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화과기원이 입주할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의 포스코건설 사옥(오른쪽)과 추후 활용 예정 부지(왼쪽).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칭화과기원이 입주할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의 포스코건설 사옥(오른쪽)과 추후 활용 예정 부지(왼쪽).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모교인 중국 칭화대(淸華大)가 인천 송도에 들어온다. 칭화대 산하 교판기업(校辦企業·학교기업)인 칭화홀딩스(淸華控股)는 이르면 내년 5월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에 칭화과기원 한국 분원을 세울 예정이다. 베이징을 비롯 중국 전역에 30여개 분원을 갖춘 칭화과기원이 해외에 진출하는 것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어 두 번째다.

칭화홀딩스는 산하에 칭화통팡(淸華同方), 칭화쯔광(淸華紫光), 칭화청즈(淸華誠志) 등 상장기업 3곳을 비롯 각종 IT(정보기술)·BT(생명기술)·GT(녹색기술) 기업 수십여 개를 거느린 지주사다. 칭화과기원은 이들 기업이 입주해 연구개발과 제조생산을 하는 일종의 ‘사이언스 파크’다. 영문명도 ‘칭화사이언스 파크(TUS Park)’로, 베이징 중관촌(中關村)에 있는 칭화과기원 안에는 약 400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칭화과기원 한국 분원은 연면적 2만7000㎡로 인천 송도의 포스코건설 사옥에 들어올 예정이다. 칭화홀딩스의 쉬징홍(徐井宏) 회장은 지난 11월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조뇌하 포스코엔지니어링 사장, 한국뉴욕주립대 김춘호 총장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인천 송도 진출 의사를 표명했다. 쉬징홍 회장은 지난 9월 인천아시안게임 때도 방한해 인천 송도 일대를 둘러보고 갔다. 칭화과기원 한국 분원에 들어올 칭화홀딩스 산하 기업들의 면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일단 상장사 위주로 유치할 계획이다.

칭화홀딩스 측은 인천 송도에 칭화과기원을 세우면서 송도국제도시에 이미 진출해 있는 외국계 대학들과 한국, 중국, 미국 3국을 아우르는 산학연(産學硏) 네트워크도 구성할 방침이다. 김춘호 한국뉴욕주립대 총장(공학박사)에 따르면 칭화과기원의 한·중·미 3국 산학연 네트워크 구상 방침에는 미국 뉴욕주립대 측도 흔쾌히 동의하고 나섰다고 한다. 김춘호 한국뉴욕주립대 총장은 “미국 뉴욕주립대 새무얼 스탠리 총장의 부인이 화교(華僑)”라며 “부인의 조언이 있었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칭화홀딩스 산하 기술기업들의 송도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1억달러(약 1100억원) 규모의 한·중 합작 벤처펀드도 조성된다. 그간 중국 기업들은 해외투자를 하고 싶어도 초기 부담 탓에 투자가 무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한·중 합작 벤처펀드는 인천 송도에 진출하는 중국 기업을 위해 조성하는 벤처캐피털로 송도 진출 중국 기업들의 초기 부담을 대폭 낮춰줄 것으로 보인다.

칭화과기원 측은 향후 진전 상황에 따라 인천 송도 포스코건설 사옥 바로 옆 부지를 통째로 매입해 별도 건물도 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월 8일 찾아간 인천 송도 포스코건설 사옥 옆 칭화과기원 예정지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예정지 위로는 포스코건설에서 세운 더샵 퍼스트파크와 더샵 그린워크 등 아파트 분양 모델하우스 2동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향후 이 허허벌판에 칭화과기원이 들어오면 칭화홀딩스 산하 기업 주재원 자녀들이 다닐 칭화국제학교를 비롯 칭화미술관, 과학기술학습 체험관 등도 잇따라 세워질 예정이다. 또 쑤저우(蘇州)의 전통 원림을 본뜬 ‘차이니스가든’과 중국 주재원과 가족이 머물 장기거주형 콘도미니엄도 들어서게 된다. 칭화과기원이 들어오면서 송도에 새로운 차이나타운이 조성되는 셈이다.

당초 칭화홀딩스의 칭화과기원 한국 분원 예정지로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와 파주시 등도 후보군 물망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칭화계기업(淸華系企業) 한국법인 대표(이사장)를 맡고 있는 양필승 건국대 중국기업연구소(KURIC) 명예소장(박사)에 따르면, 건국대는 칭화홀딩스와 합작으로 ‘칭화과기원’을 유치하기 위해 “경기도 파주 제2캠퍼스 부지를 통째로 칭화홀딩스 측에 제공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까지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칭화홀딩스 측은 여러 검토 끝에 최종적으로 인천 송도를 낙점했다는 후문이다.

