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취업난은 명문대 출신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사진은 한 사립대 도서관. ⓒphoto 조선일보 DB
2014년 취업난은 명문대 출신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사진은 한 사립대 도서관. ⓒphoto 조선일보 DB

“학점 3.7에 토익 910, 오픽(OPic) IH, 테셋(TESAT) 1급에 컨설팅회사 인턴 6개월, 작은 공모전이긴 하지만 입상 경험도 있다. 15군데 정도 서류를 냈는데 두 곳에 합격하고 그마저 인적성에서 다 탈락했다.”(서울대 국어국문학과 4년)

“학점 3.9에 토익 960, 토스(토익스피킹) 8, 한국사 2급, 어학연수와 인턴 2개월 경험이 있다. 15~20군데 서류를 내서 3~4곳에 합격하고 그중 1곳과 면접 진행 중이다.”(서울대 사회학과 4년)

“학점 3.5에 텝스 900, 토플 112, 토스 8, 책을 쓴 경험이 있고, 6개월 배낭여행 경험이 있다. 10군데 정도 서류를 내서 모두 탈락했다.”(서울대 사회학과 2014년 2월 졸업생)

“경영학 복수전공 했고, 학점 3.7에 토익 960, 오픽 IH, JLPT N2급, 테셋 1급에 어학연수와 인턴 경험 있고 창업 경험도 있다. 20군데 정도 지원해 서류전형에서는 5군데 합격했는데 인적성 시험까지 4군데에서 떨어졌고 면접 진행 중인 곳은 한 곳이다.”(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년)

“학점 3.9에 토플 116, 토익 980, 오픽 NH, 미국 대학 교환학생 1년 경험 있고, 교환학생 당시 학생 경진대회에 나가 수상 경험이 있다. 15군데에 지원, 서류전형에서 세 곳은 통과했는데 결국 다 탈락했다. 서류심사를 하고 있는 두 군데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연세대 경제학부 4년)

매년 10~11월은 ‘취업 시즌’이다. 기업, 공공기관의 신입사원 채용 일정이 이때에 몰려 있다. 지난 11월 7일 취업준비생 5명을 함께 만났다. 아직까지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학생들이다. 면접 일정이 진행 중이라 이 중 한두 명은 내년에 사원증을 목에 걸 것으로 보인다. 다른 3명은 11월 7일까지 입사에 성공하지 못했다.

대학생의 취업 상황은 통계로 알 수 있다. 교육부의 대학알리미 웹사이트(www.academyinfo.go.kr)에 따르면 지난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취업률은 54.8%. 2012년에는 55.6%, 2011년에는 56.1%였다. 해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4년제 대학졸업생 2명 중 1명은 취업에 실패한다는 얘기인데, 취업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취업률은 그보다도 낮다.

취업률 통계에는 대학원 진학자 등이 제외돼 있다. 대학원 진학생 중 일부는 ‘취업 유예기간’을 얻기 위해서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실질 취업률은 조금 더 낮다. 게다가 취업률이 높은 전공과 그렇지 않은 전공이 확연히 다르다. 교육부의 ‘전국 4년제 대학정원 및 취업률’ 자료에 따르면 인문계열 졸업자의 취업률은 47.8%. 사회계열은 53.7%, 교육계열은 47.5%다. 이과계열 중 공학계열의 취업률은 67.4%, 자연계열은 52.5%, 의약계열은 71.1%로 문과계열보다 훨씬 높다.

취업난이라고 해도 명문대 졸업생에게는 조금 낯선 이야기였다. 1998년 IMF 경제위기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결국 명문대생은 좋은 곳에 취직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요즘은 다르다. 지난해 하반기 서울대 인문계열 졸업자의 취업률은 42.3%에 불과했다. 고려대가 49.9%로 높았을 뿐 연세대 38.6%, 성균관대 42.3%, 한양대 37.8%로 40%대 전후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취업률은 낮아지는 추세다. 서울대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생의 2012년 취업률은 65.5%였다. 그러나 2014년에는 43.5%로 20%포인트 넘게 줄어들었다. 2013년에 70%이던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의 취업률도 2014년에는 54.5%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제는 취업 시장에서 명문대 프리미엄은 없다시피하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후 3년째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A씨는 “대학 동기, 선후배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 중에 ‘차라리 장학금 받고 취업 교육을 제대로 해주는 대학에 갔으면 더 나았다’라는 게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려대 심리학과 재학생 B씨 역시 비슷한 얘기를 한다. 그는 “좋은 대학을 졸업해서 기대하는 삶의 수준이 있다. 눈을 낮춰 취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주변에서는 무조건 ‘기업 보는 눈’이 높은 게 아니냐는 얘기만 한다. 속상하다”고 말했다. “요즘 기업에서는 학벌이 좀 좋지 않아도 기업 직무에 더 맞는 능력을 키운 인재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게 B씨의 이야기다.

