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 데이비 장관이 런던 근교 킹스턴·서비턴 지역구에 있는 자신의 집 거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의 집은 영국 서민층이 사는 연립주택 형태의 테라스하우스로, 거실이 13㎡ 정도에 불과하다.
에드 데이비 장관이 런던 근교 킹스턴·서비턴 지역구에 있는 자신의 집 거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의 집은 영국 서민층이 사는 연립주택 형태의 테라스하우스로, 거실이 13㎡ 정도에 불과하다.

며칠 전 현 영국의 보수자민연립정부에서 에너지기후변화장관을 맡고 있는 에드 데이비(49)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와 같은 자민당 소속으로 10년간 함께 당 활동을 해왔지만 그의 개인 휴대폰에 전화를 걸기는 처음이다. 그의 휴대폰 번호는 지구당 당원이라면 다 알지만 한 번도 통화를 할 일이 없었다.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내가 이름을 밝히기도 전에 내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했다. 통화한 적이 없는 평당원이지만 내 번호도 그의 휴대폰에 저장돼 있다는 뜻이다. ‘이런 남다른 노력이 있어서 4선을 했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그와 통화를 한 건 인터뷰용 사진을 다시 찍기 위해서였다. 원래 영국의 총선을 즈음해서 영국 하원의원들의 삶에 대해 글을 한번 쓰고 싶어 일전에 데이비 장관 지역구 사무실에서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 주간조선의 원고 청탁을 받고 당시 인터뷰와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써 기고하려다 보니 당시 찍은 사진 중 중요한 몇 개가 초점이 흐려져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전화를 건 것이다.

사실 나는 데이비 장관을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켜봐 왔다. 그는 유럽 유일의 한인촌이라는 말을 듣는 뉴몰든이 속한 영국 런던 근교의 킹스턴·서비턴 지역구 의원이고, 나는 그의 지역구에서 살고 있는 한인 이민자다. 더욱이 나는 데이비 장관의 지역구 당원이기도 하다. 그것도 명부상만의 당원이 아니라 실제 활동을 하고 있는 핵심 당원 100명 중 한 명이다. 10년 이상을 데이비 장관이 주재하는 당 모임에 참석했고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당과 데이비 장관 의정활동 홍보물을 가가호호 돌리는 역할도 해왔다. 더군다나 오는 5월 총선을 대비해서 지난 연초부터는 거의 매주 한 번 이상, 지난 3월부터는 매주 두 번씩 300여가구에 데이비 장관 선거 홍보물을 돌려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클럽 선수인 웨인 루니를 닮은 그의 얼굴 사진을 지겹도록 봐왔다.

데이비 장관을 가까이서 지켜봐 왔지만 이번에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다시 그를 만나면서 솔직히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았다. 시작은 전화통화부터였다. 지금 영국은 5월 7일 치러지는 총선 유세가 한창이다. 총선 날까지 장관직은 유지하지만 데이비 장관도 이미 하원이 해산됐기 때문에 후보자로서 정신없이 지역구를 누벼야 할 처지다. 총선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이고 게다가 국정까지 챙겨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쉽게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정 안 되면 지구당 사무실 직원을 통해 홍보용 사진이라도 받아오리라는 각오를 하고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데이비 장관은 “오늘 오후에 당장 시간을 낼 테니 만나자”면서 “시내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출발하면서 문자를 넣어 주겠다”고 했다. ‘4선의 현직 장관이 기사가 딸린 관용차로 퇴근하지 않고 수행비서도 없이 혼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오다니.’ 그의 검소함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실제 접하니 신선하고 놀라웠다.

더 큰 놀라움은 그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데이비 장관은 통화 후 좀 있다 문자로 ‘지금 집에 돌아왔으니 집으로 오라’고 주소를 알려주었다. 시내에서 TV 인터뷰 때문에 입은 양복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지역구민 집을 일일이 돌아다닐 예정이라고 했다. 주소를 보면서 찾아간 그의 집은 차 두 대가 교행하지 못할 정도의 작은 골목길 안에 있었다. 그런데 집 앞에서 번지가 정확한지 몇 번씩 확인을 해야만 했다. 그의 집이 예상 밖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데이비 장관은 진짜 영국의 서민층이 사는 ‘테라스하우스(terraced house)’에 살고 있었다. 영국에는 가격에 따라 집의 형태가 몇 개로 나뉜다. 우선 중산층 이상이 사는 ‘단독주택(detached house)’이 있고, 그 다음 계층이 사는 ‘반단독주택(semi-detached house)’이 있다. 반단독주택은 두 집이 붙어 있는 형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민층이 사는 테라스하우스가 있다. 주택 수십 채가 골목 양쪽에 다닥다닥 줄지어 있는 형태로, 중산층은 이런 집에서 살지 않는다.

