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8일 오후 자원외교 비리 의혹을 받고 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MB(이명박)맨이 아니고 피해자’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photo 장련성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난 4월 8일 오후 자원외교 비리 의혹을 받고 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MB(이명박)맨이 아니고 피해자’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photo 장련성 조선일보 객원기자

“(성 회장이 죽고 나서 발견된) 쪽지 자체가 미스터리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성 회장이 정치인에게 몇억원을 줬을 가능성은 낮다. 재무 담당자인 내게 그 정도 규모의 현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1991년부터 2009년까지 대아건설 재무담당(2003년까지)과 경남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하며 성완종 전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전모(53)씨는 4월 15일 주간조선과 만나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성완종 리스트’에 적혀 있던 돈의 액수와 관련해 “평상시 성 회장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성 회장 밑에서 일할 때 그런 뭉칫돈을 만져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대아건설과 경남기업 재직 당시 ‘성완종의 금고지기’로 통했고 자금의 흐름을 누구보다 상세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2009년 경남기업을 그만뒀지만 성 전 회장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성 전 회장이 4월 9일 자살하기 전 경향신문 인터뷰와 시신에서 발견된 쪽지의 내용이 부풀려졌거나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성 전 회장이 정치자금을 전달한 인사의 명단으로 보이는 ‘성완종 리스트’에는 ‘허태열 7억, 김기춘 10만달러, 홍문종 2억, 부산시장 2억, 유정복 3억, 홍준표 1억, 이완구, 이병기’라고 적혀 있다. 리스트에 적혀 있는 금액만 16억원에 이른다. 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모두 “성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전씨는 이번 사안에 자신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는 “언론과의 접촉도 피해 왔다”고 했다. 이날 나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커피숍에서 전씨를 만나 1시간 이상 대화를 나눴다. 그는 처음에는 “별로 드릴 말씀이 없는데, 여기까지 오셨다”면서 입을 열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자 성 전 회장의 경영스타일과 자금 관계 전반에 대해 자신이 직접 겪은 것들을 털어놓았다.

2013년 11월 18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 나란히 참석한 성완종 전 회장과 이완구 국무총리.
2013년 11월 18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 나란히 참석한 성완종 전 회장과 이완구 국무총리.

전씨는 성완종 전 회장이 자살하기 며칠 전 검찰에 출두해 성 전 회장의 횡령과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돼 참고인 조사를 받았을 정도로 이번 사건에 연관된 주요 인물이다. 성 전 회장 자살 이후 자금관리 총책으로 주목받고 있는 경남기업 한장섭 부사장도 전씨가 재직할 당시 부하 직원(회계부장)이었다. 전씨가 2009년 회사를 떠난 뒤 재무 관련 업무를 넘겨받은 사람이 바로 한 부사장이다. 전씨는 “경남기업의 자원외교 의혹과 관련해서 검찰이 불러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자원외교에 대한 건 거의 묻지 않았다. 주로 분식회계, 성 회장의 판공비 사용, 회사 대여금 등 곁가지를 물었다. 어떻게든 성 회장을 잡아넣겠다는 검찰의 의지가 강해 보였다”고 말했다.

성완종 전 회장과 인연을 맺기 전 전씨는 성 전 회장의 동생인 성일종씨와 함께 모 금융회사에 다녔다. 그러다 1991년 일종씨가 형 회사인 대아건설로 자리를 옮길 때 함께 갔다. 1999년 일종씨가 성 전 회장과의 불화로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부터 전씨는 일종씨를 대신해 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로 일했다. 2009년 회사를 그만둘 당시에는 자신을 버린 성 전 회장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털어버렸고 이렇다할 감정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경남기업에서 나온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나야 더 있었으면 좋았죠”라고 말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 전 회장의 뜻에 따라 나간 것임을 암시했다.

그는 검찰 조사에 대해 일종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 성 전 회장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여러 차례 검찰 수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조사와 2006년 행담도 게이트 사건이다. 전씨는 2004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경남기업에서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에게 제공한 16억원을 전달한 장본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그는 성 전 회장의 지시로 자금을 전달한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단순 전달자’라는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선고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성완종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은 홍준표 경남지사.
성완종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은 홍준표 경남지사.

