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가 바스킷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국제금융센터로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싱가포르 경제학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림총야(Lim Chong Yah) 싱가포르국립대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국제금융센터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금융 흐름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많은 사람은 생각한다. 싱가포르 정부가 환율을 통제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것도 “국제금융센터로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도시국가는 어쩔 수 없다. 작은 나라에서 막대한 규모의 돈이 오가는데 그것이 매일매일 환율에 그대로 반영되면 경제가 불안해진다. 미국과 같이 경제 규모가 크고 통화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나라는 환율을 자유변동에 맡겨도 상관이 없다.
금융의 세계화가 급진전되면서 싱가포르나 홍콩이 느꼈던 환율 안정의 필요성은 다른 나라들에도 점점 더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현재 세계 금융 시장에서 하루 외환거래량은 5조3000억달러다.(2013년 기준) 연간 1325조달러이다. 2004년의 470조달러에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런데 2013년의 세계무역량은 18.8조달러이다. 실물과 연결된 외환거래는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거의 다 투기적 거래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모든 나라가 급격하게 소국(小國)이 되어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각 나라가 아무리 ‘펀더멘털’을 튼튼히 해도 환율을 실물경제의 필요에 맞추기 힘들다. 외환보유액을 쌓는 것도 별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600억달러가량 된다. 세계 8위 규모이지만 세계 시장 하루 외환거래량의 7%도 되지 않는다. 이걸로 환율을 안정시키겠다고 개입했다가는 ‘한 방에 훅 가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남는 것은 제도를 통한 통제뿐이다.
싱가포르가 채택한 환율제도는 ‘정책밴드 바스킷 방식(policy band basket system)’이라고 불린다. 정부가 ‘공개하지 않은 정책밴드(undisclosed policy band)’를 줘서 그 범위 내에서 환율이 움직이도록 한다. 싱가포르통화청(MAS· 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은 주기적으로 두 가지만 명시적으로 밝힌다. 첫째는 MAS가 계산하는 명목실효환율(NEER·Nominal Effective Exchange Rate)이 그동안 어떻게 변해왔는가에 대한 내역이다. 둘째는 MAS가 앞으로 환율 움직임을 어떻게 만들어낼지에 대한 계획이다. MAS는 어떤 때는 ‘중립적’이라고 얘기한다. 현재 수준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보다 점진적 절상(gentler appreciation)’ 혹은 ‘보다 점진적 절하(gentler depreciation)’라는 말도 쓴다. 간혹 ‘보다 급진적 절상(steeper appreciation)’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시장 참가자들은 MAS 발표문과 과거 경험을 합쳐서 추측을 한다. 그동안 MAS가 개입해왔던 추세를 보면 밴드를 상당히 폭넓게 잡아 상하 2.0~2.5%에서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MAS가 절상인지, 절하인지, 중립인지 방향을 설정해주기 때문에 MAS의 개입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자유로이 외환거래를 할 수 있는 범위가 어떻게 바뀔지 시장 참가자들은 계산한다.
이 제도가 시장 참가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정부가 생각하는 ‘적정환율범위’ 내에서는 자유롭게 외환거래를 하고 환투기도 하지만 그 범위를 넘지는 말라는 것이다. 외환거래에서 4~5%가량의 변동폭은 상당히 큰 것이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환투기 시장이다. 원화에 환투기하는 차액거래선물환(NDF·Non-Delivery Forward) 시장도 싱가포르가 가장 크다. 그렇지만 이 자유는 정책밴드 내에서만 누릴 수 있다. 밴드를 넘어서는 시장 움직임에 대해서는 강력한 ‘경고’와 ‘응징’이 따른다. 싱가포르달러에 대해서는 공매도(short-selling)도 금지하고 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