현역 장관이자 집권당 4선의원의 집이 가난한 서민들이 사는 테라스하우스라니 정말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것도 테라스하우스 중 가장 저렴한 슬래브 지붕 형태의 연립주택이었다. 갑자기 무엇인가에 머리를 한 방 맞은 듯한 충격에 한참을 허둥댔다.

어떻게 데이비 장관 같은 사람이 이런 곳에 살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끝내 듣지 못했다. 사진촬영을 끝내고 헤어질 때까지 그에게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다. 대답이 뻔했기 때문이다. 지난번 사무실에서 인터뷰할 때와 비슷한 답이 나올 게 분명했다. 그때도 직접 몰고 온 남루한 자동차를 보고 놀라서 “현역장관이 이런 차를 몰고 다니리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하자 그는 “영국 하원의원은 부유하지 않아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답했다. 이번에 남루한 집에 대해 물었어도 아마 비슷한 대답을 다시 들었을 것이다.

데이비 장관이 지역구에서 몰고 다니는 ‘문제의 차’가 집 앞에 세워져 있었다. 영국 자동차 중에서 가장 서민적이고 싼 브랜드인 포드자동차 포커스 모델(1600㏄)이다. 그런데 그 자동차 번호 연도가 정말 놀라웠다. 영국 자동차는 번호판을 보면 등록 연도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데이비 장관의 포드차는 무려 14년이 되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주행거리를 물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서 문자로 물어 보니 ‘12만8821마일(20만6113㎞)’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말문이 막혔다.

그의 집에 들어가봤다. 테라스하우스들이 좀 좁기는 하지만 이 집은 특별나게 좁았다. 13㎡(4평)밖에 안 되는 좁은 거실에는 기저귀(돌을 갓 지난 딸 엘리너의 것)를 너는 빨랫대부터 7살 된 아들 존의 보행보조기구(아들 존은 지체부자유자여서 서지 못하고 말도 못한다)가 있었고, 바닥은 아이들 장난감과 동화책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옆에 바로 붙은 부엌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이사 가는 집의 모습이었다. 안 그래도 좁은 집이 더 좁아 보였다. 벽에는 싸구려 인쇄 그림이 든 액자가 걸려 있었고 가구도 이케아 수준이었다. 영국 중산층 수준의 우아한 실내장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욱 놀라운 건 거실이고 부엌이고 어디에도 데이비 장관이 일을 할 만한 장소는커녕 책상마저 없다는 점이었다. 가만히 보니 부엌 구석에 놓인 식탁이 현직 장관이 집에 일을 들고 와 서류를 만지는 공간 같았다. 2층에는 아래층의 크기로 보아 방이 두 개밖에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영국의 모든 하원의원이 그처럼 다 검소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현 내각 장관 29명의 재산 총액이 거의 7000만파운드(1148억원)에 육박하고 그중 18명이 백만장자라는 지적도 나온다. 데이비 장관은 백만장자를 제외한 나머지 11명에 들어가는 셈이다.

데이비 장관은 이런 남루한 집에서 진짜 바쁘게 살고 있다. 그가 직접 밝힌 그의 일주일은 이렇다. “한 주일이 언제 가는지 모른다. 월요일은 3분의 2를 지역구에서, 3분의 1은 의회에서 보낸다.(참고로 데이비 장관은 월요일 아침부터 오후 2~3시까지 지역구 사무실에서 지역구민들을 만나 민원을 받는다. 주로 각종 고충을 듣고 해결방안을 강구하는데 이를 외과수술과 같은 단어인 서저리(surgery)라고 부른다.) 그리고 화요일은 의회, 수요일은 정부와 의회, 목요일은 정부, 금요일 토요일은 서저리를 또 한다. 일요일은 가족들과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결국 아이들과 놀아주는 사이에 짬짬이 서류 검토를 해야 한다.”