“그때 고생을 많이 했다. 원래 성 회장이 자금을 만들라고 지시한 사람은 당시 하도급을 총괄했던 사업본부장이었다. 그런데 본부장이 갑작스레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성 회장은 대신 나를 불러 이 돈을 JP 측에 전달하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대선자금 수사에서 이 돈이 경남기업에서 흘러들어온 것으로 밝혀지자, 성 회장이 나를 불러 ‘회장에게 충성하려고 내가 벌인 일’이라고 진술하라고 했다. 그러나 회장이 시킨 대로 대응했다가 오히려 검찰에서 혼쭐이 났다. 당시 회장은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하지 않았다. 얼마 뒤 석가탄신일(2005년)에 성 회장은 사면복권됐다.”

전씨는 “당시는 이른바 오세훈법이 시행되기 전이라서 회사법인에서 정당에 기부금을 내는 게 불법이 아니었다. JP에게 전달한 돈도 법인기부금으로 영수증까지 받았으나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성 전 회장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10만달러를 제공했다는 2006년과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7억원을 줬다고 한 2007년에도 회사의 금고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씨는 당시 성 전 회장으로부터 거액의 현금이나 달러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2007년에 7억원을 현찰로 만들려면 라면박스 7개 분량이 나온다. 그땐 5만원권이 없었다. 이렇게 큰돈을 현찰로 만든 적이 없다. 성 회장은 그런 지시를 하지 않았다. 또 2006년에 10만달러를 흔적 없이 환전하려면 여러 금융기관을 돌며 돈을 바꿔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우리 부서에서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없다. 쪽지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 돈을 성 회장이 직접 만들었다는 얘긴데, 그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의아하다.”

전씨는 성 전 회장이 회사를 통하지 않고 외부에서 뭉칫돈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도 했다. 전씨는 “성 회장은 본인 명의의 통장조차 없었다. 월급은 부인 명의로 받았다. 회장이기 때문에 특별히 개인 통장이 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본인 돈과 회사 돈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았다. 돈이 필요하면 법인카드를 쓰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 전 회장은 한 달에 몇 차례씩 수백만원 규모의 현찰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리곤 했다고 한다. “몇백만원씩 현찰을 준비해서 차에 실어 놓거나 비서에게 전달해 놓으라는 지시를 받은 적은 있었다. 현찰로 300만원 안팎을 준비해 주면 그걸 갖고 외부에 나갔다가 누군가에게 주고 돌아오곤 했다. 그 금액 정도는 회장이 판공비조로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현찰로 준비하라는 돈이 1000만원을 넘은 적은 없었다.”

성완종 전 회장의 주머니에서 나온 메모.
성완종 전 회장의 주머니에서 나온 메모.

전씨는 “경남기업의 관계사를 운영해 돈을 번 부인이 비자금을 조달할 여지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소원한 부부관계로 볼 때 그건 현실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성 회장의 부인이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부사장을 맡았다. 그때 간신배들이 달라붙어 이것저것 해보라며 일을 벌였다. 아마도 회장이 원했던 건 아닐 것이다. (성 회장이) 그렇게 해서 돈을 빼 쓰자고 할 분은 아니었다. 부인도 나름 돈이 필요했을 거고 그래서 자신이 세운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고 돈을 좀 벌었다. 하지만 성 회장 부부는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다. 부인은 베트남 사업을 하며 해외에 있는 날이 많았다. 또 최근에는 서로 다른 집에서 살 정도로 소원해졌다고 들었다. 부인이 번 돈을 회장에게 줄 일은 없었을 거다.”

