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photo 뉴시스

“지금 서울 강북과 경기도 대도시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호남과 별 차이가 없어요.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이후 완전히 기대를 접었다는 사람도 많습니다.”(수도권 새누리당 재선 의원)

새누리당 수도권 의원들이 벌써부터 내년 4월 총선 불안에 떨고 있다. 수도권의 대통령 지지율은 20%대로 주저앉았고, 지지율 반등의 계기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대통령 지지율이 40%로 아래로 내려갈 경우 여권이 총선 등 각종 선거에서 패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30% 선은 국정운영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수도권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란 것은 일부 전통적 여권 강세지역을 제외하고는 ‘전멸’ 가능성도 시사한다.

한국갤럽이 지난 1월 22일 발표한 ‘1월 3주차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30%로 나타났다. 그중 서울은 29%, 인천·경기는 26%로, 호남(16%)과 함께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 또 서울의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는 65%, 인천·경기는 63%로 전체 평균(60%)보다 높았다. 수도권에서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의 두 배를 넘는 것이다.

한 수도권 재선의원은 “서울 강북 등 새누리당 열세 지역구의 대통령 지지율은 20%도 안 될 것”이라며 “영남 중심의 당 지도부가 심각한 위기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은 여권의 텃밭으로 불렸지만 이젠 상황이 역전됐다. 실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은 분당에서 54%의 득표율을 기록해 새누리당 후보와 약 8%포인트 격차를 벌렸었다. 지금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격차가 더 벌어졌을 수 있다는 평가다.

이종훈 의원(분당갑·새누리당)은 올 설 전까지 지역 내 150개 경로당을 최대한 찾아간다는 계획이다. 어떻게 해서든 중장년층 이상 핵심 지지층들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의원은 “과거 텃밭이라고 했던 분위기와 지금은 비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셋값 급등으로 서울에서 밀려난 젊은층이 대거 신도시로 내려왔고, 핵심 지지층이던 중장년층은 오히려 용인 등 외곽으로 빠지면서 지역구의 성향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분당은 아직도 고소득 직장인이 많이 사는 곳인데, 최근 연말정산 파동을 겪으면서 집중적으로 타격을 받았다”며 “민심이 상상 이상으로 좋지 않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1차적으로는 샐러리맨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온 연말정산 파동 때문이란 것이 정치권의 해석이다. 화이트칼라 계층이 많은 수도권의 특성상 ‘서민 증세’ 논란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방에 대한 인사 조치를 거부하는 듯한 발언으로 대통령에 대한 ‘불통(不通)’ 이미지가 더 강화됐다는 설명이다.

김용태 의원(서울 양천을·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을 계속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반대하지 않았던 ‘유보층’이 이번 연말정산과 신년 기자회견 파동을 거치면서 확실하게 반대로 돌아섰다”며 “의원실로 (박 대통령에 대한) 항의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보면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자영업자와 50대 이상 중장년층 등 새누리당 핵심 지지층이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대거 거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결국은 경제를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해 50대 이상 중장년층과 자영업자들이 레드카드를 들기 시작한 것”이라며 “경제 상황에 민감한 수도권의 지지율이 먼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월 3주차 갤럽조사에서 자영업자의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27%(전체 평균 30%), 부정평가는 60%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자영업자의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57%로 전체 평균(52%)보다 높았던 것을 감안하면, 자영업자가 급격하게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을 철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같은 조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50대와 60대 이상의 지지율은 1년 전 68%, 80%에서 이번엔 38%와 53%로 수직낙하했다. 사실상 50대 지지율은 반토막 났다고 볼 수도 있다. 정부가 30조원이 넘는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고 있지만,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좋아질 전망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집단적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최근 지지를 철회한 중장년층과 자영업자들은 한번 바꾼 마음을 쉽게 돌리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한국갤럽의 장덕현 부장은 “50대 이상은 단순한 한 사건보다는 전체 흐름을 보고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한번 마음이 돌아서면 쉽게 입장을 바꾸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론조사로 봤을 때 50대 이상 박 대통령의 지지층이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감도 더 큰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획기적으로 변하거나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상 정치적 이벤트 등으로 새로운 반전 계기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두언 의원(서울 서대문을·새누리당)은 “담뱃값 인상으로 일정한 소득이 없는 고령층이 타격을 입었고, 연말정산으로 고소득 직장인, 경기침체로 자영업자의 생활고까지 겹치면서 고정 지지층이 전방위로 타격을 받았다”며 “지금처럼 낙선(落選)의 두려움이 컸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것도 수도권 의원들에겐 ‘정치공학적’으로는 악재란 평가가 많다. 과거엔 새정치민주연합과 통진당이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를 할 경우 필연적으로 종북 논란이 따라왔었다. 이를 통해 새누리당은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야권 지지자들의 일부 분열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선거부터는 이 같은 반사이익을 보기가 쉽지 않게 된 것이다.