그는 “매일 5~6시간은 자려고 하는데 딸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그보다 더 못 잔다”며 “밤중에 일어나면 어쩔 수 없이 놀아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이들에 대한 무한 애정을 내보였다. “나이 50이 다 되어 딸이 태어났다. 나는 지체장애자 아들도 있다. 이들을 제대로 보살피고 돌보는 것이 최우선이다.”

아직 50세도 안 돼 벌써 5선에 도전하는 데이비 장관은 지역구 활동도 열심이다. 이는 그가 기록한 성적으로 증명된다. 데이비 장관이 1997년 초선에 당선될 때 5만5565명이 투표한 선거에서 2만422표를 얻어 단 56표의 근소한 차로 승리해 유명해졌다. 그러나 4년 뒤 2001년 선거에서는 4만9093명 투표에서 2만9542표를 얻어 무려 1만5676표 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단 4년 동안 유권자 23.5%의 마음을 돌려놓은 셈이다.

그는 선거에서 유권자 23.5%의 마음을 돌려놓은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 전임 보수당 의원은 한 달에 한 번 하던 서저리를 나는 1주일에 두 번씩 한 달에 8번을 했다. 그렇게 해결해준 민원이 모두 내 표가 되었다고는 할 수 없어도 결국 도움이 되지 않았겠나. 진심이 통한 것이기도 하고. 나는 ‘쉽게 언제든지 만날 수 있게(accessible and available)’ 되려고 노력했다. 킹스턴·서비턴 지역은 원래 보수당 지역이라 노동당은 거의 힘을 못 쓴다. 그래서 선거 때 노동당 지지자들에게 ‘어차피 사표가 되는 노동당 표를 찍지 마라. 잘못 찍으면 보수당이 들어온다’고 설득한 것이 주효했다.”

데이비 장관이 이렇게 열심히 지역구 활동을 한다면 한국의 독자들은 돈이 많이 들 것이라고 지레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데 영국 정치의 우수함과 묘미가 있다. 데이비 장관의 예를 들어 이 구조를 설명해 보자. 일단 데이비 장관은 자기 지역구 사무실에 따로 방이 없다. 워낙 사무실이 협소해 공간이 없기도 하지만 직원이나 당원들이 나누어 쓰기도 힘든데 잠깐 들렀다 나가는 의원이 따로 방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 첫째 이유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지역구 사무실은 데이비 장관이 장만한 게 아니다. 데이비 장관도 여기서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데이비 장관 개인 소유가 아닐 뿐더러 임대료도 그가 내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자민당 지구당 소유로, 열성 당원이 유산으로 받은 건물을 기증한 것이다. 비록 데이비 장관이 의원 활동의 근거지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총선에서 낙선하고 나면 그날로 이 지역구 사무실과는 연관이 없어진다. 물론 다음 총선에 임박해서 후보로 지명을 받으면 다시 인연을 맺지만 그 전에는 평당원으로서 이 건물에 출입할 뿐이다.

바로 여기서 영국 정치에 돈이 필요 없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영국 정당의 지구당은 지구당원들이 주인이지, 지역구 현역의원이나 지구당 위원장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지구당를 끌고 가면서 다음 총선을 준비하는 것도, 총선에 임박해서 의원 후보를 선출하는 것도 다 지구당원들이다.

이 말은 영국 하원의원은 지구당의 선출에 의해 지역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받아 지역구를 대표해 의회로 가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지역구에서는 일개 당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언뜻 이해가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주식회사에서 주식을 가지지 않은 대표이사라 보면 제일 정확하다. 언제든지 이사회에서 대표를 갈아 치울 수 있다는 뜻이다.

자민당 소속인 에드 데이비 장관의 지구당 사무실. 열성당원이 기부한 건물이다.
자민당 소속인 에드 데이비 장관의 지구당 사무실. 열성당원이 기부한 건물이다.

