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 9월 11일 포항 청소년자유학교에서 2학기 개강식이 열렸다. 김윤규 교장(왼쪽)이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 9월 11일 포항 청소년자유학교에서 2학기 개강식이 열렸다. 김윤규 교장(왼쪽)이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성일(가명·21)이는 경북 포항의 고등학교에서 ‘가장 센 주먹’으로 통했다. 또래 아이들 수십 명을 끌고 다니며 문제 일으키기를 수차례. 학교를 자퇴하고 갈 곳 없는 성일이를 받아준 건 탈학교생을 위한 대안학교 ‘청소년자유학교’였다. 처음에는 왜 다시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 왜 이제 겨우 앳된 티를 벗은 대학생들이 자신을 가르치는지에 대한 반항으로 툴툴대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짧은 시간만에 성일이는 변했다. “검정고시를 쳐야겠어요.”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말도 꺼냈다.

나이만 먹었을 뿐 성일이는 학교를 다니던 내내 교과서란 걸 펼쳐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공부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함께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1년, 2년 만에 졸업하는데 성일이만 3년이 다 되도록 학교를 떠나지 못했다. 김윤규 청소년자유학교 교장(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성일이 합격시키기 태스크포스를 꾸렸어요. 5명의 교사가 성일이 한 명 검정고시 합격시키려고 덤벼들었지요.” 2012년 4월, 3년 만에 합격증을 받아들던 날, 성일이가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김윤규 교장이었다. “몸무게가 100㎏은 되거든요. 힘도 엄청 센 놈이에요. 그런 애가 저 합격했다고 덥썩 안기는데, 그 기분 정말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경북 포항시 북구에 있는 청소년자유학교는 ‘포항에서 제일 주먹 센 놈이 한 명씩 매년 입학하는 곳’이다. 탈(脫)학교생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데, 검정고시를 합격하면 곧바로 졸업한다. 9월 현재 재학생 수는 19명. 지난 8월 검정고시에 합격한 학생이 13명인데, 매년 4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한다. 2001년 개교해 지금까지 300명이 넘는 학생이 자유학교를 거쳐갔다. 이 중 200여명은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업을 구해 번듯한 성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 형편은 가지각색이다. 가족이 해체돼 가정과 학교에서도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학생도 있다. 최근 늘어나는 것은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다. 포항시의 탈학교생은 매년 200명에 달하는데 그중 20~25%가 자유학교를 거친다. 청소년자유학교는 포항시 공교육의 마지막 보루라 할 만하다.

김윤규 교장은 자유학교가 ‘보완성 대안교육’을 하는 학교라고 설명했다. “우리 공교육은 굉장히 효율적입니다. 우리나라 성장동력은 교육에서 나온 것이 맞아요. 그런데 효율성과 유용성 측면에서 보면 뛰어난 우리 교육이, 공리의 측면, 모두가 행복한 품질 교육의 측면에서 보면 아직 부족합니다.” 날이 갈수록 대안학교가 늘어나는 이유다. 그런데 대안학교에도 두 종류가 있다. “예체능 재능이 뛰어나거나 뭔가 다른 신념을 가지고 살고 싶은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가 있습니다. 저는 이걸 ‘수월성 대안교육’이라고 부르는데요.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아래를 지향하는 대안교육, 그러니까 매우 효율적이고 유용한 우리 공교육의 속도를 미처 따라잡지 못한 ‘루저’들을 위한 대안교육입니다.”

김 교장이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노인문제는 복지부에서 맡아요. 실업자는 고용노동부에서 맡습니다. 범죄자는 안전행정부나 법무부가 맡습니다. 그럼 학교 밖으로 나간 탈학교생은 누가 맡나요?” 교육부도 아니고, 자치단체도 아니다. “이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실제로 김 교장은 탈학교생 한 명을 방치할 경우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계산해 본 적 있다. “정말 거칠게 계산한 결과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탈학교생 한 명에게 평생 동안 5억원의 비용이 듭니다. 보통 청소년 불량화는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 사이에 일어나요. 전과자가 된 아이들이 경찰, 검찰을 들락날락하며 드는 비용, 이 애들을 그래도 먹여살려야 하는 비용, 얘들이 저지르는 범죄피해액, 심지어 이 상태로 노숙하다 죽어 무연고자 사망자로 처리할 때 드는 비용 등을 생각해 보면 5억원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사회의 ‘메인스트림’ 안으로 들어와 적당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때, 20대 초반부터 40~50년간 평생 동안 벌 수 있는 돈이 평균 20억~30억원은 된다. “제가 14년간 학교를 운영하며 든 비용이 8억원 정도 됩니다. 그 사이 200명 넘는 학생들이 각각 30억원씩 벌어들일 기회를 얻게 됐다고 생각해보면, 사회적 비용을 어마어마하게 줄일 수 있는 거죠.” 딱히 사회적 비용만을 고려해서가 아니다. “아이들이 변하는 건 정말 한순간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아이들은 금방 변해요.”

청소년자유학교 아이들이 변하는 데는 딱 2주가 필요하다는 것이 김 교장의 말이다. “왜 아이들이 욕을 쓸까요? 욕을 쓰면 또래 집단에서 사회적 권력이 높아지니까 그래요. 결국 인정받고 싶어하고,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존중받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청소년자유학교 교사들은 모두 아이들에게 깍듯이 예를 다한다.

