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9세기 유럽에서는 고기 굽는 꼬챙이가 회전할 수 있도록 쳇바퀴 속에서 바퀴를 돌리는 개가 존재했다. ⓒphoto 위키피디아
16~19세기 유럽에서는 고기 굽는 꼬챙이가 회전할 수 있도록 쳇바퀴 속에서 바퀴를 돌리는 개가 존재했다. ⓒphoto 위키피디아

인간이 살면서 최소 한 번 이상 접하게 되는 동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이 주저하지 않고 개를 언급할 것이다. 그만큼 개라는 동물은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개는 가축의 하나로 오랜 시간 인간의 노동에 보탬이 되는 사역견으로서 살다가, 산업화 이후 귀엽고 예쁜 애완견으로서 인간의 옆을 함께하다가, 최근에는 애완견이 아닌 희로애락을 평생 함께 나누는 반려견이 되었다. 이런 개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개의 조상은 늑대이다. 늑대의 유전자와 개의 유전자를 대비했을 때 99.96%가 일치한다. 1만2000~1만4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속에서 사람과 개의 유골이 함께 발견된 것을 바탕으로 많은 학자들은 늑대가 사람에 의해 가축화된 것을 그즈음이라고 추정한다. 일부 학자들은 인간이 사냥을 해서 먹고 남은 음식 찌꺼기를 늑대들이 찾아와 먹다가 인간의 곁에 머물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덩치가 큰 늑대가 인간이 남긴 음식 찌꺼기만으로 삶을 연명할 수 없었을 것이며 인간이 적극적으로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새끼를 데려다가 키우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약 1만년 전부터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간과 개가 함께 살았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즉 인간과 개가 함께 사는 문화는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5000년 동안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개량교배한 다양한 종의 개가 생겨났으며 약 5000년 전에 이미 사냥에 도움을 주는 시각형 하운드(Sight Hound·대표적인 종으로 그레이하운드가 있다)와 무리나 집을 지키는 큰 머리에 큰 몸을 지닌 마스티프(Mastiff)종이 존재하였다. 그 외에도 인간은 사냥감의 냄새를 쫓아 사냥감의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품종들도 다양하게 개량교배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형견은 등에 짐을 지거나 수레를 끌기도 하였고 테리어(Terrier)라는 품종에 속한 개들은 땅 속에 숨어있는 쥐를 사냥하고 숨어있는 토끼나 오소리와 같은 동물을 밖으로 유인하여 사냥할 수 있도록 인간을 도왔다.

현재 한국에서 많이 키우고 있는 품종 중에 하나인 몰티즈와 비슷한 개가 약 2000년 전에 로마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중국에서도 이 시기에 현대의 페키니즈와 퍼그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품종들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몰티즈, 페키니즈, 퍼그와 같은 노동을 하지 않는 소형견은 산업화가 되기 전까지는 개체 수가 매우 적었으며 고위층의 소수가 키우는 소위 무릎에 앉히는 작은 강아지(Lap Dog)라고 불렸다. 개가 인간에게 제공한 노동으로는 양과 소와 같은 가축의 무리를 몰거나 지키는 일(보더 콜리, 웰시 코기, 로트와일러, 슈나우저 등), 사냥감의 냄새를 쫓아 위치를 알리는 일(포인터, 비글, 하운드 등), 사냥감을 사냥이 용이하도록 몰아내는 일(요크셔 테리어, 닥스훈트 등), 주인이 적중시킨 사냥감을 찾아내어 주인에게 물어오는 일(래브라도 레트리버, 골든 레트리버, 스패니얼 등), 썰매를 끄는 일(시베리안 허스키, 맬러뮤트 등), 집이나 자신이 속한 영역을 지키는 일(진돗개, 아키타, 바센지 등) 등이 있다. 심지어 16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는 고기 굽는 꼬챙이가 회전할 수 있도록 쳇바퀴 속에서 바퀴를 돌리는 일을 하는 개가 존재하였다. 어느 품종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일부 학자들은 테리어나 닥스훈트와 비슷한 품종이라고 추측한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개는 17세기 이후에 기술적으로 수월하게 돌아가는 꼬챙이가 발명이 되면서 천천히 사라졌다.

