수 있었고, 단지 우리와 조금 다를 뿐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절감했다.
   
   
   장애아 딸 키우며 약자들에 관심
   
   성장과정이나 가정환경을 살펴볼 때 나 선배는 약자의 입장이나, 약자로서의 억울함 등을 겪어보는 일이 드물었을 것이라는 게 많은 분들의 생각인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무척 잘했고 이어 법과대학에 진학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법조인이 된 개인적 배경을 보면 그러한 추측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 선배는 자신의 딸 유나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약자에게 얼마나 가혹하고 냉정한지, 약자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고 본다. 판사로 근무하던 나 선배가 어느 날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한다. “엄마가 판사임에도 우리 아이가 사회적 약자로 살면서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데, 일반 국민은 오죽하겠어?” 이렇게 나 선배는 약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당한 대우 등에 대해 곧잘 문제의식을 표출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등 주변 선후배들과 토론을 하기도 했다. ‘판사 나경원’은 이러한 개인적 경험을 자양분 삼아 경청하는 판사,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판사가 되었고, 갈등조정에 능해 소송 당사자들을 서로 화해하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의 판사로서 명성을 얻게 됐다.
   
    이러한 그의 강점은 정치권에 들어온 지금도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집권 여당의 최고위원으로서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한나라당의 후보로 임하는 그는, 만약 당선이 된다면 시의회와의 갈등이나 문제를 특유의 정치력으로 지혜롭게 풀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선배는 알려져 있다시피, 행정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던 시절에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후보의 제의를 받고 이 후보의 공보특보로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당시 나는 우연히 행정법원에 들르게 되었는데, 나 선배는 내게 “판사로서 내가 약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며 “사표를 내고, 정치를 통해 더 크게 기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나 선배와 함께 정치 현안이나 국가정책 등에 대해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게 된 건 나 역시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권에 들어온 이후였다. 그전까지는 텔레비전을 통해 신념과 소신을 피력하는 나 선배의 활약상을 지켜본 게 전부였다.
   
   
   다시 한번 ‘유리천장’ 깰까
   
    지난해 2월 어느 날, 서울시장 선거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출마를 결심한 나 선배는 직접 사무실로 찾아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당시는 거의 모두가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분위기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왜 출마하느냐’는 후배의 질문에 그는 “내가 생각하는 ‘갈등조정의 시정과 행정’을 하고 싶다”며 “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6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서울은 유례가 드물 만큼 매우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는 도시이고, 이제는 소프트웨어의 측면에서 또 다른 도약이 필요한 전환기에 와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그러한 서울의 특성을 감안할 때 오세훈 당시 시장에 비해 여성인 자신이 더 적합하다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요청을 받아들인 나는 곧이어 나경원 경선 캠프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 곁에서 지켜본 정치인 나경원은 일부에서 말하듯 부드러운 면만 있는 게 아님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매우 강단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면서 자주 감탄하곤 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나경원 의원에 대해 “재선의원으로서 인지도가 높은 장점을 기반으로, 당내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중량감이 늘었다”며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반면, 또 다른 일부에서는 “외모 덕을 많이 본다”며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곁에서 바라본 정치인 나경원의 선전은 그런 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안 된다는 게 나의 확신이다. 다시 말해 일을 같이 해 보니 콘텐츠가 분명히 있는 프로 정치인이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한나라당은 오는 10월 26일 서울시장 선거라는 대형 정치일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된 나경원 최고위원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이 여성을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로 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이를 지켜보며 나 선배가 다시 한번 ‘유리천장’을 깨고 있구나,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경원 선배는 오늘날 2030 세대 여성들의 역할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선배 스스로도 자신의 역할을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모범과 도전을 통해 한 단계씩 밟아나가며 동시대 후배 여성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는 것이 자신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정치권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나경원 최고위원의 향후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이두아
   
   한나라당 국회의원·비례대표·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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