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빈부격차의 확대를 의미하는 소득 양극화가 국가 차원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심화되는 소득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소득양극화 수준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중간 정도로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일부에서 소득분배 관련 공식 통계인 통계청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국제비교의 자료로서 외국과 비교하여 별다른 문제점이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통계청의 결과는 신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 왜 이렇게 소득양극화 문제가 대두되었고 일반 국민들은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이 생긴다. 또한 우리나라의 소득불평등 정도는 외국에 비하여 어느 정도이고, 과거에 비하여 현재 어떻게 변화해 왔으며, 변화된 이유는 무엇인가도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원인을 알면 처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민에 앞서 먼저 소득분배나 소득불평등도의 측정에 사용되는 용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도구는 바로 지니계수(Gini coefficient)다. 그러나 최근 소득양극화라는 입에 잘 달라붙는 용어가 등장하고부터는 소득양극화가 소득불평등도를 대변하는 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외환위기 전후 급증

지니계수는 100년 전에 이탈리아의 사회통계학자인 코르라도 지니(Corrado Gini ·1884∼1965)에 의해 개발된 지수로 빈부격차와 계층 간 소득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가장 보편적으로 대변하는 수치이다.

또한 소득양극화라는 개념은 1980년대 초반 유럽의 학자들이 소득계층이 상류층과 빈곤층으로 이분화되고 중산층이 몰락하는 현상을 우려하여 고안된 지수이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이후 30년이 지난 현재 OECD 가입국 중에서 중산층이 몰락되어 소득계층이 이분화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한 나라는 없다. 다만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소득불평등이 심화되었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두 지수는 학문적인 개념상의 차이는 존재하나 실제로 측정된 양 지수의 변동 추이가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도 외환위기 전후 양극화 지수는 250% 증가하였으나 지니계수는 7% 정도에 그쳐 우리나라의 양극화 정도가 심각하다고 측정되어 참여정부 초기에 소득양극화 문제가 크게 부각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얼마 안돼 잘못 계산된 결과로 밝혀져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긴 적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득불평등도의 추이는 1980년대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는 개선되었으며, 그 후 증가하기 시작하여 외환위기 전후로 급증했으며 최근에는 약간의 감소를 보이고 있다. 추이에서 보듯이 외환위기 전후로 최근까지 소득불평등이 급증하여 국민들 사이에 불평등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는 인식이 최근에 팽배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 지니계수 0.312

2000년대 중반을 기준으로 다른 OECD국가들과 비교하여 보면 우리나라의 소득불평등도(전체 가구 지니계수 0.312)는 정확히 중간 정도의 수준이다. 여기에서 외국과의 비교에서 사용된 소득은 가구에서 최종적으로 사용가능한 가처분소득 기준이다. 가처분소득은 가구원들이 일차적으로 시장에서 벌어들인 시장소득에서 세금을 제하고 공적인 이전소득을 더한 것으로,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시행된 후의 소득을 의미한다.

소득재분배 정책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인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불평등도를 비교해 보면, <그림 2>에서 보듯이 OECD 국가에서 거의 최상의 수준으로 양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우리나라가 아직 외국에 비하여 원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가 아니라는 점을 대변해 준다고 볼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사회보장제도 등 복지제도의 미성숙으로 소득재분배 정도가 외국에 비하여 크지 않다는 점 또한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소득불평등 변화 원인을 요인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2년 이후 소득불평등도가 악화되었는데, 그 주된 원인은 기술진보와 개방화, 그와 관련하여 선택한 제도와 정책으로 지목된다. 기술진보와 개방화는 주로 숙련층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소득불평등도 악화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국제비교를 통한 양호한 시장소득 불평등도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임금격차에서 기인하는 전반적 소득격차는 외국에 비해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근거는 우리나라가 아직 극상류층의 소득점유율이 아주 높지 않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조세자료를 이용하여 학계에서 추정한 결과를 비교해 보면, 미국의 경우 상위 1%의 가구가 전체 소득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많은 국가가 10% 전후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2010년경 11%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외국의 경우처럼 상류층의 소득 독점이 심화되고 있다는 직접적 증거는 현재 찾기 힘든 상황이다.

저소득층·기혼여성 고용 증가가 긍정효과

또한 위의 원인이 개인과 가구 내의 고용과 임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소득불평등도는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소득분배개선의 주된 요인은 저소득층 및 중산층 기혼여성의 고용 증가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노동력 공급의 증가로 임금이 하락하게 된다면, 오히려 소득불평등도는 악화될 수도 있다.

또 가처분소득 기준의 소득분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조세와 현금이전지출과 더불어 교육, 보건, 돌봄, 주거 등에 대한 정부의 사회서비스 지출의 변화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 대한 효과가 OECD 국가의 평균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은 편에 있으며, 향후 이 부분에 대한 지출증가를 통해 소득불평등의 개선이 기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공정사회, 경제민주화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이유가 소득분배구조 악화와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즉 1990년대 이전에 발생한 성장을 통한 고용증가와 소득분배개선이 이루어지는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의 소멸이 경제민주화 요구의 기원일 것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성장의 과실이 전 국민에게 골고루 배분되어 소득불평등이 완화되고 중산층을 두껍게 하자는 이야기로 여겨진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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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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