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촌 없앤다고 성매매 사라지나”
“철거 계획 없다… 영업단속 하는 것뿐”
“이렇게라도 안 벌면 가족 굶어죽는다”
“유예기간 줄 수 없다… 정비계획 수립 단계”
“집중단속 배후에 대기업 있나”
“대기업과는 만난 적도 없다”
지난 5월 17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앞에서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하던 성매매 여성들이 시위 끝에 반라 차림으로 빌딩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DB
지난 5월 17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앞에서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하던 성매매 여성들이 시위 끝에 반라 차림으로 빌딩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DB

5월 17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대형 쇼핑몰 ‘타임스퀘어’ 앞에 하얀 소복을 입고 산발한 머리를 한 여성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하얀색과 붉은색으로 분장을 한 이들은 쇼핑몰 바로 옆에 있는 집창촌의 성매매 여성들이었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 동대문구 청량리와 경기도 평택, 강원 원주 등지에서 온 성매매 여성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빨간색, 노란색, 흰색, 진청색 등의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오후 3시20분.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구호를 외치던 이들이 가두 행진을 시작했다. 여성 400여명이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타임스퀘어 옆으로 빠져 뒤편의 영등포 집창촌을 끼고 돌았다. 1시간이 넘게 이어진 가두 행진을 하는 동안 백화점 1층의 출입구는 성매매 여성들의 진행 방향에 맞춰 출입 차단 셔터가 오르내렸다.

오후 5시55분. 성매매업 종사자 모임 한터전국연합의 홍성열 영등포지역 대표는 “평화적으로 오늘 시위를 마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성매매 여성들은 그들 앞에 자리잡고 있는 기자들을 향해 “앞을 막지 마라” “카메라 망가져도 모른다”고 말했다. 일부는 타임스퀘어 안으로 뛰어 들어가기 위해 통로를 만들었다.

시곗바늘이 오후 6시 정각을 가리키자, 동그랗게 모여 서있던 여성들이 입고 있던 소복을 벗어던졌다. 가슴을 드러낸 채 팬티만 입은 그들의 몸엔 빨간 보디페인팅이 돼 있었다. 반라(半裸)의 여성들이 쇼핑몰을 향해 뛰기 시작하자 경찰과 경호원이 이들을 막아섰고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졌다. 성매매 여성과 성매매 업소 업주들까지 가세해 경찰들과 한데 뒤엉켰다.

오후 6시9분. 집창촌 거리로 돌아간 일부 성매매 여성들은 거칠어졌다. 집창촌 골목길 양쪽에 늘어선 성매매 업소에서 가지고 나온 하얀색 플라스틱 휘발유통이 5~6개 됐다. “쟤 말려! 뺏어!”라는 소리가 나왔고, 또 한 번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휘발유를 온몸에 들이붓고 분신을 시도하려는 반라의 여성과, 분신을 저지하려는 주변 사람들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죽으나 돈 없어서 죽으나 똑같다” “내가 죽어버리면 될 거 아니냐”며 오열하는 여성도 보였다. 이 과정에서 강한 휘발유 냄새에 여성 세 명이 실신했고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휘발유가 일부 기도로 넘어간 여성 등 모두 13명이 토하며 쓰러졌다. “우리 딸 때문에 나 돈 벌어야 해 이모”라는 말이 들렸다. 나이 많은 성매매 여성이나 업주를 이모라고 부르는 걸로 생각됐다.

오후 6시30분. 신고해도 응급차가 오지 않자 성매매업 관계자들이 개인 차량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여성들을 인근 병원 두 곳으로 이동시켰다. 이날 상황은 종료됐다. 병원으로 옮겨졌던 13명의 여성들은 이날 늦은 시각 모두 퇴원했다.

“집창촌 폐쇄하면 변종 성매매업 성행”

다음날인 5월 18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4가 423번지 영등포 집창촌을 다시 찾았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북서편의 쪽방촌을 가로지른 약 300m 거리엔 성매매가 이뤄지는 일명 ‘유리방’이 골목 양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3만2000㎡ 부지에 자리 잡은 이곳은 과거 서울 5대 집창촌(강북구 미아리, 강동구 천호동, 동대문구 청량리, 용산구 용산역 앞, 영등포구) 중 한 곳이다. 다른 집창촌이 철거되고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영등포 집창촌은 현재 서울 최대 집창촌이 됐다. 40년 전부터 이곳에서 슈퍼마켓을 해왔다는 김용태(74)씨는 “시골에서 농사를 접고 처음 여기에 올라왔을 땐 현재의 대형 쇼핑몰 자리에 경성방직, 방림방직이란 공장 두 개가 있었다. 윤락가는 30개 정도뿐이었다”고 떠올렸다. 김씨는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되기 전까지 장사가 매우 잘됐다”며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에는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성매매특별법(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성매매를 방지하고, 성매매 피해자 및 성매매업자의 보호와 자립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2004년 9월 23일 시행됐다. 특별법은 ‘신고를 하지 않고 지원시설이나 상담소를 설치·운영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제22조) 규정하고 있다.

