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계룡대 연병장에서 격파 시범을 보이는 특전사 대원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충남 계룡대 연병장에서 격파 시범을 보이는 특전사 대원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공수부대의 현역과 예비역 장교 및 부사관 수백여 명이 전문 브로커들과 짜고 최소 200억원 이상의 보험금을 부당하게 받아 가로챘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허위로 의심되는 후유장해진단서를 발급받아 보험금을 부당 수령한 것은 물론이고 이 중 일부는 이 자료를 근거로 국가유공자 자격을 받아 국가 차원의 예우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지난 8월 말 보험사기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수도권 소재 복수의 병원과 보험 브로커의 근거지인 L법무법인 및 S재무법인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고 관련 자료를 분석 중에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동부지검과 성동경찰서는 현재 사건에 연루된 브로커와 전·현직 군인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 수사결과 이번 보험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브로커는 8명 이상으로 대부분 공수여단 출신이다.

익명을 요구한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수사 중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다만 자료 정리가 마무리되는 대로 우선적으로 기소 대상자를 선별해 검찰에 사건을 송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군인은 9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보험업계에서는 단일 보험사기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사정당국과, 민간보험사 등으로 구성된 군 보험사기 전담조사 TF는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의 협조를 얻어 2011년 1월부터 2013년 말까지 3년 동안 후유장해진단서를 발급받고 보험금을 수령한 보험가입자 중에서, 군부대가 발급한 공무상병인증서를 제출한 보험금 수령자를 추려냈다. 이 자료와 보험 브로커가 자주 이용하는 병원의 진료기록을 재차 비교·분석, 총 900여명의 전·현직 군 출신 보험금 수령자 명단을 확인했다. 이 자료에 등장하는 군인들은 대부분 전·현직 공수부대원이다. 전역자가 약 70% 정도이며 나머지는 현역 복무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험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LIG손해보험 측의 한 관계자는 “900명 이상의 군 보험사기 의심자 명단을 추려냈고 이 가운데 360여명은 브로커를 끼고 보험사기에 가담한 정황을 찾아냈다. 나머지 450여명에 대해서도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군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현장확인 등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군 보험사기 전담조사 TF는 지난 7월 삼성생명, LIG손해보험, 동양생명 등 시중 보험회사의 SIU(보험사기전담조사요원)들로 구성됐으며 국방부, 금융감독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의 협조를 얻어 특전사 주변의 보험사기 의혹을 추적해 왔다.

경찰과 보험업계가 이번 사건을 대대적인 군 보험사기의 일종으로 의심하는 근거는 이번 사건이 보험사기의 전형적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공수부대 출신의 보험 브로커가 암약하며 군인을 상대로 보험영업을 했고, 후유장해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 특정병원을 이용했으며, 보험금 수령 이후 브로커와 보험가입자가 일정 비율로 돈을 나눠 가졌다는 것.

경찰이 지난 8월 말 L법률사무소, G보험사무소, H손해사정사, Y병원, S병원 등을 압수수색한 것은 보험사기 의혹의 핵심인 브로커와 병원의 유착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서울 소재 S병원은 영장집행을 거부하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이 병원의 원장은 국군수도통합병원 전문의 출신으로 누구보다 군인들의 부상 치료에 대해 잘 아는 인물이다. 브로커들이 보험에 가입한 군인들을 데리고 진단서 발급을 위해 주로 S병원을 찾은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보험사기 의혹의 핵심은 후유장해진단서 발급에 있다. 후유장해진단서는 군인들이 군생활 도중 인대파열, 척추손상 등의 상처를 입고 신체의 일부 기능을 영구적으로 상실할 수 있을 때 발급된다. 20~30대의 젊은 나이에 공수부대 부사관 또는 장교로 복무할 경우 부상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대부분 군대 내에서 치료를 받고 일상으로 복귀하고 일부만 의병 전역을 한다.

