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마다 나라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자기 나라 밖으로 나가 다른 나라에서 살 때 그 다른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삶은 피곤하고 고단해진다. 영국에 갓 온 한국인이 많이 쓰는 말 중 하나가 ‘이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장사를 하고 싶어하나 안 하고 싶어하나’이다. 물건이 ‘팔리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영국 장사꾼들의 고객 응대 태도에 처음에는 놀라워하고 절망하기까지 한다. 심하면 문화 충격을 받을 정도가 된다. 요즘은 경기가 워낙 나빠 콧대가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영국의 많은 가게에서는 애써 물건을 팔려고 하는 모습이 안 보인다. 손님이 들어 가도 응대도 잘 안 해 주고 뭘 물으면 마지못해 대답하는 투가 확연하다. 문 닫고 있는 가게 문을 두드리며 “간단한 것 하나만 사자”고 애걸해도 손을 흔들면서 거절한다. 문을 닫았으니 내일 오라는 뜻이다. 자기 물건을 팔아주고자 하는 손님을 대하는 태도나, 애걸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로라도 문을 열어 줄 만한데 완고하다. 영국에서 오래 살았어도 이해 못할 태도다. 매정하다고 해야 할지 단호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영국인의 태도다.
거기에서 더 나간 예는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영국으로 살러 온 주재원 가족이 가구가 비치되어 있지 않은 아파트 세를 얻었다.(영국 임대 주택들은 거의가 다 가구를 갖춘, 소위 말하는 가구완비(furnished)인데 굳이 자신들이 쓸 가구를 새 것으로 사서 살겠다는 이유로 가구 없는 주택을 고른 것이다.) 동네 가구점에서 당장 필요한 침대, 소파, 식탁 등을 주문하고는 당연히 당일이나 그 다음 날은 물건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여기고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점원의 대답이 주재원 가족을 바닥에 주저앉게 만들었다. 소파와 식탁은 공장에 주문해서 와야 하기에 한 달 반 뒤에 오고, 침대는 그나마 공장에 확인해 보니 마침 반품된 것이 있어서 1주일 뒤에 인도해 주겠다고 하는 기막힌 대답이었다. “아니? 그럼 우리는 한 달 반 동안 바닥에 앉아 TV를 보고 밥을 먹고 잠은 어떻게 자야 하느냐”는 주재원의 미국식 영어 발음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몰라도 점원은 그게 나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투로 멀거니 쳐다보았다. 그나마 전날 가전제품 가게에서 주문한 TV, 냉장고, 세탁기, 마이크로오븐이 다음날 배달된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긴 했지만 주재원 가족은 당시의 절망감과 일종의 배신감을 두고두고 얘기했다. 남이 쓰던 물건을 쓰기가 찜찜해서 가구 없는 아파트 세를 얻었는데 할 수 없이 동네 중고가게에서 임시로 구한 식탁으로 한 달을, 주위의 주재원들에게서 빌린 손님용 공기 매트에서 자며 일주일을 때웠다고 한다. 소파는 결국 못 구해 식탁의자에 앉아 TV를 보았다. 그나마 가구점 주인의 특별 부탁으로 공장에서 2주일을 앞당겨 준 특혜 덕에 한 달 만에 배달된 식탁, 소파, 침대를 붙잡고 울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다.
아직도 이야기는 끝이 아니다. 절정이 더 남아 있다. 가구들을 배달하겠다는 운송회사 전화를 받고 싸우다가 열이 나서 다시 쓰러질 뻔한 얘기 말이다. 한 달을 기다린 끝에 물건이 드디어 온다는 전화를 운송회사로부터 받을 때는 기뻐서 펄쩍 뛰었다. 그런데 “배달이 내일 몇 시에 오느냐”고 물으니 그냥 “내일 중으로 도착한다”는 말뿐이었다. 그래서 “대체 몇 시에 올지를 확실하게 해주어야 나도 일을 볼 것이 아니냐”고 하자 운송회사 직원은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 배달이 된다”고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언제쯤인지 대충은 알려 줄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배달이 당신네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차례로 배달을 하면서 돌아가기 때문에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5시 전에는 분명히 간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럼 내가 가구를 받기 위해 하루 종일 마냥 기다려야 하느냐”고 강력하게 항의하자 “그러면 공장에 물건을 돌려주겠으니 공장하고 다시 협의를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목마른 놈이 샘물 판다고 그 다음 날 하루 종일을 집 밖으로도 못 나가고 씩씩거리면서 기다리고도 5시를 꽉 채워서 가구를 받았다는 얘기가 이 오디세이의 끝이다.
