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억대 골프연습장
370억원 포스코플랜텍 지분
매출 연 100억대 세화그룹…
2012년 8월부터 부산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전정도 전 성진지오텍 회장. ⓒphoto 조선일보 DB
2012년 8월부터 부산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전정도 전 성진지오텍 회장. ⓒphoto 조선일보 DB

“그 사람(전정도 전 성진지오텍 회장), 정말 대단하다. 2007년에는 만나면 ‘회사가 어려워 죽고 싶다’ ‘회사 규모가 너무 커져 사업을 접을 수도 없다. 그랬다간 감옥에 갈 판’이라며 힘들어했다. 성진지오텍은 부도 위기에 몰렸고 직원 월급도 제때 주지 못했다. 하청업체들은 언제 부도날지 몰라 그 회사 하청을 맡지 않았다. 그때 성진지오텍이 망했다면 전 회장은 돈 한 푼 없이 쫓겨났을 거다. 요즘 그 사람을 보면 격세지감이다. 포스코에 성진지오텍을 팔고 나서 1000억~2000억원대 자산가로 변신했고, 부산에서 회사를 차려 그룹 회장이 됐다.”

지난 4월 1일 울산광역시에서 만난 지역 경제인들은 전정도(56) 전 성진지오텍 회장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했다. 이 지역 경제인들은 성진지오텍과 직접 사업을 했거나 지역 경제단체에서 전정도씨를 자주 만났기 때문에 그의 사업력을 훤히 알고 있다. 전정도 회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사업실적 악화와 부채 증가로 망해가던 성진지오텍을 포스코에 매각한 뒤 현재는 부산광역시로 사업 기반을 옮겨 세화그룹 회장이란 명함을 갖고 있다. 울산광역시에는 부인과 가족 명의로 건설한 최신식 대형 골프연습장이 2개 있다. 이 골프연습장은 개당 200억원이 넘을 거라고 주변에서는 말했다.

전정도 회장이 실패한 사업가가 돼 무일푼으로 전락할 위기에서 천억원대 자산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건, 정준양씨가 회장이던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을 엄청난 돈을 주고 사준 덕분이다. 2010년 3월 전 회장은 성진지오텍에 대한 자신의 지분과 경영권 프리미엄을 넘기고 최소 1000억원 이상을 벌었다고 한다.

매각 당시 성진지오텍은 부채가 1600%에 달했던 깡통회사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이 회사는 자본잠식 상태다. 포스코는 성진지오텍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인수한 뒤, 기업을 그 지경으로 만든 전정도씨에게 최대 5년간 대표이사 선임권을 보장하는 또 다른 특혜를 베풀었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전 회장 측이 포스코를 통해 회사의 부채를 털어낸 뒤 다시 회사를 사들이려고 했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전 회장과 그의 부인이 현재 대주주로 있는 세화엠피는 2014년 말 기준으로 포스코플랜텍(옛 성진지오텍) 지분의 5.56%(약 100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4월 2일 포스코플랜텍 주가(1주당 3695원)를 반영하면 액면가치는 370억원이다.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을 인수하는 과정에 권력의 힘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렇지 않고는 이처럼 비상식적인 포스코의 인수작업을 설명할 길이 마땅치 않다.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을 인수한 뒤에도 회사 사정은 악화일로다. 2014년 말 현재 포스코플랜텍의 자본금은 총 2100억원이며, 총 부채는 5300억원이다. 부채가 자본금보다 2배 이상 많다.

당시 울산의 재계에서는 “성진지오텍을 인수할 기업은 없다”는 게 정설이었다고 한다.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을 인수하기 전에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대우조선해양 측이 성진지오텍에 대한 기업인수를 고려한 적이 있는데, 대우조선해양은 실사를 통해 성진지오텍의 경영상태가 부실한 걸 확인하고 손을 뗐다고 한다. 대우조선해양은 그 대신 성진지오텍과 업종이 비슷한 울산의 기업인 신한기계를 인수했다. 성진지오텍은 해양모듈을 생산한다.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을 인수한 뒤 특혜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지난 정권에서는 이에 대한 사정당국의 수사가 없었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하고, 첫 타깃으로 포스코에 대한 강도 높은 검찰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성진지오텍의 특혜 매각 의혹이 조명받고 있다.

주간조선은 부산에 있는 전정도씨의 세화그룹을 4월 1일 직접 찾아가 매각 당시 특혜 의혹과 전정도 회장의 재산 형성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했다. 세화그룹 안내데스크 직원들은 “(전정도) 회장님과 (이영원) 사장님은 모두 자리를 비웠다. 약속을 잡고 다시 방문하라”며 접근을 차단했다. 그래서 안내데스크에 명함을 건네고 회신을 요청했다. 안내데스크 직원은 “메모를 남기면 전달하겠다”고 했으나, 세화그룹 측은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세화그룹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APEC로의 한 오피스텔 9층에 있다. 세화그룹 본사는 예상보다 규모가 컸고 호화로운 실내장식도 눈길을 끌었다. 이 오피스텔 9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세화그룹이라는 하늘색 사명이 보였고 사무실 입구는 유리문으로 차단돼 있었다.