양필승 대표에 따르면 “송도는 한국의 푸동(浦東)”이란 소개가 칭화홀딩스 측에 먹혀들었다고 한다. 실제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는 중국 상하이의 ‘푸동신구(浦東新區)’를 벤치마킹해 조성했다. 공항(푸동공항)과 항구(상하이항)를 배후에 두고 경제자유구역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송도와 푸동은 동일하다. 과거 푸동은 장강(長江) 하구 삼각주에 불과했다. 이후 마천루가 들어서고 외국계 기업이 몰려들며 푸동에 진출한 기업들은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었다. 송도국제도시 역시 2003년부터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배후에 둔 국제도시로 조성됐다. 마천루가 우후죽순 들어선 점에서는 동일하나 외국계 기업 유치 성적에 있어서는 푸동에 비해 현저히 저조하다.

송도는 외국인 투자이민 제도가 적용되는 지역이라는 점도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이 7억원 이상을 투자해 휴양체류시설(콘도미니엄)이나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한 뒤 5년간 보유하면 영주비자(F-5)를 취득할 수 있다. 또 송도에는 오크우드호텔, 쉐라톤호텔, 홀리데이인호텔 등 특급호텔을 비롯 커넬워크와 롯데몰, 이랜드몰, 현대백화점 아웃렛 등 쇼핑센터 건립도 예정돼 있다. 또 인천공항과도 차로 15분 거리에 불과해 중국을 오가기도 편하다. 양필승 대표는 “중국 주재원 가족들이 사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이 중국의 첫 차이나타운이란 역사성도 고려됐다고 한다. 청군(淸軍)은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을 진압하기 위해 송도 건너편 마산포(현 경기도 화성)에 상륙했다. 이후 1884년 지금의 인천 중구 북성동 일대를 청국의 조계(租界·치외법권 지역)로 선포했다. 현재 산동성에서 기증한 공자상이 서 있는 일대다. 인천의 청국 조계 지역은 일제에 의해 1913년 조계가 폐지된 후에도 국내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으로 남았다. 일제강점기 때도 ‘지나정(支那町)’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양필승 대표는 “오는 2015년 5월 칭화홀딩스가 예정대로 입주하면 인천 송도가 인천 구(舊)도심 차이나타운을 능가하는 신(新)차이나타운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했다.

칭화홀딩스의 진출 소식에 송도국제도시의 외국인 교육기관들도 준비에 나섰다. 칭화과기원 입주와 함께 중국 주재원들이 자녀를 데리고 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송도에는 외국인 학생들의 유치원부터 초·중·고 교육을 담당하는 채드윅 송도국제학교가 한 곳 있다. 2010년 설립한 채드윅 송도국제학교에는 860명 정원에 현재 200여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반면 송도에 입주한 중국 기업이 아직 없어 중국 학생은 5명 미만에 불과하다. “칭화과기원이 예정대로 송도에 입주하면 중국 학생이 대폭 늘 것”이란 것이 이 학교 허운나 대외총괄교장(전 국회의원)의 설명이다. 이 학교의 연간 학비는 3000만원(초등학교 기준) 이상으로 상당히 비싼 편이지만, 연간 3만달러(약 3300만원)인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국제학교 학비에 비해서 그리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자녀들 교육을 위한 학교 선택은 그간 주한(駐韓) 중국 외교관과 주재원들 사이에서 골칫거리였다. 중국어 초·중·고 교육이 가능한 화교(華僑)학교가 있지만 이들 학교가 대만계란 사실이 문제였다. 실제 국내 화교학교는 모두 대만계로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걸고, 마오쩌둥(毛澤東)의 사진 대신 장제스(蔣介石) 전 대만 총통의 사진이나 동상 등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주한 중국대사관 측에서는 요로를 통해 “중국 학생들을 대만계 화교학교에 보내 청천백일기 앞에 서게 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으냐”는 불만을 전달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양필승 대표는 “한국은 중국과 가까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교육문제 탓에 중국 주재원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파견지였다”며 “이로 인해 중국 주재원들도 가족들을 두고 한국에 단신 부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월 26일 중국 베이징서 열린 칭화과기원 인천 송도 한국 분원 설립 양해각서 체결식. ⓒphoto 칭화계기업 한국법인
지난 11월 26일 중국 베이징서 열린 칭화과기원 인천 송도 한국 분원 설립 양해각서 체결식. ⓒphoto 칭화계기업 한국법인

포스코건설 입장에서도 칭화과기원의 송도 유치로 일석이조(一石二鳥) 효과를 얻게 됐다. 포스코건설은 미국의 부동산 개발사인 게일사(社)와 함께 인천 송도 개발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간 용지와 건물 분양이 순탄치 않아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공실 해소를 위해 2010년에는 포스코건설 사옥을 서울 강남에서 인천 송도로 옮기기도 했다. 포스코엔지니어링 역시 지난 3월 본사를 인천 송도로 이전했다.