이 길고 긴 에피소드가 말하는 바는 영국에서는 절대 ‘소비자는 왕이 아니다’는 뜻이다. 이런 식의 제도가 가구점이나 공장 입장에서는 좋다. 주문 없이 만든 재고를 안 가지고 있으니 상점이나 공장이 클 필요가 없고 재고금액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좋다. 어떻게 보면 손님이 자신이 실제 필요한 시기 한두 달 전에만 주문해 주거나, 주문하고 한두 달만 기다려 주면 모든 거래 당사자가 행복해지는 합리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공장이나 상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운송회사에까지 소비자는 그냥 또 하나의 손님 중 한 명에 불과할 뿐이다. 당신 아니라도 물건 팔 수 있고 물건을 사려면 내 방식대로 하라는 뜻이고, 나는 당신 하나 때문에 내가 오랫동안 해 오던 방식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다.
예를 몇 개 더 들어보자. 영국 식당에 들어가서 내 마음대로 자리를 골라 앉다가는 “자리를 옮기라”는 요구를 듣거나 가볍게는 웨이터로부터 주의를 한마디 들을 수도 있다. 그러다 말 잘못하면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쫓겨나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거기다가 자리에 앉은 지 5분도 되지 않아 주문한다고 웨이터를 부르거나, 주문한 지 30분도 안 되어 음식이 안 나온다며 웨이터를 부른다고 소리를 친다거나 일어서서 손짓을 하면 음식은 점점 더 늦게 나올 뿐이다. 이런 지혜를 배우려면 상당 기간 곤욕을 치러야 한다. 인내심을 배워야 영국에서 살면서 오른 혈압 때문에 심신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어진다.
한국에서는 택시 운전기사들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반사회적인 행위가 ‘승차 거부’이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승차 거부’라는 말 자체가 없다. 택시를 타려면 택시를 타기 전 반드시 창문을 통해 먼저 운전기사에게 행선지를 말한 뒤 허락이 나야 탈 수 있다. 기사가 거부를 하면 물론 탈 수 없다. 택시기사가 원하지 않는데 무조건 가자고 할 수 없다. 서로의 조건이 맞아 일종의 구두계약이라도 이루어져야 상거래인 택시 승차가 가능해진다. 거기다가 요금 이외에 적당한 팁(10% 정도)을 주고 “고맙다”는 말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여기서도 손님은 왕이 아니다. 그냥 이용자와 사용자의 관계일 뿐이다.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도 손님은 판매원에게 최소한 두 번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 돈을 주면서 감사, 물건을 받으면서 감사를 표하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판매원도 돈을 받을 때 한 번, 물건을 건네줄 때 한 번 등 최소한 두 번 이상의 감사 표시를 한다. 결국 여기서도 손님과 주인, 혹은 판매원은 갑을의 관계가 아닌 동등한 입장이다.
왜 이런 별로 새롭지 않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상식적인 얘기를 하느냐 하면 영국에서는 손님은 왕이 아니고 상점 주인은 하인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해서다. 손님과 주인이 왕과 하인의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식당이나 가게 주인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손님의 부당한 요구를 다 들어주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영국인은 ‘공손과 비굴의 차이’와 ‘친절과 아부의 차이’를 잘 안다. 영국인은 자식에게 매를 들기는커녕 험한 말도 잘 하지 않고 살아간다. ‘한 번도 맞아 보지 않고 때려 보지도 않았다’는 영국인이 80%가 넘는다. 그런 영국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손상받을 일을 당하기도 쉽지 않지만 당하더라도 쉽게 굴하지 않는다. 그래서 손님이 자신에게 무례하게 대하거나 과한 요구를 하면 단호히 거절한다. 자신의 인간적인 존엄성과 살아가는 방식을 돈 몇 푼과 바꾸지 않겠다는 철학이 영국 가게 주인들을 무례한 손님의 종이 안 되게 만드는 셈이다. 자신의 삶을 손상(영국인들은 이때 compromise라는 단어를 쓴다)해 가면서까지 금전적인 소득을 더 늘리고 싶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돈이 더 많다고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대부분의 영국인은 선천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물건 하나 더 팔기 위해 닫았던 상점 문을 열지는 않는다. 또 내 식당에 들어와 내 허락 안 받고 자기 마음대로 자리에 앉는 손님에게는 음식을 안 팔겠다는 자세를 견지한다. 내게서 물건을 사고 내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내 룰을 따르라는 뜻이다. 오만한 건지 배가 덜 고픈 건지 모르지만 영국인은 그렇게 살아간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2001년에 영국 BBC2에서 방영된 ‘오피스’라는 드라마는 영국 직장 생활의 민낯을 보여줬다 해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너무 현실감 있고 적나라하게 보여줘 직장 내에서 자신의 모습을 엿보는 듯하다는 평이 나돌았다. 시청 내내 불편하고 민망했었다는 평도 많았다. 드라마는 극중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고 촬영하는 형식을 가끔 취해 시청자로 하여금 실제로 사무실에 들어가서 옆에서 직접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영국 내의 직장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그대로 묘사됐으니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만큼 영국 내 어딘가에 존재하는 한 사무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가감없이 잘 묘사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두고 ‘목큐멘터리(mockumentary)’라고까지 했다. ‘목큐멘터리’는 ‘조롱하다(mock)’와 ‘기록물(documentary)’이 합쳐진 신조어였다. 해서 이 드라마를 통해 영국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외부인이 잘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이 드라마에서 수도 없이 많이 나왔다. 특히 주인공인 지점장(regional manager) 데이비드 브랜트의 직장 내 처지는 지켜보기가 애처로울 정도였다. 이 드라마에서 지점장과 직원들의 관계는 갑을이 바뀐 듯한 모습이었다. 브랜트는 상관으로서의 독단이나 횡포는커녕 권한도 권력도 위엄도 없었다. 그냥 직원들을 통솔해 지점 일을 잘 처리해 나가야 할 책임만 지워져 있는 듯했다. 그러지 않으면 지도력이 없다는 이유로 살아 남지 못하는 영국 회사 중간관리층의 비애를 잘 묘사했다.
