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 비선 실세로 불리는 정윤회씨. ⓒphoto 조선일보 DB
현 정권 비선 실세로 불리는 정윤회씨. ⓒphoto 조선일보 DB

지난 8월 13일 독도에서 열린 ‘보고 싶다 강치야’ 콘서트에 현 정권 비선 실세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가 참석했다. 이날 본명이 아닌 ‘정윤기’란 이름으로 참석한 정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팬클럽인 ‘호박가족’ 멤버들과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캠프에서 일했던 인사들과 동행했다. ‘호박가족’이 주관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행사의 후원사는 CJ그룹. CJ그룹은 이 행사에 1억3000만원을 후원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행사에 CJ그룹의 부사장급 핵심 임원이 참석했다는 점. 이를 두고 외부에서는 “실세로 불리는 정윤회가 참가하지 않았다면 CJ그룹의 고위 임원이 참가할 이유도 없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정씨가 참석하는 것을 알고 세간에서는 그룹 총수 이재현 회장의 재판이라는 현안이 걸려 있는 CJ그룹이 정씨에게 접근했던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물론 CJ그룹은 고위 임원이 참가한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해명한다. CJ그룹 홍보실은 “후원사 자격으로 참석해달라는 주최측 요청이 있었고 해당 임원의 아들이 독도 방문을 원해 같이 가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정윤회씨와 얽힌 소문으로 난처해 한 바 있다. 공식적으로 법적 이혼한 상태인 정씨의 전 부인 최순실씨가 한화그룹의 한 임원과 오랜 동향 친구이며, 한화그룹이 이를 통해 정씨에게 접근을 한다는 식의 말이 나돌았다. 특히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 동선씨가 정윤회씨의 딸과 마찬가지로 국가대표 승마선수라는 점이 소문을 증폭시켰다. 지난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김승연 회장의 아들과 정윤회씨의 딸이 모두 승마 국가대표로 출전한 바 있다. 한화그룹은 이 때문에 지난 국정감사 기간 동안 정씨를 둘러싼 비선 실세 논란, 또는 정씨 딸이 국가대표 승마선수로 발탁된 것을 둘러싼 특혜설 등이 불거져 자신들에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대한항공도 정씨와 관련해 최근 내부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이번 문건파동 와중에서 정씨가 한때 대항항공 보안요원으로 근무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룹 인사라인이 최고위층으로부터 질책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그런 중요한 사안을 왜 진작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느냐’는 식의 질책이었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은 권력의 풍향에 민감한 대기업들이 정윤회씨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씨 본인은 최근 불거진 문건파동 와중에서 자신이 비선 실세라는 논란과 관련해 “사실이 아니다.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세간에서는 그를 권력을 등에 업은 그림자 실세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실제 청와대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의 여부를 떠나 ‘야인으로 살고 있다’는 자기 주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를 ‘실세’ 혹은 ‘잠재적 실세’로 간주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번 문건파동에서 드러났듯이 정씨가 막후 실력자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과의 관계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수족인 세 사람은 지금도 박 대통령을 최단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이번에 파문을 일으킨 문건은 이들 3인이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월권을 하면서 국정에 부적절하게 관여했다는 의혹을 던지고 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던 시절 이들 3인을 박 대통령에게 ‘천거’한 사람이 정윤회씨였다. 3인은 정씨를 자신들을 가르친 ‘사수’로 대하며 ‘실장님’으로 부른다.