영등포 집창촌은 1950년대 영등포역 앞에 육군 보급부대가 들어오면서 형성됐다. 영등포 집창촌의 정확한 규모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올 3월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상담센터들이 개별적으로 파악한 바로는 이곳에 66개 성매매 업체와 70여명의 종사자가 있다. 한터전국연합 영등포지역 사무실의 추산에 따르면 100여명의 성매매 여성이 남아 있다.

영등포 집창촌 골목길 입구에서 통행 안내를 하는 신세계백화점의 주차 안내원들을 지나 골목에 들어서자, 입구 한쪽에 낡고 빛바랜 ‘청소년통행금지구역’이란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골목의 양옆으로 늘어선 유리방의 전면 유리문들은 “집창촌 들추면 성매매 없는 대한민국 되나”“성노동자도 노동자다” 등의 구호가 적힌 대형 현수막들로 가려져 있었다. 이곳은 1999년 발효된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레드존(청소년 통행 금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어젯밤에도 야외 천막에서 잤습니다. 이번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우리는 이곳에서 먹고 자고 죽을 겁니다.” 전날 분신 시도가 있었던 골목 한편에 자리 잡은 파란색 천막에서 만난 성매매업 종사자 모임 한터전국연합의 홍성열 영등포지역 대표는 이와 같이 말했다. 50대로 보이는 그는 이곳의 업주다. 홍 대표와 함께 천막을 지키는 성매매업 종사자들은 “집창촌을 폐쇄하면 키스방·오피스텔·해외원정 성매매와 같은 변종 성매매업이 늘어날 뿐”이라며 집창촌의 양성화를 주장했다.

순찰차 배치 후 손님 발길 끊겨

영등포 집창촌 성매매업 종사자들이 골목 밖으로 나오게 된 계기는 지난 4월 1일 시작된 경찰의 성매매업체 불법영업 집중 단속 때문이다. 영등포경찰서는 ‘불법 성매매 근절을 위한 집중 단속기간’을 선포하고, 5월 18일까지 사흘을 제외하곤 매일 단속을 해왔다. 영등포경찰서 정성일 생활안전과장은 “집창촌 주민에게 미리 집중 단속할 것임을 알렸다. 집창촌 골목 입구 두 곳에 순찰차를 각각 1~2대씩 배치해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단속했다”고 밝혔다.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3월 9~10일 집창촌의 건물주들에게 경찰서장의 이름으로 한 장의 서한문을 발송했다. “성매매 집결지 업주 여러분께”라는 문구로 시작된 이 서한문에는 “(성매매 집결지의) 호객 행위 및 불법 영업이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고 지역 문화에 악영향을 준다”며 “불법 행위인 영업이 적발되면 업주와 건물주가 함께 처벌받을 수 있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9년 동안 이곳에서 성매매업에 종사해온 윤희(가명·36)씨는 “경찰차가 입구를 막아서고 있는데 누가 들어오려고 하겠느냐”며 “그냥 장사하지 말란 소리”라고 말했다. 성매매 업주 안명길씨도 “올 3월 초 성매매를 처벌하겠다는 서류 한 장 보내고 한 달 만에 이렇게 집중 단속하는 것은 우리를 맨몸으로 내쫓는 것”이라고 흥분했다. 안씨는 “우리가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대책을 마련해주든지 아니면 적어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많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성매매업 종사자들이) 나갈 준비를 할 유예기간을 적어도 6개월~1년은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업시행자 안 정해졌다”

지난해 12월 영업 중인 영등포 집창촌의 ‘유리방’.(좌) 5월 20일 이곳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현수막으로 가린 유리방 건물 뒤로 타임스퀘어 빌딩이 보인다.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해 12월 영업 중인 영등포 집창촌의 ‘유리방’.(좌) 5월 20일 이곳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현수막으로 가린 유리방 건물 뒤로 타임스퀘어 빌딩이 보인다.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영등포경찰서 생활안전과 여성청소년계 오정문 계장은 “(성매매업 종사자들이) 요구하는 유예기간은 너무 길다”며 “우리가 그들이 살아갈 방법까지 찾아줄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오 계장은 또 “이 지역에 대한 경찰 측의 철거 계획은 따로 없으며 강제로 내쫓기보단 성매매 남성이 근본적으로 못 가게 해 성매매 문화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하려는 것”이라며 “성매매는 불법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근절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전여옥 의원(서울 영등포구 갑·한나라당)은 4월 29일자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된 2004년부터 지금까지가 유예기간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일부 집창촌 사람들은 “경찰의 집중 단속의 배후에 대기업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재개발 구역인 이곳을 지난 2009년 들어선 신세계백화점이 차지하기 위해 경찰의 단속을 사주했다”고 말했다. 영등포 집창촌은 지난해 3월 도시환경정비사업 예정구역에 포함됐다. 영등포경찰서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백화점 관계자와는 만난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익명을 요구한 영등포 신세계백화점 홍보실 관계자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이러한 의혹을 일축했다.

