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포스코 사옥 1층엔 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거대한 흉상이 서 있다. 정준양(67) 전 회장의 재임시절(2009~2014년)에 만들었다. 흉상이 세워질 때 포스코맨들은 의아해 했다. 정준양 회장과 박태준 전 회장과의 관계가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준양 당시 회장은 박태준씨의 흉상을 포스코 서울 본사만이 아닌 포항제철과 광양제철 사옥 등 여러 군데에 세웠다. 역대 어느 회장보다 더 ‘박태준 우상화’에 앞장선 셈이다.

정준양씨가 포스코 회장에 선임된 2009년 2월까지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상대 회장 후보들에 대한 폭로 비방전이 있었다. 정준양 당시 포스코건설 사장을 회장으로 미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측 인사와 윤석만 전 포스코 사장을 미는 박태준씨(2011년 사망) 간의 격돌이었다. 당시 포스코에 정통한 한 인사는 1월 초까지만 해도 윤석만씨가 박태준씨의 힘을 빌려 거의 확정된 것처럼 필자에게 얘기했다. 포스코에 절대적 ‘지분’을 갖고 있는 박태준씨가 윤석만씨에게 “준비하라”는 지시까지 해두었다는 귀띔까지 했다. 당시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박태준씨와 껄끄러운 관계였다. 회장이 될 때 박태준씨의 도움을 받았지만 회장이 된 뒤 ‘거리 두기’를 했다는 것이다. 박태준씨는 이구택 회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후임으로 자신을 잘 따르던 윤석만씨를 적극 지원했다는 후문이다.

1월 말이 되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당시 의원의 후원을 받은 정준양씨가 강력한 후보로 부상했다. 이에 윤석만씨는 발끈했다. 박태준 전 회장의 힘을 믿은 그는 오랜 홍보 경험을 동원, 언론플레이에 들어갔다. 정준양씨의 포스코건설 사장 재임시절 비리가 몇몇 언론에 폭로되기도 했다. 난감해진 것은 포스코 홍보실이었다. 당시 홍보실장은 윤석만씨가 사실상 관리하는 인맥이었다. 그러나 홍보실장은 윤석만씨 편이 아니었다. 이미 판세가 기울어진 것을 알았던 것이다. 새로운 권력인 이상득 측이 박태준을 압도했다.

당시 이상득 의원 측에 있었던 인물은 박영준씨를 비롯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정권 최고 실세들이었다. 그들을 돕는 포스코 내부인사로는 정동화 당시 상무(이후 포스코건설 대표이사와 부회장으로 승진), 최종태 포스코 인사담당 사장(이후 포스코 부회장 역임)이 있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인사가 정동화(64) 전 부회장이다. 정 전 부회장은 정의화 현 국회의장의 인척 동생으로 정권의 흐름을 누구보다 일찍 포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정동화씨는 경남고를 나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도 연결되는 사이다. 정동화씨가 정준양 회장을 만드는 데 포스코 내부의 1등 공신이라는 것은 자타가 인정한다. 그 공을 인정받아서인지 포스코건설 부회장으로 일하는 등 정준양씨의 회장 재임기간 동안 승승장구했다.

실제 그가 포스코건설 대표를 맡은 뒤 포스코건설은 수직상승했다. 포스코건설은 이명박 대통령 재임기간 중 도급순위가 5위에서 3위로 뛰어올랐다. 이 과정에도 4대강 공사 담합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했고 이밖에도 숱한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2012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결국 쇠고랑을 차고 정권 막후 실세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구속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당시 의원 연루 의혹도 제기됐던 파이시티 인허가 수사 과정에서 비리가 포착된 것이다. 이를 두고 당시 정권 실세로 불리던 ‘영포(영덕·포항) 라인’의 영향력이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에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당시 파이시티 단독 시공사였던 포스코건설 수사를 맡았던 대검 중수부는 정준양 당시 포스코 회장을 비롯해 그룹 전반에 대한 내사를 벌였지만 더 이상 수사를 확대하진 않았다. 그러던 검찰이 이번에 포스코건설이 베트남에서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을 내부자가 폭로하자 포스코건설을 전격 수사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의문점이 왜 정준양씨가 회장 재임기간 ‘박태준 우상화’에 앞장섰느냐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인사들은 “회장감에 좀 못 미치니까 박태준 회장을 우상화함으로써 자신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했다”고 풀이하고 있다. 회장 후보로 정 회장이 떠올랐을 때만 해도 포스코의 일각에선 그를 회장감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회장 추천위원회에서 3번이나 윤석만씨와 동점이 나온 것만 봐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정준양씨의 회장 재임 5년 동안 포스코의 실적도 이를 뒷받침한다. 정준양 회장 재임 기간에 무려 41개의 계열사를 늘려 29개였던 계열사가 70개가 됐다. 문제는 M&A를 통해 늘린 계열사의 18곳이 자본잠식에 빠질 정도로 엉망이었다는 거다. 이에 정준양씨는 박근혜 정권 출범을 전후해 20여개 계열사를 없애는 ‘흔적 지우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차별적 M&A를 단행하면서 10조원대 ‘현금’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했던 포스코의 금고는 사실상 바닥이 드러나다시피 했다. 포스코의 시가총액이 이명박 정권 초기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면서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는 앞다퉈 신용등급을 강등시키고 말았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지난해 6월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20년 만에 처음으로 AAA에서 AA+로 떨어뜨렸다.