자유학교의 교사는 9월 현재 47명이다. 학생은 19명인데 교사가 47명인 이유는, 교사 한 명이 1주일에 2시간 수업만 맡기 때문이다. 자유학교 교사의 봉급은 0원이다. 재능기부 차원에서 김 교장이 교수로 있는 한동대 학생들이 번갈아 가며 아이들의 지도를 맡는다. “사실 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훌륭한 선생님을 매년 충분히 지원받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 선생님들이 오히려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서 ‘배운 것이 많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유학교의 학급은 수준별로 4학급으로 나뉘는데, 한 학급당 많아 봤자 대여섯 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는다. 이 학생들이 모두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복습할 수 있을 때까지 선생님들은 참고 기다리며 반복해 가르친다.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그동안 그런 대접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고, 재촉하지 않고 하나하나 알려주면 아이들의 태도가 금방 변합니다. 많이 걸려봤자 2주예요.”

지난해 12월 청소년자유학교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선생님과 제자들이 함께 배운 악기 솜씨를 뽐내고 있다. ⓒphoto 청소년자유학교
지난해 12월 청소년자유학교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선생님과 제자들이 함께 배운 악기 솜씨를 뽐내고 있다. ⓒphoto 청소년자유학교

한 명의 학생이라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는다. “이제는 스무 살이 됐겠네요. 재원(가명)이라는 애가 있었는데,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따돌림을 당하다 자퇴했어요. 공부에 아예 흥미가 없어서 그런지 3년 동안 내리 검정고시에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지난 4월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선생님들에게 ‘재원이를 무조건 합격시켜라’고 지시했죠.” 그런데도 재원이는 불합격했다. 김 교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8월에 다시 태스크포스를 만들었어요. 시험치고 나온 재원이가 가채점을 해보더니 평균 59.6점을 받았다는 거예요. 평균 60점이 넘으면 합격하는 건데요. 그래서 낙심하고 있었는데, 정식 시험 결과를 받아보니 글쎄. 60.3점이더라고요.” 김 교장은 물론 학교 전체가 기뻐 들썩였다고 한다.

매주 수요일에는 ‘대안수업’ 시간이 있는데, 이 시간이 학생들의 변화를 부채질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쳤어요. 무대에 올리는 연극이 아니라 자기 표현의 시간을 갖는 거죠.” 김 교장은 경북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는데, 경북대 재학 당시 영화 ‘오아시스’ ‘시’ 등을 만든 이창동 감독과 함께 연극부원이었다고 한다. “그런 자기 표현이 아이들의 정서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조금 다르게, 수요일마다 음악 공연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교장실이 좀 좁거든요. 이 안에만 기타가 7개 있습니다. 드럼도 있고, 키보드도 있고.” 한 번도 다뤄보지 못했던 악기를 처음부터 배우고, 합을 맞춰 나가며, 공연을 하는 것 자체가 학생들에게 굉장한 성취감을 준다고 한다. 공연을 준비하는 것은 학생만이 아니다. 선생님도 함께 배운다. “애들은 선생님도 자기처럼 악기에 서툴러서 쩔쩔매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나 봐요. 요 몇 년간은 승마도 배웠는데, 저 역시 함께 배웠습니다. 선생님도 함께 배우고 익혀 나간다는 것이 치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자유학교를 졸업해 지금은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황윤재(가명·21)씨는 스스로를 “구제불능 꼴통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자유학교가 황씨를 바꿨다. “대학생 선생님들을 보는데 좀 부럽더라고요. 입학하자마자 교장선생님과 참 많이 대화했는데 ‘이대로 평생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일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1+1은 2’라는 것만 겨우 알고 살았다”는 황씨는 필사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교가 마칠 시간에 학교 앞에서 황씨를 기다리던 ‘시시껄렁한 친구’들도 황씨의 변화를 보고 “실망해 물러났다”고 한다. 하루 종일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있고 목표가 있으니 의외로 활기차게 보냈다는 것이 황씨의 말이다. “왠지 주먹질하던 시절이 유치하고, 하찮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제는 자유학교를 잊어버릴 법도 하지만, 황씨는 자유학교에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사실 학교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저녁밥 때문이에요.”

김 교장의 부인 이순애씨는 매일 밤, 자유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을 위해 저녁밥을 짓는다. 김 교장은 “저녁밥 먹겠다고 졸업하고 나서도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자유학교 학생들은 가정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편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자유학교의 저녁 시간은 ‘집’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매일 밤 최소 20~30인분의 밥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도 이씨는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 한다.

김 교장과 부인 이씨는 야학에서 만난 사이다. 대학 재학 시절, 가난해 미처 공부를 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야학 선생님으로 일하던 김 교장과 이씨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자식 셋 키우고, 없는 집안 살림 꾸리느라 잠시 손을 놓기는 했지만 자유학교는 제 아내의 꿈이기도 합니다.”

김윤규 교장이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패자부활전을 거쳐 결승으로 간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잠시 벗어난 아이들을 우리 안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이 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사람이거든요.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어른들이 알아야 합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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