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신외동에 위치한 420만㎡의 매립지.
경기도 화성시 신외동에 위치한 420만㎡의 매립지.

동수원에서 서수원으로 수원 시내를 가로지르며 77번 국도를 타고 들어간 곳은 경기도 화성시 신외동. 신외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엔 제집마냥 낮잠을 즐기는 들개 무리들이 도로 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서 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간간이 보이는 공사현장의 인부들뿐이었다. 정확한 주소가 없던 탓에 인부들에게 화성매립지의 위치를 물었다. 그중 한 명이 “유니버설스튜디오인가 뭐시기 하는 거요? 그거 하긴 하고 있대요? 들어 온 길 따라 10분 더 들어가면 좌측에 공사현장 하나가 보일 겁니다”라며 북쪽을 가리켰다. 10분을 더 들어가니 두어 대의 레미콘 차량이 오가는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공사현장에는 한국수자원공사(사장 최계운)의 송산그린시티개발건설단 사무소가 있었다. 사무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화성매립지는 간석지였을 때는 국토교통부(전 국토해양부) 소속이었지만 간석지의 바닷물을 말리거나 흙으로 메우는 부지조성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을 투자한 한국수자원공사에 소유권이 생겼다고 했다.

경기도는 7년 전부터 유니버설스튜디오코리아리조트(이하 USKR) 조성사업에 뛰어들어 이곳을 국제적인 테마파크와 관광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유니버설스튜디오 유치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지난 10월 13일 유니버설 파크엔 리조트 최고 경영자인 톰 윌리엄스가 중국 베이징에 33억달러(약 3조5100억원)를 투자해 테마파크를 만들겠다고 발표하면서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말도 들린다.

주간조선은 유니버설스튜디오 유치가 왜 지지부진한지 이유를 듣기 위해 한국수자원공사 본사 화성매립지 사업 담당자 시성우 차장에게 연락을 취해 보았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신 송산그린시티 개발현장 관계자와 익명을 전제로 얘기했다. 조성된 부지의 규모는 약 420만㎡(160만평). 이 관계자는 “현재 유니버설스튜디오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도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해 사업을 구상 및 추진할 예정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는 용역을 찾는 중이라 2015년 2월경에 보다 정확한 진행 상황을 알 수 있다”고 했다 .

경기도청 투자진흥과에 연락을 취했다. 투자진흥과 전략과제유치팀 김진문 팀장은 “진척 없는 테마파크사업 때문에 속이 썩어 문드러질 것 같다”는 말로 속내를 밝혔다. 그는 “중앙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 측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돕지 않으면 테마파크의 특성상 시행사가 쉽게 투자를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테마파크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지배적인 반면 수익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 많아 시행사들이 쉽게 투자를 결정하지 못한다. 테마파크사업의 경우 현행법상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의 결정만 있으면 부지조성 가격보다 싸게 부지매각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2006년 롯데그룹과 포스코건설, 포스데이타 등은 공동 출자를 통해 USKR PFV(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를 주체로 USKR(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를 설립했다. 이때만 해도 USKR는 테마파크사업 열풍을 일으키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12년 USKR PFV는 총 3조원에 달하는 사업비 중 무려 50억원의 위약금을 물어주고 계약을 파기했다. 김 팀장의 말에 따르면 2010년 진행됐던 USKR와 한국수자원공사의 부지매매 계약 과정에서 정식 토지감정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당시 땅값이 3.3㎡당 40만원을 넘겼다고 했다. 현재 개발지역 인근 송산면 농지 평균 땅값은 3.3㎡당 10만원을 약간 웃돈다. 게다가 USKR 측이 매입해야 하는 부지 중 실질적 사업가치가 없는 공공시설 용지가 30% 이상 포함돼 실제 가격은 3.3㎡당 100만원에 가까웠다는 것이 김 팀장의 설명이다.

결국 유니버설스튜디오 테마파크 도입은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김 팀장은 이에 대해 “일본·중국·싱가포르에서는 유니버설스튜디오 같은 글로벌 테마파크를 유치할 때 국가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며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 지자체나 시행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가 상당히 힘들다”고 했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자원개발부서의 김완수 과장도 이런 의견에 동의했다. 김 과장은 “대도시가 아닌 이상 테마파크로 수익성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이 분야에서는 통설이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사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원도 춘천시에서 진행 중인 레고랜드를 하나의 모범사례로 꼽았다.

레고랜드는 기존의 테마파크사업과는 다르게 국내 관광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외국 자본 1000억원이 직접 투자된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이렇게 거대 해외 투자자본을 유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파격적인 정책지원이 있었다. 춘천시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된 테마파크 부지는 레고랜드 코리아 전체 면적 129만1434㎡의 22%인 28만1072㎡다. 투자기업은 7년간 법인세 255억2000만원, 15년간 취득세 28억4000만원, 재산세 24억원을 감면받을 수 있다. 반면 화성매립지 테마파크 조성사업은 3.3㎡당 40만원을 웃도는 비싼 땅값 때문에 부지매입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부지조성비보다는 싸게 팔 수 없다는 한국수자원공사 측과 비싸서 살 수 없다는 USKR PFV가 서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다.

지지부진한 화성매립지 개발이 한국수자원공사 측의 관료주의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2008년 7월에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으로 취임해 2013년 7월 퇴임하기까지 화성매립지 개발 문제에 가장 결정적 권한을 갖고 있던 사람은 김건호(69) 전 국토교통부 제2차관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시절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도 했다. 그가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인 2010~2011년 동안 한국수자원공사는 감사원으로부터 956억7000만원에 달하는 예산이 낭비됐다고 지적받은 바 있다.

경기도청 투자진흥과 김진문 팀장은 무산된 테마파크 사업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참 답답합니다. 한국수자원공사 측이 화성매립지 개발을 위한 부지매각을 다소 싸게 하더라도 그들이 추진 중인 주택사업이 주변에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이득일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와 시행사 측에도 이득이 될 요소가 많아요. 부득이한 사정이야 누구나 있겠지만 왜 이토록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적지 않은 경기도청 관계자들 역시 한국수자원공사 측의 비협조적 태도에 의문을 가졌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다른 부서의 경기도청 관계자는 “사실 화성매립지 매각 문제는 대통령의 인가까지 필요 없이 수자원공사 측에서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며 “하지만 대부분의 고위 공무원들은 큰 탈 없이 안전하게 임기를 마치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 이유로 감사원의 지나치게 엄한 감사를 들었다.

그렇다면 한국수자원공사 측의 소극적인 화성매립지 매각을 감사원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주간조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감사원 홍보실의 이민성 감사관은 “감사원은 이미 2009년 1월부터 창의적 공직문화 조성에 기여하고 적극적인 업무 수행 중 발생한 잘못에 대해 책임을 면제하는 ‘적극행정 공무원 면책제도’를 도입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지난 4년간 공무원의 소극적인 업무행태가 감사원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감사원의 ‘적극행정 공무원 면책제도’가 실효성이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절대다수의 경기도청 공무원들은 주간조선과 전화 인터뷰에서 개인의 창의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한국 관료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토로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역시 지난 9월 16일 새누리당 ‘경제혁신 규제개혁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를 통해 공무원 면책과 관련 “공직자가 왜 (규제개혁을 위해) 안 움직이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감사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 그는 “감사원이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을 감사하고 일 안 하는 사람은 감사 안 하면 누가 협력하겠냐는 지적이 정부 내에서도 있다”고 말하며 여전히 정부 내 암처럼 퍼져 있는 관료주의를 꼬집었다.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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