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잃어버린 20년’이란 말을 많이 한다. 일본인은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걸까. 일본의 상황을 단순화시켜 보자.

일본 소도시에 가면 대부분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펼쳐진다. 아이들은 없고 노인들만 보인다. 동네 상점은 문 닫은 지 오래다. 상점 소비자인 노인들이 돈을 전혀 쓰지 않기 때문이다. 주유소도 잘 보이지 않는다. 승용차에 기름 한 번 넣으려면 수십㎞ 밖 대도시 인근 대형 마트 부설 주유소까지 가야 한다. 노인들은 경차를 몰고 이곳에 가서 기름을 가득 넣고 한 달치 생필품을 사온다. 노인들은 제로금리가 고착화되면서 은행도 잘 안 간다. 신용카드도 쓰지 않고 예금을 찾아다 집에 있는 금고에 넣고 쓴다. 모든 것이 휩쓸려간 2011년 9·11 동일본 대지진 직후 쓰나미에서 온전하게 건져올린 건 노인들이 쓰던 철제 금고 더미들이었다.

을씨년함을 더하는 것은 빈집들이다. 일본에는 빈집 820만채가 있다. 전체 주택 6000만채 중 13.5%나 된다. 빈집의 66%는 부동산에 임대용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임차할 사람들이 없다. 빈집은 시가로 50조엔으로 추정된다.

일본 도쿄 인근의 골프장에 가보면 잔디 대신 태양광 패널이 깔려 있다. 도쿄 북쪽 군마(群馬)현 신토(榛東)촌 핫슈(八州)고원 부지에는 태양광발전소가 2012년 7월부터 가동 중이다. 2004년 경영난으로 폐업한 골프장의 부지 일부에 태양광 패널 1만장을 설치해 연간 268만㎾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일반주택 740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량이다. 2013년 현재 이런 골프장이 37군데나 된다. 2002년부터 10년간 일본 골프장은 900개가 부도가 났고, 55개가 사라졌다. 이용객은 10% 이상 줄었고 회원권 시세는 1990년 기준 최대 95%가 하락했다.

2006년 부도를 선언한 홋카이도의 탄광도시 유바리(夕張市)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아직도 연간 세수의 14배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는 유바리의 11개이던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2개로 통합됐다. 물가는 3배 오르고 공무원 급여는 절반으로 깎였다. 전기를 비롯한 인프라 가동률은 50% 이하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타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경제가 마비돼 죽은 도시가 됐다.

유바리는 일본 전체의 미래다. 경제를 살린다면서 정부가 지난 25년간 200조엔을 퍼부은 결과 일본은 역사상 유례없는 빚더미에 앉아 있다. 1990년대 초반 GDP(국내총생산) 대비 60~70% 정도였던 정부부채는 2014년 240%를 넘겼다. 2013년 일본의 정부부채는 12조달러. 미국(17.5조달러)보다 아직 적지만 GDP 규모(미국은 16.8조달러, 일본은 5조달러)를 감안하면 이미 일본이 3.4배나 많다.

지난 4월 일본 재무성은 끔찍한 전망을 했다. 현 복지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2060년 회계연도 때 일본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825%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경고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재정흑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2020년이 되면 부족한 돈이 50조엔에 이를 것이라고도 했다.

정부가 파산지경이지만 돈 쓸 곳은 오히려 늘고 있다. 일본은 베이비붐세대가 탄생하기 시작한 1947년부터 1983년까지 한 해 150만명씩, 모두 6850만명이 출생했다. 1947년생은 2013년 65세 은퇴를 시작한 것을 신호로 베이비붐세대, 즉 단카이(団塊)세대의 대량 퇴직이 시작됐다. 연간 150만명의 납세자가 줄어들고 그 숫자만큼 정부가 지원할 대상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나라는 예산이 매년 늘어난다. 세출(歲出)이 주는 국가는 희망이 없다. 일본이 그 꼴이다. 일본의 세출은 2011년 107조엔을 피크로 줄어들고 있다. 2014년 세출은 95조엔이다. 전체 예산의 24%인 23조엔이 과거에 발행한 국채 이자 지급에 쓰인다. 2000년에 비해 토목사업 등 공공사업 예산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반토막이 났다. 이제는 국가의 미래가 걸린 교육과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도 줄이고 있다. 전체 예산에서 교육·과학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2000년 7.6%에서 2014년 5.7%로 줄었다.