보험 브로커들은 부상의 정도가 약할지라도 일반 병원에서 후유장해진단서를 발급받아 보험사로부터 막대한 보험금을 타낼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수부대를 전역한 보험 브로커들은 선후배 부대원들을 만나 이런 점을 설명하고 추가로 보험 가입을 유도한 뒤 전역에 즈음해서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보험사기를 쳤다는 것. 공수부대 출신인 보험 브로커들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역 후 보험금을 받아낸 전력이 있다고 한다. 공수부대 장교와 부사관으로 있다가 전역한 이들은 주로 자신이 몸담았던 부대의 후배들을 상대로 보험 모집을 했고 이들이 수령한 보험금 중 많게는 50%까지 나눠 가졌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이 보험 가입을 권유하고 보험금을 타내는 구체적인 과정은 이렇다. 일단 브로커들은 공수부대 선후배들에게 접근하거나 국군수도통합병원 등을 자주 드나들며 전역을 전후한 시기에 막대한 보험금을 타낼 수 있다는 정보를 흘린다. 이 정보를 전해 들은 전역 예정자들은 브로커를 찾아와 보험 가입 문의를 한다. 이때 브로커들은 군단체보험을 통해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한편, 시중의 별도 보험에 추가로 가입해 놓으면 전역 시점에 목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한다. 이 유혹에 넘어가면 군인은 시중 보험사의 상해보험에 가입한다. 그리고 나서 부대에서 크고 작은 부상을 이유로 공무상병인증서를 받아낸다. 이를 갖고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서울 소재 S병원을 방문해 진단서를 취득한다. 이때 일부 군인은 간단한 수술을 받기도 한다. 그런 뒤에 브로커는 이들을 데리고 자신들이 잘 아는 수도권 소재 병원으로 간다. 여기서 후유장해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익명의 보험업계 관계자는 “장해진단평가를 할 때 브로커는 진료실에 동행하고 미리 방법까지 일러준다. 브로커가 어깨를 꽉 잡으면 발목을 멈추고 어깨를 잡지 않으면 발목을 풀라는 신호를 하겠다고 사전에 각본까지 짠다. 그렇게 해야 장애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이 과정을 경험한 제보자의 체험담”이라고 말했다.

브로커와 동행한 보험가입자들은 대부분 병원 진료비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브로커가 모든 일을 대행했다는 것인데 이 대목에서 가짜 진단서 발급이 됐을 것으로 경찰은 의심하고 있다. 브로커가 병원에 현금을 내고 진료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진단서만 발급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일부 브로커들은 착수금조로 100만원 안팎의 현금을 보험가입자들로부터 받았는데 이 돈이 진단서 허위 발급에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

훈련 중인 공수부대원들. ⓒphoto 조선일보 DB
훈련 중인 공수부대원들. ⓒphoto 조선일보 DB

실제로 경찰이 허위진단서 발급처로 의심하고 있는 수도권 소재 병원 3곳의 요양급여 신청기록을 확인한 결과, 상해진단서 발급자의 대부분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록이 남는 건강보험을 이용하는 대신 현금을 받고 진단서를 허위로 발급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후유장해진단서가 발급되면 이 자료를 보험회사에 제출하고 보험금을 타내는데, 보험사는 군대 내에서 발생한 상해사고의 진위 여부를 조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사안에 대해서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보험브로커들은 국내 10여개 민간 보험사에 상해보험 상품을 여러 개 나눠 들어 보험금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보험설계를 대행해줬다고 한다. 예컨대 최대 보험 보상액을 20억원으로 설정하고 20여개의 각종 상해보험에 나눠 가입했다고 치자. 이 사람의 장해율이 100%일 경우 20억원을 받는다. 그러나 이는 곧 사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통상 보험 브로커들은 장해율 10% 선에서 진단서를 받는 걸 선호한다. 누가 봐도 의심하기 어렵고 10%의 장해율로는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지도 않는다.

이럴 경우 보험 가입자는 산술적으로 총 2억원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브로커가 수수료조로 많게는 50%를 가져간다 해도 전역한 군인은 1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보험을 수십여 개 가입할 경우 보험금 납부액이 커지기 때문에 통상 10여개 안팎의 보험에 가입하도록 브로커들은 권유한다. 보험 10여개를 가입할 경우 매달 40만~50만원에 이르는 납입금을 내야 하는데 이 돈이 부담스러울 경우 브로커들이 대신 납입을 해주기도 한다. 이럴 경우 브로커가 가져가는 보험금의 비율은 더 높아진다.

