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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호] 2014.04.07

법조인·한의사·기자·애널리스트… 그들이 주경야독 ‘통일’을 공부하는 이유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박혁진  기자  / 홍근혜  인턴기자·연세대 국어국문학과 3년  

▲ 지난 4월 2일 저녁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북한대학원대학교 대회의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4월 2일 저녁 8시30분,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바로 밑의 북한대학원대학교(이하 북한대학교) 건물 1층 대회의실. 늦은 시간임에도 24명의 학생이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날 수업 과목은 북한대학교 양문수 교수의 ‘남북경협과 경제통합’. 학생들의 연령대는 20대 초중반 학생들부터 40대 후반의 직장인까지 다양했다. 금발머리의 외국인 남학생도 눈에 띄었다. 늦은 시간에 진행되는 강의인 데다, 저마다 직장을 마치고 급하게 온 터라 수강생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피곤함도 잠시, 수업이 시작되자 그들의 표정은 어느새 진지하게 변해 있었다. 강의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 학생이 주제발표를 하고, 이에 대한 양 교수의 피드백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강의는 총 4명의 학생이 발제를 했다. 수업 중간에 있는 10분간의 휴식시간에도 교수와 학생들 간의 허물없는 문답이 계속됐다.
   
   수강생들의 직업도 연령대만큼이나 다양했다. 변호사, 대기업 경제연구소 직원, 증권회사 투자전략팀장, 한의사, 기자, 공무원. 저마다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는 주제가 있었다. 통일이다. 이들은 통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통일 이후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함께 공부하며 고민하고 있다.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발언을 전후해 통일을 준비하는 사회 각계각층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대학교도 그런 곳 중 하나다. 김대중 정부 때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대학교 북한학과는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대부분 다른 학과로 통합되거나 폐지됐다. 현재 북한학과가 남아 있는 학교는 고려대학교와 동국대학교 둘뿐이다.
   
   고려대학교 북한학과의 경우 올해 2학년이 되면서 전공을 선택한 학생들 중 북한학과를 지원한 학생이 40명이나 됐다. 이 과의 정원은 30명. 학교 측은 정원을 늘려서 학생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또 학생들이 탈북자를 돕는 모임을 자발적으로 만들거나 학술회의를 여는 등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는 “아직 학부생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졸업 후에 북한이나 통일과 관련된 일을 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근 들어 통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동국대학교 역시 지난해까지 북한학과를 폐지해야 한다는 재단 측의 목소리가 많았다. 40명이었던 정원은 지난해 15명까지 줄었다. 그나마 이마저도 폐지한다는 것을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시위까지 해가며 막아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주장들이 쏙 들어갔다. 오히려 재단 측에서 북한학과를 중심으로 해서 특성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는 “학과 폐지 논의까지 했다가 지금은 오히려 우리 과의 필요성을 학교 측에서 더 절감하고 있다”며 “통일은 정권에 따라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비롯한 민간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연령대를 높여 석박사과정을 밟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살펴보면 사회 각계각층에서 어떻게 통일이 준비되고 있는지를 보다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석박사과정을 운용하는 학교 중 국내 최대 규모인 북한대학원대학교는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통일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들이 주요 수강생이었다. 그러나 2~3년 사이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학교로 몰려들고 있다. 최완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작년까지 박사과정 정원 20명 중 절반은 전반기에, 나머지 절반은 후반기에 뽑았는데 올해 박사과정은 이미 전반기에 20명 정원이 다 차서 2학기에는 더 받을 수가 없다”며 “전반기에 모집한 인원 중에 워낙 고급 인력들이 많아 부득이하게 올해 정원을 다 채워 모집했다”고 말했다.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진료부 한의사인 박소임(29)씨도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소속된 병원에서 탈북자들을 진료하는 일을 몇 년째 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탈북자들에게 의료지원을 해주는 지정병원 중 하나인데, 양방과 한방을 같이하는 병원은 이곳이 유일하다. 박씨의 말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양방보다 한방에 훨씬 더 친근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양방의 경우 우리나라와 북한의 의료수준 차이가 너무 커서 오히려 어색해 하지만, 한방은 북한에서도 여기와 같이 진료를 하기 때문에 거부감이 덜하다는 것. 박씨가 북한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탈북자를 진료하면서부터다.
   
