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량진의 한 임용고사 전문 학원에 학생들이 들어가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서울 노량진의 한 임용고사 전문 학원에 학생들이 들어가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지난 2월 24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만난 25살 김모(여)씨의 머리는 부스스했다. “원룸에서 막 자다 나왔어요.” 오후 2시인데도 한 끼를 못 먹었다는 김씨를 위해 한정식집으로 갔다. “본가가 대전인데, 설에도 안 내려가고 친구들이랑 공부 좀 하다가 술 마시다 그랬지요.” 김씨는 벌써 3년째 임용고사만 준비 중이다.

김씨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 몇 개를 보내자 금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밥 사준다니 다들 오네요. 과외도 불황이고 돈 벌 구석이 없으니 맨날 라면에 김밥 먹던 애들이라 그래요.” 금세 모인 5명 모두 임용고사 준비생이다. 한모(23)씨만 빼고 3수, 4수는 기본. 유모(28)씨는 6수생이다. “대학 동창 중에 한 번에 임용고사 된 사람은 거의 없어요. 한 번에 붙는 사람이 있다 해도, 임용이 안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가장 나이 어린 한씨는 서울 시내 여대 사범대 출신인데, 졸업 2년이 됐지만 대학 동기 중 지금 교사로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 2월 초 전국 각지에서 중·고교 교사를 뽑는 임용고사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났다. 전국에서 4988명 교사를 뽑는 데 지원한 인원은 4만970명. 8.3 대 1의 경쟁률이다. 전체 경쟁률을 낮춘 건 전남, 제주 등 지방이다. 서울은 13.2 대 1, 경기는 10.0 대 1, 대전은 11.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일반 기업 경쟁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문제는 임용고사 불합격자가 갈 곳은 다시 임용고사 시험장뿐이라는 것이다.

2013년 국정감사 당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안민석 의원(새정치민주연합·경기 오산)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국·공립 사범대의 임용고사 합격률은 평균 10.3%에 불과하다. 불합격생은 취업할 곳도 적다. 교육개발원의 2014년 건강보험 DB연계 취업통계연보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사범대 취업률은 36.8%밖에 안 된다.

사범대 졸업생 등 교직 자격증을 따는 인원은 매년 2만300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임용고사에서 뽑는 인원은 많아도 5000명. 산술적으로도 4명 중 3명은 그해 교사가 되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기간제 교사로 임시 취업할 수도 있고, 더러는 사교육 시장으로 빠지기도 한다.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정해윤씨는 “최근 찾아오는 젊은 강사 중에는 사범대 출신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용고사를 한 번 쳐보고 아예 겁을 먹고 교사의 꿈을 접는 사람도 꽤 많다”고 했다.

임용고사에 계속 도전하는 것도 문제다. 위에서 언급한 시험준비생 김모씨는 “과외로 생활비를 벌기는 하지만 한 과목당 학원비만 해도 30만~40만원이라 부담된다. 1차 필기시험의 당락이 근소한 차이에서 갈리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임용고사는 1차 필기시험과 2차 면접시험으로 나뉜다. 1차 필기시험은 교육학과 각 전공에 대해 치르는데 2013년까지는 객관식으로 나오던 것이, 2014년부터는 단답형과 주관식 문제로 출제된다. 그런데 경쟁률이 높고 응시생들의 수준이 높다 보니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지난해 대전 지역에서 임용고사에 합격한 김모(29)씨는 필기시험의 긴장 때문에 3년간의 수험 생활 동안 강박증이 생겼다고 한다. “첫 시험에서 전공과목 점수 1점 차이 때문에 떨어졌어요. 문제를 똑바로 읽었다면 안 틀렸을 텐데, 3년 내내 그게 아쉬워서 속병을 앓았어요. 나중에는 무엇을 해도 다시 보게 되는 강박증이 생기더군요. 불 끄고 나가다가도 다시 들어가 확인하고, 손 씻고 나오다가도 다시 들어가 씻고. 합격하고 나서야 겨우 병원 치료를 받는데, 아직 다 낫지 않았어요.” 김씨는 길고 스트레스가 심한 임용고사 준비 기간이 결코 ‘좋은 교사’를 길러주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의 지적이 일리가 있는 것이 실제 해외 교육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교사 임용 과정에서 면접이나 실무 경험 등을 더욱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교사 채용에서 면접이 거의 절대적인 기준을 차지한다. 여론조사기관 갤럽(Gallup)이나 교육재단 하버맨(The Haberman) 등은 인터뷰 포맷을 제공하는데, 갤럽이 제공하는 면접 문항을 다 사용해 면접을 진행한다면 최소한 2시간에 이를 정도로 철저히 검증하는 편이다. 핀란드는 아예 임용고사가 없다. 대학원 석사 수준의 학위를 따야 하는데 채용된 후에도 수습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교사가 된다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과정이다.

그러나 한국의 임용고사는 말 그대로 시험을 잘 치는 사람을 교사로 채용하는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9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교원양성 교육과정 실태 분석’ 보고서를 보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도 임용고사에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범대생은 24.7%에 불과했다. 임용고사를 치르기 위해 사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범대 학생은 86.8%에 달했다. 전공과목을 공부할 때는 88.4%의 학생이 사교육을 받았다. 교육학이나 전공 등 필기시험에 필요한 공부를 할 때 ‘자습한다’는 비율은 각각 6.1%, 1.0%에 불과했지만 면접시험을 준비할 때는 25.9%나 됐다.

임용고사 준비생들은 지금의 임용고사 방식이 “시험을 잘 치는 교사를 뽑는 방식”이라고 비판한다. 임용고사만 6년째 준비 중인 유모씨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으려 시험만 준비하고 있다 보니 대학 4학년 때 있었던 교생 실습 경험이 아주 먼 옛날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노량진의 임용고사 준비 학원에서 ‘인기 강사’로 통하는 이모 강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몇 년째 노량진에서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을 보면, 나중에 어떤 교사가 될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임용고사 사교육에 종사하는 입장이지만 임용고사가 바뀌어야 할 것 같다”며 “임용고사 준비생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준비생으로부터 배울 미래의 학생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용고사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미경 한국교육개발원 창의·인성교육지원센터 소장은 “우리나라는 교사의 위상이 높고 교사가 되고자 희망하는 사람이 많아 임용고사의 객관성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잘 출제된 필기시험은 시간과 비용 등 실용적 측면 외에도 객관적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만 교직 적성과 인성을 평가하기 위해 “외국의 사례처럼 점차 면접시험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는 있을 것”이라며 우리 교육 현실에 맞는 임용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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