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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9호] 201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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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누가 윤석열을 ‘돌직구’로 만들었나

박혁진  기자 

photo 뉴스1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80년대 초. 서울대 법대 학생들이 모여 전두환 정권의 5·18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한 모의재판을 열었다. 각기 판사와 검사, 변호사 역할을 맡아 치열한 법리 논쟁이 오고간 가운데 검사 역할을 했던 한 80학번 학생이 전두환 현 대통령에 대해 사형 구형을 했다. 당시만 해도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학원 내에 깊숙이 들어와 학교 내의 동향을 감시했다. 비록 모의재판이라 할지라도 현직 대통령에 실형을 구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학생은 살아있는 권력에 사형을 구형했다. 이 학생은 모의재판 후 한동안 강원도 모처로 잠적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가 아닌 검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발령지는 대구지검이었다. 그때가 1994년이었다.
   
   이 검사는 1999년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특수 2부에 발령을 받는다. 그가 맡았던 사건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갖고 있던 경찰청 정보국장의 뇌물수수사건. 사건을 담당한 6년차 검사에게 쏟아진 외압은 엄청났다. 특히 당시 정보국장이었던 박희원 국장은 호남 출신으로 DJ(김대중) 정부 경찰의 최고 실세로 꼽힌 인물이었기 때문에 여권 실세들의 압력이 잇달았다고 한다. 이 검사는 결국 박 국장에 대한 구속까지 이끌어냈다. 1999년 5월 20일 한겨레신문은 이 기사를 사회면 톱으로 다루면서 사건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다. 다음은 보도의 일부분. “치안감급 고위간부에 대한 구속이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박 국장이 경찰 정보를 총괄하는 호남 출신의 ‘실세’ 국장이어서 더욱 충격에 빠져 있다.”
   
   당시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검찰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청와대 하명사건을 담당했던 사직동팀을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정보를 좌지우지하는 정보국장의 구속은 엄청난 일이었다. 30대 후반 검사의 강단에 선배들이 깜짝 놀랐다”고 회고했다.
   
   박 국장의 구속은 경찰의 반발을 불러왔고, 급기야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한 검찰의 표적수사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30대 후반에 불과했던 6년차 검사의 수사 결과는 결국 검·경 간의 충돌로까지 이어졌다.
   
   그로부터 14년 뒤 이 검사가 다시 한 번 검찰조직을 풍랑 속에 밀어넣었다. 그는 국정원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이다. 댓글사건을 수사하던 윤 지청장은 국가정보원 직원 3명을 전격 체포했고, 이 사건과 관련 법원에 공소장 변경 신청을 제출해 검찰뿐만 아니라 정치권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여기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장에 직접 나아가 ‘수사과정에서의 외압이 있었다’는 주장까지 제기하며, 검찰 선배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윤 지청장의 이런 행동을 두고 ‘윤석열의 난(亂)’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윤 검사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은 이번 사태를 검찰 내 특수통과 공안통 간의 대결구도로 해석하고 있으며, 법사위 국감을 바로 앞두고 의혹을 제기한 윤 지청장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기도 한다. 또는 이번 사건이 그의 항명이라는 프레임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윤 지청장을 지지하는 이들은 그는 국정원의 불법 행위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해내려고 한 것일 뿐이라고 하며, 수사 결과를 특정 정당의 유불리와 연결해 수사 진행에 압박을 넣은 윗선들이 잘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맞는 것일까.
   
   검찰 관계자들과 윤 지청장에 대해 잘 아는 인사들은 일단 이번 사태가 검찰 내 구조적 문제와 연관이 있다는 식의 해석은 맞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공안수사를 오래한 서울 소재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익명을 전제로 “물론 검찰 내 특수통 검사와 공안통 검사들 간 대립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수뇌부 간 문제였지 수사검사들 사이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윤 지청장이 팀장으로 있던 국정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은 특수통인 윤 지청장을 제외하고는 공안통 검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번 사건이 있기 전까지 특별팀 검사들 간 팀워크는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였다. 사건이 잘 마무리됐다면 특수통과 공안통이 서로 간의 장점을 잘 살린 성공적인 수사로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 내 대표적 특수통인 윤 지청장이 문제의 한복판에 서자, 사태의 원인이 특수통과 공안통 간 갈등으로 부각된 측면이 있었던 것.
   
