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30일 텅빈 국회 본회의장.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지난 9월 30일 텅빈 국회 본회의장.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해양스포츠인 스킨스쿠버 다이빙은 인기를 끌지만 관련 산업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장애물은 스쿠버를 바다로 실어나르는 데 필요한 선박에 대한 규제. 현행 법규상 다이버들은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갈 수 없다. 다이버들을 실어나를 수 있는 배는 유선(遊船)이나 도선(渡船)이다. 접안(接岸)시설을 갖춘 국내 항구에는 어선만 있을 뿐 유·도선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유선은 요트와 같은 종류의 놀이용 배를 말하고 도선은 여객 운반선을 가리킨다. 그래서 스킨스쿠버 관련 종사자와 이용객은 벌금을 각오하고 어선을 이용해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있다. 스킨스쿠버 다이빙 관련 규제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어업인과 낚시 어선업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유불리를 따지며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당국이 관련 법안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망이 좋은 서비스 분야에 대한 정부의 규제나 법적 기반 부족으로 인해 산업으로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서비스업종이 상당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2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하 서비스기본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현재 이 법안은 2년째 국회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경기활성화를 목적으로 기획재정부가 발의한 서비스기본법은 현재 국회 소관 상임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정부는 국회가 서비스기본법을 조속히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야당은 이 법안의 내용 중 일부를 문제 삼아 반대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은 서비스기본법의 내용 중 의료서비스 분야의 규제를 풀어주려는 정부의 입법 의도를 의료민영화 시도로 보고 있다. 실제로 서비스기본법이 통과되면 경제자유구역에 투자병원 도입, 의료법인 합병과 의료법인의 병원경영지원 사업 허용 등에 물꼬가 트인다.

정부는 그러나 서비스기본법의 국회 통과가 곧 의료민영화를 의미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의료나 교육 분야의 경우 서비스의 공공성이 유지되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서비스경제과 장의순 사무관은 주간조선에 “최근 중국, 일본, 러시아, 중동 등에서 많은 사람이 의료관광을 오고 있다.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찾아온 사람들이다. 이런 시장이 있는데, 현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광고를 할 수 없다. 국내 보험사가 외국 환자를 모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규제를 터주려고 하는데 이게 과연 의료 공공성을 해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서비스산업은 다수의 정부 부처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 체계적으로 육성 방안을 마련하기 어렵다. 또 이해관계자가 서로 충돌하는 부분에 대해 실타래를 푸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획재정부는 2004년 서비스경제과를 신설하고 서비스기본법 제정을 추진해 왔다. 담당부처를 산업부가 아니라 기재부로 정한 것도 서비스산업을 제조업과 별개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해석돼 왔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서비스기본법이 서비스산업의 주요 분야 중 하나인 의료서비스를 육성하는 내용이 담겨있을 뿐, 의료민영화를 위한 발판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국회사무처 김상수 입법조사관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그야말로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기초적인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실제 산업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려면 이 법의 기반 위에서 해당 부처와 추가 협의를 거친 후 법률 개정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뀜에 따라 서비스업에 대한 중요성은 한층 커졌다. 과거 국내 산업은 제조업의 수출 위주 정책에 중심을 두고 있었지만 현재는 서비스산업이 국내 전체 생산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서비스업이 제조업을 압도하는 분위기는 고용 측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제조업 고용은 계속 감소하는 반면 서비스산업의 고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산업의 질적 발전은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은 제조업의 44.6% 수준으로 독일 80.7%, 영국 79.9% 등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정부는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우리 경제의 체질을 제조업과 수출 의존형에서 서비스업과 내수가 함께 성장을 견인하는 ‘쌍끌이형’으로 바꾼다는 방침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서비스산업이 1990년대의 성장기여도만 유지했어도 우리의 경제성장률이 지금보다 0.6% 이상 추가로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서비스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경우 향후 우리 경제가 성장할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또 한국경제연구원은 교육·의료·법률·콘텐츠 분야 등 주요 서비스 분야의 규제가 완화되면 2020년까지 청년일자리 35만개가 창출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서비스기본법이 통과되면 정부의 지원책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망 서비스업종에 대한 재정·금융·창업·수출 지원을 우선적으로 해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조업 중심의 재정 및 금융 지원제도로 인해 서비스산업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던 점을 개선하는 한편 창업 및 해외 진출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방향이다.

새누리당은 의료민영화 논란이 예상되는 일부 내용을 제외하는 한이 있더라도 관련 법안을 올해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규제에 묶여 산업으로서 발전이 이뤄지지 않은 다양한 서비스 분야를 집중 지원해 경기활성화의 길을 터줘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기본법의 내용을 보면 서비스산업은 농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를 주로 생산하는 산업을 제외한 경제활동에 관계되는 산업 전반을 광범위하게 포괄하고 있다.

예컨대 중소 방송 지원 방안, 직업기술학교 형태의 평생교육시설 신설, 외국 대학 회계의 본교 회계규정 적용 근거 마련, 간병서비스 제도화, 종마(種馬)산업 담당 법인 설립, 콘텐츠 기획 및 유통 지원 등 각 부처에서 지연되고 있는 서비스산업 관련 과제들이 기본법 통과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5년 단위로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한 기본계획이 수립되고 민관 합동의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를 가동하게 된다. 또 유망 서비스업종을 선별해 지원할 수 있고 각 서비스 분야에 대한 특성화 교육 및 연구기관 설립도 가능해져 필요한 인재를 충원할 수 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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