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웹 카운티에서 2012년 3월 기술자들이 셰일가스를 채취하기 위한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photo 블룸버그
미국 텍사스주 웹 카운티에서 2012년 3월 기술자들이 셰일가스를 채취하기 위한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photo 블룸버그

2014년 미국의 경제호황을 이끈 주역은 셰일오일과 셰일가스다. 2000년대 들어 기술개발과 함께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셰일오일과 셰일가스가 일자리를 늘리고 소비를 촉진시킨 결과 미국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같은 ‘셰일 혁명’에 기존 산유국들은 불편함과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는 기존의 오일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미국산 셰일오일 고사 작전에 나섰다. 자국산 원유 가격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며 누가 먼저 죽느냐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지난 11월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원유를 감산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본격화된 이 ‘오일(Oil) 전쟁’은 2015년에도 지구촌의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될 전망이다. 신흥에너지와 구에너지 양 진영 간 패권 경쟁은 세계 경제와 국제 정세 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구촌의 시선이 쏠려 있다. 오일전쟁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격화되면 그 불똥이 미칠 범위는 막대하다. 일부 산유국가들이 저유가 압박을 견디다 못해 국가 부도사태에 직면하면 그 여파로 다른 국가들까지 경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군사충돌과 같은 극단적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오일전쟁의 여파로 2014년 7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를 넘겼던 국제유가는 불과 수개월 만에 반토막이 났다. 지난 12월 26일 심리적 지지선이라 할 수 있는 배럴당 60달러까지 무너진 것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5년 만이다. 갑작스러운 저유가로 인해 일부 산유국은 실제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에너지 수출이 국가경제의 주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러시아의 경우 루블화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2008년 경제위기에 이어 심각한 국면이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OPEC은 당분간 감산을 통한 유가 끌어올리기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같은 기조는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주도하고 있다. 사우디의 알리 빈 이브라힘 알나이미(79) 석유장관은 지난 12월 22일 사우디 국영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져도 감산할 계획이 없다”고까지 했다. 국제 석유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동국가들도 대체적으로 사우디와 비슷한 입장이어서 국제유가는 당분간 하락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2015년 상반기까지는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정책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 오세신 연구위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오일전쟁’을 격화시키며 국제유가가 하락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이유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원유공급이 증대되고, 지정학적 불안에 의한 원유공급 차질 우려가 완화됐기 때문이다. 둘째는 세계경기 둔화로 인한 석유수요 증가세가 둔화돼서다. 셋째는 3분기부터 시작된 달러화 강세다. 오 연구위원은 “국제적으로 원유가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면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소비국들의 석유수요가 위축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몇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꼽히는 것은 중동 지역의 원유공급 확대다. 오일전쟁도 직접적으로는 여기서 비롯됐다. 전 세계 언론들은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가 하루 3000만배럴 생산 목표치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던 지난 11월 27일 오일전쟁의 총성이 울렸다고 표현하고 있다.

사우디로 대표되는 중동 산유국들이 원유공급량을 유지하기로 한 결정은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미국이 중동산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때만 해도 두 나라는 끈끈한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미국이 셰일오일을 본격적으로 생산하면서 밀월관계도 끝나가기 시작했다. 미국은 셰일오일 추출기술이 발달하고 생산비용이 줄어들면서 2014년 기준 하루 900만배럴까지 생산량을 끌어올렸다. 현재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이 하루 950만배럴 정도임을 감안하면 세계 최대 산유국가와 맞먹는 수준까지 생산량을 끌어올린 셈이다.

