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학교 학생들과 윤미경(가운데)씨. ⓒphoto 스마일학교
스마일학교 학생들과 윤미경(가운데)씨. ⓒphoto 스마일학교

13살인 규현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PC방 죽돌이로 살았다. “게임을 하루에 얼마나 했냐고요?” 잠시 뜸들이던 규현이가 대답했다. “하루에 남는 시간 전부요.” 규현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라는 게임에 빠져 있었다. 중독성 강하다고 소문난 게임이다. “집에서는 못하니까 주로 PC방에 갔었는데요. 집에 있을 때는 스마트폰 게임을 했어요. 이것저것 다요.” 공부는 당연히 뒷전. “엄마가 등록해준 학원을 하루 이상 다녀본 적이 없어요.”

그게 올 1월까지 규현이의 모습이었다. 여름도 다 지난 지금, 규현이는 180도 달라졌다. 그새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합격했다. 평균 97.1점이라는 좋은 점수를 얻었다. ‘바이오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과학이에요. 요즘 남는 시간에는 과학 책에서 봤거나 혼자 구상한 실험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겨우 여덟 달 만에 규현이를 달라지게 한 것은 필리핀 도시 바기오에 ‘스마일학교’를 세운 황석호·윤미경씨 부부. 홈스쿨링으로 자녀 4명을 모두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시켜 3명을 대학에 보내고, 큰딸인 손빈희씨가 최연소 변호사가 될 수 있게 한 교육전문가 부부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250㎞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 바기오는 인구가 30만명에 불과하지만 6개의 종합대학을 비롯해 10개의 대학이 있고, 국제학교가 많은 필리핀의 대표적인 교육도시이다. 해발고도가 높아 1년 내내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를 유지하는 덕에 피서지로도 유명하다. 시내 중심가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스마일학교의 외관은 얼핏 보기에 주변의 가정집과 다르지 않다. 스마일학교가 집 안에서 공부며 숙박이 이뤄지는 ‘가정 학교’이기 때문이다.

전교생이 13명에 불과한 스마일학교의 이름은 사실 2004년에 지어진 것이니 벌써 10년이 된 셈이다. 스마일학교라는 이름을 처음 지어준 것은 황석호·윤미경씨 부부의 네 자녀, 손빈희·황정인·손다빈·황태성 남매다. 이들은 지난 2000년 부부의 재혼으로 한 가족이 됐다. 곧바로 황석호씨의 사업차 중국으로 이사를 했다가 2004년 귀국해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맨 처음 홈스쿨링을 고려한 것은 당시에만 해도 생소했던 재혼 가정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손가락질 비슷하게 받았던 경험 때문이었어요. 그러다 중국에 다녀오고,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온 가족이 용감해진 것 같아요. 우리끼리 커리큘럼을 짜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자 결정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하는 얘기지만 황·윤 부부는 조금 걱정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홈스쿨링을 하면서 가장 크게 걱정했던 것은, 아이들의 사회성이랄까, 또래 친구들과 조금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는 측면이었던 것 같아요.” 10년이 지난 지금 손빈희·황정인·손다빈·황태성씨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입을 모은다고 한다. “태성이 같은 경우는 조금 늦게 우리 가족에 합류했는데, 당시만 해도 게임중독이라고 할 만큼 게임에 빠져 있었어요. 학교를 보낸다고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아 집에서 태성이의 공부 의욕을 되살리는 데 집중했지요.”

그 과정에서 윤씨가 얻은 교훈은 아이들에게 ‘꿈’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4남매 모두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하고, 성취를 이뤄냈지만 윤씨는 “속도가 다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신이 있기 때문이죠.” 하고 싶은 일이 생기자 태성씨 역시 게임을 점차로 그만두기 시작했다. “아마 제 생각에 태성이는 ‘하고 싶은 것’이 없었으니 당장 재미 있는 것에 몰두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게임 밖에서도 성취감을 얻게 되자 게임을 그만두더라고요.”

윤씨 부부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남편과 교육방송에 출연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리 아이들 모아서 홈스쿨링 해볼까’라는 얘기가 나왔어요. 갑자기 가슴이 뛰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찾아오는 아이들의 사연은 비슷비슷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 삶의 의욕이 없는 아이. 자신들이 키워냈던 아이들처럼 이 아이들의 삶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뭔가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확신이 있었던 거지요. 선배처럼, 부모처럼 다른 아이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홈스쿨링 장소는 필리핀으로 정했다. 순전히 ‘영어’ 때문이었다. “저희 아이들에게 물어봤어요. 홈스쿨링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이 무엇인지. 영어를 마음껏 배우지 못한 점이 아쉬웠대요.” 언제까지 학교를 운영할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정해두지 않기로 했다. “모인 아이들이 대학에 가 자신의 목표에 맞는 진로를 정할 때까지, 우리가 도움을 주기로 결심했어요.”

