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26일 이후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는 사람이 있다. 대한노인회 이심(76) 회장이다. 대한노인회가 현행 65세인 노인연령을 상향 조정하도록 공론화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이 사회 전체에 신선한 파문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주요 신문과 방송이 복지혜택을 양보함으로써 젊은 세대의 부담을 덜겠다는 대한노인회의 결정을 주요 기사로 다뤘다.

대한노인회 중앙회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안에 있다. 1969년 설립된 대한노인회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거느린 단체다. 65세 이상 노인은 현재 665만명. 대한노인회는 6만2000개의 경로당 외에도 취업지원센터, 노인지원자원봉사센터를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 142억원의 국고보조를 받았다.

기자는 지난해 2월에도 이심 회장과 인터뷰한 바 있다. 당시는 대한노인회장 재선에 성공한 직후였다. 이 회장은 기업 임원·잡지 발행인을 거쳐 잡지협회 회장(2001~2005)·노년시대신문 발행인(2005~2010)을 지낸 바 있다.

지난 6월 1일 오후 대한노인회 회장실에 들어섰다. 이 회장 책상 위에 작은 카네이션 꽃다발이 보였다. 카네이션 꽃다발에는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리본이 달려 있었다.

“오전에 회관 앞에서 어떤 청년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대한노인회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성명서도 발표했지요. 꽃다발 전달식을 할 테니 나보고 나와달라고 하더군요. 자리를 피했습니다. 내가 무슨 꽃다발을 받으려고 이런 결정을 한 것도 아닌데….”

기자회견을 가진 단체는 청년이여는미래(대표 신보라). 기자회견 제목은 ‘세대간 화합과 지속가능한 미래의 시작, 노년세대의 결단과 용기에 감사!’였다. 신보라 대표는 “청년세대의 세금부담을 줄이고,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한 대한노인회의 노인연령 상향조정 공론화 결정에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대한노인회 측은 노인연령 상향조정 공론화를 결정하게 된 이유로 사회적 인식과 노인의 건강상태를 들었다. 이심 회장에게 사회적 인식 변화에 대해 먼저 물었다.

“노인들은 65세가 무슨 노인이냐, 65세는 청년이라고 말합니다. 70세나 75세가 되어야 노인으로 인정된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고, 노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65세를 노인으로 한 것은 50여년 전 UN에서 정한 겁니다. 15세에서 64세까지를 일하는 노동인구, 즉 생산연령으로 본 겁니다. 지금은 그때와 하늘과 땅 차이잖아요. 65세가 넘어도 대부분 일을 하잖아요. UN 가입 230여개국 중 65세를 노인연령으로 정한 나라는 100여개국에 불과합니다. 130여개국이 모두 상향조정했어요. 노인연령 상향조정은 세계적 추세입니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대표적인 복지선진국이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67세부터 노인으로 분류한다. 복지선진국의 경우 연금수급 개시 연령을 노인연령으로 정했다.

노인의 건강상태는 30년 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나이는 60대 후반이면서 건강과 체력은 50대인 사람이 수두룩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집안의 큰 행사였던 환갑잔치가 사라진 게 60대의 건강 상태를 방증한다. 평균 수명과 건강 수명이 매년 연장돼 ‘100세 시대’ 도래가 전혀 무망한 소리가 아니다. 최근 tvN에서 방영한 ‘꽃보다 할배’는 노인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일반인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지만 2011년 지하철 무임승차가 사회적 이슈로 불거진 적이 있다. 당시 일각에서 노인연령 상향조정 이야기가 잠시 나오기도 했다. 이때 노인연령 상향 조정 논의에 쐐기를 박은 사람이 대한노인회 이심 회장이었다. 4년 전과 4년 후의 상황이 어땠길래 이심 회장은 반대했을까. 이 회장은 당시 조선일보에 ‘현 수준의 복지와 사회보장시스템 속에서는 시기상조’라는 내용의 기고를 한 적이 있다.