한 수도권 재선의원은 “과거 여야 박빙구도였던 선거구에서는 통진당 지지자들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이동하면서, 야당이 최소 2~3%포인트 더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 새누리당·새정치연합·통진당 등 3자 구도에 따른 여권의 어부지리(漁父之利) 승리는 노리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서울보다 인천·경기도의 상황이 훨씬 안 좋다는 분석도 있다. 갤럽조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경기도민의 국정지지율은 26%로 호남(16%) 다음으로 낮다. 반면 지난해 같은 기간 경기도민은 박 대통령에 대해 53%의 지지를 보내 전체 평균(52%)이 서울(46%)보다도 높았다. 이종훈 의원은 “현 상황이라면 수원·고양·성남·부천·용인·안산 등 인구 100만 규모인 경기도 6대 도시에서 새누리당은 활로를 찾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이들 6개 도시에 걸린 총 23개 의석 중 새누리당은 9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었다. 이대로라면 9석마저 지키기 힘들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에서 “다음 총선에 서울을 포함해 수도권 대도시에서 다 지고 ‘농촌당’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수도권 의원들의 이 같은 위기감은 2월 2일 열리는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수도권 원내대표론’을 주장하는 4선의 정병국 의원(여주·양평·가평)과 원유철 의원(평택갑), 3선의 친박계 홍문종 의원(의정부을) 등은 지난 1월 26일 저녁 후보 단일화 등을 논의하기 위해 모임을 갖기도 했었다.

비록 이해관계가 복잡해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지 않는 수도권 중진의원들이 모였다는 것 자체가 당내에서는 화제가 됐다. 이후 1월 28일 홍문종 의원은 “(원내대표로 출마한) 이주영 의원으로부터 ‘수도권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며 이 의원 캠프에 합류해 정책위 의장으로 출마했다. 같은 날 원유철 의원도 “(원내대표 경선에 나온) 유승민 의원과 함께 명실상부한 전국정당을 만들겠다. 20대 총선에서 대한민국 심장인 수도권을 사수하겠다”며 정책위 의장 출마를 선언했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 전까지 극적인 반전이 없을 경우 ‘수도권 신당(新黨)’이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수도권 3선 의원은 “현 상황이 내년 총선 직전까지 계속될 경우 여권 내에서 수도권 신당론이 나오는 상황도 배제하지 못한다”며 “강력한 차기 대선주자도 없고 당내 구심점도 없는 상태여서, 수도권 의원들의 집단 이탈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지지율 하락에 사실상 선거를 포기하고) 그냥 서서 죽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하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통령 탈당론이 나오면서 당이 극심한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내부에선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폭락했지만 갤럽조사에서도 새누리당 지지율은 41%로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 23%에 비해 여전히 두 배에 가깝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있지만, 여전히 그만큼 야당에도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에선 세월호 참사 등에도 불구하고 지역밀착형 인물들을 공천하면서 새누리당은 11석을 얻어 새정치민주연합(4석)을 압도했었다. 새누리당은 특히 수도권 6곳 중 서울 동작을, 수원을·병, 평택을, 김포 등 5곳에서 승리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유권자들이 박 대통령에 대해 실망을 보이고는 있지만, 여권 전체를 버린 것은 아니다”라며 “경제 상황이 호전되고 공무원 연금개혁 등 각종 개혁이 본 궤도에 오르면 국민의 평가도 달라질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조의준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