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에 대해서 한국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방미 전부터 한국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에 서울 주재 일부 일본 기자들은 “마치 한국의 지도자가 미국을 방문하는 것 같네”라고 비아냥거렸다. 또 아베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에 대한 반대 또는 방해하는 움직임은 일본의 국민감정을 크게 자극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한국이 과연 일본의 우방인가”라고 한국에 대한 비난과 혐오감정이 더 확산됐다.

한국은 미·일관계 긴밀화에 심기가 불편한 것 같다. 지금까지 줄곧 ‘아베 때리기’를 즐겨 온 한국 언론은 미·일 긴밀화에 불만, 불안, 비판, 걱정을 토로하고 있는데 과연 이것이 정확한 정세 판단일까.

한국 언론이 아베 방미의 최대 과제를 역사 문제, 즉 위안부 문제인 것처럼 보도한 것은 오보나 마찬가지다. 미·일관계 강화가 한국에 왜 도움이 안 되는가. 국제화 시대에 있어서 국제 정세나 국제 관계에 관한 일방적이고도 잘못된 인식은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

한국에는 6·25전쟁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 예부터 몇 가지 왜곡된 속설이 있다. 예를 들어 남북분단에는 일본도 책임이 있고 6·25 때 일본은 돈벌이만 했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최근에도 정몽준 전 의원이 새삼스럽게 그것을 주장하고 있다.(동아일보 4월 27일자 시론 ‘일본은 좋은 이웃인가?’)

전자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일찍 항복했더라면 소련의 한반도 진주, 즉 남북분단이나 6·25는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결과론에 불과하다. 이 주장은 일본이 더 늦게 항복했더라면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해서 분단은 없었다는 이야기도 가능하다. 이것은 엉터리다. 남북분단은 일본의 책임이 아니다. 분단은 광복 후 미국과 소련의 분할지배를 추진한 연합국과 미·소(美蘇) 지배를 배제 못했던 한민족의 역량 부족 탓이라고 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6·25 때 전쟁특수로 이익을 얻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도 한국이 베트남전쟁 때 많은 돈벌이를 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과론에 불과하다. 일본이나 한국은 돈벌이를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6·25의 진실과 국제적 상식으로 말하자면 그 당시 일본이 후방기지로서 이웃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과 유엔군은 대북전쟁을 유지하고 한국을 지킬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몽준 식으로 말하자면 6·25전쟁이라는 한반도 유사시에 있어서 오히려 일본은 ‘좋은 이웃’이었다.

이번에 아베 방미를 통해 미·일관계 강화의 일환으로 안보문제에서 새로운 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이 체결됐다. 지금까지 일본 자위대는 헌법상의 제약에서 미군에 대한 지원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지만 앞으로는 많은 분야에서 미군을 도와줄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미국은 일본을 군사적으로 전면 지원하게 되어 있는데도 일본은 미국을 지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진정한 동맹국으로서 서로가 군사적으로 도와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본 국민 사이에는 2차 세계대전의 교훈 때문에 아직 평화지향적이고 ‘전쟁 알레르기’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 ‘미군의 전쟁에 일본이 휘말리게 되는 것은 싫다’는 반대론도 많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미·일동맹 강화를 위한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의 현실적 선택이다.

앞으로 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대중국 방위전략과 한반도 유사시에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한국의 최대 관심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이다. 한국에서는 미·일 신가이드라인에 따른 ‘일본의 개입’에 반대나 경계가 심하다.

그 배경에는 ‘일본은 한반도에 대해서 다시 야욕을 품고 있다’ ‘일본은 한반도에 개입하고 싶어한다’라는 근거 없는 전망이 깔려 있다. 하지만 그 유일한 근거는 ‘과거 일본에 지배당했기 때문에 혹시나 또’라는 것뿐이다.

현재 일본에서 그러한 전망은 상상도 못하는 허구에 불과하다. 나는 매월 두세 번 일본을 왕래하는데 지금 일본 국민은 한국에 대해서 짜증을 내고 한국과 떨어져서 지내고 싶어한다. 아무도 개입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가 참석하는 TV토론이나 인터뷰, 좌담회에서는 “이제 한국에는 될 수 있으면 관여 안 하는 게 좋다” “한국과의 교제는 그만하자”라는 등의 국교 단절론까지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한반도 유사시에 대해서도 “왜 일본이 반일국가인 한국을 지원해야 하느냐” “자위대의 한반도 파견 같은 것은 말도 안 된다” “지원해 달라고 해도 거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일본에서의 반한·혐한 감정은 내가 놀랄 정도이다. 그 결과, 될 수 있는 대로 한국을 멀리하자는 ‘탈한론’ ‘이한론’이 만연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일본에 대해서 나쁜 이야기만 하는 한국과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 TV토론에서 나온 이야긴데 “대통령이 천년이 지나도 피해자의 한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나라와는 잘 지낼 수 없다. 그러한 한이 많은 나라에 일본이 또다시 개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일본 정부가 외교적으로 한국을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에서 뺐다(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는 것은 상징적인 일이고, 대중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일본인 관광객 급감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개입은 현대 일본 사람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인데, 문제는 한국 사람들이 한반도 유사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다.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 자위대가 미군을 지원하는 것을 ‘일본의 한반도 개입’이라고 해서 싫어한다면 한국이 미국에 대해서 일본 배제를 요구해야 한다. 만약에 일본의 미군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에 대한 ‘대한반도 야욕’ 같은 있지도 않은 망상적인 비난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또 과거사라는 역사적 기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미군 지원을 거부해야 한다. 서두에 소개한 정몽준 의원처럼 6·25에 대해서 ‘일본은 돈벌이만 했던 안 좋은 이웃’이라는 소박하고 단순한 역사 인식 속에서는 일본의 지원은 당연히 거절해야 할 것이다.

안보 문제는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면서 대응책을 생각하는 것이다.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의 지원은 필요한 건지 필요 없는 건지 한국은 대내외적으로 그 대답을 아직 명확히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없는 채로 역사적인 피해자라는 기억을 즐기면서(?) 아베 때리기에만 열을 올리는 것이 지금의 한국이다.

한국이 미·일관계 강화에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는 것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집착해 ‘일본이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다’는 허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세계는 그렇지 않다. 최근에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들이 모였던 자카르타의 반둥회의 6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보았다시피 일본은 결코 고립되어 있지 않다. 아사히신문조차도 과거사에 대한 사과가 없다는 아베 연설에 불만을 제기한 나라는 없었다고 전했다. 아베 연설을 비난한 나라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한국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한국이 고립돼(?) 있는 것 같다.

아베 방미에 대한 한국 언론의 주된 관심사는 위안부 문제였다. 너무나 시야가 좁다. ‘팽창하는 중국에 대비하는 미·일동맹 강화’라는 미국과 일본의 관심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한국은 과거사와 일본 비난에 집착한 나머지 국제 정세의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미·일 긴밀화와 한·미·일 삼국관계 회복은 한국이 걱정하는 ‘아베 폭주’를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일관계 강화를 환영하고 싶지 않은 한국은 중국의 틀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 주재 객원논설위원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 주재 객원논설위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