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9일 미국 태평양공군사령부가 주관하는 레드플래그 알래스카(Red Flag Alaska) 훈련에 참가한 한국 공군의 KF-16 전투기가 미 공군 공중급유기 KC-135로부터 공중급유를 받고 있다. ⓒphoto 공군본부
지난해 9월 29일 미국 태평양공군사령부가 주관하는 레드플래그 알래스카(Red Flag Alaska) 훈련에 참가한 한국 공군의 KF-16 전투기가 미 공군 공중급유기 KC-135로부터 공중급유를 받고 있다. ⓒphoto 공군본부

우리 군이 ‘돈 먹는 하마’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돈을 ‘허튼 곳’에 쓰는 게 아니냐는 의문 때문이다. 수시로 터지는 방산 비리도 문제지만, 한정된 국방 예산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우선순위를 바탕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돈을 쓰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떻게든 국방 예산을 확보해 마구잡이식 전력증강 사업을 펼칠 게 아니라 꼭 필요한 곳부터 예산을 쓰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꼽힐 수 있는 현안이 공중급유기 도입 논란이다. 공중급유기 도입은 공군의 20년 숙원 사업이지만 번번이 우선순위에 밀려 그동안 사업 추진이 보류돼 왔다. 하지만 일선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전투기 10대보다 공증급유기 한 대가 더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KC-X)이 ‘예산의 벽’에 막혀 또 한 번 연기될 가능성이 제기되자 공군 조종사들을 중심으로 “도대체 전력증강 사업의 우선순위가 무엇이냐”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공중급유기 도입은 1993년 합동참모회의에서 소요(所要)가 결정된 이후 예산 부족으로 11차례나 좌절된 끝에 2013년 8월 국방부 방위사업추진위원회가 2017~2019년 4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말 기종 선정을 마칠 계획이었지만 절충교역(반대급부를 받는 조건부 교역) 협상 지연 등으로 올해 2월로 연기된 바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대형 전력증강 사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면서 다시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군 소식통은 “최근 합동참모본부의 전력증강 순위 검토에서 차기전투기(FX)와 한국형전투기(KFX), KF-16 성능 개량 등 예산 덩치가 큰 공군 사업들이 몰리는 바람에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이 뒤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방위사업청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국방부가 작성한 ‘2016∼2020년 국방중기계획’(방위력 개선 분야의 향후 5년 사업계획)의 방위력 개선 예산(96조원)이 기획재정부의 ‘2014~201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의 방위력 개선 분야 예산 66조원보다 30조원이 초과돼 있다고 한다. 올해부터 차기전투기(7조3000억원), 한국형 전투기(5조4000억원) 등 육·해·공군 대형 전력증강 사업 추진이 본격화하면서 국방부와 기재부의 장기 예산 추정에 엇박자가 나고 있는 것이다. 국방 중기계획은 지난해까지 방사청에서 수립했지만 방위사업법 개정에 따라 올해부터는 국방부에서 담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 무기도입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F-35 전투기 도입과 한국형 전투기 및 차기 이지스함 개발 등 대형 사업들은 추진이 이미 결정된 만큼, 각 군의 전력사업 중에서 시급성과 효용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새로 수립되는 2016∼2020년 국방 중기계획에서 우선적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 2월 기종 선정을 앞두고 있던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에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앞서 방사청도 공중급유기 기종 선정 시기를 일단 4∼5월로 미뤄놓은 바 있다.

현재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에는 미 보잉의 KC-46A와 유럽 에어버스의 A330 MRTT, 이스라엘 IAI의 KC-767 MMTT가 후보로 올라있지만, 현재 보잉과 에어버스의 양자 대결로 압축되는 양상이다. 이스라엘 IAI사는 B767-300ER 중고 민항기를 개량한 KC-767 MMTT로 저가공세를 벌이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올해 사업비가 대폭 축소될 경우에는 업체에서 난색을 표명할 수 있다”면서 “예산이 줄면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공중급유기 선정업체에 매년 지불해야 하는 연도별 대금 지급도 삭감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실 공중급유기가 우리 공군에 필요하느냐는 논란은 전부터 있어왔다. 무용론을 펴는 사람들은 종심(縱深)이 좁은 한반도에서 막대한 도입비용과 유지비를 들여가며 공중급유기를 운용해야 하느냐는 반론을 제기해 왔다. 하지만 공군 전투기 조종사 등은 우리보다 국토면적이 작거나 공군력 규모가 유사한 나라들도 보유하고 있다며 그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공중급유기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약 30개 국가에서 운용 중으로 실제 한국에 비해 국토면적이 작거나 공군력 규모가 유사한 이스라엘, 터키, 싱가포르, 네덜란드 등도 공중급유기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 항공자위대는 2003년부터 4대를 보유하고 있다.

공군은 공중급유기 도입 이유로 우선 주력 전투기들이 독도나 이어도에서 작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다는 점을 든다. F-15K의 경우 324㎞ 떨어진 독도에서 30분, 527㎞ 떨어진 이어도에서 20분밖에 작전을 할 수 없다. KF-16은 5~10분 정도다. 반면 일본은 공중급유기 4대를 보유하고 있어 24시간 작전이 가능하다.

KF-16 조종사인 박모 중령은 “지금 당장 독도에서 일본 항공자위대 F-15J 전투기와 전술 상황이 벌어지면 공중급유기가 버티고 있는 항공자위대와 교전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공중급유기가 없는 지금, 조종사들은 독도와 이어도에서 초계비행을 통해 적기에 ‘위협 대응’을 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했다.

