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노사정대표자 간담회. 왼쪽부터 김영배 한국경총 회장 직무대행,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photo 기재부
지난 7월 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노사정대표자 간담회. 왼쪽부터 김영배 한국경총 회장 직무대행,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photo 기재부

정부가 현행 2년으로 제한된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3~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연장하면 근로자의 숙련도가 높아져 기업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를 비정규직 근로자의 불안한 고용 지위를 연장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민주노총(위원장 신승철)은 지난 11월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검토하는 대책은 비정규직을 위한 법이 아니다”라며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 기간제법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르면 연말에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으나 노동계의 반발에 고민이 깊다. 당초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월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을 내놓으며 10월까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부진한 경제를 살리려면 가계소득을 증대시켜 소비를 확대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가계소득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정규직 전환 확대를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 노동시장에 뿌리 깊게 이어진 정규직·비정규직의 이중구조와 경직된 정규직 고용형태의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당초 10월로 예정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11월 중순이 지난 지금도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이중구조이다.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근로 형태가 필요한 이유는 이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고, 비정규직 근로 형태가 정규직으로 진입하기 전 단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정규직 근로자도 상황에 따라 비정규직 근로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만큼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원만한 환경이 조성될 때 그 노동시장이 선진적이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한국 노동시장은 실업상태에서 비정규직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실업상태에서 정규직으로 진입할 확률보다 낮다고 분석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전(前) 단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고착화된 상태라는 진단이다. 게다가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임금은 정규직과 비교해 매우 열악하다. 지난 8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115만1000원으로 10년 전(2004년 8월 61만9000원)보다 두 배 가까이 벌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3년 비정규직 이동성 국가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비정규직 근로자가 1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11.1%로 16개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였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촉진함으로써 고용을 안정시키는 한편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두 가지 방향에 초점을 맞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6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소득을 개선하지 않고는 가계소비가 늘어 기업투자가 확대되고 경제가 성장하는 선(善)순환 구조를 기대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지난 7월 발표된 기획재정부 경제정책 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우선 기업들이 고용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정규직 전환 자율협약을 확산하고, 정규직 전환 시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로 했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발생하는 임금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사용 사업주가 중소·중견기업 파견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거나 파견 사업주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와 △근로계약 기간이 2년 이내인 기존 시간제근로자를 무기 계약직 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 △중소기업 안전·보건 관리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근로자 임금의 일부를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안전 관련 분야에서는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토록 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이같은 분위기를 민간기업으로도 확산하기 위해 노력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안정성을 높이고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시간선택제근로자를 채용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전일제근로자를 시간제로 전환할 경우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건설업 등 임시·일용직에 대한 무료 취업 지원서비스도 대폭 확충하고 퇴직공제금 인상 및 지원 대상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사정위원회 및 노사협의회에 비정규직 대표가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정부의 고민은 정책적 지원만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원인으로 정규직의 과(過)보호와 고용시장의 경직성 등을 꼽고 있는데 이는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하는 이유는 고용 조정이 용이하고 정규직 형태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보다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과도하다고 지적되는 정규직 과보호 문제를 해소하고 정규직의 고용유연성을 높이지 않는 한 기업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유인이 적은 셈이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노·사는 물론 정부와 노동계 사이에서도 동상이몽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노동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와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선옥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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