그렇게 모인 아이가 13명. 대부분 13~15살, 중학교를 다닐 나이의 아이들이었다. 모두 학교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3살의 정수민은 “수업을 제대로 들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15살 이상빈은 “매일 똑같은 일과가 지루해 벗어날 궁리만 했다”고 한다. 14살 정은빈은 유서를 쓴 적도 있다. “공부 못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어요. 엄마가 보다 못해 학습지 선생님을 불러줬는데, 문을 잠가 걸고 안 열어준 적도 있어요. 나중에는 평생 이대로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할머니에게 남기는 유서를 썼어요. 결과적으로는 가족들에게 혼나기만 했지만요.” 은빈이는 쌍둥이 언니 은초와 함께 필리핀으로 왔다.

스마일학교 전경
스마일학교 전경

6개월 동안 윤씨 부부와 아이들이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꿈’을 찾는 것이었다. “우리는 정말 6개월 내내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 꿈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했어요.” 수민이는 어린 나이지만, 말하고 토론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진로를 정할 때에는 주변 친구들의 조언도 많이 귀담아 들었어요. 언니, 오빠들이 저더러 변호사가 어울린대요. 그때부터 변호사가 무얼 하는 직업인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수민이는 윤씨 부부의 장녀 손빈희씨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 “국제변호사, 그중에서도 기업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어요.”

목표가 생기자 책이 저절로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윤미경씨는 “아이들에게 막연히 ‘변호사가 돼라’고 하면 아마 이만큼 공부에 열중하진 않았을 거예요. 그렇지만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학교에 가야 하고, 국제변호사가 되려면 영어뿐 아니라 다른 언어도 유창하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나니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더라고요.” 수민이는 지난 8월 치른 중졸 검정고시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상빈이는 이번 검정고시 합격자 중에서 최고 득점을 올렸다. 스스로도 “신기하다”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모든 게 지루했었는데, 여기서는 제 마음껏 공부할 수 있기도 하고 공부 자체가 즐겁기도 하니까 저절로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더라고요.” 추석 당일인 9월 8일에는 바가오시 근처의 마을에 소풍을 갔는데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현지인들과 영어로 의사소통하기도 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영어가 술술 나오는 걸 느끼면서, 필리핀에 와서는 이런 경험을 참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억지로 공부하려 하지 않아도,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게 되는 경험요.”

오전 7시부터 점심시간이 시작하는 12시까지 스마일학교 학생들은 영어 공부를 했다. 틈틈이 황석호씨로부터 철학 수업을 듣기도 하고, 명상 시간을 갖기도 했다. 점심 시간은 직접 요리를 하는 학생, 나가서 운동을 하는 학생들로 붐비는 편이다. 오후 시간에는 검정고시를 치르는 데 필요한 교과목을 공부하는데 같은 과목을 공부하더라도 교재를 보거나 동영상 강의를 듣거나 윤씨 부부에게 질문하며 배우거나, 방법은 자유다.

스마일학교의 모든 결정은 대화와 토론으로 이뤄진다. 윤미경씨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지 결정하는 것부터, 다음주에 소풍은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것까지 모두 학생들이 알아서 한다”고 설명했다. “하루는 아이들끼리 대화를 하다가 궁금한 점이 생겼나봐요. 직접 실험을 해보겠다고 집 앞 공터에 가서 불을 붙이더라고요.” 한국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이야기다. “아이들이 직접 밭을 갈기도 해요. 오리를 키워 보기도 하고, 건축에 관심 있다며 대나무를 가져와 집을 만들기도 하더라고요.” 딱딱한 학교 책상을 벗어나 아이들은 신나게 자신의 생활을 가꿔가기 시작했다.

“마치 빈희, 정인이, 다빈이, 태성이를 보는 것처럼요. 아이들은 순식간에 자신의 일을 찾고, 환경에 적응하고, 목표를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제가 4명의 자녀, 13명의 아이들을 기르며 매번 느끼는 점은 아이들의 변화는 조그마한 계기에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지난 1월에 필리핀으로 건너와 7개월 만인 지난 8월, 8명의 학생이 서울로 중졸 검정고시 시험을 보러 갔다. 평균 60점이 넘으면 합격하는 시험에서 6명이 평균 96점을 넘었고, 가장 낮은 점수의 아이도 평균 87점에 달했다.

평균 90점을 받았던 은빈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낮은 90점이라는 점수도 저에게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에 오면서 경찰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원래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운동도 좋아해요. 그래서 경찰이 되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다른 친구들처럼 은빈이도 스스로 방법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걸 두려워했던 거지, 사실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 와서 깨달았어요.”

윤미경씨 부부의 목표는 아이들이 대학에 가서 제 꿈을 이뤄낼 때까지 도움을 주는 것이다. 새로운 학생을 받을 생각은 없다고 한다. “더러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도 되냐는 문의가 오는데,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어요. 이미 13명의 아이들과 저희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린 나이에 쉽게 꿈을 포기한 학생들에게 가족의 정을 주며 꿈을 되찾아준 셈이다. “아이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했을 때 한국에 있던 가족, 저희 부부, 아이들 모두 껴안고 덩실덩실 춤추며 울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뭐 그리 어려운 일 했냐고 물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 작은 성취 하나가 아이들 미래를 얼마나 바꿔 놓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여전히 감격에 겨워요.”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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