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을 지지하긴 하지만 김문수도 경기도를 위해서라면 열심히 하는 듯.”

6·2 지방선거 직후 한 네티즌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은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독특한 위상을 보여준다. 야당을 지지하면서도 김 지사에 대해서만은 “솔직히 노력 많이 했다” “경기도민 입장에서 나쁘지 않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잘했냐 못했냐를 떠나 도지사로서 뭔가 일을 해보려고 애썼다는 진정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민선 도지사로서 첫 재선에 성공하기까지 꼬박 4년. 김 지사는 무엇을 어떻게 해온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4년 동안 그가 만들고자 하는 경기도는 어떤 모습일까.

복지예산 24%… 무한돌봄센터 확대

김 지사는 이번 선거에서 ‘더 낮은 곳으로 더 뜨겁게 무한섬김 김문수’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지난 4년간 실시한 정책 중 김 지사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힌트가 바로 ‘무한섬김’이란 말에 있다.

김 지사는 2006년 취임 이후 경기도 복지 예산을 24%까지 확대했다. 후보 시절 공약인 ‘복지 예산 20%’를 초과 달성한 것이다. 그 복지정책 중심에 놓여있는 것이 ‘무한돌봄’이란 서비스다. 무한돌봄제도는 위기 가정마다 맞춤형 해법을 원스톱으로 제공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여러 공공기관·복지단체에 흩어져 있는 권한과 서비스를 종합해 복합적인 문제를 한 번에 푼다. 김 지사는 올해 초부터 이를 전담하는 ‘무한돌봄센터’를 경기도 31개 시·군에 순차적으로 열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이모(48)씨 사례를 보면 무한돌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씨는 청각장애와 암 수술 후유증을 앓고 있다. 남편은 사업 실패 뒤 가출해 연락이 끊겼다. 간호조무사인 맏딸(21)도 심방중격결손증이란 질환이 있었다. 둘째(18)와 막내(11)는 미성년이다. 이씨는 암 보험금으로 월셋집을 얻었지만 남편 빚 때문에 보증금이 가압류됐다. 아직 젊고 맏딸이 돈을 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도 될 수 없었다.

이씨가 무한돌봄센터를 찾았을 때, 전문가들이 이씨 가정에 내린 처방은 이러하다. ‘△긴급 생계비 지원 △차상위 의료대상자 지정 △이씨와 맏딸이 검진·수술·재활치료 받도록 인근 병원·복지관과 연계 △둘째와 막내 위한 학습 지원 △자립을 위한 취업 교육과 일자리 알선.’ 혼자서 여러 기관을 전전해야 얻을까 말까 한 혜택을 한꺼번에 제공한 것이다.

무한돌봄만큼 김 지사가 신경을 써온 정책은 ‘수도권 규제완화’와 ‘기업 기 살리기’다. 김 지사는 그동안 경기도가 ‘기업·토지·대학·팔당상수원·군사’ 5대 규제에 묶여 있다면서, 규제 철폐를 외쳐왔다. 첨단기업 공장과 4년제 대학의 신·증설을 허용하고 한강 수계도 친환경 개발해야 발전이 있다는 주장이다. 2008년 여름 김 지사는 “균형발전론은 (이명박) 대통령의 오만” “공산당도 안 하는 짓”이라며 “(이 대통령은) 눈치 보지 말고 경기도민을 위해 (규제 완화에) 노력해 달라”고 연일 공세에 나서다가 한나라당 지도부로부터 공개 경고까지 받았다. 이때 쌓은 ‘경기도를 위해서라면 대통령과도 맞서는 사람’이란 이미지가 결국 “경기도엔 잘했다”는 평가를 얻는 데 주효했다.

이미지만이 아니라 실적도 있었다. 올해 2월 정부가 허용한 이천시 하이닉스 공장 증설은 경기도가 주관한 27번의 대책회의·공청회·토론회와 32번의 청와대·중앙부처·국회 방문 건의를 거쳐 성사됐다. 그간 김 지사는 일곱 번 해당 공장을 찾아갔고, 도민결의대회도 열 차례나 열렸다.

수도권 광역 급행철도 현실되나

앞으로 4년 동안 김 지사가 추진할 정책의 핵심은 ‘교통’과 ‘경제’에 있다. “개발 위주의 콘크리트 도정”이란 비판의 목소리도 높지만, 김 지사는 “내가 겪어본 경기도 현실을 반영했다”고 설명한다. 김 지사는 그동안 명절·주말을 이용해 18차례 택시기사 체험을 했다. 173시간 동안 달린 거리는 2368㎞에 이른다. 그렇게 경기도 곳곳을 발로 뛰면서 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곳이 어딘지, 경기 회복에 대한 도민의 열망이 얼마나 뜨거운지 직접 느꼈다는 것이다.

