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70년 전 적인 일본을 오른팔로
중국은 자신의 이익에 맞춰 일본 이용
한국만 과거에 발목 잡혀 미래 고민 외면…
지난 4월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백악관 남측 잔디밭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활짝 웃고 있다. ⓒphoto AP
지난 4월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백악관 남측 잔디밭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활짝 웃고 있다. ⓒphoto AP

4월의 워싱턴은 매년 ‘일본 해방구’처럼 느껴진다. 워싱턴 전체가 일본 열기로 뒤덮인다. 겨울을 끝내고 찾아온 봄의 전령사 벚꽃 축제 때문이다. 포토맥 강변과, 의회와 링컨센터를 가로지르는 동서 몰(Mall) 전체가 벚꽃 행렬이다. 100여년 전 도쿄(東京)에서 입식된 벚나무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이 시기 일본 관련 문화행사가 수많은 문화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활짝 핀 벚나무도 보고, 무료로 이뤄지는 일본 문화의 정수를 즐기려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지난 4월 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미국 방문은 바로 이같은 시기에 이뤄진, 2015년 워싱턴 일본 시즌의 하이라이트였다.

아베의 행보와 행적은 방문 기간 내내 실시간으로 한국인에게 전달됐다. 공교롭게도 아베의 미국 방문 직전 박근혜 대통령의 중남미 4개국 방문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무슨 일로 어떤 나라들을 갔는지,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에 대해 관심 있는 한국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산 방탄자동차 시승과 누적된 피로로 ‘링거 순방’을 한 박 대통령의 ‘애처로운’ 모습만이 떠오른다. 박 대통령 외유보다 아베의 워싱턴 국빈 방문 소식에 더 이목이 집중됐다.

한국의 신문 방송은 아베의 워싱턴 행적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아베의 이번 행보가 동아시아 판세에 변동을 몰고 올 것으로 분석했다. 안보 분야는 변화의 핵이다. 종전의 미·일안보협정을 개정한 신(新)가이드라인, 즉 ‘미·일동맹2.0’이다. 북한과 중국 견제가 주 목적이라고 하지만, 작전영역을 글로벌 차원으로 넓혔다.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일체화다. 따라서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중국이 점령할 경우 미군은 자동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동맹과 기습’은 일본 외교를 상징하는 두 개의 키워드다. 일본은 세계로 향한 근대외교의 출발점을 ‘동맹’에 둔다. 1902년 1월 30일 맺어진 영·일(英日)동맹이 그 시작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일본이 역사상 처음으로 맺은 동맹 파트너다. 19세기 말 세계 도처에서 열강과 충돌해온 영국은 100여년간에 걸친 ‘영예로운 고립’에서 벗어나 일본과 손을 잡았다. 당시 가상의 적은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아시아로의 세력 팽창을 노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일본은 영·일동맹 구축 2년 뒤 러시아와의 결전에 들어선다. 일본의 기습이었다. 러시아 기지였던 다롄(大連)항을 전광석화식으로 점령하고, 반격에 나선 발틱함대도 전멸시킨다. 동맹과 기습을 통해 러시아를 궤멸시키고, 영국에 준하는 열강의 지위를 획득해낸다. 1941년 3월 일본은 독일·이탈리아와 3국 동맹에 들어간다. 9개월 뒤 진주만 기습공격에 나선다. 동맹, 기습으로 본 일본 근현대사의 승률은 1승1패다.

군사전문가가 판단할 문제지만, ‘미·일동맹2.0’은 역사상 최고 최강 수준에 올라선 군사동맹이 아닐까? 기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핵공격도 가정한, 냉전 당시 구(舊)소련을 적으로 한 막강한 군사동맹이지만 유럽을 범주로 한 지역동맹에 불과하다. 미·일동맹은 전 세계, 아니 우주까지 나아가는 무한대 영역의 군사동맹이다. 현재 일본의 경제력은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을 합친 것보다 크다. 군사력·경제력에서 세계 1위인 미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미·일동맹2.0’이 역사상 최강의 양자동맹이라는 평가는 과장이 아닐 수 있다.

