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유경 영상미디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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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46개 사범대, 108개 교육대학원 등 교원자격증을 딸 수 있는 기관의 정원은 2만8615명이다. 이 중 교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최대 5000명. 지난 2월 초에 치러진 2015학년도 임용고사에 응시한 4만6000여명 중 합격하는 사람은 4988명이다. 나머지 학생들은 임용고사 준비 학원에 남거나 사교육 업체로 발길을 돌리거나 아예 가르치는 일을 포기한다. 이 숫자가 매년 수만 명이다.

사범대나 교원대, 일반대학의 교직 과정 등을 거쳐 교원자격증을 딴 사람을 대상으로 중·고교 교사를 뽑는 시험의 정식 명칭은 ‘중등교사 임용시험’.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시험을 두고 임용‘고시’라고 부른다. 그만큼 합격하기 어렵다는 뜻에서다. 다시 말하면 교사가 되고 싶어 사범대에 들어갔지만 교사가 될 수 없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급기야 정부는 지난 1월 26일 2015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2017년부터는 사범대, 교육대학원 등을 통해 배출되는 중·고교 교사 수를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육 당국은 올해 7월부터 교원 양성 기관에 대한 평가에 들어가는데,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단계적인 정원 감축에 들어간다. 임연주 교육부 교원복지연수과장은 주간조선에 “임용고사 경쟁률이 최근 5년 평균 16 대 1까지 치솟았다”며 업무계획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른바 ‘수급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사범대 정원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얘기다.

교육부의 발표대로라면 앞으로는 점차 임용고사 경쟁률이 낮아지고, 교사 시험을 준비하느라 몇 년을 허비하는 준비생이 줄어든다. 그러나 황우여 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내놓은 이 정책은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정책이 발표된 당일 경희대, 동국대 등 대학 학생회는 서울 중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지기도 했다.

사범대 정원을 줄여 임용고사 경쟁률을 낮추겠다는 방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에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장관 안병영)는 연간 임용률이 27~30%에 불과하다며 임용고사 합격률이 떨어지는 사범대는 폐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교육부는 5~6년 주기로 사범대 등 교원양성기관에 대해 평가를 해왔는데 평가 결과에 따라 학과 통·폐합, 정원 감축을 권고해 왔다. 2004년 이후부터 사범대생의 동맹 휴업이나 집회가 잇따랐다. 교사 수급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며 부산 지역에서는 동맹휴업에 들어가기도 했고, 교원 수 확보와 교사 양성 체제를 제대로 갖추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사범대 정원이 왜 필요보다 훨씬 많은지에 대한 대답은 광복 후 한국 교육 역사와 관련이 있다. 1960년대부터 한국의 교육 수요는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폭발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중·고교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교사가 부족해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사범대 정원을 늘리고 일반 대학에도 교육과를 신설했다. 이 시기에는 국·공립 사범대 졸업생을 우선으로 교사로 뽑고, 부족한 인원은 사립대 사범대나 교직과정 이수자에서 뽑았다. 그런데 1980년대부터 교직 자격증을 취득했는데도 발령을 받지 못하는 미발령자가 생기고, 1990년 헌법재판소가 완전 공개전형을 실시하라는 명령을 내림에 따라 임용고사 제도가 도입됐다.

1990년대에는 사립대학이 늘어나면서 대학마다 사범대가 들어섰다. 안정적인 교사라는 직업이 수험생을 끌어들였다. 정부는 미래 학령인구에 대한 고민 없이 이를 허가해 줬는데, 2000년대부터 사범대 졸업생 및 교직과정 이수자가 늘어나 매년 적체되는데 학생 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학급당 학생 수가 줄고 학급 수 자체도 줄어들면서 학교 현장이 사범대 졸업생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사범대 정원을 줄이라는 정부의 명령에 사범대가 반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충청지역 사범대 이모 교수는 “지난 수십 년간 정부와 교육 당국의 정책 실패를 사범대 교수, 학생이 책임지라고 하는 꼴”이라고 반발했다. “그래도 대부분 사범대는 역사교육과, 윤리교육과는 역사·윤리교육과로 통합하는 등 정부의 계획에 맞춰 운영해 왔는데 이제 아예 없애라는 겁니다. 사범대 각과 정원은 많아 봤자 20~30명이에요. 그 인원을 10~20명으로 줄이면 결국 과를 없애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교수는 “정원을 줄이기만 하면 불균형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안일한 발상에서 나온 정책”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 역시 “대증요법”이라는 표현을 썼다. “만약 이번에 사범대 정원을 줄여서 넘어간다 해도 학령인구가 계속 줄어들면 그때 가서 또 정원을 감축하는 방식을 써야 해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내놓은 정책입니다.”