칭화홀딩스의 칭화과기원을 유치하면 1차적으로 송도의 심각한 공실난을 일부 해소할 수 있다. 또 향후 사업 진행 상황에 따라 놀리고 있는 용지를 분양할 수도 있다. 포스코 입장에서는 거대시장인 중국 사업을 위한 탄탄한 ‘관시(關係)’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국진민퇴(國進民退)’라는 말처럼 민간기업보다 국유기업 선호 경향이 강한 중국에서도 칭화홀딩스가 포스코와 합작하는 데 대해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포스코는 현재 국유기업은 아니지만 여전히 국유기업의 색채가 농후하다. 양필승 대표는 “중국에서는 민간기업인 삼성보다도 국영기업이었던 포스코와 함께 사업을 하는 것을 훨씬 믿음직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칭화대와 그 산하 칭화홀딩스는 포스코의 중국 사업 확장을 위한 최적의 파트너로 꼽힌다. 칭화대는 중국 최고 이공계 명문으로 1989년 천안문(天安門)사태 이후 테크노크라트들을 줄줄이 배출했다. 칭화대는 후진타오(胡錦濤)와 시진핑 등 전·현직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을 2회 연속 배출했다. 후진타오는 수리공정과, 시진핑은 화공과 출신이다. 또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우방궈(吳邦國)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 황쥐(黃菊) 전 부총리, 쩡페이옌(曾培炎) 전 부총리 등이 칭화대 출신이다. 또 현 정권에서는 류옌동(劉延東) 부총리,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인민은행장 등이 칭화대 출신들을 일컫는 ‘칭화방(淸華幇)’으로 분류된다.

또 시진핑 정권의 사실상 ‘넘버 2’로 불리는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도 범(汎)칭화방으로 분류된다. 왕치산의 부친이 칭화대 토목공학과 출신 엔지니어였고, 자신은 칭화대 경제관리학원(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교편을 잡았었다. 또 왕치산의 장인은 1934년 칭화대에서 지하당 활동을 전개해 ‘칭화방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다.

사실 중국 최고 명문대로는 인문계가 강한 베이징대가 꼽히지만, 천안문 학생시위를 주도하면서 당 원로들의 눈 밖에 났다. 천안문 학생시위의 주동자로 ‘지명수배 1호’인 왕단(王丹)이 베이징대 출신이다. 이후 중국 정계에서는 ‘대청(大淸)제국 북대황(北大荒)’이란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칭화대를 대청제국에, ‘북대(베이징대의 약칭)’는 중국 동북지방의 인적 드문 허허벌판인 ‘베이다황(北大荒)’에 비유한 것이다.

특히 칭화홀딩스는 칭화방인 후진타오 전 주석 일가가 사실상 장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후진타오의 장남인 후하이펑(胡海峰)은 2008년 칭화홀딩스의 당서기로 재직했다. 베이징교통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인 후하이펑은 칭화대 경영대학원 EMBA 과정을 마치고, 칭화홀딩스 산하 웨이스(威視·누크테크)의 총경리로 재직했다. 공항이나 항만, 기차역에서 쓰는 엑스레이 검사기를 생산하는 웨이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엑스포를 앞두고 공항과 기차역은 물론 지하철역까지 엑스레이 검사기가 설치되며 상당한 이득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후하이펑과 웨이스는 후진타오 재임 기간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공항 검색기 수주를 싹쓸이하면서 거액의 뇌물을 제공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후진타오의 딸인 후하이칭(胡海淸) 역시 칭화홀딩스에서 일했고,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로 유명한 중국의 포털사이트 신랑(新浪·시나닷컴)의 마오다오린(茅道臨) 전 대표와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포스코는 중국 상하이 인근 장쑤성 장자강(張家港)에 스테인리스 공장을 두고 있다. 또 포스코건설은 산동성 옌타이(烟台)와 랴오닝성 다롄(大連) 등지에서 아파트 분양사업을 벌인 바 있다. 사업군 자체가 인허가 사업인지라 사업 지속을 위한 끈끈한 관시 구축은 필수다. 포스코엔지니어링의 조뇌하 대표는 “중국에서 한 번 돈 벌고 끝날 것이 아니지 않으냐”며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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