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지사가 9월 1일 코리아디자인센터에서 열린 ‘2010 경기 기능성 게임 페스티벌’에 참석해 3D게임을 체험하고 있다. ⓒphoto 연합뉴스
김문수 지사가 9월 1일 코리아디자인센터에서 열린 ‘2010 경기 기능성 게임 페스티벌’에 참석해 3D게임을 체험하고 있다. ⓒphoto 연합뉴스

9월 1일 경기도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이날 정부가 ‘KTX 고속철도망 구축전략’을 발표하면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Great Train Express)를 지자체 주도로 추진하면 적극 지원하겠다”는 말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경기도가 2007년 7월 처음 광역급행철도를 검토하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GTX 건설 여부를 확정 짓는 순간이었다.

국가경쟁력강화위·녹색성장위·미래기획위·지역발전위·국토해양부 등 관계기관이 전부 모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자리에서 “GTX를 지원한다”는 발표가 나오자,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이 김문수 경기지사에게 큰 선물을 줬다”는 말이 돌았다. 김 지사도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날 오후 김 지사는 즉각 성명서를 내고 “1200만 경기도민과 함께 환영한다. 그동안 제안한 GTX 3개 노선이 차질 없이 동시 착공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GTX 승인으로 김 지사는 지난 7월 1일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꼭 두 달 만에 큰 도약대를 얻었다. 민선4기 중반쯤 내놓은 GTX 공약은 그가 재선에 성공한 원동력 중 하나였고, 민선5기에 실행해야 할 중요 정책 가운데서도 우선 순위가 높았다. 훗날 ‘서울시장 이명박에겐 청계천이 있었는데 경기지사 김문수에게 무엇이 있었나’란 질문을 받는다면, 자신있게 제시할 카드를 하나 확보한 셈이다.

일산~서울역 42분서 16분에 주파

‘지하 40~50m에서 시속 100㎞ 이상으로 달리는 대심도(大深度) 철도’, 이게 GTX다. 평균 깊이 20~30m인 지하철보다 더 깊은 지하 공간을 활용해 최단거리인 직선 코스로 철길을 놓겠다는 구상이다. 기존에 경기도가 국토해양부에 제안한 GTX 3개 노선은 총 145.5㎞ 길이로, 서울·경기·인천을 동서남북으로 연결한다. 고양시의 전시장 킨텍스에서 서울 도심을 지나 화성시와 동탄신도시로 가는 것이 A노선, 인천 송도신도시와 서울 청량리를 잇는 것이 B노선, 의정부시에서 서울을 가로질러 군포시 금정에 닿는 것이 C노선이다.

당초 김문수 지사의 목표는 GTX 3개 노선을 2012년쯤 동시 착공해 2016년 완성하는 것이었다. 현재는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서울 지하철 삼성역까지 평균 67분, 고양 일산신도시에서 서울역까지 평균 42분이 걸리는데 GTX가 생기면 그 시간을 각각 19분과 16분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32분쯤 걸리는 의정부시~서울 청량리도 12분 만에 주파 가능하다. 향후 각 노선 끝을 연장하거나 연계 교통수단을 확보하면 수도권 주요도시를 모두 통과하는 거미줄 같은 교통망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도대체 GTX인가? 8월 18일 김 지사가 GTX포럼에서 했던 인사말을 살펴보면 ‘김문수의 GTX, GTX의 김문수’가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경기도란 곳에 한번 살아보거나 다녀본 분들은 왜 GTX를 얘기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경기도민 60%는 늘 교통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봅니다. 경기도를 서울 비슷한 곳 아니냐고 보는 분들이 계시지만 서울과는 다른 곳입니다. 경기도민이 교통으로 당하는 고통은 굉장히 큽니다. 우리나라 도시 계획이 근본적으로 잘못돼서 교통문제를 원초적으로 안고 있습니다. 일산·분당·평촌 등 모든 신도시가 베드타운이고, 잠자는 곳하고 일자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대책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게 경기도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이날 포럼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신도시 계획)이 통이 작다”는 발언이 나온 자리였다. 김 지사가 또 한번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고 해서 조명을 받았고,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경기도부터 잘 챙기라”고 반박까지 했다. 하지만 전체 맥락을 보면 김 지사 입장에선 경기도를 잘 챙기려다 보니 나온 말이고, 실제 경기도민이 겪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한 얘기이기도 했다.