지난 대선 직전이었던 2012년 8월 27일 기자는 정씨가 박 대통령이 한국미래연합 대표로 있던 시절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며 강원도 평창에 16만5000㎡(5만평)이 넘는 부동산을 소유했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정씨가 부동산을 매입한 2004년은 강원도 평창이 전라북도 무주와 동계올림픽 유치경쟁을 벌이던 시점이었다. 이때 기사의 초점은 정씨에게 맞춰져 있었는데, 뜻밖에도 주간조선을 찾아와 해명을 한 것이 정호성 비서관이었다. 정 비서관은 당시에도 박 대통령 캠프에서 핵심 참모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캠프에서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으로 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주간조선에 먼저 전화를 걸어왔고, 이어 정 비서관이 메신저로 주간조선을 찾아왔다. 정 비서관은 주간조선 보도에 대해 해명을 하는 한편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당시 정 비서관의 요지는 정윤회씨가 땅을 산 것과 박 후보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 비서관은 정윤회씨가 박 대통령 곁을 떠난 이후(정씨는 2004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되면서 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지난 12월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2007년까지 박근혜 대통령 곁에서 일했다고 주장했다) 연락을 끊었고, 자신들은 정씨가 평창에 땅을 산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 진영은 예민한 대선정국에서 정씨의 평창 땅 보유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불똥이 튀는 것을 막으려 했다. 당시 정호성 비서관은 정윤회씨와의 관계에 대해 “나를 뽑아서 일을 가르친 사수”라고 표현했다. 정 비서관은 정윤회씨가 한국미래연합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정식 국회 보좌진이 아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 비서관은 당시 논란이 일고 있던 삼성동팀의 존재와 관련해 “강남에 박정희 대통령 유품을 보관하는 사무실이 하나 있는데 국회가 번잡해 가끔 거기서 ‘페이퍼워크(문서업무)’를 한다”며 “그게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정씨와 3인은 2007년 대선을 전후해 정씨가 박근혜 대통령 곁을 떠난 후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오고 있지만, 세 사람이 “사수”라고 부를 정도로 관계가 깊었다는 점에서 정씨가 비선 실세라는 의혹은 시작된다. 특히 정씨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음지에 머무르면서 의혹을 키웠다.

이들 3인 중에서도 정씨와의 관계에서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이다. 지난 7월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2003년인가, 2004년인가 정씨를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말한 바 있는 이재만 비서관은 이번 문건파동 와중에서 지난 4월 정씨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3인을 포함한 이른바 ‘십상시’와 정윤회씨의 부당한 국정 개입을 조사하고 이를 문건화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4월 10~11일 이틀에 걸쳐 (내가 갖고 있는) 청와대 공용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여서 받지 않았다”면서 “그 직후 ‘정윤회입니다.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라는 문자가 왔다”고 했다. 그는 “4월 11일 퇴근길에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정윤회씨의) 전화를 좀 받으시죠’라고 했다”고 밝혔다. 3인 중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 정호성 비서관은 정윤회씨가 잘 컨트롤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씨가 실제로 3인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막후에서 권력을 행사했는지는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일이다. 문제는 정씨와의 연루 의혹을 받는 3인이 실제 청와대 내에서 권력게임을 해왔다고 볼 만한 정황이 여럿 있다는 점이다.

3인이 개입된 권력암투의 민낯은 청와대 하위직 인사나 부서 간 업무 분장 문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특히 민정수석실이 암투의 주무대가 됐다. 민정수석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3인을 포함해 ‘십상시’로 불렸던 박 대통령의 보좌진 그룹이 정무수석실이나 홍보수석실에는 두루 자리 잡고 있지만 민정수석실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청와대 직원들의 감찰을 하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수장이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가까운 조응천 당시 비서관이었다는 점이다. 박지만 회장이 과거 마약사건에 연루됐을 때 담당검사였던 조 전 비서관은 정권 출범 때부터 공직기강비서관을 맡아 2014년 4월까지 재직했다. 이번 문건파동의 큰 구도는 박지만 회장 쪽에 선 조응천 비서관과 정윤회씨를 배후에 둔 3인과의 권력투쟁으로 이해되고 있다.