일본은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이나 질병이 아닌 이유, 즉 ‘자발적 선택’으로 인구가 주는 나라다. 2008년 1억2800만명을 최고점으로 이미 수원시 인구에 맞먹는 100만명이 줄었다. 2014년 일본에서 태어날 아이들은 인구통계가 남아 있는 1899년 이래 처음으로 100만명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34년 후에는 전체 인구가 1억명 밑으로 떨어지고, 2060년에는 불과 8674만명이 된다. 2040년이면 지자체 1800여곳 중 절반이 ‘자연 소멸’ 위기에 놓인다. 30년 후면 1000여개의 마을에서 출산적령기 여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년간 초등학교, 중학교 6000개가 통폐합된 일본에서는 생산가능인구(15~64세)도 고점 대비 이미 400만명이나 줄었다.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홍성국(51) 부사장은 이런 일본의 상황을 “자살을 준비 중인 우울증 환자”로 표현한다. 이 표현에 ‘잃어버린 20년’, 홍 부사장의 표현에 따르면 ‘잃어버린 25년’(1990~2014년)의 본질이 담겨 있다. 자살을 준비 중인 우울증 환자라면 집이나 물건을 살 이유도 없고, 투자나 저축을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실제 일본 경제가 그래 왔다. 어느 나라든 경제를 살리려면 첫 번째로 금리를 낮춘다. 돈을 빌려 돈을 벌라는 얘기다. 그런데 일본은 지난 25년간 금리를 내렸지만 사람들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리지 않았다. 오히려 빌려간 돈을 갚는 데만 열중했다. 1990년부터 거의 한 세대에 이르는 25년간 대출이 늘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다. 평생고용이 무너진 제로금리 사회에서 은퇴자들은 이자수입이 없고, 젊은이들은 프리터족(고용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의 합성어)에 내몰려 하루벌이를 한다. 모두가 돈을 모을 여유가 없다. 돈도 안 쓰고, 돈을 빌리지도 않고, 돈을 모으지도 않는 나라. 홍성국 부사장은 “경제지표로만 보면 일본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라며 “어떤 경제 이론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경제성장률, 물가, 투자, 금리가 모두 역사상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 25년간 새로운 4저(低) 시대의 역사를 써왔다. 홍성국 부사장은 이런 일본을 두고 ‘전환형 복합불황’이라고 표현한다. 일본이 겪어온 장기불황을 경제지표로만 보면 디플레이션과 유사하지만 여기에는 경제적 현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사회적 변환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디플레이션, 구조화된 경제 위기, 사회 전체의 전환이 결합된 개념이다. 홍 부사장은 “일본의 경제위기는 사회 모든 분야가 과거 성장시대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지금까지 사용한 일본형 장기불황을 전환형 복합불황이라는 용어로 대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환형 복합불황이 ‘이상한 나라’ 일본만의 문제라면 우리가 그다지 주목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홍성국 부사장은 일본형 경제위기가 전 세계적 현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10월 말 출간 예정인 ‘세계가 일본 된다’(메디치미디어)는 370쪽 분량의 저서에서 세계가 일본의 잃어버린 25년을 닮아가는 이유와 근거를 꼼꼼히 제시하고 있다. 미리 입수한 원고와 홍 부사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내용을 소개한다.

우선 ‘세계가 일본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현재의 자본주의가 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한다는 의미라는 게 홍 부사장의 설명이다. 산업혁명 이후 성장을 전제로 만들어졌고, 성장에 중독되어 살아온 세계가 성장의 한계에 빠지면서 전혀 낯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는 말이다. 일본은 그 길을 먼저 갔을 뿐이라는 것이다.

2012년 4월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한복판 산타그마 광장에서 은퇴한 약사가 권총 자살을 했다. 이 약사는 총을 쏘기 전 “내 자식들에게 빚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외쳤다. 35년간 연금을 불입했다는 이 약사 옆에는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구하는 비참한 상황이 되기 전에 나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것 외에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유서가 놓여 있었다. 자살을 목격한 시민들은 흥분한 시위대로 돌변해 이 약사의 자살이 정부의 실책에 의한 ‘긴축 살인’이라고 비난했다.