   “아무래도 한방이다 보니까 환자들의 생활습관이나 문화 등에 대해서 아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진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은 북한이라는 특수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까 북한에 대해 공부를 하는 것이 그들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또한 탈북자들을 흔히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을 접하면서 통일에 대한 깊은 고민들을 하게 됩니다.”
   
   그는 한 학기 수백만원에 달하는 수강료를 자비로 충당하고 있다. 순전히 자발적으로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지만, 4학기째 접어들면서 통일 이후 자신의 역할도 더 구체화되고 있다. 현재 박씨가 준비하고 있는 논문은 북한의 의료문화와 관련된 것. 박씨는 “북한 의료와 관련한 논문은 아직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급변사태로 인한 난민들이 어떻게 이주민으로 정착하고, 그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대비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난민 사례를 최근 연구하고 있다.
   
▲ 지난해 11월 11일 열린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창립총회에 조합원들이 참석해 통일의지를 다졌다. photo 통일코리아협동조합

   법무법인 세종의 최우진(36) 변호사 역시 통일 한국에서 변호사로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2012년부터 북한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게 됐다. 최 변호사는 “통일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20~30년간 통일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어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하루 동안 북한의 법행정제도를 공부하는데, 금요일에는 회사 업무 때문에 출석하기가 어렵고 주로 토요일에 강의를 듣는다고 했다. 그 역시 회사의 지원 없이 자비로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최 변호사가 처음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현대 아산의 자문변호사로 일할 때 우연히 개성공단을 방문하면서부터다. 그는 “개성공단에 대해서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남한의 사용자와 북한의 노동자가 함께 일하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이후 아무래도 직업상 법률가이다 보니 북한의 법과 제도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북한대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것 이외에도 개성공단을 방문한 적이 있는 5명의 변호사들과 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한두 번 스터디를 한다. 스터디에서는 남북경제협력, 국제기구지원, 법제도 개선 등 다양한 주제들이 논의된다고 한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국제금융기구에서 일하면서 북한을 비롯한 제3세계에 대한 해외투자 업무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처럼 요즘 통일에 대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분야가 바로 법조계다. 법조계에서도 과거에는 변호사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현직 판검사가 늘어나는 추세다. 당장 이번 학기 북한대학교만 해도 5명의 검사와 4명의 판사가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최 총장에 따르면 이 학교에서 공부했던 한 검사는 아예 연수를 독일로 가서 통일독일에 대해 공부한 후 돌아와서도 검사직이 아닌 법무부의 통일 관련 업무를 지원했다고 한다. 북한대학교 관계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개성공단 자문 등 업무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변호사들이 공부를 했었는데 최근에는 통일에 대비해 통일 법제에 대해 공부하는 현직 법조인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최근 금융과 증권 분야의 전문가들도 통일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한화투자증권 박성현(40) 투자전략팀장도 그중 하나다. 그는 이번 3월부터 북한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박 팀장이 북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직업적 필요에 의해서였다.
   