세화그룹 내부 모습을 살펴보려 했으나 입구에는 대기업 1층 현관처럼 안내데스크만 있을 뿐 직원들이 있는 공간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입구 안내데스크 외에 사무실 우측 끝에는 임원진의 비서로 보이는 여직원이 앉아 있는 또 다른 안내데스크가 보일 뿐이었다. 안내데스크 주변에서는 사무실 구조 자체가 보이지 않도록 설계를 해놓은 것으로 보였다. 세화글로벌 등 세화그룹 관련 회사의 법인 등기부상 주소에는 이 오피스텔 건물 901호를 본점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와 있어서 9층 한편의 작은 사무실 정도로 짐작하고 갔으나, 실제로는 세화그룹이 9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990㎡(300평)가 넘는 사무실 규모에 비해 회사 내부를 오가는 직원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세화그룹 측은 전정도 회장이 운영하던 성진지오텍에 대한 특혜매각설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부터 회사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잠정 폐쇄했다. 언론의 집중조명을 부담스럽게 생각한 것 같다. 그를 아는 경남 출신의 한 사정기관 인사는 “언론들이 전 회장을 접촉해 오니까, 기자들 피해다니기 바쁜 것 같다. 수완이 좋은 사업가다. 박영준 전 차관과는 안면이 있는 사이”라고 말했다.

부산 벡스코 옆에 있는 이 오피스텔은 2008년 9월에 입주가 시작된 건물로, 임대료가 꽤 비싼 편이었다. 1층 부동산 업소에서 확인한 결과 9층 전체를 사용할 경우 월 임대료는 3000만원을 상회한다고 한다. 이 부동산 업소 직원은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하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임대료가 얼마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990㎡를 기준으로 본다면 월 3000만원은 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정도씨가 자신의 고향이자, 오랫동안 기업을 해온 울산을 버리고 부산에서 새 사업을 시작한 건 2012년 8월이다. 해양플랜트 관련 기업인 세화그룹의 대주주는 전정도 회장과 그의 가족이다. 회사 대표는 대우조선해양에서 임원으로 일하다 성진지오텍에 영입됐던 이영원씨다. 전정도씨는 2011년 말부터 측근들을 통해 창업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 회장이 설립한 세화그룹은 지주회사 격인 세화글로벌을 비롯해 세화이앤티, 세화엠피(옛 유영금속), 유영이엔엘 등으로 구성된 해양플랜트 자재 납품업체로 알려져 있다. 세화그룹은 창업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해양플랜트 업계에서조차 생소한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회사의 매출은 세화글로벌의 경우 2013년 말 기준으로, ‘제로’에 가까웠고 그나마 세화이앤티가 9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정도 세화그룹 회장과 자녀 명의인 울산 소재의 대복골프연습장.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전정도 세화그룹 회장과 자녀 명의인 울산 소재의 대복골프연습장.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전 회장은 울산에 별도 사무실과 대형 골프연습장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4월 1일 오전 전 회장의 부인(최모씨)이 소유한 울산광역시 남구의 상개골프연습장은 평일 오전임에도 타석에 골퍼들이 많았다. 이 골프연습장은 울산시 남구의 온산공업단지를 끼고 있는 입지 덕분에 울산에서도 이용자가 많은 곳 중 하나로 손꼽힌다. 5층 규모의 건물을 중심으로, 250m의 비거리를 확보하고 있고, 2009년 9월에 개장했다. 2009년은 성진지오텍의 사세가 급격히 악화돼 매각이 추진될 당시인데도 전 회장은 일부 회사자금을 동원하는 수법으로 이 골프장 건설을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장 내부에는 스크린골프장, 샤워실, 카페, 골프숍이 있고 차량 100여대가 주차할 수 있는 대형 주차시설도 눈길을 끌었다.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에는 상개골프연습장 규모에 버금가는 전 회장 소유의 골프연습장이 하나 더 있다. 2011년 개장한 대복골프연습장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상개골프연급장과 달리 법인으로 등록돼 있었다. 이 법인의 대주주는 지분의 25%를 가진 전 회장과 세화글로벌인데, 세화글로벌은 전 회장(30%)과 그의 아들(20%)과 딸(20%)이 지분의 70% 이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전 회장 가족 소유의 골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세화글로벌은 현재 세화그룹의 주력회사인 세화이앤티의 대주주로도 등록돼 있다. 그래서 세간에는 전 회장이 다시 사업을 재개한 배경으로 재산상속을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1980년대 초 성진지오텍을 창업한 전 회장은 2000년대 후반 수출 4억달러를 달성하며 중견기업인으로 성장하는 듯했다. 이 시기 그는 국제라이온스협회 355-1지구 총재, 울산상공회의소 부회장 등 대외활동을 확대하며 다양한 인맥을 구축했다고 한다. 회사의 대외 이미지와 전 회장의 영향력이 배가되는 것과 달리, 성진지오텍은 실적 악화와 부채로 인해 곪아가고 있었다.