현재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하부에 민정비서관실, 공직기강비서관실, 법무비서관실을 두고 있다. 통상적으로 민정비서관실은 고위공직자 관련 각종 비위 첩보,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친인척관리 및 청와대 직원 감찰, 법무비서관실은 다른 수석실 업무 중 법률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을 담당해 왔다. 이 중 가장 인원이 많은 곳이 민정비서관실로 정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25명 안팎으로 운영된다. 이에 비해 공직기강비서관실은 10명 내외로 운영된다.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서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민정비서관실보다 상급조직처럼 운영됐다는 것이 민정수석실 내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다른 정권처럼 업무가 명확하게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전달된 내용들을 살펴보는 것이 민정비서관실의 역할”이었다고 했다. 그는 얘기 도중에 ‘하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해가며 “정권 초기 공직기강비서관실의 힘이 그만큼 비대했다”고도 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힘을 키우면서 청와대 직원 감찰, 대통령 친인척 업무 등 본연의 업무뿐만 아니라 사실상 민정수석실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청와대 내부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권력이 커졌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권 출범 후 몇 달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러면서 3인과의 갈등도 점차 본격화됐다. 각종 인사 검증 및 청와대 내부 직원 감찰 등의 문제로 부딪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민정수석실의 인사 검증을 거치지 않거나 인사 검증에 대한 결론을 내지 않은 상황에서 인사 발표가 먼저 난 것이 조 전 비서관을 자극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면 아래 있던 양측 갈등이 본격적으로 부상한 것은 시사저널의 ‘박지만 미행’ 보도가 나오기 한 달 전쯤이다. 당시 조 비서관은 공직기강비서관실에 검찰 파견 직원 한 명을 더 늘리려는 인사안을 총무비서관실에 제출했다.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배정된 검찰 파견 인원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파견 나와 있었던 인물이었다. 이에 조 비서관은 대구 출신 검찰 수사관 한 명을 염두에 두고 증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를 이재만 비서관의 총무비서관실에서 단번에 반려시켰다. 이에 조 비서관이 크게 화를 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조 전 비서관이 박관천 경정 외에도 믿을 만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올린 것을 총무비서관실 쪽에서 반려하자 (조 전 비서관이) 이를 자신을 견제하려는 3인방의 의도로 봤다”고 말했다.

조 비서관의 뜻이 관철되지 못하자 청와대 내부에서 돌았던 말이 ‘박지만보다 정윤회가 힘이 더 세다’였다. 청와대 내부 직원은 대부분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박지만 EG 회장의 사람, 비서관 3인방은 정윤회의 사람’으로 봤다. 하위직급 한 자리를 놓고도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는 모양새가 되면서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를 권력 게임으로 해석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부터 전개되기 시작한 권력투쟁은 외부로 번져가는 것처럼 비쳐지기 시작했다. 특히 조 전 비서관이 올해 4월 교체되고 3인 쪽으로 힘이 실리는 것처럼 보이자 권력층 주변에서 정윤회씨를 다소 미심쩍게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씨가 실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를 권력투쟁의 승자로 바라보며 최고권력자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과 같은 요직에 있던 박지만 회장과 가까운 인사들이 밀려난 것도 이 무렵이다. 앞서 언급했던 기업들이 정씨의 일거수일투족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도 이후의 일이라고 봐야 한다.

정씨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3인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와 관련된 의혹들이 박근혜 정부를 뒤흔드는 ‘태풍’으로 부상한 책임에서 그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독도 콘서트를 박근혜 대통령 팬클럽인 ‘호박가족’과 함께 참관한 것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행동이다. 게다가 이 콘서트에 참여했던 성악가가 박 대통령 취임식에서 애국가를 불렀던 사람인 것은 정씨가 참석한 행사를 더욱 특별한 시선으로 보게 만들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정씨 관련 문건을 만들게 됐던 것도 정권 초반부터 정씨와 관련된 소문들이 너무 많았던 탓으로 보는 게 옳다. 정윤회씨와 관련된 의혹들은 앞으로 진행될 검찰 수사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높지만 ‘수첩’으로 대표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계속 유지된다면 ‘제2의 정윤회’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윤회의 뒤엔 그녀가 있다