보통의 영국인 평직원들은 승진이나 급여 인상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노력한다고 회사 내에서 자신의 위치가 크게 변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냥 아침에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해서 하루 종일 맡은 바 임무만 열심히 하다가 퇴근 시간 되면 칼같이 뒤도 안 돌아보고 퇴근하고 만다. 그렇게 하다가 언젠가 전 직원 월급이 같이 오를 때면 자동으로 오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월급에 만족해서 살아 간다. 그러나 중간관리층은 경영진의 눈치도 봐야 하고 실적도 올려야 하는데 직원들은 잘 따라주지 않으니 죽을 맛이다. 승진이나 장래에 대해 관심이 없는 부하들을 효과적으로 통솔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이다. 승진이나 급여 인상의 미끼도 통하지 않고 채찍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달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브랜트 지점장은 괜히 직원들은 듣지도 않는 잡담을 계속해서 떠든다. 또 직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별의별 눈물 나는 노력을 한다. 십대들이나 쓰는 속어를 연발하고 보기에도 안 어울리는 춤도 추고 썰렁한 농담도 하는 모습은 마음이 짠할 정도이다. 직원들이 하지도 않는 회사에 대한 불만을 도맡아 해서 인심을 얻으려 한다. 경영층의 방침이나 의견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럴수록 직원들은 지점장의 약점을 파고든다. 아니 말을 더 안 듣고 심지어는 서로 짜고 브랜트를 왕따시켜 괴롭히고 놀리고 골탕 먹이기까지 한다.
영국인들은 ‘오피스’의 사무실 분위기가 실제와 다르지 않다고 인정했다. 이렇게 영국 직장 내의 상사와 직원의 관계는 우리가 아는 그런 전형적인 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아니다. 상사를 어쩌다가 궂은 책임을 맡은 선배동료 정도라고 보면 적당하다. 이런 상하의 역학 관계는 중간관리층이 아니라 회사 소유주와 종업원의 관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사장이 출근하는데 인사를 잘하는가가 직원 평가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업무 성과에 따라 평가받는다는 확신이 영국 직장인들에게는 서 있기 때문이다. 회사 사주의 판단이나 중간관리층의 평가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자신과 회사가 맺은 고용계약에 의해 회사 내 자신의 입지가 결정됨을 알기 때문이다. 동료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고 동료보다 더 일찍 진급하고자 하는 성공의 욕망이 있어야 당근이나 채찍이 효력을 발휘하는데 영국의 직장인들은 일찍 도(道)에 통달한 도인들인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한쪽이 뭔가 특별한 욕심을 가지고 매달려야 그를 이용해 한쪽이 부당한 요구를 하고 취급을 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그런 취급을 할 리도, 할 수도 없다. 결국 남보다 더 빨리, 남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고 싶어하는 성공의 욕망이 자신을 굴욕적인 갑을의 주종관계로 몰아넣고 만다는 말이다.
영국에도 부당한 대접을 하는 주인이나 상사가 있긴 하다. 이럴 경우 영국인은 참지 않고 대처한다. 그럴 경우를 대비한 수많은 사회적 제도가 영국에는 갖춰져 있다. 노사쟁의위원회를 비롯해 노동조합, 지방자치기구, 사회봉사단체, 심지어는 국회의원까지 부당한 해고나 취급을 당했을 때 찾아가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가까이에 널려 있다. 소송할 경우 소송비용까지도 국가에서 대주고 해당 소송 기간 동안의 실업수당이 당연히 나온다. 이렇게 안전한 퇴로가 활짝 열려 있기 때문에 영국인은 자신이 부당한 취급을 받는다 싶으면 결코 주저앉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한을 품지 않는다.