아베 관련 국내 기사를 보면, 역사문제 관련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베에게 보내는 충고’ ‘일본을 연민한다’ ‘일본에 보내는 경고’ 등과 같은 비장한 제목의 글들이 눈에 띈다. 일본군 위안부에게 사죄하지 않은 아베의 역사인식을 질타한다. 아베를 하대(下待)하는 기사도 넘친다. ‘뒷문으로 들어간 아베’ ‘하버드 대학생의 돌직구 질문’ ‘책임회피 물타기의 달인’ 등과 같은 기사다. 일본 군국주의 부활에 관한 우려 섞인 기사도 빼놓을 수 없다. 다 옳고, 시의 적절한 얘기다. 그러나 결론은 ‘골목대장’이다. 워싱턴, 미국, 나아가 세계에 통하는 비판이 아니다. 우리끼리 골목에서나 들을 수 있는 고만고만한 목소리만이 내내 울려퍼졌다.

이 시점에서 한국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골목대장의 훈계와 분노 속에 가려진, 정작 중시해야 할 문제들이다. 한국 신문 방송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가 손을 잡고 선언한, ‘미·일동맹2.0’에 대한 한국의 대응방안은 없다. 역사문제에 무심한 아베와, 거기에 장단을 맞춘 미국을 한국은 앞으로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는가? 중국을 가상 적으로 삼은 미·일동맹 앞에서 한국의 대중(對中) 정책은 장기적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 ‘미·일동맹2.0’을 맞이해 한·미동맹은 어떤 식의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이러한 엄중한 질문을 둘러싼 논의나 토론이 없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미·일동맹2.0’은 일찌감치 예상된 수순이었다. 최근의 미·일 관계를 이해한다면 ‘미·일동맹2.0’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변화였다.

일본군 위안부, 독도, 고노(河野)담화는 이미 선포된 ‘미·일동맹2.0’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미국 전역에 동상을 만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해도, 한국 국회의원이 미국 의회 앞까지 와서 1인 시위를 한다 해도,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해주는 지도가 일본 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되고 고노담화가 하루에 한 번씩 제창된다고 해도 이미 발표된 ‘미·일동맹2.0’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참여를 거부한 미·일 중심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의 확산, 오바마가 공식 지지한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입 문제도 역사문제와 무관하다.

정확한 정세 판단은 오늘과 내일을 위한 대안이나 국가전략에 필수불가결하다. 골목을 넘어선, 우물 안을 넘어선, 한반도를 넘어선 대응방안을 원한다면 객관적·거시적·장기적 차원의 정세 판단이 요구된다. 반(反)아베와 반일(反日)이 대세로 자리 잡는 동안 한국 외교는 아전인수, 견강부회식 논리로 점철돼 왔다는 것이 워싱턴에서 바라본 필자의 시선이다.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도 역부족인 상태가 2015년의 한국 외교다. 이하 몇 가지 측면의 정세 분석을 통해 내일의 대안을 모색해본다.

21세기 외교에서 역사문제는 수단일 뿐 목적도 이념도 아니다

잘 알려진 대로, 박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나 독도 문제와 같은 역사문제를 한·일, 나아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외교의 핵심논제로 잡고 있다. 역사문제에 관한 일본 측 반성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일본과의 문을 전부 걸어 잠근 상태다. 역사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배수진 정책이다.

사실, 역사문제 그 자체를 한국 외교의 목적으로 삼을 경우 해결책은 간단하다.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 된다. 책임회피와 애매한 자세로 일관하는 일본에 한국의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 바로 전쟁이다. 일본을 무력으로 누르고 강제로 실현시키면 된다. 그러나 그같은 상황은 불가능하다. 일본군 위안부 등 역사문제가 목숨을 걸고 싸울 만한 명분인지에 대해서는 한국인 모두가 주저할 것이다. 역사문제는 과거의 문제다. ‘미·일동맹2.0’을 통한 일본의 부상은 현실, 그리고 미래다.

한·미동맹이란 관점에서 미국이 우리의 역사문제에 응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한국 유권자가 많은 미국 지역구 내 몇몇 국회의원들이 우리를 위해 앞장서 있을 뿐 백악관, 의회, 국무부, 국방부 모두가 과거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은 평화로운 일요일 진주만을 공격한 과거의 적을 현재 자신의 오른팔로 받아들이는 나라다.

