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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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공무원연금을 받는 사람으로서 정치권의 연금개혁을 유심히 지켜봤다. 한편으로는 내게 피해가 덜 오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나부터 미래세대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자’는 생각이 더 컸다. 기성세대들이 미래세대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후손들은 우리보다 훨씬 힘든 시대를 살아갈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카이스트(KAIST) 미래전략대학원 산하에 신설된 미래세대행복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경동(79) 서울대 명예교수는 주간조선과 만나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태어났더라도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10대 전후의 미래세대를 배려하기 위해 어렵겠지만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와는 지난 6월 1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에 있는 카이스트 경영대학 내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미래학 분야를 개척해온 대표적인 사회학자로 통한다. 그는 1968년 국내에 미래학회가 처음 태동할 당시 창립멤버로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미래학회에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한빈 전 경제기획원 장관,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 등 쟁쟁한 인사들이 참여했다. 미래학회는 1970~1980년대에 ‘미래를 묻는다’는 월간 단행본을 만들어 발표하는 등 미래사회에 대한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교수는 1990년대 후반 서울대 재직 시절 미래사회론이라는 미래학 강의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설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1977년부터 2002년까지 25년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이에 앞서 1965년부터 1967년 사이에는 서울여대에서 사회학과 교수로도 활동했다.

2002년 서울대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에도 KDI(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카이스트 경영대학 초빙교수 등으로 활동해 왔다. 1970년대 초중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에서 학생들에게 사회학을 가르쳤던 기간까지 합치면 54년 동안 사회학자로서 외길을 걸어왔다.

김 교수는 다가올 미래사회가 어둡고 불안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미래세대에게 전가될 사회경제학적 불안요인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에 현 세대가 고통분담 차원에서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연생태계는 계속해서 훼손되고 환경오염과 자원의 과다한 이용,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복지재정 악화 등이 미래세대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세대 간 소통단절과 문화적 간극이 커질 경우 자원배분의 공정성 문제가 세대 간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기성세대가 지금처럼 기득권을 고집한다면 미래세대는 우리가 누리는 번영을 맛볼 수 없다. 우리 자손들이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낙후된 사회로 내몰리고 있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기성세대에 있다.”

일례로 지난 5월 여야 정치권은 공무원연금 협상 과정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자는 내용에 합의하는 바람에 젊은 세대의 큰 반발을 샀다. 당시 20~30대들은 2060년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또다시 연금 재정의 책임을 젊은 세대에 떠안기려 한다면서 강하게 반발한 적이 있다.

김 교수는 미래세대를 위해 생태환경을 보전하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도 했다. 최근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지진과 쓰나미, 기후변화 등의 재앙이 빈번해진 것도 결국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 데 따른 ‘자연의 복수’라고 분석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풍요로워지기 위해 자연을 지나치게 간섭해 왔고 결국 우리의 삶은 황폐해지고 있다. 산업혁명이 초래한 환경오염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 와 있다. 인간의 욕구를 조절하고 미래를 위해 생태환경을 관리해 나가야 할 때다. 현재의 자연은 우리 세대만의 것이 아니다.”

김 교수는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복지선진국인 스웨덴과 독일도 복지정책을 하나씩 줄여 나가고 있다. 한국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무시한 채 특정계층에 대한 복지과잉으로 가고 있다. 이제 복지기득권을 내려놓고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 기업들은 단기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시민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자원의 과도한 이용으로 자본력을 갖게 된 기업들 또한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김 교수는 정부나 정치권이 정책과 제도를 만들 때 “미래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우선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래야만 세대 간 자원배분의 공정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후세를 위한 역할을 고민할 때 7세대를 내다봤다고 한다. 그들에게 미래는 20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고 있나. 모두가 미래를 위해 살고 있지만 현실에 급급한 나머지 미래를 의식할 여유가 없다. 이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후손에게 나쁜 영향을 줄 요인들은 기성세대가 제거해야 한다.”

김 교수는 노동조합이나 전교조 또한 기득권으로 변질돼 미래세대를 위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미래세대와 고용의 기회를 나누려 하지 않고 전교조는 교육의 본질을 바꾸기보다 조직의 이해를 대변하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요즘 노조는 기득권에 편입됐다. 전교조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미래세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득권을 포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후손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고용의 기회를 나눠줘야 한다. 임금피크제나 노동시간단축 등의 대안은 선진국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 교육방식도 인간관계, 가족관계가 다시 정상 가동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

김 교수는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통해 정치권에 진입한 386세대도 기득권층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진보적이라는 그들이 미래세대에 대해 언급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보상받고 출세한 정치인들이 정작 한국 사회의 약자를 위해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미래세대행복위원회가 그 창구 역할을 맡을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는 어린 후손들을 위해 먼저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들어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자는 게 우리 위원회의 설립 취지다.”

김 교수는 국회를 통해 가칭 ‘미래세대기본법’을 제정하는 등의 입법화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래세대행복위원회에는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의원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와 같은 선진국들은 이미 미래세대의 권리에 대한 조문을 헌법조항이나 기본법을 포함시켰다. 네덜란드는 1987년 헌법 제21조에 ‘미래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호 및 향상시켜야 한다’는 표현을 넣었고 독일은 기본법 제20조에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감에서 각 주는 법안과 법률에 따라 천연자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미래세대행복위원회는 올해 하반기부터 전국 광역자치단체를 돌며 ‘미래세대 2030열린토론회’를 주최할 예정이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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