매일 버스나 지하철, 자가용을 이용해 서울이나 경기도 내 다른 도시로 출·퇴근 또는 등·하교하는 경기도민 가운데는 GTX에 큰 기대를 거는 사람이 많다. 경기도 주요도시와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는 출·퇴근 시간마다 만원을 이뤄 40분에서 1시간을 서서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생활을 하는 이들에겐 시속 100~200㎞ 급행열차를 타고 편안하게 서울을 갈 수 있다는 얘기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꿈이 된다. 수많은 도민이 기대를 걸고 있으니, 민주당 소속인 시장·군수나 도의원들도 GTX 사업만큼은 함부로 반대하지 못한다. GTX가 통과하지 않거나 일부 지역에만 들어오는 화성·평택·안산·파주·남양주·양주·구리·동두천 8개 자치단체가 이미 GTX 노선 연장을 신청했는데, 그중 5곳 단체장이 민주당 소속이다. 경기도는 9~10월 중 GTX 관련 공청회를 한 뒤, 12월부터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

통일 대비한 경기북부 개발론

GTX를 제외하고, 김문수는 또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지난 7월 6일 경기도가 확정한 ‘민선5기 4대 전략과 24개 주요과제’를 들여다보면 도움이 된다. 6·2지방선거를 앞두고 김 지사가 내건 6개 분야 31개 공약과 민선4기 주요사업의 핵심만 간추렸다는 것인데, 주요 기조는 슬로건 두 개에 담았다.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엽니다’와 ‘더 낮은 곳으로 더 뜨겁게’다. 첫 번째 슬로건에 경제·환경·교통·일자리 정책이, 두 번째 슬로건에 복지·교육 정책이 들어간다.

4대 전략은 ‘도민을 무한 섬기는 경기도’ ‘일자리 천국 살맛나는 경기도’ ‘평화와 협력으로 번영하는 경기북부’ ‘새천년을 준비하는 경기도’로 정했다. 이 중 앞의 두 가지는 민선4기 복지·일자리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고, 뒤의 두 가지가 민선5기 들어 새로 시작하는 정책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 정책을 살펴보기 앞서, 8월 25일 한나라포럼에서 김 지사가 했던 얘기를 들어보자. “대한민국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과제가 중국을 봐야 하고, 둘째 북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하고, 셋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두 문장에 불과하지만 김 지사가 평소 제시하는 미래 전략, 비전의 대부분은 여기 녹아있다. 엄청나게 성장한 중국 곁에서 계속 우리 자신을 지켜갈 새천년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통일에 대비할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이런 김 지사 생각은 지난 7월 말 투자 유치를 위해 중국 상하이를 다녀온 뒤 더 강해졌다. ‘상하이 쇼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입만 열면 중국을 얘기하고 덧붙여 북한을 염려한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총리 후보로 지명된 뒤 했던 발언도 그런 맥락 속에 놓여있다.

경기도란 범위 안에서 중국과 북한에 대응할 방법으로 김 지사는 서해안과 경기북부를 택했다. ‘새천년을 준비하는 경기도’란 전략하에 ‘환황해권 대중국 전략특구 조성’과 ‘해양·항공산업 같은 신성장동력 기반구축’을 과제로 제시했다. 화성·안산·평택·시흥 같은 서해안권에 해양 레저·항공 같은 새로운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해 중국을 겨냥해 계속 성장해갈 동력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평화와 협력으로 번영하는 경기북부’란 전략 속엔 현재 비교적 낙후된 의정부·동두천·포천·연천 같은 경기북부 지역에 교통망을 확충하고 특화 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포함했다. 민선5기 취임식을 의정부시에서 치른 것도 그런 의중을 나타낸 행보였다. 앞으로 DMZ 일원을 세계적인 평화·생태거점으로 조성하고, 경기북부에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도립통일대학을 설립한다는 방안도 제시해 놓은 상태다.

김진명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