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간조선 로고     [2232호] 2012.11.19


[뉴스 인 뉴스] ‘하극상’ 불길 소방방재청 불씨는 인사 전횡?

김창곤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 이기환 소방방재청장 photo 최순호 조선일보 기자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하극상’이란 말을 씁니까. ‘영·호남 갈등’도 겉만 살핀 해석입니다.”
   
   심평강(55) 전 전북도 소방본부장이 상관인 이기환(57) 소방방재청장을 고발한 정부 초유의 사건을 놓고 소방발전협의회 간부 A씨는 이렇게 말했다. A씨는 소방방재청 최고위직과 고위간부 간의 공개적 충돌에 대해 “인사를 둘러싼 소방 총수의 무능과 무원칙, 비리 의혹이 촉발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협의회는 전국 3만 소방관 중 1만명이 가입한 일종의 노조다. 이기환 소방방재청장과 같이 영남 출신인 A소방관은 “파국은 두 사람 갈등이 커지면서 이미 예고됐다”며 “심평강 전 본부장의 말이 80~90% 옳다”고 했다. 소방발전협의회는 지난 10월 16일 성명을 통해 이 청장의 인사에 ‘특정지역 편중’ ‘제 식구 감싸기’ 등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원이 이를 밝히고 응당한 조치를 하라”고 요구했었다.
   
   
   취임 후 영남 출신 간부로 채워
   
   소방관들은 2004년 소방청 발족 후 처음으로 5대째 현직 소방관 출신인 이 청장의 발탁을 환영했다. 그는 고교를 졸업한 뒤 9급(소방사)으로 시작, 간부후보생 2기로 6급(소방위)에 임용됐고, 방송통신대를 졸업했다. 은퇴한 아버지와 아들까지 ‘3대 소방관’으로, 아버지는 그에 앞서 대구 동부소방서장을 지냈고, 아들은 강원도에서 소방사로 근무 중이다. 소방관들은 이런 그가 후배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며 조직과 재난관리시스템의 선진화를 앞당길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작년 7월 소방청장으로 취임한 뒤 인사권을 사유화했다는 비난과 비리 의혹에 시달리더니 급기야 후배로부터 지난 11월 12일 고발까지 당한 것이다.
   
   이 청장에 대한 고발은 심 본부장(3급·소방준감)에 대한 징계의결을 요구하고 직위를 해제하면서 비롯됐지만 두 사람의 갈등은 지난 3월 인사 때 시작되고 있었다. 이 청장은 4명의 소방준감을 소방감(2급)으로 승진시키면서, 1명을 영남 출신으로 특진시킨 뒤, 다른 절차로 승진시킨 3명 중 또 1명을 영남 출신에서 임용했다.
   
   이 청장은 취임 후 본청 및 중앙소방학교장의 소방감 이상 간부 3명을 모두 영남 출신으로 채웠다. 소방청은 이 청장 취임 후 소방정(4급) 이상 승진자 43명 중 전남이 8명으로 가장 많고, 충남(7명)·경남(6명)·경기(5명)·충북(4명)·경북(4명)·대구(3명)·전북(3명) 차례였다고 밝혔으나 소방발전협의회는 “이는 대부분 지방 소방서장의 퇴직에 따른 충원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통계”라고 했다.
   
   
   직위해제한 진짜 이유는
   
▲ 심평강 전 전북도 소방본부장
심 전 본부장은 3월 인사 당시 ‘소방준감 계급정년(6년) 1년 미만’이라는 이유로 승진심사에서 배제됐으나 특진한 소방감은 준감 승진동기로 심 전 본부장과 계급정년이 같았다. 승진에서 탈락한 또 다른 전북 출신 B소방준감은 “나이도 젊고 계급정년도 많이 남았으니, 한 템포 늦춰가도 좋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이 청장은 전북소방본부장을 역임했던 B소방준감을 제주소방본부장으로 임용하려다가 대기발령한 뒤 강등된 4급 외곽보직으로 보냈다. 소방발전협의회는 이를 ‘보복성 인사’라고 비판한다.
   