셰일오일이란 땅속에서 생성된 원유가 지표면 쪽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유기물을 함유한 암석을 뜻하는 ‘셰일층’에 갇혀 있는 것을 말한다. 암석에서 오일을 뽑아내야 하기에 시추가 힘들고 채산성이 맞지 않아 과거에는 외면받았지만, 미국에서 ‘수평정 시추기술’과 ‘수압 파쇄법’을 개발하면서 생산이 본격화됐다. 이 기술은 지표에서 수직 방향으로 내려가다 방향을 꺾어 셰일층에 수평 상태로 시추하고 물과 모래, 화학약품을 섞은 혼합물을 높은 압력으로 집어넣어 셰일층에 균열을 일으킨 뒤 가스와 오일을 혼합물과 함께 지표면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특히 시추에서 생산까지 석 달밖에 안 걸려 소규모 에너지기업들도 석유 생산에 뛰어들기가 용이하다. 과거에는 경제성이 없다고 여겨졌던 셰일오일은 이같은 신기술의 개발로 생산단가가 낮아지면서 어느새 전통 원유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현재 셰일오일 생산원가는 배럴당 37~80달러 수준이다. 기존 오일의 경우는 산유국마다 원가가 다른데, 기술이 떨어지는 베네수엘라의 경우 배럴당 110달러, 사우디는 배럴당 17달러 수준으로 차이가 크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셰일오일은 러시아에 750억배럴로 가장 많이 매장돼 있고, 미국 580억배럴, 중국 320억배럴 등 전 세계 42개국에 3450억배럴 정도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오일전쟁은 산유국 간 카르텔이라고 할 수 있는 OPEC이 인위적으로 가격을 반등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과거의 양상과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OPEC이 생산량을 줄여 유가를 띄웠다. 하지만 이번 오일전쟁은 ‘중동 대 미국’의 에너지 패권 다툼 양상을 띠고 있다. 국제정세 불안과 같은 애매모호한 변수와의 싸움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막강한 상대가 있는 싸움이라는 점에서 OPEC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 따라서 OPEC과 미국의 저유가 경쟁은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미국 셰일업체들을 고사시키는 작전으로 나온 것도 마땅히 대응할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현재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의 생산원가는 배럴당 37달러에서 80달러까지 다양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셰일오일 개발에 투자해 새로운 채굴장비 투입 없이 기존의 채굴장비를 사용하는 업체들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 선으로 떨어져도 버틸 수 있지만 이러한 업체는 많지 않다는 분석이다. 국제유가가 50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채산성을 감당할 수 없는 셰일업체가 상당수라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1월 “10월 미국 12개 주요 셰일 지역에 대한 채굴권 발급 건수가 전월 대비 15% 감소했다”며 “이미 몇몇 셰일 개발업체가 2015년에 설비투자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사우디는 유가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려 미국 셰일오일 회사들을 무너뜨리고 OPEC의 시장 지배력을 재확인한 뒤 다시 고유가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속내다.

사우디의 이런 작전은 1980년대 중반의 실패에서 기인한다. 당시 국제유가가 배럴당 35달러대에서 10달러대로 급락하자 사우디는 이후 10여년간 재정적자를 겪어야 했다. 사우디는 재정적자 위기를 해결하려고 일일 생산량을 1000만배럴에서 250만배럴로 크게 줄였다. 1973년 석유파동과 1979년 이란혁명 뒤 공급 부족으로 원유가가 폭등한 것처럼 공급 감소에 따른 유가 상승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의 상황은 중동 산유국이 세계 유가를 좌우했던 1970년대와 달랐다. 이미 북해 유전에서 원유가 생산되는 등 대체 공급원이 활발해진 탓이었다. 뜻대로 원유가가 오르지 않자 사우디는 1985년 결국 감산 전략을 철회했다. 이후 원유가는 수요 증가로 오히려 상승세로 접어들었지만 사우디는 이 과정에서 유가 견인을 위해서는 당장 산유량을 줄이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시장점유율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사우디가 이번 전쟁에서 저유가 정책을 고수하는 이유도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해서다.

사우디가 감산에 반대하는 이유가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산유국들이 다같이 손해를 떠안아야 한다는 차원이라는 견해도 있다. OPEC 국가가 감산을 결정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감산 폭은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우디가 굳이 시장점유율을 낮춰가면서까지 감산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생산량을 유지하게 되어 산유국들의 손해가 계속되더라도 사우디 혼자 ‘독박’을 쓰는 최악의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것. 한국석유공사는 지난 12월 18일 ‘최근 OPEC 동향과 국제석유시장’이라는 리포트에서 최근 저유가 사태를 가져온 사우디의 감산 유보 결정 배경에 대해 이 같은 견해를 내놓았다. 리포트에 따르면 현재 산유량 감산을 결정하더라도 OPEC 12개 회원국 가운데 실제 의미 있는 규모로 줄일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 리비아와 이란은 이미 상당수 생산량을 줄인 상태다. 이라크는 2003년 사담 후세인 축출 이후 혼란을 겪다 최근에야 생산 증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베네수엘라·나이지리아 등은 재정이 취약해 석유수출에 따른 재정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사우디가 감산으로 발생하는 손해를 대부분 떠안게 되는 구조다.

