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신화·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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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하마 노리코(浜 矩子) 도시샤(同志社)대 교수는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를 ‘아호노믹스’라고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어 아호(アホ)는 바보라는 뜻인데,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의 파국을 초래할 바보 같은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아베노믹스로 인해 본격화된 엔화 약세와 주가 급등은 ‘경기 회복’이 아니라 ‘조작된 버블’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줄기차게 비판한다.

지난해 주가 급등과 엔화 약세로 인한 수출 기업들의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대다수 일본인은 아베노믹스에 환호했다. 하마 교수의 비판은 현실을 모르는 공염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70%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요즘 하마 교수의 비판론에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의 정책으로 경제 성장을 기대한다’는 응답(37%)보다 ‘기대할 수 없다’는 응답(45%)이 더 많았다. 내각 출범 당시만 해도 ‘기대한다’가 60%에 육박했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아베노믹스 부정론이 긍정론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성장률, 무역수지 등 각종 수치도 빨간불이다. 지난 2분기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1.7%,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8% 감소했다. 지난 4월부터 시행된 소비세 인상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긴 했다. 그러나 실제 감소폭은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커 충격을 줬다. 주식 시장의 상승세도 꺾인 상태다. 아베노믹스 초창기인 2012년 11월부터 2013년 5월까지 닛케이지수는 80% 상승했다. 하지만 연초 1만6324를 정점으로 하락, 현재 1만5000대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역수지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4∼9월 무역수지 적자가 5조4271억엔으로, 1979년도 이후 최대 규모다. 같은 기간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1.7% 증가했지만 수입은 그보다 많은 2.5%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아베 총리 취임 이후 엔화 가치가 30% 정도 약세를 보이고 있는데도 수출 증가 효과가 미미하다.

이 때문에 ‘J 커브 효과 무용론’도 나온다. ‘J 커브 효과’는 환율이 약세를 보이면 처음에는 수입이 늘지만 시간이 지나면 수출이 더 많이 증가해 무역 흑자가 커진다는 이론이다. 엔화 약세가 이미 2년간 가까이 지속했는데도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이미 일본 제조업체 상당수가 해외로 이전했기 때문에 엔화 약세가 수출 증가로 이어지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많은 수출 기업이 해외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어 엔화 약세의 장점을 누리지 못하고, 반면 원전 가동 중지에 따른 에너지 수입 증가로 무역 적자가 늘었다는 것이다.

여기다가 일본 수출 기업들도 엔화 약세를 활용, 현지 판매가격을 인하해 수출 물량을 늘리는 전략을 취하지 않고 있다. 과거 엔고로 본 손해를 이번 기회에 만회하겠다는 계산과 함께, 다시 엔고로 전환했을 때를 감안해 가격 인하를 통한 수출 물량 확대를 기피한다. 덕분에 수출 기업은 사상 최고의 이익을 기록하고 임금 인상도 이뤄지고 있다. 도요타는 환차익으로 4~9월 결산에서 1조3000억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사상 최고치다. 1달러당 1엔의 엔화 약세로 400억엔의 이익이 늘어난다.

하지만 내수기업은 엔화 약세로 인한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요즘 일본에서는 ‘엔화 약세 도산’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일본의 조사업체 TSR는 4~9월 엔화 약세로 인해 150개의 기업이 파산했다고 분석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엔화 약세로 인해 수입가격이 급등한 원자재를 사용하는 운수·제조 등 내수 중심 기업들이 치명타를 입고 있다. 엔화 약세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일본 정부도 1달러당 110엔 이상은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내년 말에는 120엔까지 엔화 가치가 급락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이 금융완화 조치를 종료함에 따라 달러 강세가 본격적으로 촉발돼 엔화 약세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논리에서다.

엔화 약세보다 더 큰 문제는 소비세 인상이다. 아베 총리는 오는 12월에 8%의 소비세를 10%로 올릴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인상을 결정하면 내년 10월에 실제 소비세가 오른다. 지난 4월 5%에서 8%로 소비세를 인상한 후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바람에 경기 위축이 심화되면서 소비세 추가 인상을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9월 소매 판매가 전년동기 대비 2.3% 증가했는데, 이는 시장 전망치(0.9%)를 크게 웃돌았다. 소비세 인상 찬성론자들은 소비세를 인상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일본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대 교수는 “사회복지비 증가 등에 따른 국가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소비세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소비세를 인상할 경우 어느 정도의 경기 위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소비세 인상을 연기할 경우 일본에 대한 국제신용도가 추락해 일본 국채 시장에 대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일본의 국채는 90% 이상이 일본 국내에서 소화되고 있다. 또 일본은행이 돈을 풀기 위해 국채를 대거 사들이면서 국채 품귀현상으로 마이너스 금리 국채가 출현하는 만큼 당장에 큰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베노믹스 위기론이 나오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성장전략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화살인 금융완화와 재정정책은 큰 효과를 보고 있지만, 실질성장을 이끌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정책은 여전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 일종의 FTA), 농업구조 개혁, 법인세 인하도 논의만 계속되고 있다. 와타나베 마사즈미(若田部昌澄) 와세다대 교수는 “재정투자 확대와 금융완화 측면에서 아베노믹스는 성공했지만, 성장전략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면서 “지속적 성장을 할 수 있느냐 여부는 아베 총리가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 완화에 대한 이해집단의 반대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얼마나 잘 발휘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최근 각료들의 정치자금 의혹, 소비세 인상, 원전 재가동 논란을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 연내 조기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원전 가동 중단은 에너지 수입을 늘려 무역적자 원흉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아베 총리는 12월에 원전 재가동을 선언할 계획이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 경험 때문에 재가동 반대론이 만만치 않다.

차학봉 조선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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