   그는 “통일이 되면 증권·금융 분야에서 정보를 가지고 북한이란 이슈를 연결시켜 줄 사람이 필요한데 이것을 이야기해 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시작했다”며 “또한 통일 후 북한에 다양한 인프라가 구축될 때 보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네트워크가 있다면 개인적인 기회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은 증권업계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제가 처음이지만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 통일과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박 팀장은 이를 ‘궁즉통(窮卽通)’이라고 표현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주가지수가 몇 년째 박스권에 머물러 있고,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무언가 돌파할 수 있는 모멘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증권업계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통일이나 북한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피상적이지만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을 잘만 활용하면 독일처럼 차별적인 성장 모멘텀을 기대할 수 있고, 최근에는 정부에서도 길을 열어주는 분위기이니까 증권 분야 종사자들도 관심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증권업계에서는 이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위기이지만 금융 분야에서는 이미 몇몇 분들이 강의도 듣고 준비를 하고 계신다”며 “이들은 북한의 금융산업이 거의 붕괴되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서는 통일 후 어떻게 금융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업계를 포함한 금융권에서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미 돈이 북한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라고도 했다.
   
   박 팀장은 “아직은 공부를 시작한 지 한 학기밖에 되지 않았지만 주식 산업에서도 북한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며 “북한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을 바로잡아 올바른 투자 전략을 세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학교를 벗어나 시민사회 움직임을 봐도 통일에 대한 민간 차원의 준비가 활발해지고 있음이 감지된다. 지난해 11월 11일 발족한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이나 지난 3월 16일 발족한 통일의병이 대표적인 경우다.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의 경우 200여명의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출자해 만들었다. 협동조합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정부 지원에 기대지 않고 자립하기 위해서다. 협동조합의 형태지만 활동은 모두 통일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높이는 일에 맞춰져 있다. 배기찬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은 주간조선과 만나 “사람의 신체에 비유하면 통일은 신체봉합수술과 같다”며 “정부는 뼈를 연결시키는 것이라면 지자체나 민간 분야의 교류는 동맥과 정맥, 모세혈관까지 잇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일상생활 속에서 통일을 준비하고 살아갈 수 있을지 협동조합을 통해서 아이디어들을 모아갈 것”이라며 “지역별·분야별로 통일과 관련한 다양한 목표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통일의병 역시 통일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 200여명이 모여서 만든 시민단체다. 김홍신 전 의원과 법륜스님이 공동대표다. 통일의병 측은 출범선언문을 통해 “이념과 정파, 세대와 계층, 지역과 종교의 틀을 넘어 통일의 한 길로 국민 여론을 통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시민사회 움직임 중 특이한 것은 과거에 비해 이념색을 지우고 생활밀착형 단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활발하게 활동했던 통일 단체들은 대부분 정치적 이슈에 매달렸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이나 전시작전권 전환 추진을 외쳤던 ‘통일은 여는 사람들’ ‘통일연대’ 등의 좌파단체들이 대표적이다. 정치적 이슈와 연결지어 통일을 이야기하다 보니 오히려 ‘통일’이란 주제는 그 의미가 퇴색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최완규 북한대학교 총장은 “더 이상 보수·진보라는 낡은 구도를 고집하는 것은 통일 담론에서 상당히 시대 착오적인 사고방식”이라며 “그걸 고집하는 건 자기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서 활용하는 것이지 대다수 국민은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법조계나 의료계, 언론계, 금융계 더 나아가 대학교 학부생들까지도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준비를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통일 한국이 보다 구체화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는 “예전에는 북한과 통일 연구가 북한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며 “건축이나 문학, 의료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폭넓게 북한을 연구하고 있는 만큼 훨씬 더 통합적인 통일 준비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이른바 ‘통일 대박론’과 ‘드레스덴 구상’ 등 통일과 관련된 화두들을 잇따라 던지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통일에 대한 관심이 크다. 하지만 통일에 대한 정부의 의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간 차원에서 통일이 얼마만큼 준비되고 있는지 여부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정부만 나서서 ‘돌격 앞으로’를 외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민간 분야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훨씬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각계각층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현상이다. 또한 일반인들에게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기 위해 사회 밑바닥에서 활발한 운동을 하고 있는 것 역시 통일이 멀지 않았다는 징조이기도 하다. 최완규 북한대학교 총장은 “현실적으로 보면 통일을 준비한다는 것이 당장은 도움이 되는 게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이 결국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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