‘우선 현 노년세대는 과거 왕성한 경제활동 시기에 국가발전과 자녀양육에 헌신하며 노후는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된 것도 현 노년세대의 희생에 따른 것이며, 그 공(功)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2000년대 중반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5.1%로 OECD 국가 중 최악이었다. 이 때문에 2008년부터 기초노령연금제도가 시행됐다.… 그러나 국가와 국민이 이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는지 먼저 짚어봐야 한다. 앞으로 20년, 30년 앞을 내다보고 고민해 봐야 할 과제다.’

이런 분명한 반대 입장으로 인해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은 대한노인회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선거에서 노인표(票)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는 정치권에선 더욱 노인층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했다. 그 결과 2012년 대선 당시에는 여야가 모두 노인복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지난 4년 사회인식의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2014년 정부가 노인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노인`을 70세 이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조사 대상자 10명 중 8명(80%)꼴로, 2004년의 55.8%보다 크게 늘어났다. 오승근이 부른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노인회의 입장 변화는 이런 시대적 변화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65세 이상 노인이 받는 복지혜택을 살펴보자. 65세 노인은 665만명으로 전체 국민의 13.1%에 해당한다. 현행대로 가면 2030년에는 4명 중 1명(25%)꼴로 노인 비중이 늘어난다. 노인 70%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올해만 10조원의 예산이 든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지하철과 전철 교통비가 무료이다. ‘지하철 공짜’를 줄여서 65세 이상 노인을 ‘지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KTX·새마을호 주중 30%, 국내선 항공기 10%, 여객선 20% 할인 등 교통비 혜택이 주어진다. 이외에도 국공립 박물관·미술관·공원·고궁 등 공공시절 무료 이용 혹은 요금 할인 등의 경로 우대 혜택이 있다.

서울 용산구 임정로에 있는 대한노인회 중앙회.
서울 용산구 임정로에 있는 대한노인회 중앙회.

대한노인회의 노인연령 상향조정 논의 결정이 나오자 언론에서는 노인연령이 65세에서 5세 늘어난 70세가 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노인연령이 5세 늘어나면 매년 3조원의 복지예산이 절약된다고 분석했다. 이심 회장은 이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일부 신문에서 제목을 뽑은 것처럼 우리가 노인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리자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몇 세로 할지는 전문가 집단에서 다뤄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는 다만 복지혜택을 양보할 용의가 있으니까 전문가들과 정책 당국자들이 그런 논의를 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있을 수 있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은 4년마다 1세씩 늘려 20년에 걸쳐 노인연령을 70세로 조정하는 방법, 2년에 1세씩 늘리는 방법이 나오고 있다. 이심 회장은 어떤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이 회장은 “그건 제가 말할 입장은 아니라고 본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심 회장은 “대한노인회는 노인의 입장에서 이 논의에 물꼬를 터주는 것일 뿐 구체적인 세부 사항은 전문가 집단이나 정책 입안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한노인회의 캐치프레이즈는 ‘부양받는 노인에서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이다. 이 말은 달라진 노인의 심리를 대변한다. 노인은 부양이 아닌 스스로 독립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저는 복지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복지라고 하면,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줘서 살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노인은 4고(苦)에 시달립니다. 병고, 빈고, 고독고, 무위고의 4고입니다. 일자리 복지를 제공하면 4고가 다 사라지는 겁니다. 건강한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 복지입니다. 일자리를 주는 게 생산적 복지예요. 일자리가 없으면 우울증이 생기고 당뇨와 고혈압이 생깁니다. 그러면 반드시 중풍이 옵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나요? 요양원밖에 없어요. 요양원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못 봤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대한노인회의 노인연령 상향조정 제안이 새로운 노노(老老)갈등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노노갈등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도된 내용을 잘못 알고 노인들이 대한노인회에 전화해 항의성 문의를 한 게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전화가 오면 대한노인회에서 거기에 설명을 한 정도죠. 내가 볼 때는 반대를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60살 이상 노년층으로 이뤄진 노후희망유니온은 “노인연령 상향 제안이 65~69세 노인 168만명에 대한 표적사형 선고”라고 주장한다.