교통 정책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수도권 광역 급행철도(GTX)’다. ‘대심도 철도’라고도 부르는 GTX는 지하 40~50m에서 최대시속 200㎞로 도심을 통과하는 새로운 대중교통 수단이다. 2018년까지 3개 노선 174㎞의 GTX를 개통해 경기도 주요 지역과 서울·인천을 거미줄처럼 잇는 것이 김 지사의 꿈이다. 김 지사는 이 공약을 “아침밥 드시고 느긋하게 출근하세요”란 말로 정리했다. GTX가 생기면 고양시 일산에서 서울 강남까지 22분, 화성시 동탄에서 서울 강남까지 18분이면 오갈 수 있으니 ‘출퇴근길 30분’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땅 속 깊은 곳에 촘촘히 철도를 놓는다는 것이 다소 허황되게 들릴 수 있다. 실제 GTX 정책을 발표한 뒤 효율성·안전성 문제 등을 들어 현실성이 낮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그러나 베드타운이 많은 경기도에선 어느 정도 통하는 얘기일 수밖에 없다. 출퇴근 시간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수많은 광역버스는 만원을 이룬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30분~1시간여 동안 서있는 승객도 흔히 볼 수 있다. GTX가 실현되든 못 되든 간에, 김 지사가 매일같이 지친 몸을 버스나 지하철에 싣고 서울을 오가는 도민의 고충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30개 대규모 환승센터 건설’이나 ‘고속버스 환승 확대’ 같은 정책도 결국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경제’ 면에서 김 지사가 최근 주목하고 있는 것은 서해안 골드 코스트(Gold Coast) 개발이다. 화성·안산·평택처럼 서해안에 접해 있으면서 개발 여력도 많은 도시에 집중 투자해 동북아 허브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개발 초점은 제조업 같은 기존 산업보다 관광·해양레저·우주항공 같은 새로운 영역에 맞췄다.

우선 화성시에 유치한 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 리조트 주변에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화성·안산시의 전곡항·탄도항 주변을 요트 허브가 있는 해양레저 중심지로 키울 예정이다. 오는 6월 9일부터 13일까지 여기서 열린 경기국제보트쇼도 그 초기 계획의 일부다. 평택항엔 2020년까지 국제물류기지가 들어선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 화성·안산·평택시장을 모두 민주당이 휩쓴 점이 김 지사가 꿈을 실현하는 데 어떤 영향을 줄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김문수의 사람들

GTX사업 이한준, 경제정책 좌승희, 사회복지는 서상목

운동권 출신 차명진·허숭·김기영·오세구씨도 측근

김문수 경기지사의 대표적 정책 중 하나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이한준(59) 경기도시공사 사장이다. 김 지사의 경기도정책특별보좌관 출신인 이 사장은 홍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통공학 전문가로 사회간접자본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왼쪽부터) 서상목 / 이한준 / 좌승희 / 차명진 / 허숭
▲ (왼쪽부터) 서상목 / 이한준 / 좌승희 / 차명진 / 허숭

좌승희(63) 경기개발연구원장도 김문수의 사람 중 하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팀장 출신인 그는 미국 UCLA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경제전문가. 자신의 전공을 살려 각종 경제현안에 대한 자문을 김 지사에게 해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문수 사회복지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서상목(63) 경기복지미래재단 이사장.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보사부 장관(1993년)과 복지부 장관(1994년)을 역임했다. 김 지사와 뜻을 함께 하는 대표적 브레인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김문수 지사가 민중당 창당을 추진했던 1990년대 초반부터 보좌역을 맡았던 허숭(41) 메디코 전 대표이사도 김 지사의 사람이다. 경기도 대변인 출신으로, 지난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안산 시장에 출마했다가 민주당 김철민(53)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현역 의원 중에선 차명진(51)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 지사가 민중당 구로갑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있던 1990년, 사무국장을 맡아 고락을 함께 했다. 김문수 국회의원 보좌관(1996~2000년), 경기도지사 공보관(2000~2003년), 김문수 경기도지사 선대위 총괄실장(2006년) 등을 역임하다 2006년 7·26 재보궐선거 때 김 지사의 지역구인 경기 부천소사에서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다.

김문수 지사의 언론정책은 문화일보 기자 출신인 이상호(49)씨가 맡고 있다. 세계일보에서 시작해 문화일보·AM7 등에서 사회부와 전국부 부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그는 김 지사의 언론 보좌를 담당한다.

최근 경기 전곡항에서 열린 경기국제보트쇼·세계요트대회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김기영 보좌관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의 서울대 경영학과 후배인 그는 농민운동가 출신으로, 농어민신문사 차장과 내일신문 편집국장·경기도 대변인을 역임했다.

김 지사의 체육문화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은 오세구(56) 경기도생활체육회 사무처장이다. 서울대 불문과 출신의 오 처장은 학창시절부터 김 지사와 인연을 맺은 운동권 출신으로, 지근 거리에서 각종 조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가 국회의원 때 보좌관 공채를 거쳐 합류한 손원희(38) 비서실장은 “성실하고 진정성이 있다”는 평을 받으며 김 지사를 최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측근 중 하나로 꼽힌다.

김진명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 이범진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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