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5일 문재인 후보가 서울 상암동 중소기업 DMC타워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왼쪽)의 손을 맞잡고 있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지난 9월 25일 문재인 후보가 서울 상암동 중소기업 DMC타워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왼쪽)의 손을 맞잡고 있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약점이 별로 없다”는 것을 문 후보의 큰 장점으로 꼽는다. 문 후보는 1952년 경남 거제의 피란민수용소에서 태어나 경남중·경남고를 거쳐 경희대 법대를 졸업하기까지 비교적 평범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 사법고시에 합격해 198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인권 변호사 생활을 했기에 딱히 검증 공세에 꼬투리를 잡힐 만한 과오가 없었다. 2003년부터 2008년 초까지 노무현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비서실장을 지냈으나, “국회의원들의 민원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원성이 자자할 만큼 원칙주의자로 지냈다.

그런 문 후보에게 가장 큰 약점이라면 바로 친노(親盧·친노무현)와 그 인사들이 만든 참여정부 시절의 일들이다. 친노와 참여정부의 과오는 민주당 경선부터 줄곧 문 후보를 괴롭혀 온 소재다. 친노였기에, 친노들에 의해서 정치를 시작하게 됐는데 그것이 가장 큰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참여정부에 대한 잇따른 사과

문 후보 본인은 친노와 참여정부 시절의 문제를 극복하려고 애를 많이 쓴다는 것이 친노·비노 진영 모두의 대체적 평가다. 문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부터 친노 색을 줄이려고 많이 애를 썼다. 경선 당시 공동선대본부장을 지낸 노영민·우윤근·이상민·이목희 의원은 모두 친노로 분류되지 않는다. 9월 16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고서 줄곧 계파를 아우르는 ‘용광로 선대위’를 만들겠다고 얘기해 왔고 실제 공동선대위원장이나 선대위 여러 본부장에 비노(非盧) 인사를 많이 임명했다.

대선 후보가 된 후 ‘정책 행보’를 하면서 참여정부 시절의 과오를 성찰하는 태도도 자주 보여줬다. 지난 10월 11일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 3층에 있는 선대위 기자실에 문 후보가 찾아온 일이 있었다. 본래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국회 1층의 기자실인 ‘정론관’에서 일하다가, 대선이 다가오면 자신이 취재를 담당한 정당 후보의 선대위가 꾸려진 캠프 기자실로 자리를 옮긴다. 캠프 기자실이 특정 후보를 전담 취재하는 ‘마크맨’들에게 대선까지 긴 여정 동안 베이스 캠프가 되는 것이다. 문 후보는 마크맨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캠프 기자실로 옮긴 것을 기념하는 ‘입방식(入房式)’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기자실에 들렀다.

김대중 정권을 상징하는 홍어와 이명박 정권을 상징하는 과메기가 함께 차려진 입방식에서 기자는 문 후보에게 “최근 왜 참여정부 때 잘못에 대해 자주 사과하시느냐”고 물었다. 문 후보는 이날 낮 경제민주화정책을 발표하면서 “참여정부가 재벌 개혁, 잘못했다… 두 번 실패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당시 재벌정책을 ‘실패’라고 말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10일 전주에서 전북당원 간담회를 했을 때도 문 후보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참여정부에서 했기 때문에 늘 농민들께 죄송스럽다”고 했다. 지난 10월 8일 경기 성남시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 교육간담회를 했을 때는 “참여정부가 잘하리라고 기대를 받았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 교육분야”라고 말했다. 10월 4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영화인들과 간담회를 했을 때도 참여정부 시절 스크린쿼터를 축소했던 얘기를 하면서 “그때는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이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왜 ‘노무현의 비서실장’인 그가 참여정부의 과오를 잇달아 사과하는지 궁금했다.

듣기에 따라 아플 수도 있는 질문인데 문 후보는 기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참여정부 때 아쉬운 것이 많아서”라고 말했다. 그는 “바둑 실력이 가장 빨리 느는 방법은 복기(復棋)”라면서 “참여정부의 패착도 그때는 이렇게 했어야 한다고 복기해 보는 것이 다른 후보보다 우위에 있는 점”이라고도 했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이날 “국민이 문 후보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이점을 궁금해하신다”며 “문 후보의 정책은 참여정부를 뛰어넘을 것”이라고도 했다.