F-15K 이외의 전투기들은 유사시 평양~원산선 이북 공격도 어렵다. KF-16은 외부 연료탱크와 합동직격탄(JDAM)을 두 개씩 달면 연료 소모량이 급격히 증가해 작전 반경이 370㎞ 남짓에 불과하다. 충주나 서산기지에서 출격하면 평양~원산선 남쪽 표적을 두 개 정도밖에 공격할 수 없다고 한다.

공중급유기가 있으면 작전반경이 확대됨은 물론이고 무장탑재량까지 늘릴 수 있다. F-15K의 경우 외부 연료탱크 대신 무장을 탑재하면 합동직격탄을 7발까지 장착할 수 있다. 한 차례 출격으로 두세 차례 이상의 비행 효과를 낼 수 있는 셈이다. 공군은 연료탱크 대신 무장을 장착하면 임무시간과 작전반경이 1.5배 증가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공군이 공중급유기를 도입해 운영하게 되면 공군 작전기의 전투반경이 사실상 동북아시아 전체로 넓어져 ‘전략공군’의 초석이 된다. 독도와 이어도를 비롯한 영공수호 작전에서도 주변 강대국 수준의 능력을 구비하는 셈이다. 박모 중령은 “공군 전투기(F-15K 기준)가 최소한의 연료만 싣고 이륙 후 공중에서 급유해 완전무장 상태가 되면 한반도 전역을 포함해 북쪽으로 중국과 러시아 일부, 남쪽으로는 일본 삿포로와 남중국해까지 출동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는 “전투기 10대를 덜 사더라도 공중급유기 한 대가 더 절실하다”면서 “급유기 보유로 전투기의 작전운용 융통성이 크게 늘면 결과적으로 전투기를 2~3배 이상 더 구입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공중급유기의 위력은 실전에서 입증되고 있다. 1986년 4월 5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베를린 디스코텍 폭발물 테러의 배후로 카다피를 지목, 공습작전을 승인했다. 같은 달 15일 영국에서 이륙한 F-111기 9대가 공중급유를 받으며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밥 알아지지아를 공격했다. ‘엘도라도 캐니언’으로 명명된 이 작전으로 카다피의 철옹성은 피해를 입었고 카다피는 15개월 된 수양딸의 사망에 전율했다.

1980년 4월 2일 발발한 포클랜드전쟁에서도 해리어 전투기와 토네이도 전투기가 공중급유를 받으며 1만4000㎞나 떨어진 포클랜드로 날아가 ‘도양폭격(渡洋爆擊)’을 단행하기도 했다. 만약 이스라엘이 공중급유기를 보유했더라면 1981년 이라크 오시리크 원자력발전소 폭격을 위해 가장 위험한 경로를 통해 침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공군본부의 한 KF-16 파일럿은 “합참에서는 KF-16의 업그레이드로 대북 대응력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KF-16의 중요성은 탱커(공중급유기)를 도입해야 더욱 진가가 발휘된다”고 했다.

공중급유기 도입이 20년간 표류한 것이 각 군의 힘 겨루기가 작용한 결과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안승범 디펜스타임즈 편집장은 “육·해·공군의 전력증강 사업의 우선 순위는 각 군 간 힘 대결 양상을 보인다”면서 “단군 이래 최대 사업으로 알려진 8조원 규모의 공군 F-X 3차 사업도 사실 육군의 K-9 자주포와 K-21 장갑차 사업(11조원 규모)에 미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 한창 전력증강 사업이 펼쳐지고 있는 차기전투기(FX)와 한국형전투기(KFX) 사업도 합참을 사실상 장악한 육군의 견제로 20년 이상 끌며 장기 사업에서 중기로 정상적으로 전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공군은 공중급유기가 없는 상황에서도 공중급유 훈련은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29일부터 10월 17일까지 19일간 미국 태평양공군사령부가 주관하는 레드플래그 알래스카(Red Flag Alaska) 훈련에 참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우리 전투기가 공중급유를 받으며 한반도를 벗어나 외국 연합훈련에 참가한 것은 2013년의 F-15K에 이어 두 번째다. 우리 군의 주력인 KF-16 기종으로는 처음이다.

이를 위해 공군 KF-16D 전투기 6대는 지난해 9월 29일 새벽 2시40분 서산기지를 이륙해 미 공군의 공중급유를 받으며 알래스카주의 아일슨 공군기지(Eielson Air Force Base)에 우리 시간으로 12시24분 착륙했다. 이 전투기들은 태평양을 횡단해 미 알래스카주의 아일슨 공군기지까지 약 8100㎞를 10시간가량 논스톱으로 비행했다. 이를 위해 미 공군 공중급유기 KC-135 3대가 11차례에 걸쳐 공중급유를 지원했다. 김권희 공군 재경공보실장(중령)은 “공군은 공중급유기가 없는 상황에서 매년 미 공군 급유기를 활용, F-15K 조종사 8명과 F-16 조종사 8명 등 16명의 공군조종사가 공중급유 비행을 해, 신규 공중급유자격을 새로 획득하고 있다”고 했다.

백윤형 방위사업청 항공사업본부장(공군 준장)은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 연기 가능성과 관련해 “당초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말까지 기종 선정을 완료할 계획이었지만 중기계획에서 예산 확정 문제 때문에 일정이 늦춰졌다”면서 “국익 극대화 차원에서 순연됐지만 2015년 1분기 내로 모든 일정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했다.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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