홍 부사장은 전환형 복합불황이라는 틀로 세계 구석구석을 보면 이미 일본과 닮은 나라들이 하나둘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은퇴자의 자살을 불러온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그리스의 고령화는 세계 최고 수준인 20% 남짓 된다. 국가 재정으로 연금을 마구 퍼주면서 재정적자는 GDP의 175%까지 늘었다. 실업률은 24%나 되지만 일본과 달리 저축도 거의 없다. 홍 부사장은 ‘유로화 출범 후 그리스는 포퓰리즘 정부와 미래에 대해 준비 없는 국민이 결합해서 일본보다 어려운 국가로 전락했다. 일본은 뛰어난 세계적 기업과 기술이 있다. 개인의 저축도 아직 풍부하다. 아마 전환형 복합불황이 가장 강하게 나타날 국가는 일본보다 그리스가 빠를 듯하다’고 진단했다.

그리스를 포함해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라 불리는 남유럽 국가들은 유럽에서 일본형 위기로 가장 먼저 빠져들고 있다. 이 국가들의 상황을 요약하면 ‘나이는 많은데 저축한 돈은 없고 빚만 잔뜩 있는데 기술과 능력도 없는’ 상황이다. 이들 국가는 2008년 버블 붕괴 이후 유럽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과 유동성 공급, 금융기관 구조조정 등으로 금융시장은 안정되었지만 구조적인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홍성국 부사장은 “이들 국가가 1997년경 일본과 비슷한 상황까지 몰려 있다”고 진단한다. 이들 국가뿐만이 아니다. 중장기적 차원에서 유럽과 일본을 비교해 보면 유럽 전체가 1990년대 초중반 일본과 너무 유사하다. 신(新) 4저(低) 현상은 기본이고 국가 재정의 악화와 고령화가 동시에 엄습하고 있다. 그래도 일본은 강력한 산업기반과 개인의 부가 유지되고 있지만 독일과 북유럽을 제외한 유럽은 내세울 게 거의 없다.

특히 심각한 지표는 내수 소비다. 남유럽뿐 아니라 유럽 전체의 실물경제가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로 기력을 잃고 있다. 2008년 말 내수소비를 100으로 했을 때 2014년 3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소비는 85 수준에 불과하다. 이탈리아 89, 프랑스 102, 유럽에서 경제가 가장 좋은 독일조차 105에 불과하다. 홍성국 부사장은 “한국의 경우 최대 위기였던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내수가 1998년 단 한 해만 8.4% 줄어들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처럼 5년간 무려 15%나 소비가 줄어든 것은 정상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투자와 대출도 줄고 있다. 기업 대출의 경우 2009년 이후 유럽 대부분 국가가 빠르게 줄고 있다. 자산 버블이 가장 심했던 스페인은 2009년 5월 총 기업 대출이 9700억유로였지만 2014년 3월 현재 6100억유로로 30%나 줄었다.

불길한 유럽 전체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물가라고 한다. 현재 유럽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반적으로 하락 중이고, 디플레이션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생산자물가도 하락 추세에 진입한 것이 역력하다는 진단이다. 지금 유럽은 돈을 아무리 풀어도, 금리를 거의 제로 수준으로 낮춰도, 물가는 하락하고 돈이 돌지 않는다. 경제가 좋은 독일도 물가가 하락하고 있다. 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유럽 대륙을 덮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경험이 있는 영국은 어떨까. 홍성국 부사장은 “영국은 북해유전을 보유하고 있고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고 파운드화를 사용함에 따라 환율 조정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국도 전환형 복합불황을 비켜갈 수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큰 맥락에서 보면 고령화, 과도한 국가부채, 낮은 저축률과 신 4저 현상 등은 여타 유럽 국가와 비슷하다. 금융업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세계 금융 시장의 변화가 고스란히 경제에 투영되는 특징도 있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 장기 성장잠재력 또한 낮다. 특히 영국은 2008년 글로벌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위기를 잉태했다. 주택 시장의 버블을 키우고 있다. 그는 “영국 정부는 양적완화와 제로금리에서 파생된 엄청난 유동성을 설비투자나 R&D같이 생산적인 분야에 투자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부동산 시장으로 물꼬를 트는 달콤한 선택을 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우등생 독일은 전환형 복합불황에 잘 대처하는 표본국가다. 신 4저 현상도 가장 미약하다. 경기가 호조인데도 기간제와 임시직 근로 및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등 개혁에 나서고 있다.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 이민정책도 실시해 매년 약 40만명의 외국 인력이 유입되고 있다. 하지만 독일 역시 최근 금리와 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 홍 부사장은 “독일은 수출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여타 유럽 국가나 세계경제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는 취약점이 있다”며 “유럽과 세계 주요국들에 전환형 복합불황이 거세지면 수출 감소로 독일도 어려움에서 비껴가기 힘들다”고 했다.

