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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8호] 2012.03.19

동북아 패권은 해군력으로 결정된다

윤명철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해양사 

▲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중국 해군의 최신예 구축함 스자좡호를 타고 칭다오 앞바다에서 군함들을 사열하고 있다. photo 로이터·연합
제주도 서귀포시 마라도로부터 남서쪽으로 149㎞(80마일)에 위치한 이어도를 두고 중국이 감시선과 항공기를 동원해 정기순찰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한·중 간 마찰이 일고 있다. 독도 문제에 딴죽을 걸고 있는 일본에 이어 중국까지 해양 패권을 향한 야심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동아시아 해양권을 놓고 최근 한반도 주변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일본과 중국은 동중국해에서 센카쿠열도(중국명 釣魚島·댜오위다오)를 놓고, 러시아와 일본은 오호츠크해의 남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 4개 섬을 놓고 영토 분쟁이 촉발됐다. 일본은 독도를 국제 문제로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곧 중국과 러시아는 두만강 하구와 연해주의 해양 연고권을 놓고 갈등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양 영토 갈등이 왜 빈번해지고 있는 걸까.
   
   우선 동아시아가 가진 지정학적 해양 환경이 갈등의 핵심이다. 동아시아는 한반도를 가운데 두고 사할린 인근 타타르해협, 동해, 남해, 서해(황해), 동중국해로 이어진 340만㎢의 해양이 있다. 그 바다를 다시 만주와 중국의 동쪽 해안지대 그리고 일본 열도가 둘러싸고 있는 지중해의 형태다. 그래서 근래에는 ‘동아지중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다.
   
   유럽의 지중해와 마찬가지로 모든 지역과 국가들은 바다를 통해 주로 무역을 하고 있다. 그 중요성은 유럽의 지중해 못지않다. 주민들이 이주할 때나 군사작전을 펼 때도 바다가 주요 무대가 된다. 그래서 각국의 수도를 비롯해 대도시들은 주로 해양과 관련된 항구도시의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원조선(고조선)의 왕검성, 고구려의 평양성, 백제의 한성·사비성, 신라의 금성(경주), 가야의 김해, 고려의 개경(개성) 등은 전형적인 항구도시였다. 일본도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기원전 2세기경 원조선과 한(漢)나라는 황해 북부의 패권과 무역권을 놓고 충돌해 1년간 수륙양면전을 치렀다. 또 6세기 말부터 7세기 중엽까지 고구려를 주축으로 한 세력과 수·당(隋·唐) 세력 간에 동아시아의 종주권과 교역권을 놓고 무려 70여년 동안 전쟁을 했다. 동북공정을 진행해온 중국 정부는 이 전쟁이 국내 전쟁 또는 통일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백제는 660년 여름에 황해를 건너온 당나라 군대 13만명과 1900여척의 군함, 신라 선단 100척이 공동 상륙작전을 시도해 사비성을 함락당했다. 부흥운동마저 663년 나·당 연합해군과 백제·왜 연합해군이 충돌한 백강구 해전에서 왜선 400척이 불타며 실패로 끝났다.
   
   그후에도 해양력은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는 물론이고 한민족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발해는 통일신라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해양력을 가진 국가였다. 732년에 발해의 수군은 압록강 하구의 단동항을 출항해 산동성에 있는 당나라의 국경도시이며 무역도시인 등주성을 점령했다. 고려는 해양력이 강했기 때문에 분단된 중국 지역을 상대로 동시 등거리 외교를 전개하면서 자주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쌍방무역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아라비아해, 홍해까지 이어지는 중개무역망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몽골과 대항해서 자주성을 지킨 것도, 또한 삼별초가 4년 동안이나 남해와 동중국해를 누비면서 저항한 것도 뛰어난 해양문화와 막강한 해양력 때문이었다.
   
