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 5동에 있는 해양수산부 현관.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정부세종청사 5동에 있는 해양수산부 현관.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해양수산부 국장급 간부였던 J씨는 해수부 출신 고위 공무원들이 거친 전형적인 코스를 밟았다. 그는 관료 시절 ‘원장’(국립해양조사원장)과 ‘청장’(인천지방해양수산청장)을 한 차례씩 맡았다. 2007년 퇴직하면서는 곧바로 해운회사들의 이익단체인 한국해운조합 이사장을 맡았다. 3년의 이사장 임기를 채운 후 2011년에는 해운 물류기업인 K사의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관료→유관기관→민간기업 순서로 두루 거친 것이다. 해수부 국장급 이상 간부를 지낸 인사 중에서 J씨 정도의 이력을 갖춘 사람은 흔한 편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그동안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해수부 마피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흔히 공무원의 낙하산이라면 모피아(기획재정부 또는 금융위원회 출신), 국피아(국토해양부 출신), 산피아(산업통상자원부 출신)가 주종을 이뤘지만 해수부 출신들이 구축한 ‘그들만의 리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해수부 산하에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모두 14곳의 공공기관이 지정돼 있다. 그중 11곳의 기관장을 해수부 출신이 맡고 있다. 전국에 4곳인 부산·인천·여수광양·울산 항만공사 사장을 해수부가 독식하고 있고, 해양환경관리공단·수산자원관리공단·해양수산연수원 등에도 해수부 출신이 기관장으로 포진해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이들 14개 공공기관장의 평균연봉은 1억5642만원이다. 부산·인천항만공사가 각 2억53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가장 연봉이 적은 해양수산연수원장도 1억1400만원을 받았다.

14개 공공기관 외에도 해수부에는 16개 유관기관이 있다. 그중에서도 알짜로 불리는 곳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제몫을 못했다며 질타를 받은 한국해운조합과 한국선급이다. 해운회사 모임인 한국해운조합은 여객선사들을 대상으로 감독권을 행사하고, 한국선급은 선박의 안전검사를 독점하고 있다.

이런 민간 유관단체에 해수부는 공적 권한을 주고 뒤로 한발 물러나 있다. 해운업체의 한 임원은 “해수부 공무원들이 ‘미래의 직장’이라고 생각하니까 권한을 유지시켜 주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실제로 한국선급은 1960년 출범한 이후 11명의 수장 중 8명이 해수부 출신이다. 1980년부터 작년까지 33년간 내리 해수부 마피아가 독식했다. 한국해운조합도 역대 12명의 이사장 가운데 10명이 관료 출신이다.

민간 해운업체에도 해수부 출신들이 대거 발을 들여놓고 있다. 특히 한국~중국 간 카페리 회사는 전체 11곳 가운데 4곳의 사장이 해수부 간부 출신이다. 위동항운은 최장현 전 국토해양부 2차관이 4년째 대표직을 맡고 있다. 대인훼리 대표는 이용우 전 해수부 기획관리실장이고, 한중훼리 대표는 박원경 전 해수부 해운선원국장이다. 대룡해운의 정홍 사장도 해수부의 요직인 해운정책과장 출신이다.

이들 중 일부는 카페리 회사 CEO를 맡기 이전에 이미 기관장을 거쳤다. 최장현 위동항운 대표는 청장(여수지방해운항만청), 원장(중앙해양안전심판원), 이사장(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을 한 차례씩 지냈다. 이용우 대인훼리 대표도 이사장 직책을 두 번(해양오염방제조합·해양환경관리공단) 역임한 이력이 있다. 해수부의 한 관계자는 “한·중 페리사는 양국 정부와 항로에 관해 의논해야 할 일이 많아 관료 출신을 영입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해수부 출신들이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먼저 부처 규모에 비해 산하기관이 많다는 점이 꼽힌다. 해수부는 정부세종청사 본부에 근무하는 인력이 510명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지방해운항만청을 중심으로 17개 직속 기관이 있고, 14개 공공기관과 16개 유관기관이 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행정고시 합격해서 해수부에 가면 절반 이상이 ‘청장’이나 ‘원장’ 자리를 꿰찹니다. 지방해운항만청이나 해양안전심판원 같은 기관이 널려 있잖아요. 알짜로 소문난 금융위원회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안 부러운 곳이 해수부죠.”

게다가 해수부 출신들은 결속력이 끈끈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간부는 “해수부가 정권에 따라 폐지와 부활을 반복한 부처여서 아픔을 겪다 보니 선후배끼리 끌어주는 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해수부 산하기관들이 다소 규모가 작고 전문지식도 필요한 분야이다 보니 정치인들이 눈독을 들이지 않는 것도 견제를 안 받는 이유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LH공사, 철도공사, 한국전력 같은 곳은 워낙 덩치가 커서 정치인들이 욕심을 내지만 해양수산 분야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해수부 출신들만 잔치를 벌인다”고 말했다.

해수부 공무원들이 지방에 토착세력화되어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전체 소속 공무원이 약 3800명인데 그중 3300명가량이 지방에서 근무한다. 전국 11곳의 지방해운항만청에서 1500여명이 근무하고 있고 나머지는 국립수산과학원 소속 직원과 전국 각지에서 근무하는 어업지도사 등이다.

지방해운항만청은 각 항구의 부두, 항로의 각종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절대적인 갑(甲)이다. 지방해운항만청장은 부산, 인천 등 큰 곳은 본부 국장급 자리고 포항, 목포 등 작은 곳은 과장급 자리다. 경제부처의 한 과장은 “기재부 등 다른 경제부처 동기들이 밤낮으로 보고서 쓰느라 바쁠 때 해수부 공무원들은 지방에서 기관장으로 목에 힘 주는 기회를 가지고 돌아온다”고 말했다.

해수부에서는 과장급만 지내더라도 해운업계에서 데려가기도 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부산지방해운항만청 과장 출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부산항만공사의 일감을 대거 수의계약으로 가져가 지적받기도 했다. 해수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사석에서 “우리처럼 지방 조직과 해외 조직까지 두루 잘 갖춘 부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낙하산 관행이 일상화되면서 잡음도 커지고 있다. 해수부는 국토해양부 시절이던 2011년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에 연봉 2억원짜리 부회장직을 신설해 해수부 국장급 간부를 지낸 이모씨를 앉히려고 한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씨는 취임 예정일에 자진사퇴했지만 결국 1년 후 선주상호보험조합에 고문으로 취임했다.

지난해에는 해수부가 주성호 전 국토해양부 2차관을 한국선급 회장으로 사실상 내정했다. 하지만 사단법인 조직인 한국선급의 회장 선거에서 주 전 차관이 내부 출신인 전영기(당시 기술지원본부장)씨에게 밀려 낙마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그 직후 해수부가 한국선급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를 실시했는데, 한국선급 측의 ‘하극상’ 때문에 열 받은 해수부가 보복을 가한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주 전 차관은 ‘꿩 대신 닭’으로 한국해운조합 이사장에 취임했다. 주성호 해운조합 이사장과 전영기 한국선급 회장은 세월호 사고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둘 다 지난 4월 사의를 표시했다.

해수부 마피아가 부각된 데에 대해 드러내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해수부에서도 나름대로 할 말은 있다. 해수부의 한 과장은 “오랜 기간 해양수산 분야에서 일한 공무원들이 전문성도 어느 정도 갖춘 것 아니냐”며 “정권마다 생존에 급급한 소규모 부처에 과도한 화살이 날아오는 느낌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손진석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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