비서실·전략기획실 인사 논란

문 후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에는 여전히 친노 논란이 남아 있다. 비노·호남 진영, 특히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시절 소외됐던 사람들의 친노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다. 야권 단일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할 안철수 무소속 후보 측에 박선숙 선거총괄역을 비롯한 민주당 비노 출신 인사들이 많은 것도 이런 점이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 발생한 ‘비서실 인사 파문’도 친노 진영에 대한 불신이 부른 사건이었다.

10월 2일 민주당 중앙선대위는 비서실과 전략기획실 인사를 발표했다. 후보의 가장 측근에 있을 수밖에 없는 비서실과 선거판을 짜는 전략기획실 인선은 발표되자마자 논란이 됐다. 팀장급 대부분이 노무현 청와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비서실장은 비노(非盧)라 할 수 있는 노영민 의원이 맡았다. 하지만 비서실 부실장 겸 수행단장은 노무현 청와대에서 정무·기획조정·정책조정비서관 등을 맡았던 윤후덕 의원이었다. 비서실 내 메시지팀장은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정무행정팀장은 소문상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일정기획팀장은 윤건영 전 정무기획비서관이 각각 임명됐다. 수행1팀장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알려진 김경수 전 연설기획비서관, 수행2팀장은 유송화 전 청와대 행정관이 각각 맡았다.

전략기획실은 친노 진영의 거두라 할 수 있는 이해찬 당 대표의 라인이란 말이 돌았다. 이 대표의 보좌관 출신인 정태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전략기획실장이 됐다. 바로 아래 전략기획팀장은 이 대표 비서실 차장을 하고 있던 오종식 전 민주당 대변인이 파견 형식으로 맡기로 했다. 전략기획실을 지휘하는 기획본부장은 비노로 분류되던 이목희 의원이 맡았지만, 부본부장은 노무현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전해철 의원이 임명됐다. 공동 부본부장이 된 김경협·정호준 의원도 굳이 따지자면 친노에 속했다.

문 후보는 9월 16일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고서 줄곧 “계파 구분 없는 ‘용광로 선대위’를 만들겠다”고 말해왔다. 실제 공동선대위원장이나 선대위 각 본부에 경선 때 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 편을 들었거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비노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많이 포함됐다. 그러나 비서실·전략기획실 인사가 발표되자 당내에서 당장 “요직은 역시 친노들이 다 맡는다”는 말이 나왔다. 그렇잖아도 일주일 전쯤부터 “친노들이 비서실에 다 포진해 ‘캠프 안의 캠프’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 차였다.

비서실·전략기획실 인사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팀장급 인사 직후 발표된 시민캠프 공동대표단에 문성근 전 대표대행이 포함되면서 언론에서 ‘친노 선대위’란 비판이 쏟아졌다. 보도를 본 문 후보는 그제야 측근들과 선대위 책임자들에게 “인사를 왜 이렇게 하느냐”고 역정을 냈다고 한다. 용광로 선대위를 구성하려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취지의 말도 있었다고 한다.

“인사를 왜 이렇게 하느냐” 질책

선대위 본부장급인 한 민주당 의원은 “노영민 비서실장이 본부장 회의에 안(案)을 올렸고, 비서실 후보는 잘 아는 사람들이 맡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본부장들도 별 반대를 하지 않았다”며 “팀장급 인사는 비중이 낮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발표를 했는데 ‘친노 논란’이 일고 나서야 후보가 그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당시 명단에 포함된 친노 인사 중 일부가 ‘직함’을 요구했고 또 그 직함을 대외에 발표해 줄 것도 요청한 것으로 안다”면서 “이를 들은 문 후보가 ‘어차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사이인데 조용히 뒤에서 도와주면 되지 직함이 뭐가 필요했나. 직함을 줬으면 그뿐이지 발표할 이유는 뭐가 있나’란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노계의 한 의원은 “문 의원이 인사 자체를 놓고 뭐라고 한 것은 아니고 괜히 발표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취지였다”고 했다.

어쨌든 문 후보의 질책이 있은 후엔 비서실과 관련한 ‘캠프 안의 캠프’ 논란이 좀 잠잠해진 상태다. 비노 진영 출신인 선대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문 후보의 질타를 받은 후 그 전에 설치던 친노 인사들이 좀 얌전해졌다”고 말했다. 친노 인사들 중엔 “친노는 백의종군(白衣從軍)해 조용히 뒤에서 일하라고 하니 흰 양복에 백구두를 신고 다녀야겠다” “숨도 크게 쉬면 안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만약 문 후보가 12월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았을 때도 친노 핵심 인사들이 이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비노 진영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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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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