이렇다 보니 A씨나 B씨 모두 취업 시즌에는 마치 고3 시절로 돌아간 듯 잠을 줄여 준비를 해야 한다. A씨가 다니는 스터디는 4개. A씨는 “기업마다 전형이 다 달라 일일이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요즘 대학 입학전형이 다양하다고 하던데, 기업은 비교할 수도 없이 다양하다. 출제 범위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가지고 있는 토익 점수가 만점에 가까운 A씨도 영어 스터디를 다닌다. 기업에 따라서는 영어 면접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질문을 영어로 하는 기업도 있지만 영어 토론을 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그 기업이 외국계 기업일까. “아니오, 그냥 한국 기업이고 한국말로 하는 직무를 뽑는 거예요.”

A씨가 영어 스터디를 하는 시간에 고려대 심리학과 4학년 B씨는 면접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었다. B씨의 하루는 꽤나 빡빡하다. B씨는 어학연수 경험이 없어 대부분의 한국 학생이 그렇듯이 ‘시험 영어’에만 익숙하다. 그래서 최근 취업준비생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토익스피킹이나 공인인증 영어 말하기 시험인 오픽(OPIc) 준비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매일 아침 8시쯤에 학원에 도착해 오전 11시까지 영어 수업을 듣는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강남역 인근 스터디 카페에서 면접 스터디를 진행한다. B씨가 요즘 준비하는 기업은 이동통신업체의 2차 면접. 1차 면접 결과가 발표 나지도 않았는데 2차 면접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 “서류를 거의 20~30개 넣었는데 2차 면접까지 간 건 이거 하나예요. 사활을 걸어야죠.” 그나마 이 기업의 1차 면접은 어렵지 않은 편이었다. 1박2일 동안 면접을 보는 곳도 많다.

B씨에 따르면 1박2일 동안 면접을 보는 회사에서는 10~12명이 한 조가 되어 팀 과제를 수행하고, 토론을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임원 면접과 영어 면접까지 치른다고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1박2일 면접은 1차 면접일 뿐이고 2차 면접이 따로 있다. “많은 기업에서는 면접 전에 에세이나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라고 해요.” 취업준비생에게 인기 있는 IT 기업 상당수는 각 회사의 “서비스 중 약점을 꼽아 대안을 제시하라”든가 “앞으로 회사에 필요한 서비스를 고안해 보라”는 식의 에세이 제출을 의무화한다.

B씨의 면접 스터디에 따라가봤다. 4명의 스터디원이 내게 면접관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기소개서를 대충 읽고 질문을 찾으려고 했는데 자기소개서만으로 보면 4명 모두 능력자였다. 높은 영어점수는 물론이거니와 사회활동 경험도 많고, 외국 현지에서 아르바이트 해가며 돈을 벌어 해외여행을 했다는 학생이나 모바일 앱 개발 경험이 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 11월 7일에 만난 서울대, 연세대 학생 5명은 스펙만 봐도 어디 하나 부족한 점이 없다.

서울대 학점 만점은 4.3점이니 지원자의 평점이 3.5점이면 모든 학과목에서 B+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는 얘기다. 요즘은 토익·토플과 같은 기존의 영어 자격시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토익점수 대신 오픽, 토익스피킹 등 말하기·쓰기 능력시험 점수를 요구한다. 종종 공기업·공공기관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한국사능력시험 점수가 있어야 한다. 한국사능력시험이나 테셋·매경TEST 같은 경제시험, 어학연수나 인턴 경험은 옵션이다. 인적성 시험도 기업마다 유형이 달라 문제집 한 권씩은 꼭 풀어봐야 하고, 인적성 시험을 보지 않는 곳 중에서는 상식 시험이나 논술 시험을 보는 곳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대학만 다녀서는 갖추기 어렵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취업 시장에서의 스펙에 대한 국민인식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스펙을 갖추는 데만 80.2%의 학생이 최소 1년 이상 걸렸고, 2년이 걸렸다는 학생이 20.5%였다.

B씨와 함께 스터디하던 4명 중 한 명은 취업 재수생이다.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는 이 학생은 “취업 준비 2년 만에 대한민국 기업을 꿰뚫게 됐고, 면접 준비를 하다 보니 발표면 발표, 영업이면 영업 못하는 게 없어졌다”고 자조했다. “스펙이 중요하지 않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다들 토익 900점이 넘는데 나 혼자 800점대면 위험한 거 아닌가요?” 고려대 행정학과를 다닌다는 같은 스터디원이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다. “남자들이 소개팅시켜 달라고 하면서 ‘성격 좋은 여자면 된다’고 하잖아요. 거기에 생략된 이야기는 ‘예쁘고’예요. 성격은 좋지만 못생긴 여자 사진을 보여주면 거절할 걸요? 스펙은 그런 거예요.”