아무리 짝사랑을 해도 중국은 중국의 이익만 추구할 뿐이다

지난 4월 2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아베를 만났다.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악수로 아베를 맞이했다. 5개월 전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냉대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역사문제를 앞세워 중국과 함께 일본과 맞서던 한국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판이다. 중·일 정상회담에서 주목할 점은 두 사람의 만남이 어디서 출발했느냐다. 구체적으로 누가 먼저 제의했는가라는 부분이다. 아베는 한국에서 ‘박 대통령 스토커’로 불린다. 물론 아베는 시진핑과의 만남에도 한층 더 열심이다. 아베가 부탁해서 만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아베에 앞서, 중국이 제안해서 양국 정상회담이 ‘황급히’ 열린 것이다. 중국이 외교채널을 통해 아베 측에 제안해서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시진핑과의 만남에 목을 매던 아베지만, 정작 공식적인 동인(動因)은 중국에 있다. 중국은 중국의 이익에 맞춰 일본을 상대할 뿐이다. 한국을 고려한 역사문제는 애초부터 없다.

아베가 아니라, 오바마와 미국이다

‘미·일동맹2.0’은 아베의 단독 작품이 아니다. 미국이 주도하고 구상하며 진화시킨 21세기 글로벌 안보 구도다. 필자의 개인적 판단이지만, 미·일동맹2.0에서의 역할이나 기능을 보면 아베의 일본이 40%, 오바마의 미국이 60%의 비율을 점하지 않을까 싶다. 40 대 60의 기준이 모호하겠지만, 일본도 필요하던 차에 미국이 주도하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미·일동맹2.0’이 탄생한 것이다.

지난 4월 14일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부에서 제외했다. 전면적인 경제제재 해제도 임박한 상태다. 이라크 철군을 단행한 인물이 오바마란 점을 감안할 때 크게 놀라지 않을, 그저그런 뉴스로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세상을 뒤집어놓을 만한, 미국 외교의 대변신이다. 쿠바는 미국 코앞에서 핵무기를 쏘려고 작정했던 나라다. 케네디 대통령이 비밀리에 수행한, 1961년 4월 피그만(Bay of Pigs) 쿠바탈환 작전을 물거품으로 만든 인물이 카스트로다. 카스트로와 그의 가족들이 존재하는 한 쿠바를 경제적으로 질식시키겠다는 것이 케네디 이후 미국 외교의 철칙이다. 카스트로를 피해 미국에 망명한 쿠바계 이민자는 경제제재론을 지지한 중심세력이다. 오바마는 그 같은 61년간의 역사를 한순간에 끝장내 버렸다.

현재 막판 협상 중인 이란도 오바마가 구상하는 ‘제2의 쿠바’가 될 것이다. 현재 미국은 자국 외교관 70여명을 444일간 억류했던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고 국제사회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체인지(Change)’를 앞세운 오바마는 70년 전 적대국이던 일본도 최상 최고의 파트너로 맞아들였다. 아베도 원했지만, 사실 오바마가 일본을 끌어들인 것이다. 아베는 그같은 상황에 맞추면서 일본의 국익을 빠짐없이 챙기고 있다. 재삼 강조하지만, 아베와 일본의 역할은 40%의 조연급이다. 오바마와 미국이 ‘미·일동맹2.0’의 진짜 주인공이라는 것이 워싱턴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역사문제가 외교 현안 전부인 나라는 한국과 북한이 유일하다

“신경 쓸 필요가 없다(気にする必要ない).” 지난 4월 23일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총무회장이 기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하루 전날인 22일,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이뤄진 아베 연설에 관한 스스로의 평가다. 아베가 한국과 중국에 대해 역사 관련 ‘사죄(おわび)’를 하지 않았다는 당내 비판에 대한 반응이다. 그는 “(자민당) 내외에서 이해하는 사람은 이해하니까 (사죄를 안 했다는 점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아베의 연설에서 과거에 대한 사죄 발언이 없는 점과 관련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강성 성명서를 내놓았다. 니카이의 발언은 자민당 내 반(反)아베 세력만이 아니라, 한국 외교부의 성명에도 정면대응하는 내용이다. 일본인의 캐릭터가 그러하듯, 일본 정치인은 책임을 지지 않는 애매한 표현으로 상황을 풀어나간다. 상대를 아예 무시하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식의 도발적 발언은 극히 예외적이다.