인간과 함께 살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던 대부분의 개들의 노동은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즉 다수의 개들이 실직되었다. 대신 본격적으로 외모에 의한 순수 혈통을 추구하여 특정 품종을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개량교배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부모견, 조부모견 그리고 그 위 세대들이 모두 하나의 품종으로 외모를 우선하여 인위적으로 다량 교배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반려견의 품종은 약 400여종인데 어느 품종은 최근 100년 사이에 멸종하였으며 새로 생겨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사냥에 도움을 주었던 세인트 존스 워터 도그(St. John’s Water dog)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반면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키울 수 있도록 개량교배한 골든두들(Goldendoodle)이라는 품종은 1990년대부터 존재한다.

따라서 최근 150년 동안 특정 외모를 추구하면서 변화된 개의 모습은 급격한 차이를 보이는데, 작은 개는 더욱 작아지고 큰 개는 더욱 커지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단적인 예로 몇 년 전에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제일 작은 치와와의 키는 9.65㎝에 태어날 때 몸무게가 28.3g이었으며, 제일 큰 마스티프는 키가 1.1m에 몸무게가 70㎏이었다. 뿐만 아니라 코가 납작해질수록 선호도가 높아진 퍼그, 페키니즈는 납작머리증(단두·Brachycephaly)이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외모 위주의 개량교배는 건강상의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고 개들은 특정 질병에 노출되어 고통받아야 했다. 이와 관련하여 수의학계에서는 외모 위주의 교배보다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할 수 있는 반려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인간의 눈이 즐겁기 위해 특정 외모를 선호하면서 반려견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이 서구사회에서 진지하게 형성되는 추세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40여년 전에 개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자는 의미로 애완견이라는 단어를 지양하고 반려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최근 몇 년 동안 애완견이 아닌 반려견이라는 용어가 확산되었고,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길을 지나가다가,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귀여운 강아지를 발견해 충동적으로 강아지를 구매하였다가 싫증이 나서 파양하거나 유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늑대를 조상으로 두었지만 1만4000년의 시간을 인간과 함께 지내면서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해 사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반려견들은 이제 늑대와는 완전히 다른 동물이다. 오스트리아의 쿠르트 코트르샬(Kurt Kotrschal)의 늑대와 개의 행동에 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새끼 때부터 똑같은 환경에서 젖병으로 먹여 키우고 인간과 함께 낮과 밤을 지냈더라도 늑대는 인간이 요구하는 바나 인간의 몸짓에 대한 이해력이 개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졌다. 행동뿐만 아니라 개는 인간과 함께 살면서 소화기능에 있어서도 늑대와는 다른 진화를 하였는데 스웨덴의 에릭 악셀슨(Erik Axelsson) 박사는 개가 늑대보다 탄수화물과 식물성 식품을 훨씬 잘 소화시키고 흡수시킨다고 발표하였다. 예를 들어 개에게는 쌀이나 호밀 같은 곡물을 소화시키는 능력이 늑대에 비해 5배나 높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반려견의 건강을 위해서 고기만 제공하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이 편견임을 방증하게 되었으며 늑대와 반려견을 동일시하는 위험을 부각시키게 되었다. 이처럼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 진화해온 반려견이 인간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많은 이들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반려견이 인간에게, 또는 인간이 반려견에게 일방적으로 맞춰주는 반려생활이 아닌 서로가 서로의 감정의 상태를 파악하고 상대방에게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방식은 분명 가능하다. 이를 통해 인간의 오랜 베스트 프렌드인 반려견과 행복한 반려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혜원 수의학 박사·동물복지 및 동물행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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