이 학생은 일주일에 스터디 3개를 하고, 영어학원에 다니며, 남는 시간에는 공기업 시험 준비를 위해 상식과 논술 공부를 하느라 매일 4~5시간을 잔다. “그 와중에 경력 공백이 생길까봐 틈틈이 무급 인턴 활동도 하고 있어요.” 최근 들어서는 졸업하지 않는 대학생들을 일컫는 ‘NG족(No Graduation)’이란 신조어도 생겼지만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경력 공백’이다. “1년이라도 아무 일 없이 쉬었다 싶으면 면접에 들어가서 바로 물어봐요. 1년 동안 뭐했습니까? 하면 ‘놀았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해서 이 학생들이 모두 대기업에만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대기업으로 시작해요. 그러다 서류 다 떨어지고,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면 중견기업으로 눈을 돌립니다. 그래도 안 되면 100인 이하 사업장까지 눈을 낮춰요.” 물론 취업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기에 취업률은 40% 넘게 나온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취업 과정에서 ‘거절’을 경험하는 일은 아주 흔해요.” B씨의 말에 따르자면 자신은 ‘25번 거절당한 남자’다. “친구 중에는 지나가다가 ‘탈’ 자나 ‘합’ 자만 봐도 호흡곤란이 온다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많다. “명문대생들은 살면서 실패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취업 때 많이 좌절하고 우울해 합니다.” 서울대 사회학과 4학년 학생이 전해준 얘기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서 직장에 들어갔는데 취업 준비 과정에서 얻은 우울증 때문에 3개월 만에 휴직한 선배도 있어요.”

그가 말한 ‘선배’를 수소문 끝에 만났다. 지난 11월 10일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만난 28살 C씨는 “회사에서 잘렸다”고 말했다.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늦게 군대에 간 탓에 제대하자마자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입대 전에는 아무 걱정 없이 놀았는데 그게 잘못이었어요. 재수강해서 학점 높이고, 토익점수 따고 나니 벌써 졸업 시기더라고요.” 우선 손에 닿는 대로 입사 원서를 넣어 봤지만 결과는 전패. C씨는 뒤늦게 인턴이며 공모전 활동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경쟁이 치열해 기회를 얻기 쉽지 않았다.

“1~2학년 때부터 진즉에 취업 준비 좀 해둘 걸. 나는 왜 이렇게 비참해졌나 수없이 자책했어요.” C씨에 따르면 특히 서울대 학생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취업 실패 유형’이 있다고 한다. “서울대생들은 고시 준비를 많이 하잖아요. 고시를 오래 준비하다 보면 학점이나 경력 관리가 엉망이 돼요. 나중에서야 취업 좀 해볼라치면 실패할 수밖에 없죠.”

난생처음 찾아온 좌절 때문에 우울증이 생겼다. 눈을 많이 낮춰 한 달 200만원도 채 못 받는 작은 홍보기획사에 자리를 얻었지만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하루는 급성 알코올중독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C씨는 회사에 병가를 신청했다. 회사는 입사한 지 2개월 갓 넘긴 수습사원의 병가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C씨는 일을 그만뒀다.

C씨가 예외적인 건 아니다. 전해옥 청주대 교수(간호학)는 대학생 239명을 대상으로 취업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관계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조사 대상 대학생의 27.6%는 위험 수준의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여기에 가장 많이 영향을 끼친 것은 취업 스트레스였다. 채규만 성신여대 교수(심리학)와 김향수씨가 함께 쓴 논문 ‘취업 스트레스가 대학생의 자살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봐도 취업 스트레스는 자살시도, 자살행동 등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 취재를 하며 접촉했던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명문대 출신 취업준비생 22명 모두 “지금 우울하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취업준비생을 더욱 좌절케 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이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낙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2009년 졸업 후 5년 동안 행정고시 준비를 하다 취업 시장에 뛰어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생은 “스펙 초월 채용이니, 학벌을 보지 않는다는 얘기가 늘어날수록 점점 더 불리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에 취직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굳이 서울대에 올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공기업이 서울대 출신 고시 실패자를 잘 봐준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것도 옛말이에요.” 올해 몇몇 공공기관의 서류 전형에서는 학점이 4.0점이 넘고, 토익·제2외국어 성적이 우수한 서울대 학생이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하반기 한 식품회사 마케팅직에 합격한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출신 졸업생 E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합격한 회사에 원서를 넣는 서울대생은 찾아보기도 어려웠다고 한다”고 말했다. “입사하고 나서 인사팀에서 다들 서울대생들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어요. 저도 이곳뿐만 아니라 가구로 유명한 곳, 보일러로 유명한 곳 등 예전에는 서울대생이 쳐다보지 않던 곳에 지원했었어요.” E씨는 “취업난이라는 것이 단순히 취업이 어려워졌다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닌 것 같다”며 “예전 같지 않은 ‘직업의 질’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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