당원들도 당의 정신이 좋아 당 활동을 하는 것뿐이지 의원 개인의 조직원이 아니다. 심지어는 현역의원이 지구당원들의 불신임에 의해 다음 총선에서 후보가 되지 못하고 교체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영국의 하원선거는 유권자들이 거의 당을 보고 투표를 하지 후보 개인을 보고 투표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누구를 후보로 뽑건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현역의원은 지구당 사무실 직원에 드는 경비를 하원의원 자격으로 국고에서 지원받으니 지분을 주장할 수 있다. 그래도 지구당원들이 지구당 사무실에서 일하는 하원의원이 뽑은 직원들이 싫다면 그들은 바로 짐을 싸서 따로 사무실을 내 나가야 한다. 이는 지구당과 하원의원의 역학관계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영국 지구당원들은 총선에서 지역구 하원의원 후보로부터 활동자금을 받고 그의 선거운동을 해 주는 것이 아니다. 되레 자신들의 돈으로 인쇄물을 만들고 돌린다. 심지어는 지역구 본부에서 내려오는 홍보물을 당원들끼리 돈을 추렴해 사가지고 와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각 집으로 돌리는 일까지 한다. 하원의원 후보로부터 활동자금이나 밥을 얻어 먹기는커녕 자신들 돈으로 홍보물을 만들어 유권자 집으로 돌리는 일까지 하면서 하원의원 선거운동을 해 준다는 게 믿어지는가.

지역 하부조직인 동네 구역 담당 당원들은 ‘지역구 본부로부터의 홍보물 구매경비’라는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경비를 조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역구 하원의원이나 중앙당의 유명 정치인을 모셔다가 식사 대접하면서 활동자금을 모은다. 거의 3년 전인 2012년 6월 내가 속한 올드몰든 자민당 동네 조직이 데이비 장관을 모시고 토요일 저녁 한식 뷔페를 연 적이 있다. 현역 집권 여당 의원이자 장관 부부가 주말 저녁에 참석한 파티 모금액이 120파운드(19만3680원)였다는 사실은 주간조선 2333호(2014년 11월 24일자) ‘영국 정치자금’ 기사에서도 밝혔지만 ‘정말 눈물겨운 금액’이다. 의원은 그래도 참석을 해준다. 골수당원들이 활동을 해주어야 자신이 다음 총선에 당선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국 지구당원은 의원을 위해 해주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의원도 결코 당원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니 영국 정치는 돈이 들지 않고, 정치인은 검은돈의 유혹에서 초연할 수 있다. 사실 돈을 쓰려야 쓸 돈도 없지만 워낙 선거법이 엄격해서 돈이 있어도 쓸 수가 없다. 영국 총선 경비는 총선을 선언하고 하원이 해산한 날 100일 전부터 카운트된다. 이때부터 각 지역구가 쓸 수 있는 활동경비에 제한이 생긴다. 이번 총선의 경우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올해 3월 30일까지의 경비 총액이 3만700파운드(4950만원)를 넘으면 안 된다. 3월 30일부터 5월 7일 총선일까지는 법정 선거경비 8700파운드(1402만원)에다가 추가로 유권자 한 명당 시골은 9펜스(145원), 도시는 6펜스(97원)를 더 쓸 수 있다. 영국 총선 유권자가 4610만명이라니 이를 영국 하원의원 650개 지역구로 나누면 평균 7만명이다. 그러면 하원의원 해산일부터 총선일까지 한 지구당 총선경비로 쓸 수 있는 금액은 기본 8700파운드에다가 1인당으로 계산한 4200파운드(7만명×0.06파운드)를 더하면 겨우 1만2900파운드(2820만원)꼴이다. 이 금액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국 하원의원은 650명이나 된다. 영국 인구가 6320만명이니 하원의원 한 명이 국민 9만7000명을 대변한다. 하원의원 숫자가 이렇게 많다 보니 정말 큰 벼슬이 아니다. 실제 하원의원 한 명의 영향력은 미약하다. 하원의원과 밥을 먹는다고 사업에 도움될 일도 없고, 의원과 가깝다고 사법기관에서 봐주지도 않는다. 의원과 자주 만나 밥 먹는다고 사람들이 더 우러러 보지도 않는다. 사실 의원 만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 굳이 돈 써가면서 만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영국도 상하원 의원들의 돈 문제로 나라가 들썩인 적이 있긴 하다. 바로 의원들이 자신들에게 허용된 경비청구 규정의 허점을 이용해 경비를 과다청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09년 텔레그라프지 기사로 촉발됐다. 당시 하원의원 650명 중 389명이 문제가 되어 결국 많은 의원이 일부 경비를 반환했다. 현역 장관 6명이 사임하고 그중 ‘악질’ 7명은 감옥에 갔다. 그런데 그 금액이 참 어처구니없다. 2만~3만파운드가 고작이고 제일 큰 금액이 18만파운드(2억9000만원)였다. 그런데 데이비 장관은 경비 추문 사건에도 연루되지 않았다. 그에게 “당신은 경비 문제에 연관 안 된 의원 중 하나인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나”라고 묻자 그의 답이 걸작이다.