텍사스주에 위치한 ‘사우스텍사스 이글포드 셰일오일’사의 셰일오일 채굴 장비. ⓒphoto AP
텍사스주에 위치한 ‘사우스텍사스 이글포드 셰일오일’사의 셰일오일 채굴 장비. ⓒphoto AP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센터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최근 사우디의 감산 유보 결정은 사우디가 자신만 희생하면서 다른 국가들이 이익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 지분 방어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오랜 우방인 미국과 사우디가 러시아와 이란을 ‘조이기’ 위해 오일전쟁을 공모했다는 음모론도 제기한다. 실제 오일전쟁 결과 러시아와 이란이 경제위기에 봉착하기는 했다. 이에 대해 에너지경제연구원 오세신 연구위원은 “미국과 사우디가 정치적 동기로 인해 위험한 장난을 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며 “이러한 음모론은 술자리에서 나누는 잡담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속내가 무엇이든 과연 이 총성 없는 전쟁이 사우디의 의도대로 흘러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렇게만 예상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적으로 미국 셰일오일 생산업체가 사우디의 의도대로 저유가를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 나자빠질지 여부가 불확실하다. 셰일오일 시추에 뛰어든 지 얼마 안 된 업체들이야 저유가를 감당하기 어렵지만, 이미 몇 해 전부터 셰일오일에 투자한 업체들은 버틸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30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러한 OPEC의 고민을 보도했다. 다음은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의 일부분이다.

“OPEC이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미국 셰일오일이 많은 산지와 개발업체가 있는 머리 여러 개 달린 야수라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을 중단시킬 만한 단일 하한가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업체별로 하한가 기준이 다른데 일례로 씨티그룹은 이를 배럴당 70~90달러로 추산한다. 하지만 토지와 인프라가 이미 확보된 주요 셰일오일 산지의 경우 시추 비용은 40달러까지 낮아질 수도 있다고 씨티그룹은 추산한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미국 셰일오일 업체 중에는 소규모 업체가 많다. 현재 미국 내에서 셰일오일 업체는 2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 낮은 유가를 버틸 수 있는 업체가 어느 정도인지를 OPEC도 파악하기 어렵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또한 “유가의 갑작스러운 하락으로 미국 원유 생산량은 둔화되겠지만 생산을 아예 멈추게 하려면 장기간, 최소한 2015년 말까지는 낮은 가격이 지속돼야 한다”며 “그렇게 돼도 이미 시추기술이 고도화되고 새로운 매장지가 발견된 상황이기 때문에 개발 주체만 바뀔 뿐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이 저유가로 인해 도산하기 전에 사우디가 OPEC 내부 국가나 비OPEC 산유국의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다. OPEC 내에서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우디는 현재의 낮은 유가를 버틸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다. 반면 석유 재정이 상대적으로 불안한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 이라크 등은 저유가가 길어지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대해 “유가가 높을 것을 가정하고 예산을 책정한 나라들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루블화가 계속 떨어지는 러시아의 전망은 어둡고, 나이지리아는 금리인상을 강화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는 채무불이행이 가까워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번 오일전쟁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지는 미국의 셰일오일 업체들과 국가재정이 빠듯한 이란, 베네수엘라 등 OPEC 회원국 가운데 누가 더 저유가를 오래 버틸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은 오일전쟁이 일단락되는 기간을 6개월로 보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문영석 실장은 주간조선에 “OPEC 국가 중 저유가를 버티기 어려운 일부 국가가 감산에 들어가고, 셰일오일 생산업체 중 생산단가가 높은 업체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유가는 다시 오를 가능성이 높다”며 “2015년 상반기 중에는 50~60달러 사이를 오가는 저유가가 지속될 것이고 이후에는 다시 유가가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과 사우디의 싸움은 비전통 원유와 전통 원유 간 에너지 패권 경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싸움은 장기적으로는 셰일오일 보유국과 OPEC 국가 간 에너지 패권 경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셰일은 미국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현상이 아니라 체코나 중국과 같이 전 세계에 존재한다”며 “지금은 미국에서만 경험 많은 오일 회사나 투자자 등의 조합이 이뤄지고 있지만 조만간 다른 나라에서도 셰일오일이 추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대규모 셰일오일 보유국에서 본격적으로 셰일오일 시추가 시작될 경우 과거처럼 국제유가에 대한 OPEC의 영향은 감소할 전망이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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