   
   해양력 약화 조선의 운명
   
   그러나 비자주적인 성리학자들이 지배한 조선은 해양을 천시하고, 해양력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1592년 동남아시아 해양까지 활동 무대를 넓힌 일본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다행히 명맥을 유지해온 해군력과 탁월한 전략가인 이순신 장군의 지휘로 해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일본은 해양력 증강에 심혈을 기울였고, 도쿠가와 막부 때는 유럽으로 사절단을 파견하기 위해 1613년에 선박을 자력으로 건조했다. 이 배는 태평양을 횡단해서 멕시코 부왕의 영접을 받기도 했다. 일본은 동남아시아 전역을 활동 범위로 삼으면서 해양활동을 전개했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오면서 유럽은 해군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로 진격했다. 중국은 아편전쟁에서 패하면서 반식민지화됐다. 일본 또한 결국은 미국 해군의 압력에 굴복해 불평등 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870년 일본은 병부성에서 20년에 걸쳐 군함 200척 및 운송선 20척을 건조해야 한다고 조정에 건의하고, 이 과정에서 일본의 제국 해군이 탄생하게 된다. 이 무렵에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는 정한론을 주장했고, 조선을 ‘다시’ 속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나온다. 일본은 이미 1850년대에 홋카이도를 정복하고, 남부 사할린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류큐국(琉球國)을 점령해 일본으로 편입시켜 오키나와 제도의 끝인 대만 부근까지 연결시킨다. 완벽하게 한반도를 가운데 둔 채 대륙을 포위한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울릉도는 전략적으로 중간 거점에 해당했고, 그래서 사카모토 료마 같은 인물이 울릉도 개척을 주장하기도 했다.
   
   
   동아시아 해양권 둘러싼 청일전쟁
   
   해양 패권에 자신감을 가진 일본은 드디어 행동에 나섰다. 1875년에는 수입함인 운양호를 비롯한 3척의 일본 군함이 강화도 근해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후유증 때문에 조선은 허무하게 불평등한 조건으로 개항을 한다.
   
   이렇게 되자 동아시아는 교두보인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일본, 청나라, 러시아가 각축전을 벌이는 구도로 변했고 그 실질적인 힘은 해양력의 차이에서 나왔다. 청나라는 1882년에 신식 해군을 창설하고, 해군력 증강을 주도하는 사업을 벌여 ‘정원(定遠)’ ‘진원(鎭遠)’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최신예 철갑함을 독일에 주문했다. 이후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계기가 되어 조선의 지배권과 동아시아의 해양을 둘러싸고 청일전쟁이 벌어졌다. 리홍장의 청나라의 북양함대는 황해해전에서 일본 해군에 대패했으며, 이와 함께 조선은 청나라에서 벗어난 자주국이라는 명분과 함께 일본의 속국으로 한 걸음 더 빨려들어 갔다. 전쟁배상금 등을 투입해서 전력을 강화시킨 일본은 영국에서 최신형 전함을 구입해 미카사(三笠)라고 명명한 후 실전에 배치했다. 이미 다음 ‘타깃’으로 러시아를 선택했던 것이다.
   
   러시아는 청나라로부터 연해주를 빼앗고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항을 확보한 후에 조선과 함께 대마도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동해와 남해를 거쳐 동남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확보하자는 전략이다. 그렇게 하면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과 중국을 바다에서 압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 물동량 99%가 해로로
   
   역사를 통해 해양력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인식한 중국은 현재 나진·선봉지구를 조차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어 놓고 두만강 하구의 나진항을 통해서 동해로 진출한 다음 제주도, 이어도,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를 거쳐 남사군도(南沙群島)까지 이어지는 해양로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의 최근 군사비 지출은 세계 3위에서 5위 사이를 맴돌고 있다. 해군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항공모함까지 취역할 예정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어도를 자국의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며 동지중해 패권을 잡을 야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일본도 해양력 강화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세계 4위의 군사비 지출 규모를 자랑하는 일본의 해군력은 세계 2위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은 1994년에 발효된 해양 영토의 개념을 적용하면 세계 5위의 해양 영토 대국이다.
   
   동중국해 심해에 묻혀 있는 자원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 해역이 중국의 영향권으로 편입되면 우리는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물동량의 99.3%가 해로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는 석유라는 에너지 자원도 포함돼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해양 충돌이 19세기 말과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해양을 어떻게 바라보고, 중국과 일본의 해양력 강화를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야 할까. 그 해답은 이제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


   
윤명철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해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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