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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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평일 저녁과 토요일에 나와서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통일문제를. 통일시대에 대비해서 자기 역량을 키우겠다는 건데 당장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공부를 통해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 기분이 좋죠. 외부에 드러나지 않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구나,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북한대학원대학교 최완규 총장은 통일을 준비하는 전문가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는 경남대학교가 1972년 설립한 극동문제연구소와 1997년 설립한 북한대학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두 기관이 합쳐져 2004년 북한대학원대학교란 이름으로 새로 태어났다. 이름이 바뀌기는 했지만 북한 문제와 관련해 국내 최고의 연구소로 꼽혔던 극동문제연구소의 노하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첫 통일부 장관이 된 류길재 장관도 이 학교 교수였다.

이 학교는 매해 석사과정 40명, 박사과정 20명의 학생을 뽑는데,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정원은 동일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북한과 통일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로 몰리고 있다. 2012년부터 이 학교의 총장으로 일하는 최 총장 역시 이러한 변화의 바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과거에 비해서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일반인의 수도 많아졌고, 직업군도 훨씬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최 총장은 1977년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이후 40년 가까이 북한 문제를 연구해왔다. 우리민족서로돕기 공동대표와 흥사단 민족통일운동 이사로도 일했다. 오랫동안 통일문제를 연구해 온 그에게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고 있는 통일에 대한 분위기를 들을 수 있었다. 최 총장은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청와대나 통일부가 아닌 여기에 오면 많이 볼 수 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기 시작 전 오리엔테이션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 정신 나간 사람들이다라고. 여기 오는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서 자리 잡은 사람들이거든요.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뛰어난 사람들이 왜 오겠습니까. 저마다 남북문제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가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기가 하는 일이 나중에 통일이 된 이후에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지 준비하는 겁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는 학생의 10% 정도가 전업 학생이고 나머지 90%는 직업이 있는 사람이다. 학생들 직업군을 보면 대학원 설립 초보다 훨씬 다양해졌다는 것이 최 총장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통일과 직접 연관이 있는 정부 부처 사람들이나 기업 사람들이 주를 이뤘는데 요즘은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교사, 탈북자, 한의사, 국제금융기구에서 일하는 사람, 판검사, 변호사, 군인, 경찰, 기자, 일반 기업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죠. 65세에 정년퇴직한 교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강의 시간도 유익하지만 전문 분야의 사람들끼리 모여서 단시간에 자기네들의 특징과 경험과 고민을 나누면 훨씬 풍성한 논의가 이뤄집니다. 결국엔 북한은 개혁의 길로 갈 텐데, 그럴 때 이런 사람들의 노하우가 가장 필요하게 될 겁니다.”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해 공부하면서 훨씬 더 다양한 주제들이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북한의 정치시스템이나 군사력 등 거대담론이 오고갔다면 지금은 북한의 시(詩), 시장, 의학 등 훨씬 세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대학원에서 강의하는 과목도 매학기마다 유동적이 됐다. 최근에는 북한 언론을 다루는 과목도 개설됐다.

북한대학원대학교는 대북문제와 관련해서는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북한에 대한 관점을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 치열하게 싸우는 것처럼 여기도 그렇다. 통일에 대한 관점들도 다양하다. 다만 여기에서는 서로에 대한 비난보다는 합리적인 토론이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시위를 진압하는 전경 소대장과 시위대로 만났던 사람이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게 된 거죠. 거기서는 하나는 맞고 하나는 때리고 하지만 여기서는 같은 학생으로서 만난 겁니다. 보수 성향 학생도 많고 진보 성향 학생도 많은데 같은 클래스메이트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솔직하게, 그렇다고 해서 갈등관계에 놓이지 않는 그런 커뮤니티가 이뤄집니다. 사실 통일 담론에서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것은 굉장히 낡은 구도입니다.”

그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반인들이 통일이 얼마나 중요한 과업인지를 깨닫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통일이 이제는 우리 민족사에 마지막으로 주어진 과제입니다. 일반인들이 경험을 못하셔서 그렇지 사실은 우리 한반도에서 진정한 자주국가, 평화국가, 복지국가를 만들려면 분단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분단체제하에서 복지는 절름발이 복지고, 자주도 절름발이 자주고,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국민들이 ‘내 개인 일상적인 삶과 통일문제가 무슨 상관이 있냐, 그거야 정치인들이 심심하면 떠드는 이슈 아니냐, 통일이 나 먹여살리냐’ 그런 의식이 팽배해 있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통일문제에 대해 국민의 역량을 모으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는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통일의 방향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했다.

“평화통일을 하려면 상대방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서로 교감도 되고 소통도 되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 통일 담론은 말은 그렇게 안 하지만 솔직히 흡수하겠단 얘기지, 상대방하고 뭘 더불어 해보겠단 얘기는 아닙니다.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는 우리가 주도하는 평화통일이 어떻게 현실화가 되겠어요?”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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