울산 지역 복수의 경제계 인사들의 말에 따르면 성진지오텍이 부도 위기에 직면했던 이유로,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환율손실(키코·KIKO)을 거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방만경영과 경기악화가 주 원인이다. 익명의 울산지역 경제계 인사는 “전 회장이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한 건 2007년경부터다. 성진지오텍은 대기업 하청공사를 많이 했는데, 대기업들의 후려치기가 워낙 심해 장기간 하청을 맡다 보면 회사가 망가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전 회장은 학력 콤플렉스 때문인지, 막대한 돈을 써가며 대기업 임원들을 계속 영입했다. 외부 활동 때도 돈을 많이 쓰고 다녀 ‘큰손’으로 통했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자신이 총재로 있는 국제라이온스협회의 회원을 늘리기 위해 신규 회원 가입 시 200만~300만원을 사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역 내 언론사와 관공서가 주관하는 행사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성진지오텍은 꾸준히 사세를 확장해 왔으나 성공을 거두기보다 오히려 악수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조선업 활황에 힘입어 선박용 블록 제작에 ‘올인’했을 때도 곧 조선업황이 내리막길을 타는 불운이 닥쳤다. 그로 인해 2000년대 후반 성진지오텍은 직원들의 월급을 제때 챙겨주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부도위기설이 끊이질 않았다.

전 회장은 또 권력자나 공무원 등 평소 자신과 친분을 나눈 인사들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자금의 대부분은 기업 비자금으로, 2011년 울산지방검찰청 특수부 조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당시 87억원대 횡령 및 사기로 기소된 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이 선고돼 법정구속됐다. 검찰이 불구속기소한 사안에 대해 법원이 1심에서 구속결정을 내림에 따라 당시 검찰은 ‘봐주기 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전 회장은 부산고법에서 진행된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고 결국 풀려났다. 포스코 측이 선처를 호소하는 처벌불원서를 법원에 낸 게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포스코는 전 회장이 기업 매각 뒤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7억원을 빼돌려 피해를 입었는데도, 처벌불원서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울산지역 재계 관계자들은 검찰 수사가 애초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울산지역 한 경제인의 말이다. “울산지검에서 성진지오텍을 수사할 때 애꿎게 하청업체 사장 여럿이 구속됐다. 성진지오텍이 공사비를 부풀린 뒤 현금으로 만들어 되가져오라고 요구했는데 이들이 이를 뿌리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당시 검찰이 비자금의 사용처를 조사하지 않은 건 권력을 잡고 있던 사람들이 수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소문이 났었다.”

성진지오텍은 당시 부풀린 공사비를 현금으로 환원하지 않는 하청업체의 일감을 끊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성한 수십억원대 비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정당국과 지역 경제계에서는 이와 관련, “100만원을 벌면 절반인 50만원은 주변에 써오던 전 회장 스타일로 볼 때 정치권이나 검·경 등 권력기관으로 비자금이 흘러갔을 것이다. 포스코가 인수한 울산의 또 다른 기업 오너도 당시 검찰 고위인사가 돈을 가장 화끈하게 받더라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전 회장과 관련해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성진지오텍 인수 당시 이명박 정권에서 ‘왕차관’으로 불리며 실세로 통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다. 아직도 시중에서는 “박 전 차관이 포스코의 성진지오텍 인수 과정에 관여한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특히, 포스코 정준양 회장은 정권에서 밀어준 인사로, 권력의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재임 당시 부실한 기업을 여럿 인수해 이런 의심을 부추겼다.

전 회장은 동년배인 박 전 차관과 대우 재직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고 한다. 경북 칠곡이 고향인 박 차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보좌관을 맡기 전까지 대우그룹에서 일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은 성진지오텍이 가장 많이 거래하던 기업이었다. 전 회장은 특히 대우그룹 출신 고위 임원들을 대거 영입해왔기 때문에 대우맨들과 유달리 가까웠다. 성진지오텍의 대표는 2008년 11월 중소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남미 순방에 동행하게 되면서 권력과 가까운 기업으로 지역사회에서 인식되기도 했다. 전 회장은 자신의 측근들에게 박영준 전 차관을 잘 안다는 걸 평소 자랑삼아 얘기하고 다녔다는 게 지역 경제계 인사들의 전언이다. 전 회장은 2010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불교분과 위원장과 민주평통 울산남구협의회장을 지낸 바 있다.

박 전 차관은 그러나 전 회장과 안면이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박 전 차관의 측근으로 있었던 한 인사는 “박 차관은 직접 돈을 받지도, 흔적을 남기지도 않는다”고 지인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박 전 차관은 4월 2일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성진지오텍 매각 과정은 전혀 모르는 일이고 전정도 회장과는 일면식도 없다”고 말했다.

세화그룹 관리이사라고 밝힌 사람은 지난 3월 31일과 4월 1일,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2012년 8월에 합류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있었던 일은 잘 모른다. 회장님과 박영준 전 차관은 모르는 사이라고 들었다. 일부 언론에서 사실과 다른 기사를 막 쓰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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