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주간조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카이스트 이광형 교수.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지난 12월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주간조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카이스트 이광형 교수.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한국도 1인당 소득 3만달러 시대를 맞게 됩니다. 문제는 성장세 속에서 3만달러 시대를 맞는 게 아니라, 성장의 내리막길에서 3만달러를 찍게 된다는 점입니다. 조선, 철강, 휴대폰, 석유화학 등 기존 산업구조로는 3만달러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향후 3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에서 신수종 사업을 개척하고 창업국가로의 토대를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지난 12월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이광형(60) 미래준비위원장(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신수종 사업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12월 8일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미래준비위원회 위원장에 위촉되는 등 미래전략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힌다. 서울대와 리옹제1대학원 등에서 산업공학과 응용학을 전공한 그는 2012년 국내 최초로 미래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미래전략대학원과 미래전략연구센터를 카이스트 내에 세웠다.

“기존에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기간산업이 중국의 맹추격을 받아 주춤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산업 중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 정도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 또한 중국과 인도가 곧 추격해올 겁니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전기차와 무인차 시대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뒤처질 수 있습니다.”

한국에 닥친 이런 도전 앞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새로운 산업으로의 방향 전환이다. 이른바 ‘MESIA’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MESIA’는 메디컬과 바이오(Medical/Bio), 에너지(Energy), 안전(Safety), 지적서비스(Intelligence service), 항공우주(Aerospace) 산업 등 5대 신사업 분야를 말한다.

최근 이 위원장은 MESIA 육성 전략 등을 담은 ‘대한민국 국가미래전략 2015’(이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책으로 엮어 출간했다. 이 위원장이 이끄는 카이스트 미래전략연구센터가 펴낸 이 원대한 보고서는 분야별로 28명의 권위자가 집필했다. 보고서에는 경제분야뿐만이 아니라 국가운영에 필요한 정치, 외교, 국방, 농업, 교육, 문화전략이 망라됐다.

“현재 MESIA와 관련된 산업은 주로 미국이 앞서가고 있습니다. 기존 기간산업을 통해 중국과 경쟁하기보다, 미래산업을 갖고 미국과 경쟁하는 편이 훨씬 한국에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퍼스트 무브(first move)’를 한 적이 없지만 ‘패스트 팔로(fast follow)’로서는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이 위원장은 신수종 사업에 대한 투자와 더불어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창업국가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국이 1인당 3만달러 소득시대를 넘어 4만달러 이상으로 나아가려면 새로운 산업이 태동할 수 있는 역동성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제도하에서는 MESIA를 육성할 수 없습니다. 자유롭게 창업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 위원장은 국내에서 창업이 활성화될 수 없는 원인으로, 우선 투자자 중심의 담보 및 보증관계 설정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투자는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하는 사업입니다. 벤처는 10개 중 8~9개는 실패합니다. 그런 점을 인정하고 투자를 해야 하는데, 한국의 제도는 창업자보다 투자자 보호에만 맞춰져 있어 자유로운 창업을 방해합니다. 투자에 대한 리스크는 투자자가 져야 합니다. 그걸 모두 창업자의 책임으로 몰아가면 창업의 싹은 자랄 수가 없습니다.”

이 위원장은 또 한국 특유의 스톡옵션 제도를 창업의 장애물로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벤처기업이 스톡옵션을 발행할 경우 이를 비용으로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영세한 벤처기업의 성장 자체를 막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벤처는 새싹에 비유되곤 합니다. 자금력은 부족하지만 기술력을 믿고 하는 사업이죠. 우수 인력을 데려오기 위해 미래가치를 담보로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게 미국 방식입니다. 그런데 스톡옵션 발행에 별다른 제약이 없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잡아 회사 재무구조를 열악하게 만듭니다. 벤처기업이 대박을 좇아 뛰어드는 우수 인력에게 줄 스톡옵션 제도의 장점을 막아 놓았으니, 창업이 성공할 리가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모두 걷어내야만 창업국가 또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스톡옵션을 발행한 벤처기업이 성공을 거둘지라도 추후 주식을 팔아 소득이 생기면 약 40% 이상의 고세율을 매겨 실질소득을 절반으로 떨어뜨리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고급 인력이 벤처기업에 뛰어들기보다 대기업에 안주하게 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한국 기업들을 살펴보면 지난 40년간 50대 기업 중 신생업체는 ‘미래에셋’ 하나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50대 기업은 어떤가요. 애플, MS, 구글, 아마존 등 모두 최근 10~20년 내에 벤처에서 출발한 신생기업들입니다. 산업구조의 변화가 능동적으로 일어나는 미국과, 한국의 현실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그가 이끌게 될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미래준비위원회는 급변하는 미래 사회를 대비해 향후 10년 뒤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앞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와 관련 이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성공하려면 새로운 산업이 자유롭게 태동해야 한다. 그런 풍토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각종 규제를 가능한 한 다 풀어야 한다. 힘 센 부처들이 규제 권한을 앞다퉈 내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국가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개방성을 꼽았다. “싱가포르는 인구나 면적이 작은 나라지만 리콴유 전 총리가 장기 전략을 세워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외국에서 유학생을 받아들이고 이 중 우수한 인재는 싱가포르에 남아 일할 수 있도록 전폭적 인센티브제를 도입했습니다. 인재를 중시하고 인종적 차별 등을 없애는 개방성이 주효하게 작용했다고 봐야 합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상당히 폐쇄적입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중국이 왜 미국을 넘어설 수 없느냐. 그건 개방성을 가진 미국으로 사람이 유입되는 반면, 폐쇄적인 중국에서는 성공스토리를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공계 전문 교육기관인 카이스트에서 미래전략보고서가 나올 수 있었던 건 한 자본가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 주역은 라이코스코리아 회장을 지낸 정문술(76)씨. 정씨는 자신이 창업한 ‘미래산업’ 등의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꾼 뒤 은퇴했다. 주식은 대부분 팔아 사회에 기부했는데, 정씨가 카이스트에 기부한 515억원의 일부로 카이스트 내에 미래전략대학원을 세웠고 이번에 미래전략보고서까지 발간했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앞으로 매년 발간될 예정이다. 정씨는 이광형 교수를 믿고 그에게 기부금 활용의 전권을 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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