소송을 당하는 회사나 주인은 정반대로 전전긍긍한다. 패소할 경우 소송비용을 자신들이 내야 하기 때문에 특히 중소기업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이런 연유로 주인은 주인대로 상사는 상사대로 조심하고 직원으로부터 소송을 당하지 않도록 평소에 면밀하게 대비를 한다. 그래서인지 ‘오피스’에 나오는 사무실 분위기처럼 영국은 갑을이 바뀐 나라이다. 물론 영국도 경쟁이 심하고 성과에 따라 월급이나 대우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엘리트들이 주로 근무하는 고급 직장에서는 동료를 밟고 출세하기 위해, 혹은 월급을 더 받기 위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동료 등에 칼을 꽂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회사의 사주나 상사는 직원들을 험하게 다루기도 한다. 하지만 워낙 성과에 따라 월급을 받으니 불만이 크게 없고 오히려 그런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줄을 선다.
그러나 이런 직장의 얘기는 정말 일반 영국인에게는 먼 세상의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지만 거의 모든 영국 직장의 진급과 월급은 개인의 노력으로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채찍과 당근이 통하지 않는 영국 직장에서는 상점의 손님과 주인이 주종관계가 아니듯이 사장과 직원들의 관계도 단순한 주종관계나 갑을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보완하고 서로를 돕는 사이라는 인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이다.
이런 예는 역사적 사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봉건시대에서는 이런 관계가 확실하게 존재했다. 봉건시대의 주종관계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달리 왕이 귀족에게, 영주가 소작농에게 반드시 절대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귀족인 봉건영주는 왕이 자신에게 준 봉토를 소작인이나 농노들을 이용해 경작해서 소출이 나와야 왕에게 세금도 바치고 자신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왕도 귀족들이 봉토를 잘 운영해서 세금을 바쳐야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외적이 침입하면 귀족들이 농군을 몰고 와서 자신을 지켜주어야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 결국 왕은 귀족으로부터 충성서약을 받고 봉토와 작위를 내려주고, 귀족은 충성과 세금과 종군의 의무를 반대로 바치는 공동의 이익을 위한 상호보완의 관계였다.
마찬가지로 농노들이나 자유민으로 구성된 소작농들도 봉건영주가 자신에게 나누어 준 토지를 경작해서 소작료를 바치는 대신 영주는 자신들을 도적떼나 이웃 영주들로부터 보호해 줄 울타리를 제공받는 호혜의 관계였다. 결국 왕과 귀족, 귀족과 농부의 계급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는 말이다. 흑사병이 돌아 노동인구의 3분의 1이 줄어든 14세기 이후부터는 농부들은 계약농으로 많이 바뀌어 봉건영주와의 세력균형이 더욱 깨져 버렸다. 농부들의 입김이 더 세졌지만 어쨌든 봉건사회의 주종관계는 엄격한 갑을만의 관계가 아닌 상호의존의 사이였다.
그런 사회적 전통은 지금까지도 영국 사회에 남아 있다. 지금도 영국인은 귀족들에게 큰 반감을 가지지 않고 군인에 대해서는 전통적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주된 직업이 자선이라고 할 정도로 영국 귀족들이 자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장군들이었던 귀족들이 자신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어 먹고살 수 있는 삶의 기회를 주고 보호해 주었다는 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봉건사회에서도 영주가 자신의 농노나 소작인들에게 너무 인색하게 굴거나 악독하게 하면 평이 나빠져 귀족으로서의 행세에 문제가 생겼다. 귀족들은 이런 평에 상당히 민감했다. 흉년이 들어 소출이 줄어들어 소작료는커녕 농부들이 겨울을 날 식량마저 없는 경우에는 당연히 영주는 자신의 곳간을 열어 구휼을 했다. 역병이 돌아 일할 인력이 줄어들면 소작료를 감해 주기도 했다. 이런 ‘온정주의(paternalism)’가 중세 영국을 지탱한 ‘봉건관계(feudal tie)’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봉건사회가 오래전에 끝을 맺은 영국 사회에는 아직도 봉건사회에서 존재하던 상호보완의 계약관계와 온정주의가 합쳐져 갑을 사이에 별다른 사회적 마찰이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한 영국인이 한국 영화에는 복수를 주제로 한 영화가 왜 그렇게 많으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같이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한국 영화는 거의가 다 복수가 주 테마였다. 영국 영화에는 복수 이야기가 그렇게 많지 않다. 대답이 궁해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한(恨)’ 때문이라고 했다. 영어에 적합한 단어가 없는 ‘한’에 대해 갑을의 관계를 예로 들면서 그 한은 한국의 역사 속에서 점철된 갑을 관계 때문일 거라고 한참을 설명했지만 그 영국 친구가 잘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인간 존엄을 침해받는 굴욕의 상황에서 영국과 같은 ‘안전한 퇴로’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한국 사회가 한국인의 한을 더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