영등포구청 도시계획과 이세림 주무관은 “통상 이런 개발사업은 5년 정도를 잡지만 주민 동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목표 시기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아직 정비 계획 수립 단계”라며 “사업이 구체화되지 않아 사업 시행자에 대한 말이 오가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 시위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근의 일부 주민은 “재개발 들어가기 전에 보상금을 받아 나가려는 것 아니냐”며 “아직 개발도 될지 안 될지 모르는데 밥그릇부터 챙기려는 것 같아 보기 안 좋다”고 말했다. 5월 17일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를 지켜보던 한 시민은 “불법은 불법”이라며 “영등포가 발전하려면 집창촌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매매 여성 민영(가명·29)씨의 한쪽 손목엔 파란 멍자국과 함께 2~3㎝ 길이의 자해 흔적이 있었다. 그는 “(면도날로) 손목을 그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가끔 ‘내가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을까’ ‘죽어버리자’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자살 기도를) 하다가 ‘내가 죽으면 엄마랑 동생은 어떡하나’ 싶어서 또 정신 차리고 살아가는 거예요.” 2년 전 영등포 집창촌에 “제 발로” 들어왔다는 민영씨는 중학생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을 갚기 위해 매달 120만원씩 돈을 댄다. 신장이 안 좋은 어머니와 부모의 병을 이어받은 14살짜리 동생의 병원비도 민영씨 몫이다. “전 정말 먹고 살려고 이리로(집창촌으로) 들어온 거예요. 남들은 우리가 돈을 엄청 많이 벌어서 명품 사 입는다 그러는데 저거(가방과 구두) 다 가짜예요. 돈 많은 사람들이 가는 소위 텐프로(고급 유흥업소)에 있는 사람들이나 돈을 많이 받지, 저희(집창촌 여성)는 한 번에 7만원 받아요. 그중 3만원은 방세로 삼촌(업주)한테 주고요. 옛날엔 300만~400만원 벌기도 했다지만 요즘엔 200만원도 겨우 벌어요.”

또 다른 성매매 종사자 세희(가명·38)씨의 사정도 비슷했다. “4월 1일 단속 이후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정말 가정환경이 어려워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며 “저도 심근경색이 있는 아버지 병원비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동생들에게 들어가는 돈만 다달이 200만원”이라고 말했다. 보험 판매원, 아파트 청소, 방송사 동시 녹음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는 세희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집창촌을 찾는 사람들 가운덴 농촌 총각, 장애인, 부인과 사별한 노인과 같이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기가 그들의 성욕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예요. 집창촌이 없어져버리면 이 사람들의 성욕도 사라질까요?” 강현준 한터전국연합 대표는 집창촌 단속이 근본적으로 성매매를 뿌리뽑을 수 있는 대책이 아니란 점을 지적했다. “성매매특별법 발효 이후 성매매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라며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주택가, 상가 곳곳에서 은밀히 지속되고 있는 것을 알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자활시설 실질적 도움 안 돼”

현재 국내엔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시설들이 존재한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엔 성매매 여성들의 재교육과 재취업을 돕는 ‘여성성공센터 Wing’과 이들이 거주할 수 있는 쉼터가 마련돼 있다. 이 시설에선 성매매 여성들의 불규칙한 생활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일정을 관리하거나 재봉·미용 등 취업에 필요한 기술을 교육하기도 한다. 영등포구 집창촌 성매매 여성 문제를 담당하는 여성정책팀 박화선 팀장은 “기술을 배우면 5290원의 시급을 준다”며 “한 달에 최고 74만원가량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등포 집창촌의 성매매 종사자들은 입을 모아 “거기(여성성공센터 Wing)에서 아무리 열심히 배워봤자 수당도 너무 적고, 사회에 나와 취업될 가능성도 매우 낮다”며 “여성부나 성매매지원센터 사람들이 제일 도움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여성단체가 아가씨들 모아놓고 이런 프로그램 있으니까 참여하라고 설명한 적도 없다”며 “크리스마스 때 와서 카드 주고 캐럴 불러주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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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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