   윤 지청장이 야당과 가깝다는 여당 측 주장도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검찰 관계자들은 오히려 “굳이 따지자면 윤 지청장은 오히려 새누리당(한나라당) 정권에서 더 탄탄대로를 걸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윤 지청장 본인이 언론을 통해 밝혔듯이 그는 노무현 정부 초기 대선자금 수사팀에 합류해 노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충남지사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윤 지청장은 사건 이후 일선 지청에서 2년을 꼬박 근무했고, 노무현 정권 말이었던 2007년 3월에야 대검 연구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던 윤 지청장은 2008년 1월 출범한 이명박 당선자 BBK특검에 파견된다. 그는 특검팀에 합류해 수사를 비교적 순탄하게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MB정권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게 된다. 2009년 8월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을 맡은 이후 대검 중수 2과장과 1과장을 차례로 맡았다. 대검 범죄정보담당관은 지금도 승진을 위한 필수코스로 여겨지고 있으며 중수과장은 특수통 검사들에게는 가장 명예로운 자리로 꼽힌다. 노무현 대통령 대선자금 수사와 이명박 대통령의 BBK 특검 등 지난 두 번의 대선 관련 수사에 참여했던 그가 공교롭게도 이번 정부에서 또 한 번 대선 관련 수사에 휘말린 셈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났던 검찰 인사들은 윤 지청장이 이번 사태를 일으킨 원인으로 워낙 ‘강골’인 그의 캐릭터를 꼽았다. 기사 초기에 언급했던 두 가지 에피소드는 그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윤 지청장과 함께 수사를 했던 적이 있던 한 관계자는 “예나 지금이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조건 밀어붙이는 성격”이라며 “윤 지청장이 정치적으로 어떤 인물이다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는 천직이 검사인 사람”이라며 “그동안 굵직굵직한 수사를 해가면서 정치권과 재계의 외압이 많았지만 그런 이유로 수사가 중단됐던 적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주관이 강한 그의 기질은 그동안 쟁쟁한 특수통 선배들로 인해 가려져 있었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때는 안대희 중수부장 및 남기춘 변호사(당시 중수 1과장)가 보호막이 됐고,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수사 때는 당시 대검수사기획관이었던 채동욱 전 총장의 그늘 밑에 있었다.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때도 채동욱 총장이 정치권의 외압으로부터 그를 지켜줬으나 채 총장이 혼외자 논란으로 낙마하면서 더 이상 그의 바람막이가 될 만한 선배들이 없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과거 선배들이 외압에서 자신을 지켜줬던 것처럼 자신도 바람막이가 된다는 각오에서 ‘모든 책임은 자기가 지겠다’며 공소장 변경 등을 강행한 것인데, 졸지에 수사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되다 보니 윤 지청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윤 지청장이 이러한 극단적 선택을 했던 궁극적인 원인으로 ‘정치의 개입’을 꼽는다. 국정원 댓글사건의 경우 어떤 식의 결과가 나와도 검찰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수사였다. 국정원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이 드러났을 경우는 현 정권과의 마찰이 불가피했고, 반대의 경우는 야당으로부터 검찰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느 경우라도 검찰 조직이 흔들릴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채동욱 당시 총장은 ‘원칙대로 수사하자’며 ‘정공법’을 택했고, 그 적임자로 윤 지청장을 택했다. 두 사람이 특수통 선후배로 누구보다 가까웠다는 것은 검찰 내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 사이에 대해 “그보다 더 가까울 수 없다”고까지 표현했다. 채 총장의 지시를 받고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했던 윤 지청장 역시 평소 성격대로 정치적인 고려는 하지 않았고, 결국 이것이 현 사태의 불씨가 됐다는 것이다.
   
   다만 정치적 이유로 수사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해서 국감장에 나아가 상급자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설전을 벌인 행동이 옳은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모든 검사들이 외압을 느끼거나 사안이 중대하다고 해서 상급자의 집에 찾아간다거나 정식 결재라인을 거치지 않고 수사를 진행한다면 그 조직이 어떻게 되겠냐”면서 “이유야 어떻든 국민들 앞에서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은 조직의 위신을 떨어뜨린 일”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다른 검찰 관계자는 “윤 지청장은 상황 판단이 빨라 머리가 두 개인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며 “수사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검찰 수뇌부가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검찰의 수사를 항상 편한 대로 이용했던 정치권의 행태 그리고 이들의 눈치를 봐왔던 일부 검찰 인사들로 인해 검찰은 이제 더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윤 지청장이 신청한 공소장 변경을 놓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가 조만간 결정된다. 검찰은 그전에 공소장 변경 신청을 철회할 수도 있다. 법원에서 변경 여부가 결정될 경우 검찰에 이어 법원 역시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고, 그전에 검찰이 신청을 철회하면 검찰은 또 한 번 거센 풍랑에 휩싸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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