이처럼 수상한 M&A로 부실이 가속화되자 포스코는 탈세도 서슴지 않았다. 포스코는 지난해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계열사의 매출을 부풀리거나 축소하는 방식으로 거액의 세금을 탈루해 3700억원대의 추징금 폭탄을 맞고 검찰에 고발됐다. 또 다른 계열사 포스코엠텍도 지난해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435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국세청은 또한 2013년 9월 철강 유통업체인 포스코P&S를 세무조사하고 나서 역외탈세 의혹이 있다며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재배당돼 수사를 앞두고 있다.

또 다른 의문점은 왜 정준양씨가 부실기업을 무리하게 인수, 포스코 경영에 주름살을 안겼냐는 점이다. 포스코는 2010년 3월 재무 상태가 부실했던 성진지오텍을 계열사 포스코플랜을 통해 사들였다. 울산의 조선·해양 플랜트 부품 업체인 성진지오텍은 인수 직전에 부채비율이 1613%에 달할 정도로 사실상 부도 상태였다. 하지만 포스코는 이를 1600억원이라는 고가에 매입했다. 이 과정에 M&A 개입 세력에 거액이 빠져나간 게 아니냐는 의혹을 현재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다. 실제로 성진지오텍을 포스코에 고가매도한 전정도 성진지오텍 회장은 그후 160억원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체포됐으나 비자금 용처를 밝히지 못한 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성진지오텍을 떠맡은 포스코플랜은 인수합병 후 4년 동안 4900억원의 포스코 자금이 추가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2000억원의 손실을 보는 등 부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 포스코의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대우인터내셔널의 인수는 또 다른 관점에서 흥미를 끈다. 정준양 회장 재임 기간 이뤄진 최대 M&A로는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를 꼽는다. 이를 두고 미얀마 자원개발 사업에 적극적이었던 박영준 전 차관의 입김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포스코가 2012년부터 추진했던 볼리비아 리튬광산 개발사업에도 이상득 당시 의원이 영향력을 끼쳤다는 관측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자원외교를 계기로 2009년 볼리비아에 대사관을 개설했고, 이 전 의원은 대통령특사로 6차례나 방문하기도 했다.

정준양씨의 또 하나 미스터리는 회장을 그만둔 뒤의 행보다. 지난해 주총에서 물러난 그는 최근까지 포스코 명예회장 직함을 들고 활동했다. 지난해 브라질월드컵 때는 회사 비용으로 정준양씨 부부가 1등석 비행기 티켓을 구입,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 사실은 내부 직원이 폭로해 회사에 알려졌다.

향후 검찰 수사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가는 또 다른 관심거리다. 정준양 전 회장을 둘러싼 의혹들을 벗겨 가다 보면 당연히 당시 실세 정치인들에게도 불똥이 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벌써부터 정가에선 몇몇 인사들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2010년 10월 5일 당시 우제창 의원(민주통합당)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영포 게이트의 효시는 뭐니뭐니 해도 포스코다.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이 자연인 시절 포스코에 있으면서 결국 정준양으로 회장을 바꿔치기한 거다”라고 주장해 회의장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제18대 국회 정무위원회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피감기관도 아닌데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의 이름을 14차례나 언급했다. 야당 정무위원들은 정준양 당시 회장이 당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던 박영준씨의 힘으로 ‘국민기업’ 회장 자리에 올랐다고 비판했다. 정준양씨의 친인척 회사 자금이 ‘영포회’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 제기에 정호열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 “들여다보겠다”고 대답하는 장면도 있다. 야당 측은 이미 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입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졸업한 정준양 전 회장은 1975년 포스코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일했다. 생산기술부장, EU사무소장, 광양제철소장 보직을 거친 그는 2007년 포스코 생산기술부문 대표이사(사장)가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엔지니어로서 그의 색깔이 두드러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씨가 당선되면서 그의 인생이 달라진다. 결국 박태준을 견제하려던 이상득이 그를 포스코그룹의 회장으로 낙점, 오늘의 ‘정준양’이 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국가기간산업체인 포스코의 부실화는 국민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지대할 수밖에 없다. 실제 포스코의 위기가 국민에게 직접 손실을 끼치고 있는 측면도 있다. 포스코의 전체지분 중 7.72%를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포스코 주가 폭락으로 막대한 주식보유 평가손을 입었다. 국민이 그만큼 손실을 봤다는 의미다. 이번 검찰 수사로 전 경영진의 무능과 부패가 얼마나 밝혀질지 관심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임받은 ‘전문 경영인’이 ‘오너 경영인’보다 더 전횡을 휘두르고 그 기업을 멍들게 했으면 이는 반국가 사범이다. 단순한 죄악을 넘어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접근해 제2, 제3의 ‘정준양’을 막아야 할 것이다.

홍성추

서울신문 기자, 산업부장, 서울신문 STV 대표이사 역임. 저서 ‘재벌가맥’(무한출판사·2005), 논문 ‘재벌가 분쟁이 기업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성균관대 문학석사 학위 논문·1998)

홍성추 재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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