현재 세계경제를 지탱하는 미국과 중국은 어떨까. 미국의 경우 경제지표가 아직은 좋다. 하지만 정부 부채비율이 GDP 대비 100%를 넘어서는 등 구조적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진단이다. 홍성국 부사장은 전체 취업가능인구 중 얼마나 직업을 구했는지 보여주는 고용률에 주목한다. 미국의 고용률은 그동안 평균 62~63%대를 보여줬는데, 지금 역사상 가장 낮은 58~59%대에 머물러 있다. 약 1000만명 정도가 일자리 자체를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실업수당에 의존하거나 그냥 놀고 있다. 고용이 줄고 있는 추세다. 홍 부사장은 “2차 대전 이후 미국 경기 고점의 고용을 100으로 봤을 때 경기침체 후 애초의 고용 수준으로 회복되는 기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미국의 극성기였던 1950년부터 1980년까지 경기침체로 고용이 줄었다가 다시 원상회복되는 데 평균 20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1980년대 불황 때는 28개월, 2001년 벤처버블 붕괴 때는 48개월, 2008년 글로벌 위기 국면에서는 무려 76개월이 소요되었다. 홍 부사장은 “미국의 제조업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해외로 아웃소싱했고, 경제는 서비스업 중심이다. 그런데 인터넷 등 IT 기술의 발전으로 서비스업이 효율적으로 변해 일자리가 줄고 있다. 단순 서비스업은 이민자나 해외 아웃소싱으로 조달하니 일자리가 늘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고용이 늘지 않으면 소비 여력이 준다. 전체 경제에서 소비 비중이 80%를 차지하는 나라로서는 구조적인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살아남으려면 계속 돈을 풀고 저금리를 유지해야 한다.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서 달러의 기축통화 역할을 더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힘과 독점력이 약화되는 순간, 이 구조가 깨지면서 위기가 닥쳐올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 역시 고령화의 위기가 들이닥치고 있다. ‘리더가 사라진 세계’의 저자 이언 브레머(Ian Bremmer)는 “1946년에서 1964년 사이에 태어난 미국의 7700만 베이비붐세대들이 2011년부터 연금과 의료 보조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재정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일단 그 파도가 몰아치기 시작하면 그에 따른 총비용이 2010년 미국 경제 규모의 네 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위기를 고령화 측면에서 분석한 바 있다. 미국도 조만간 의료보험, 공적연금이 한계를 보이며 내부 균열과 사회 갈등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도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당시 성장이 꺾인 중국은 정부가 대대적인 부양책에 나서 경제를 반등시켰지만 2011년 이후 내적 모순이 부상하고 있다. 중국 경제는 내수 부진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다. 14억 인구를 가진 나라가 내수를 키우지 못하는 기형적 성장을 해오면서 세계경기 변동에 대한 노출도가 커져버렸다. 현재 중국 GDP 중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육박하는 반면 내수 소비는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의 가장 큰 구조적 위기는 빈부 격차에서 비롯된다. 중국의 소득 상위 10%는 부동산의 90%, 예금의 75%를 차지해 전체 부의 85%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인구의 20%인 농민공(2013년 기준 2억6000만명)은 월평균 수입이 2049위안(베이징의 경우)으로 도시 근로자 평균 임금 4500위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농민공 중 1억명은 1980년 이후 출생한 ‘빠링허우’로 상대적으로 고학력자이며 도시의 맛에 익숙한 상태다. 이들의 수가 10년 뒤면 4억명으로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의 조직화를 가장 두려워하는 중국 정부가 개혁에 나서고 있지만 경기를 부양하면 소득불균형이 커지고, 반대로 구조조정을 하면 성장률이 낮아지고 일자리가 줄어 농민공의 저항이 거세지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홍성국 부사장은 “2020년 중반 이후 중국도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사회가 진전된다면 결국 전환형 복합불황에 빨려들어갈 듯하다”고 지적했다.

정장열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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