지금 사범대의 문제는 단순한 수급불균형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교사의 전문성 강화 문제도 되풀이해서 제기되고 있다. 이를테면 영어 과목 교사들은 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올해로 임용된 지 3년이 되는 경기도 분당의 한 중학교 영어교사 황모씨는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해온 학생이 많다 보니 가끔 긴장할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영어만 잘할 뿐 아니라 영문학, 영미문화에 대해 통달한 학생도 있습니다. 방과 후 수업을 하는데 디킨스나 셰익스피어 소설을 영어로 읽고 싶다는 학생이 있어 저마저 덩달아 공부 중입니다.”

황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교육 현장에서 기대하는 교사의 수준이 높다. 그래서 사범대와 교원 임용과정 개편은 정원 문제만큼이나 교사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교육학)는 “수급불균형을 해소하는 일이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교사의 전문성을 기르는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교육전문대학원은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교원자격증을 뒤늦게 취득하려는 학생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교육전문대학원을 교사의 전문 연수 과정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덕환 교수는 “예전과 달리 요즘 교육 현장은 다원화·전문화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교육에 대한 요구도 바뀌었는데 교사 양성 시스템은 수십 년 전 그대로입니다. 교사의 자질을 제대로 길러줄 수 있는 전문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해야만 교사로 임용하는 경우가 많다. 핀란드가 대표적이다. 임용고사가 없는 대신에 핀란드 사범대 학생들은 4년의 학사과정을 거쳐 2년의 석사과정까지 마쳐야 한다. 수학교사를 꿈꾼다면 석사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전문 분야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다. 석사학위가 필요한데 핀란드와 다른 점은 학부 시절부터 교육학을 배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석사 1학년부터 교육학 및 교육 과정에 필요한 수업을 듣는다. 교육전문대학원 체제를 갖추자는 주장은 최근 인문학, 과학 등 기초학문에 대한 요구가 커지며 생겼다. 어릴 때부터 철학 공부를 하려면 교사의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2월 4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학생들과 만남을 가지고 정책을 설명했다. ⓒphoto 연합
지난 2월 4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학생들과 만남을 가지고 정책을 설명했다. ⓒphoto 연합

그러나 이번 교육부 업무계획에서 사범대 정원을 감축한다는 것 외에 교사 양성과정에 대한 다른 고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이덕환 교수는 “이번 업무계획을 지켜보면서 ‘사범대가 왜 필요한가’ ‘앞으로 사범대는 어떻게 돼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하고 근본적인 고민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고 비판했다. 서울 시내 사립대 교육학과 권모 교수도 “사범대에 오는 학생 중 30~40%는 시험 성적에 맞춰 진학했을 뿐 원래부터 교사가 될 꿈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며 “기왕 사범대 문제를 건드릴 거라면 교육 현장에 어떤 교사가 필요하고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지 대학 구조조정 방안의 일환으로 나온 개편안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부는 대학 수를 줄이고 부실 대학을 정리하려는 대학 구조조정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구조조정의 초점이 되는 학과 중 하나가 사범대다. 취업률이 다른 인문계열 학과와 더불어 낮기 때문이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연초부터 여러 차례 사범대 졸업생 수와 임용고사 합격생 수의 불균형을 언급하며 “취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범대 정원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 역시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학이 지금처럼 존재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사범대 학생네트워크를 준비하는 이규랑씨는 “하지만 지금 사범대 정원 감축 얘기는 수급불균형 문제보다 줄세우기 하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원 감축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신규 교원으로 2만3000여명이 더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사범대 학생 수를 줄이다가 나중에 교원이 더 필요하면 어떻게 할지 걱정입니다.” 게다가 이씨는 이번 업무계획에 “교육적으로 좋은 교사를 어떻게 기를 것인지, 어떤 성취를 이뤘는지에 대한 평가는 없다”며 “취업률로만 잘라 교육을 평가하는 것을 보면 사범대만의 특수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 국립대의 한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강모씨는 학생들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사범대 정원을 줄이더라도 교육 현장에서 필요한 교사의 수, 미래 교육 계획 등을 세워 줄여나가야 하는데 무작정 학교에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싫은 소리 하자니 욕먹는 것이 싫고, 계획은 없고, 그러니 학과들끼리 서로 줄이느니 마느니 싸우는 것 아닙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교육 정책이 정치적으로 만들어지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교육은 만년지대계라고 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조가 바뀌고, 정치인이 교육 정책의 책임자로 들어서 있으니 근시안적인 정책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특히 사범대의 문제는 미래 학생들을 가르칠 교사들에 대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육을 정치에서 분리해 멀리 보고, 길게 생각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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