전씨는 성 전 회장과 이완구 국무총리의 관계가 썩 좋지 않았다고도 했다. “2005년경부터 성 회장은 정치적으로 자신이 리틀JP 정도로 컸다고 생각했고 이완구 총리에 대해서도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 총리는 나름 충청권의 핵심인사였으니, 두 사람은 서로 견제하거나 때론 무시하며 불편하게 지냈다. 이 총리가 재보궐선거를 치를 때 성 회장이 찾아가 진짜 3000만원을 전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전씨는 또 이병기 비서실장과 성 전 회장의 관계에 대해 “그분(이병기 실장)은 충청 출신이다. 줄곧 힘 있는 자리에 있었다면 성 회장이 만났을 것이다. 우리 회장은 힘 없는 사람은 잘 안 만났다”고 말했다. 이병기 실장은 김영삼 정부 때 국정원 2차장을 지냈지만 2000년대에는 이렇다할 관직을 갖지 않았다. 그가 힘을 발휘하는 자리를 맡은 건 박근혜 정부 들어서다.

전씨는 성 전 회장이 돈에 대해서는 나름 원칙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성 회장은 자신이 회사 돈 100원을 빼먹으면 직원들도 10원은 해먹는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자신의 몸처럼 생각했다. 비자금을 만들어 집에다 쌓아놓고 할 분은 아니었다. 물론 그분이 도덕적인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장사치 기질이 있었고 때론 회사 돈과 내 돈에 대한 구분을 하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 건 이런 부분 때문이다.”

전씨는 오히려 성 회장의 씀씀이가 예상보다 적어 주변에서 뒷담화를 하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돈을 안 쓴다고 욕먹은 적이 꽤 있다. 돈을 막 쓰는 분이 아니다. 만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각각에게 돈을 적게 써도 총액은 컸을 것이다.”

성완종 전 회장이 비타500 음료수 상자에 3000만원을 담아 이완구 총리에게 전달했다고 하자, 이를 재현한 사진. ⓒphoto 조선일보 DB
성완종 전 회장이 비타500 음료수 상자에 3000만원을 담아 이완구 총리에게 전달했다고 하자, 이를 재현한 사진. ⓒphoto 조선일보 DB

전씨는 “내가 회사를 그만둔 뒤에 일어난 자금 내역은 모른다”면서도 “성 회장의 스타일로 볼 때 비자금을 조성해서 돈을 펑펑 뿌리는 분은 아니다”고 했다. “보도에 보면 윤모씨를 통해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1억원을 전달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믿기지는 않는다. 이 돈이 윤씨에게 전달된 부분만 갖고 마치 쪽지 내용이 전부 사실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성 회장 리스트에 등장한 인물 가운데 친박인사가 아닌 사람은 홍준표 경남지사가 유일하다. 홍 지사의 경우 중간에 정치자금을 전달한 인물이 실재하는 등 ‘성완종 리스트’를 뒷받침할 만한 정황이 가장 확실한 인사다.

전씨는 성 전 회장의 경영스타일과 평소 행동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금전 사용 등에 대한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그의 책상에는 항상 평소 스케줄이 적힌 책상용 다이어리와 손바닥 크기의 메모지가 놓여 있었는데, 메모지와 다이어리조차 모두 직접 파쇄했다고 한다. “성 회장은 검찰 수사를 여러 번 받았다. 노태우 정권에서도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검 중수부의 수사를 받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압수수색을 당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항상 근거를 남기지 않는 게 체질화됐다. 언론에서 가족이나 측근이 비자금 장부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론하던데, 그런 건 있을 수 없다. 그분은 기억에 의존하지, 메모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 메모가 발견된 건 성 회장의 평상시 모습과는 다르다.”