“나는 초선 때부터 경비를 적게 신청하기로 결심했다. 예를 들면 지역구를 돌아다니기 위해 드는 각종 자동차 유류대 같은 경비는 모두 청구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구에서 의회로 가는 기차비도 청구가 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전혀 청구하지 않았다. 지난 18년간 (그렇게 경비를 청구했으면) 총액만 해도 엄청난 금액이 됐을 것이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면 떳떳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법정금액만큼을 딱 청구했어도 사람들은 색안경을 쓰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적게 신청했다.”

놀라울 정도의 선견지명이다. 32살의 초선 청년 의원의 머리에서 어떻게 그런 현명한 결정이 나올 수 있었는지 놀랍다. 경비 추문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경비 청구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도 데이비 장관은 그런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 “사실 이런 돈(경비 청구)은 검은돈 중에서는 적은 돈이다. 실제 큰돈은 법과 규정을 바꾸어주기 위해 오고 가는 로비 자금이다. 그래도 영국 의원들은 어느 나라 의원들보다 깨끗하고 열심히 일한다. 우리 같은 장관들은 어디 가서 누구를, 무엇 때문에 만나는지 다 보고해야 한다. 선거자금도 무조건 다 선명하게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경비 추문 사건이 역설적으로 영국 의원들이 깨끗하다는 것을 방증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 하원의원의 세비는 1년에 6만7060파운드(1억800만원)다. 2008년 6만3291파운드로 시작해서 지난 7년 사이 겨우 6%가 올랐다. 물가 비싼 영국에서 보면 그야말로 박봉이다. 영국 정치는 옛날부터 돈 있는 집안의 자제가 사명처럼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긴 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아닌데도 영국 물가에 비해서는 터무니없는 세비를 받는다. 점잖은 영국 의원들이 경비를 과다청구하면서 정부의 푼돈에 연연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살기가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데이비 장관은 한국에도 5번이나 온 경험이 있다. 두 번은 의원이 되기 전 경영컨설턴트 일을 얻어보려고 왔는데 실패했다고 한다. 그리고 야당 의원으로 한 번, 2012년 장관이 되고 나서 두 번 한국에 왔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이 아주 멋진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고 방한이 유익했다”면서 자신의 지역구 한인들에 대해서도 정치적인 멘트를 날렸다. “영국 국적을 취득했건 안 했건 한인들은 다 내 지역구 주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한인 커뮤니티와 가깝게 지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학교 다닐 때부터 환경문제를 전공했고, 정치인으로서도 환경이 주된 관심사라는 그는 “자민당은 보수당보다는 노동당과 더 가깝다. 보수당과 연립정부를 해서 잃은 것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면서도 “우리가 연립정부의 일원이 아니었으면 하지 못했을 일들을 정말 많이 했다”고 현 보수자민연립 내각을 자평했다. “밖에 있으면서 소리만 지르며 반대를 했다면 못 막았을 보수당의 나쁜 정책을 우리가 (내각에) 있으면서 막았다. 물론 우리 자민당이 지키려던 전통적 가치를 양보해서 지지자들이 많이 이탈하고 다음 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리라 예상되지만 그래도 우리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57석의 우리가 306석의 보수당을 이길 수는 없다. 양보하고 타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최고 학력(명문사립 중고등학교와 옥스퍼드대)을 가진 엘리트지만 개인적으로는 아픔도 겪었다고 한다. 그는 4살에 아버지, 15살에 어머니를 잃고 외조부모 손에서 자랐다고 자기의 과거를 소개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내 아들은 지체부자유자다. 나는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순간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상황의 사람들을 만난다. 나는 그들에게서 삶을 배우고 있다”며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은 편(I am OK)”이라고 말했다.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영국인 재발견’ 저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