8명이 넘는 보험 브로커들은 전국 군병원과 부대별로 모집책을 심어놓고 이들을 통해 군에서 가담자를 끌어모았다. 특히 전역을 앞둔 장단기 복무자를 상대로 영업을 했다. 또 브로커들은 후유장해진단서를 받아 궁극적으로 국가유공자로 평생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말로 군인들을 현혹했다. 후유장해진단서를 발급받은 군인의 경우 보험금을 받은 이후 이 자료를 국가보훈처에 내 국가유공자 신청을 한다. 국가보훈처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변호사를 고용해 행정소송을 벌이는데 신청자가 승소하는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 판결문을 토대로 다시 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면 정부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유공자가 되면 매달 일정액의 정부지원금을 받고 각종 세금감면 등 다양한 혜택을 평생 누린다. 이 부분까지 브로커가 책임을 지고 성공할 경우 성공보수로 3000만원가량을 받는다는 게 보험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보험사기에 연루된 특전사 출신 군인들은 전역 후 보험금 수령을 일종의 퇴직금 개념으로 여겨 범죄의식이 크지 않았다고 한다. 보험사기에 가담한 군인 중에는 단기 부사관(중사)이 많았다. 군대에서 4~5년가량 근무하고 사회로 나가는 부사관들은 퇴직금이 적다. 이런 점 때문에 전역 후 군대에서 있었던 부상을 이유로 큰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솔깃할 수 있다. 공수부대 출신으로 브로커와 짜고 보험에 가입한 군인은 전역 후 많게는 수천만원의 보험금을 보험사로부터 받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전사 출신 군인들이 브로커와 짜고 보험사기를 벌일 경우 이를 걸러내기 어렵다. 일반인의 경우 보험에 가입 후 거액의 보험금을 신청하면 보험회사의 조사팀이 현장조사는 물론이고 관련자를 일일이 만나 사실 관계를 확인한다. 그러나 군대의 경우 보험회사 조사팀이 직접 조사에 나설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특히 공수부대와 같은 특수병과는 훈련시설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군 보험 브로커의 범죄 행위가 쉽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이런 군의 폐쇄성도 한몫을 한다.

경찰에 따르면 보험브로커들 역시 군 전역할 즈음에 공무상병인증서와 후유장해진단을 받아 보험금을 타냈다. 만약 이들에게 발급된 후유장해진단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일상생활에서 격한 운동을 하기 어려워야 마땅하다. 그러나 군 보험사기 조사 TF에 따르면 이들 중 상당수가 공수부대 출신의 유명 연예인이 운영하는 피트니스센터의 트레이너 등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콜릿 복근을 소유한 이들은 피트니스센터의 광고 전단지에도 등장할 정도로 건장한 체격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경기침체를 틈타 보험사기가 지능화 또는 조직화되고 있다. 2012년 서울대학교 조사 결과 보험사기의 연간 피해규모는 약 3조4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사정당국과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보험 브로커, 의사, 법률사무소가 공모하여 부사관으로 전역한 공수부대 및 현역 군인들을 상대로 보험사기를 벌이는 일이 성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 단속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은 그러나 보험사기 공범자들이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입을 맞추는 바람에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 특히 보험사기의 핵심인 병원의 허위진단서 발급에 대해 브로커들은 “허위가 아니라 과잉진단서”라고 경찰에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와 달리 보험사기 브로커들이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 등으로 일하며 보험모집을 하고 이들과 이익을 나눠 먹고 있어서 변호사들이 브로커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것.

일부 보험 브로커는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명함을 돈 주고 사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병원진단서에 대해 과잉진료라고 입을 맞출 경우 보험사기의 핵심 고리인 병원에 대한 처벌이 어렵고 궁극적으로 보험사기 브로커들에 대한 처벌 또한 약해질 수밖에 없다. 대구지역에서 보험조사업무를 담당하는 한 인사는 “공수부대 출신 중에서 고액의 보험금을 받은 사람은 상당수가 브로커와 연결돼 있다고 보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방부가 사건을 축소하지 말고 직접 나서서 군인들이 보험사기에 휘말리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 특수부대의 보험사기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의 경우 공수여단이 주축이 된 부사관들이 경기도 부천시에서 보험대리점을 운영하며 이번 사건과 유사한 방법으로 장해진단서를 발급받아 보험금을 편취,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과 수서경찰서는 총 180여명의 보험사기 사건 연루자를 적발해 불구속 입건하고 브로커 2명을 구속한 바 있다.

김대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