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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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59)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난 1월 9일 경기도 파주 대성동 마을을 찾았다. 대성동 마을은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민간인 마을. 북측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북한의 선전마을인 기정동 마을과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있다. 두 마을 간의 거리는 불과 1.8㎞에 불과하다. 정 장관이 대성동 마을을 찾은 것은 지난해 7월 행정자치부 장관에 취임한 이후 처음이다. 지난 6월 17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12층 집무실에서 주간조선과 만난 정종섭 행자부 장관은 “1970년대만 해도 대한뉴스를 통해 마을 소식을 접했고 이번 방문 때도 어느 정도 수준으로는 관리가 돼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방문해 보니 상황이 달랐다. 마을 전체가 침체해 ‘자유의 마을’이라는 의미가 퇴색해 있었다. 주택 노후 문제는 한눈에 봐도 심각했다. 집 천장에는 쥐가 들끓었고 벽체는 곳곳이 갈라져 있었다. 단열재 없이 벽돌로만 조성해 주민들은 집안에서도 두꺼운 겨울옷을 껴입어야 했다. 상수도시설도 부실했고 노후전선으로 인한 화재 위험에도 노출돼 있었다. 게다가 주택 51개동 가운데 4개동은 빈집으로 방치돼 있었다. 정 장관은 “마을 전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주민들을 만나 보니 이들의 최대 숙원사업 역시 주택 보수였다”고 했다.

대성동 마을에는 49가구 207명이 거주한다. 대성동 마을 주민 대부분은 1980년대 정부에서 만든 주택에 산다. 행자부에 따르면, 대성동 주택들은 과거 내무부(행자부의 전신)가 ‘제2차 대성동 종합개발’을 통해 지어 올렸다. 당시 내무부는 주택 36동을 신축했다. 현재 주택 대부분이 이 시기에 조성됐다. 이후 1990년대에는 10동이 신축된 정도다.

정 장관에 따르면 ‘자유의 마을’이라고 불린 대성동 마을이 주택개량 사업을 벌일 정도로 낙후한 것은 1990년대 초 냉전이 끝나면서다. 남북 간 화해무드와 맞물리면서 대북(對北) 선전마을인 대성동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대성동을 관할하는 책임도 지방정부(경기도)와 중앙정부(행자부) 등으로 붕 떠버렸다. 또 단순빈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마을이다 보니 ‘알아서 먹고살아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정 장관은 “그간 세밀하게 돌보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대성동 마을의 주택 소유권 등 사유재산권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불분명한 것. 대성동은 다른 지역과 달리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다. 대성동 마을에 적을 둘 수 있는 자격조건 역시 엄격한 제약을 받는다. 이렇다 보니 집주인 입장에서는 자기 돈을 들여 집을 수리한다고 해서 향후 집을 사고팔고 할 때 돈을 다 받을 수 있는 보장이 없었다. 사유재산으로서 집의 가치를 높일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정 장관은 “주민들이 주택개량을 소홀히 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정 장관이 대성동 마을 등 근대문화유산에 유독 관심을 가진 것은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 일하면서다. 문화유산의 경우 소유권 등 법적 문제가 절반 이상이다. 이에 요즘은 문화재 관련 업무에 법률 전문가가 반드시 참가하는 추세다. 서울대 법학대학원장 출신인 정 장관은 지난해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행정부가 행정자치부로 축소개편되는 과정에서 장관을 맡았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분단 시대에 형성돼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대성동 마을 전체를 역사문화적으로 재해석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정 장관은 “대성동 마을 리모델링에는 50억원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후주택 보수 23억5000만원을 비롯해 마을 상하수도와 도로, 마을기록전시관에 26억원이 투자된다. 다양한 지원책도 마련 중이다. 지난 3월 지역발전위원회에서 선정하는 ‘취약지구개선사업’에 대성동 마을이 선정되기도 했다. 또 극심한 가뭄으로 모내기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 내년부터 30억원을 투자해 농업용수를 개발할 예정이다. 이 밖에 KT, KT&G, LH, 청호나이스, 새마을금고중앙회 등 뜻있는 기업들도 십시일반으로 현금 또는 현물 지원 등을 통해 대성동 돕기 참여의사를 표명한 상태다. “민관협력의 모델인 만큼 정부의 지원과 국민, 기업 등의 참여를 통해 추진한다”는 것이 정 장관의 복안이다. 정 장관은 “대성동 리모델링은 전 국민이 아이디어를 내는 집단지성 형태로 진행된다는 측면에서 ‘정부 3.0’과도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대성동 마을 자체가 유엔사 관할이라 행자부가 단독 추진하기에 쉽지 않은 점도 있다. 대성동 마을은 정전협정 제10항에 의해 국제연합군사령관이 관할한다. 정전 당시 거주자 및 현지 출생자에 한해 거주가 가능하며 연간 8개월은 의무적으로 거주해야 한다. 납세와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다. 외지인의 출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로 엄격히 제한된다. 정종섭 장관은 “사업을 추진하면서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며 “유엔사 등 관계 기관들과 잘 협의해 사업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대성동 프로젝트를 행자부가 추진 중인 ‘DMZ 평화누리길’과 연계시킨다는 것이 정 장관의 생각이다. 행자부가 추진 중인 DMZ 평화누리길은 서해안 인천 강화도에서 동해안 강원도 고성까지 철조망 연변을 따라 이어지는 보행·자전거길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이 길을 통해 걷거나 자전거를 타게 하자는 취지로 2010년 착수했다. 2017년경 완공 예정이다. 지난 5월 30일에는 평화누리길 일부 구간에서 ‘뚜르 드 DMZ’라는 자전거 타기 행사도 열었다. 정 장관은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대성동의 경우 평화누리길 선상에 직접 속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화누리길과 연계하면 일종의 벨트를 조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DMZ 평화공원과 시너지 효과 역시 기대된다. 박 대통령은 2013년 방미 때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의지를 밝혔다. 대성동이 속한 경기도 파주는 DMZ 세계평화공원의 유력 후보지 중 한 곳이다. 강원도 철원과 고성, 인천 교동도 등이 후보군으로 꼽히지만 실현가능성 측면에서 경기도 파주가 가장 유력하다는 평가다. 정 장관은 DMZ 세계평화공원 사업은 현재 통일부가 주관하는 사업임을 감안, 구체적인 언급은 삼갔지만 “대성동 프로젝트와 시너지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다만 “대성동 마을의 역사와 DMZ의 의미를 담을 마을기록전시관을 조성 중으로 인근 판문점, 도라전망대, 제3땅굴과 연계하면 통일안보교육장으로서는 최적인 장소”라며 “단기적으로 노후주택 보수 등 마을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장기적으로는 대성동 마을을 통일을 맞이하는 준비된 마을로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대성동 마을 프로젝트는 행자부가 추진하는 정책 가운데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정책 중 하나”라며 “마을의 역사적 가치를 잘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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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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