정장열 부장대우

정윤회씨의 영향력과 관련해 최근 세간에 화제가 된 말 중 하나는 “피보다 진한 물도 있더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 사정당국 관계자를 만나서 했다는 말로, 누나인 박 대통령이 자신보다 정윤회씨를 더 신뢰하고 힘을 실어준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피보다 더 진한 물’이 정윤회씨 혼자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고 본다. 정윤회씨의 부인이었던 최순실씨(얼마 전 최서원으로 개명)가 없었다면 정씨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가 그 정도로 쌓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문건 파장의 주역으로 부각된 정윤회씨에 가려 있지만 최순실(58)씨는 박 대통령과 더 가까운 사이라고 일찍부터 얘기되어 왔다. 일각에서는 “최순실이 없었다면 정윤회도 없었다”고 말한다. 최씨의 부친은 지난 대선 박근혜 후보 검증 과정에서 부각된 고 최태민 목사(1912~1994)다. 최 목사의 다섯째 딸인 최순실씨는 박 대통령보다 4살 아래로 단국대 시절 아버지 소개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최순실씨는 10·26사건 이후 박 대통령이 외롭게 지낼 때 말벗 역할을 하며 신뢰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씨는 박 대통령이 1998년 대구달성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후에도 곁을 계속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의 집사 수준으로 박 대통령의 일상사를 챙겼다는 말도 나온다. 한 전직 의원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대구의 한 행사에 갔을 때 옆에서 시중을 드는 최순실씨를 처음 봤다”며 “로드매니저 같은 분위기였다”고 했다. 2006년 지방선거 유세과정에서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괴한에게 테러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곁에서 돌봐준 사람도 최순실씨였다는 것이 당시 당직자들의 말이다.

최순실씨의 존재가 일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계기는 1987년 터진 이른바 ‘육영재단 사태’ 때다.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 측근으로 재단 업무에 관여하며 전횡하고 있다는 의혹이 직원들 사이에서 제기돼 파장이 일었다. 육영재단 산하 어린이회관이 최순실씨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운영하던 유치원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불거져 직원들이 시위를 벌였고 이 일을 계기로 박 대통령이 이사장직을 내놓았다.

최씨는 현 정권 들어서도 박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박 대통령의 옷차림을 챙기는 디자이너 인선 등은 최순실씨 몫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행정관 인선에도 입김을 행사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번 문건파문 와중에 야당은 최순실·정윤회 부부가 국가대표 승마선수인 딸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간부 인사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2월 3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승마협회를 조사하라고 해놓고 나중에 담당(공무원)을 다 경질시킨 것 아니냐. 살생부까지 존재한다”고 했다. 지난해 9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체육국장과 체육정책과장을 한꺼번에 경질해 한직으로 내보내는 이례적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두 사람이 승마협회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린 직후였다. 당시 승마계에서는 정윤회씨 부부 딸의 전국대회 및 국가대표 선발전 등과 관련해 특혜설이 나돌았다.

얼마 전 정윤회씨와 협의이혼한 것으로 밝혀진 최순실씨는 상당한 재력가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시가 200억원대의 7층짜리 건물을 갖고 있다. 정윤회씨는 이혼 사실이 밝혀지기 전 언론 인터뷰에서 “아내의 건물 임대수입으로 생계를 꾸린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최씨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보유하고 있던 또 다른 4층짜리 건물을 2008년 85억원에 매각했다. 또 최씨는 강원도 평창에 16만5000㎡(5만평) 규모의 땅을 정윤회씨와 공동명의로 보유하고 있다가 딸에게 명의 이전한 바 있다. 최씨는 지난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 당시 자신의 재산이 부친 최태민 목사가 축재한 것 아니냐는 의혹과 관련해 “유치원 경영을 통해 번 돈으로 땅을 샀다”고 일축했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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