“(웃음) 잘 모르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65세에서 70세로 올리자는 게 아닌데요. 노인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회장인데, 노인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대한노인회가 있는 건데.(웃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청년취업난이 장기화되면서 언론에서 곧잘 등장하는 게 노년세대와 젊은세대의 세대갈등이다. 대한노인회장은 젊은 세대가 노인세대에 갖는 불만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지난 2월 3일 서울 마포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노인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배우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지난 2월 3일 서울 마포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노인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배우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글쎄요. 저도 종종 홈페이지에 들어가 일부러 댓글을 확인합니다. 어떤 댓글은 ‘회장님과 이사님들은 저축한 게 많으니까 그렇게 하겠지요’라는 댓글도 있더군요.(웃음) 전체적으로 보면 갈등이라고 볼만한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청년지식인포럼 이종철 대표라는 사람이 인터넷에 ‘여의도 금배지는 대한노인회를 본받아라’는 글을 띄웠더군요.”

대한노인회는 사회 현안에 대해서 어지간해선 대한노인회 명의를 빌려주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노인회는 가장 예민한 노인복지 문제에 불을 지폈다.

“보수진영에서 무슨 일을 할 때도 우리는 거의 단체 이름을 내비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반대해서가 아닙니다. 우파가 있으면 좌파도 필요한 거지요. 우리가 어느 한쪽 편에 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중심을 잡아주는 게 대한노인회죠.”

현재 한국에서 이 회장만큼 노인들의 생각과 심리를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 그의 일과가 전국의 다양한 노인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나누는 일이다. 연령 상향조정은 결국 노인 행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노인회에서 일하다 보니 깨달은 게 있습니다. 노인 70%가 기초노령연금을 받습니다. 나는 그렇게 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100세 시대’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행복지수가 높지 않아요. 그 원인을 규명해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노인 혼자만 노령연금 받아서는 결코 행복해지지 않아요. 손자가 원하는 직장을 잡아 일하고 자식들이 자기 역할을 잘하고 있어야 노인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겁니다. 사회는 같이 가는 겁니다. 한번은 서울역 앞 무료급식소에 가서 점심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공짜 점심을 드시는 분들이 음악이 나오니까 환하게 웃으시면서 춤을 추는 겁니다. 누군가 자원봉사를 하니까 그분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겁니다.”

이 회장은 전국의 경로당을 다니면서 “매월 20만원 받는 게 좋은 건 사실인데, 우리가 이렇게 받아도 나라가 괜찮은 거냐”고 걱정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우리 세대가 대한민국을 이렇게 괜찮은 나라로 만드는 데 역할을 했잖아요? 회사를 세울 때 초기에 일한 사람이 회사에 더 많은 애정이 있는 것처럼 다른 국민들보다 더 애국심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걱정스러운 일이 많은 상황에서 노인들이 대한민국호가 정상적으로 항해할 수 있도록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회장 역시 젊은 세대의 우려가 뭔지를 잘 안다. 노인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젊은이가 원하는 일자리와 전혀 질이 다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제주도 감귤농장에서 감귤따기를 젊은이가 하나요? 택배가 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을 경우 경로당에서 대신 전달해주는 일도 할 수 있고요. 치매 초기환자 돌보는 일은 노인이 제일 잘합니다. 노노 케어(老老 Care)는 노인들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젊은이가 하려고 합니까. 건강한 젊은 노인들을 경로당에만 앉아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바로 젊은층이 하려 하지 않는 사각지대의 일자리를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한 시간으로 예정된 인터뷰가 끝났다. 이 회장은 기자에게 이 말을 꼭 써달라고 당부했다.

“영원한 청년은 없습니다. 지금 젊은 세대는 노인이 안 되나요? 청년이 중년 되고, 중년이 노년 되는 겁니다. 노인연령 상향조정은 청년을 위한 백년대계를 세우자는 겁니다. 청년 세대의 미래를 위한 겁니다.”

조성관 편집위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