니카이의 발언은 일본의 우향우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죄 문제에 관한 다른 나라의 ‘우호적 반응’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반둥회의에 참가한 아시아 제국(諸國)들이 내보인, 한국과 다른 역사인식이다. 먼저 말레이시아 장관이다. “사죄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일본 점령이란 어두운 시기, 잔혹한 시기를 아시아인들 모두가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빈곤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 나갈지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시기다.” 미얀마의 외상도 덧붙인다. “침략이나 사죄 문제에 관해서는 특별히 덧붙일 말이 없다. 아시아·아프리카 국가와의 협력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 아베의 연설이었다.” 캄보디아 외상은 어떨까? “사죄 문제는 아베 스스로가 판단해서 언급할 문제이다.” 인도네시아 외무차관도 자국의 입장을 밝혔다. “사죄 문제가 아베의 연설 속에 없었다는 것을 문제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주된 관심은 일본이 얼마나 아시아·아프리카 경제권에 적극 관여하는가라는 부분이다.”

필자의 판단을 한심하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일본과의 역사문제를 이슈화하는 나라는 한국, 중국, 북한에 국한된다. 옳고 그르고가 아니라 현실이 그러하다는 말이다. 시기나 상황에 맞게 부분적으로 문제시하는 경우는 있지만, 아예 외교 현안의 전부로 잡은 나라는 한국과 북한이 유일하다. 중·일 정상회담에서 보듯 중국은 이미 미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른 아시아권 나라들 입장에서 보면 경제교류와 인도적 지원, 중국의 해양위협에 대한 원군(援軍)으로서의 일본에 대한 기대가 한층 더 크다. 일본의 경제력과 로비력이 이의 배경이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역사문제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니카이의 반응은 바로 그같은 배경에서 터져나온 확신에 찬 발언이다.

늙어갈수록 세상 변화에 무심하게 된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착각한다. 과거의 향수와 기억을 더듬는 ‘흑백사진’은 언제부턴가 한국 신문 방송에 자주 나오는 새로운 트렌드가 돼버렸다. 상대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현재 미국과 일본의 중심은 한국 2030세대의 세계관에 준하지 않을까 싶다. 젊은 세계관으로 내일을 개척하는 나라가 미국과 일본이다. 경제·사회·문화·군사·역사를 보는 눈이 ‘흑백사진’에 젖은 세대들과는 전혀 다르다. 오바마는 ‘밀레니엄 세대’라 불리는 1980년대 말 이후 출생 세대들의 우상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전후 무려 40여년간 일본 사회의 중추로 활약해온 1960년대 말의 단카이(団塊)세대가 퇴직하면서 버블세대와 2030세대가 뒤를 잇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국수주의자 아베지만, 일본의 젊은이들은 ‘국위를 선양하는 늠름한 지도자’로 평가한다. 집권 3년도 안 돼 주가를 2배로 끌어올리는 지도자는 선진국 역사상 유일무이할 듯하다. 일본 리크루트사가 조사한 2016년도 3월 졸업생의 대졸구인배율(大卒求人倍率)은 1.73배가 된다. 구직을 원하는 사람이 1명인 데 비해, 기업은 1.73명을 필요로 한다는 의마다. 취직을 원하는 대학생은 전원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베가 청년들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거창한 이념과 무관하다. 취업률 상승과 더불어, 기업 총수에게 찾아가 젊은이들의 월급을 올려달라고 닦달하는 모습에 감동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로부터 참혹한 전쟁 얘기를 들으면서 자란 세대가 일본의 베이비붐과 단카이세대다. ‘미·일동맹2.0’은 두 세대가 역사상에서 사라지면서 나타난, 전쟁 당시의 기억과 무관한 세대들의 작품이다. 한국은 어떨까? 아직 전후세대가 건재하다. 연령으로 보면 70대로 접어들지만,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설령, 스스로 아직 젊다고 해도 생각은 ‘흑백사진’이다. 자타가 공인하듯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역사상 처음으로 산업화를 일궈낸 박정희의 그림자가 21세기까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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