전씨는 성 전 회장이 수사를 받으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외로웠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경남기업에 입사해 함께 일했던 형제들도 모두 회사를 떠났고 심복으로 불렸던 직원들과도 불화가 일곤 했었다고 한다. 그 결과 성 전 회장 주변에는 직언하는 사람보다 ‘예스맨’만 남았었다고 한다. “전두환 정권 때부터 권력을 지향했던 분이다. 그래서 얻어낸 금배지를 박탈당한 건 그분에게 충격이었을 거다. 회사도 어려워져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직원들은 성 회장 탓을 하며 출근을 저지하기도 했다. 부인도 소원해져 그를 위로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성 회장은 허심탄회하게 심금을 털어놓을 친구가 한 명도 없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사업 관계자나 정치권 인사를 만나고 다녔다. 권력이 바뀌면 다음 정권 인사들과 관계를 맺었다. 그렇게 정치적으로 살았다. 이런 사람들과는 관계가 오래갈 리 없고 친구가 될 수 없다. 자살하기 전 성 회장은 한 달가량 구명로비를 하면서 아마도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을 것이다.”

전씨는 성 전 회장이 “억울하다”고 호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시했다. “성 회장이 정말 억울해 했을 것 같다. 자원사업을 타깃으로 수사가 시작됐는데, 별게 없으니까 검찰에서 분식회계로 몰고가 부도덕한 기업가로 낙인찍힐 판이었다. 성공불융자를 개인적으로 도용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서류를 보면 다 나온다. 그런데 검찰이 분식회계를 파고들었다. 건설업계 관행인 측면도 있는데, 이렇게까지 검찰이 자기를 옭아매려 한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을 거고 주변에 억울함도 호소했을 것이다. 성 회장은 비자금을 쌓아놓고 산 기업인도 아니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분이었다.”

전씨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전도금(본사에서 건설현장에 보내는 지원금) 32억원의 사용처에 대해서도 검찰과 다른 해석을 내놨다. “7년 동안 하도급 업체로부터 조성한 32억원을 검찰은 비자금으로 보고 있는데, 회장은 판공비로 한 해 몇억원 정도 썼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 술과 밥을 먹었다. 일부 인사들에게는 소소하게 봉투를 챙겨준 적도 꽤 있었을 것이다. 회장 활동비로 7년간 쓴 돈의 규모가 상당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경기도 안산의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았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유가족의 반대에 막혀 조문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photo 뉴시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경기도 안산의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았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유가족의 반대에 막혀 조문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photo 뉴시스

전씨는 경남기업 인수 당시 정권의 비호가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물론 성 회장이 노무현 정부 때도 정치권에 힘이 있다는 분들과 친분을 나누고 지냈다. 하지만 경남기업 인수는 우리가 공개경쟁을 통해 인수했다. 돈이 없을 때였지만 운이 따라줬다. 대전 목원대 캠퍼스를 유성으로 이전하는 사업권을 따냈는데, 사업비로 16만5000㎡(5만평)가량의 목원대 캠퍼스 부지를 받았다. 여기에 아파트를 지었고 때마침 노무현 정권 초기 부동산 붐이 일면서 2000억원 이상의 분양대금이 들어왔다. 당시 경남기업의 인수대금은 700억원이었다. 외부의 힘이 필요 없었다.”

성 전 회장은 오세훈법이 생기기 전에는 법인 기부금 형태로 수많은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제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법인 후원이 금지된 뒤로는 정치인들에 대한 후원도 크게 줄었다는 게 전씨의 설명이다. 전씨는 “법인에서 정치후원금을 준 사람은 워낙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전씨는 “성 회장은 총리나 비서실장이 검찰에 얘기하면 수사가 중단되거나 자신이 풀려날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과거 대선자금 수사나 행담도 게이트 사건이 불거졌을 때의 경험을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대통령이 나서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언론에 다 노출돼 있었다. 총리나 비서실장이 그걸 막을 수 없었다. 그걸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씨는 성 전 회장이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을 전두환 정권 때부터라고 했다. 지역사회의 단체장 등 감투를 얻는 것을 즐겼고 그럴수록 정경유착도 강해졌다고 했다. 성 전 회장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에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감투를 얻거나 권력자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는 욕망이 점차 커졌다는 관측도 있다.

전씨는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사람과 제외된 사람의 구분점이 뭐냐는 물음에 “그건 성 회장에게 성의껏 대해 줬느냐, 아니면 무시하거나 박대했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리스트에 등장하지 않은) 충청권 유력 정치인이 더러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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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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