   이 청장과 심 본부장의 갈등은 감정으로 치달았다. 이 청장은 인사를 바로잡아달라는 심 본부장의 수차례 건의를 묵살하며 다른 전북 출신 소방간부들 앞에서 “전북○들 두고 보자”는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청장은 부하에게 현금을 요구하고, 간부후보 동기생 조문 후 일선 소방서장으로부터 향응 접대를 받았다는 등의 의혹으로 지난 9월부터 한 달 넘게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이 청장 측은 이 감사가 심 본부장 측의 제보로 시작된 것이라 지목했다.
   
   이 청장은 심 본부장에 대한 중징계 의결을 중앙징계위에 요구하며 지난 11월 9일 직위를 해제했다. 그리고 그 사유로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하고 소방조직 화합을 저해했으며 △지난 6월과 10월 두 차례 사전 보고나 특별한 사유 없이 본부장회의에 불참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심 전 본부장은 그러나 “전북도 대응구조과장이 오래 병가를 낸 가운데 가뭄과 세계순례대회 대책회의가 그때마다 도에 있어 불참 사유를 미리 구두 보고했고, 사후 문서로도 보고했다”고 했다.
   
   심 전 본부장은 ‘소방방재청장의 파렴치한 행태를 바로잡아주기를 앙망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국회의원 보좌관에 보낸 전자문서가 자신의 것이라고 시인했다. 그는 본부장 직위해제를 통보받자 “공익을 위한 신고·제보였던 만큼 부패방지법에 따라 신분을 보장해달라”고 국민권익위에 부당성을 호소했다. 심 전 본부장은 불법·비리 의혹들을 들어 이 청장을 고발하며, 방재청 중간간부 4명도 고소했다. 징계를 앞두고 조사를 위해 자신의 출석을 통보하면서 누구나 알 수 있는 일반 전자문서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이었다.
   
   
   잇단 내부갈등 왜?
   
   소방발전협의회는 심 전 본부장에 대한 소명 기회 없는 중징계 요구와 직위해제가 인사권을 남용한 처분이기도 하지만 정년을 50여일 앞둔 퇴직자에게 인간적으로도 가혹한 처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징계는 파면, 해임 또는 감봉 중 하나로, 파면되면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 없다. 명예와 노후 생존기반까지 잃는 것이다. 심 전 본부장은 그러나 “의용소방대까지 합쳐 10만에 이르는 소방관들이 지켜보고 있다. 퇴직하면서 개인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겠지만 소방조직 발전과 민주화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 청장과, 간부후보 4기인 심 전 본부장은 함께 본청에 근무하며 친밀한 사이였다고 한다. 이 청장은 차장 시절까지 소탈한 인간관계와 합리적 일처리로 신망을 받았다. 심 전 본부장도 동기 50명 가운데 두 번째 소방준감으로 승진한 엘리트로 소방 선진화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 전 본부장은 소방관 첫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 연방소방학교에서 단기연수(5개월)를 받고 뉴헤이븐대학에서 소방학 석사학위도 받았다. 중부권의 한 소방정은 “심 전 본부장의 성격에 대한 호불호는 있겠지만 그의 전문성과 열정, 진정성은 누구든 평가할 것”이라며 “인사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면 그의 처지를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본부장이 청장을 고발한 사실이 조선일보에 보도되자 인터넷에 여러 댓글이 올랐다. 이규택씨는 ‘제복을 입은 자들은 상명하복에 충실해야 한다’고, 전미희씨는 ‘다른 부처 인사에서도 전북이 소외됐다’고 주장했다. ‘박봉과 생명의 위험 속에 근무하는 하급자를 생각하지 않는 이전투구’라는 주장(조윤래)도 있었다. 소방청은 내부 갈등이 잦은 조직의 하나로 알려졌다. 4대 박연수 청장은 일선 소방서장이 ‘화재와의 전쟁’ 정책을 공개 비판하는 사건으로 물러났다.
   
   관계부처 한 간부는 익명을 전제로 “함께 제복을 입고 현장에서 고락을 나누지만, 제복에 달린 계급장이 쉽게 갈등을 불러오는 것 같다”고 했다. 소방발전협의회 A간부는 “현장 경험과 업무능력이 부족해 진급해서는 안될 사람들이 정책·기획부서만 찾아 인맥으로 더 쉽게 승진하다 보면 비리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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