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정부세종청사 ⓒphoto 뉴시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photo 뉴시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요 대기업들에 접촉할 정치인들을 할당하고 이들에 대해 집중 로비를 벌이라는 지침을 내린 문건이 2011년 외부에 드러나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삼성은 홍준표와 손학규, 김진표 등을, 현대차는 황우여, 이주영 등을 맡아라’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이 지침서에는 또 ‘국회 증인으로 채택되어도 대기업 총수는 나가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보다 노골적인 로비 실태가 어디 있을까.

대기업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을 꼽으라면 ‘대관(對官)·대국회’ 관련 업무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건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특히 국회선진화법 통과 이후 국회 로비는 그야말로 다양해졌다. 여당 중진이나 야당 실세에 국한됐던 로비가 야당 평의원에까지 미치고 있다. 얼마 전까지 대기업이 대관업무를 위해 스카우트 대상으로 ‘노리는’ 국회 보좌진은 주로 집권여당 핵심 의원실 출신들이었다. 실제로 여당 실세 의원 보좌관 다수가 주요 대기업에 채용돼 이른바 대관부서나 연구소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관부서 요원들에 대한 기업들의 기대치도 크다고 대기업 관계자들은 전한다. 몇 명만 잘 활용하면 적기에 기업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어 그 가치는 요원들이 가져가는 연봉의 수십 배 이상이 된다는 계산 때문이다. 국회 보좌진 경험을 갖고 있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경력자들은 최고의 상종가를 치고 있다. 연봉도 웬만한 임원급 정도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에서도 이들을 영입하려고 줄을 대고 있다고 한 국회 보좌관은 말했다.

대기업들의 대관·대국회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천차만별이지만 상당한 인적자원들로 구성돼 있다. 일례로 삼성그룹의 경우 미래전략실 산하에 기획팀을 두고 대정부·대국회 로비를 담당하고 있다. 팀장은 부사장급이 맡고 있으며 10여명의 ‘요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의 경우도 대관·대홍보를 총괄하는 사장 밑에 정책조정팀과 정책지원팀으로 구성돼 있다. 현대차그룹은 부사장급 팀장이 관할하며 인원도 50여명이 상근하고 있다. 현대차 측은 “대국회 대정부 관련 일들이 많아 인원이 많다”고 설명한다. 이외에 롯데그룹이나 GS그룹 등도 부사장급이 대관업무를 맡고 있다. 오래전부터 대관업무를 해온 베테랑들이다. 안면으로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한번 대관업무를 맡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지속적으로 관련 업무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대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들에 따르면, 대관업무의 강도는 요즘이 과거보다 훨씬 세다고 한다. 챙겨야 할 대상도 많아졌고 과거처럼 인맥과 돈을 앞세운 단순한 로비로는 먹히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들어 야당의 힘이 세진 뒤 로비하기가 더 힘들어졌다”면서 “벌써부터 올가을 국정감사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야당들의 요구는 적당히 뭉개고 지나갈 수 있었으나 이제는 오히려 더 신경써야 할 판이라는 푸념이다. 국회선진화법이 낳은 부산물인지 모른다. 심지어 모 경제지는 대관이나 대국회를 담당하는 인재를 키우는 교육 담당 부서를 만들기도 했다. 대기업 관계자들이 일정 금액을 내고 교육을 받는 시스템이다. 대관요원 양성이 언론사의 비즈니스 영역으로까지 떠오른 셈이다.

대관업무 베테랑들은 요즘에는 대관업무에 “정성이 필수”라는 말도 한다. 작은 선물이라도 싸들고 가 자주 얼굴을 보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부처 로비 대상자의 생일이나, 자녀들의 대학 진학 여부, 심지어 결혼기념일까지 챙겨서 소소한 정성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결정적인 순간 한 방이 먹힌다고 한다.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이 있다. 현재 국회의원과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정부 부처는 ‘수퍼갑(甲) 중의 갑’이다. 이들이 웬만한 기업이나 기업총수를 괴롭히려면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다. 때문에 기업들은 기업 영업 활동과 ‘오너 보호’를 위해 이들에게 로비를 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오죽하면 담당임원이나 직원을 두고 이들을 관리하고 있을까.

예전에는 주로 대기업과 정권이 유착한 권력형 비리가 주류를 이뤘다. 대기업 역시 권력자들에게 줄을 대려고 혈안이 되었고, 또 이들과 공생할 인물을 찾아 적당히 활용했었다. 권력자의 친인척이나 고향 또는 학교 동문 등을 활용한 로비였다. 이러한 방식은 이제 고전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퇴직하는 고위공직자를 영입해 대정부 로비를 벌이고 있다. 검찰 출신이나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주로 힘 있는 권력기관의 공직자를 스카우트하는 방식이다. 권력기관의 공직자 출신뿐 아니라 최근에는 이해 관계가 되는 공직자들도 대거 데려가고 있다. 공직자윤리법으로 경과 규정이 있는 공직자들은 일정기간 다른 곳에서 근무하도록 한 뒤 기간이 지나면 채용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예를 들면 금융감독원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를 스카우트하려면 2년 동안을 업무와 무관한 곳에 일단 취직토록 한다. 그러다 법률이 정한 시한이 지나면 해당 부서 임원이나 감사로 근무토록 하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들은 국회, 검찰, 국세청, 경찰, 공정위 등 조사와 제재 권한을 갖고 있는 기관들에 우선 관심을 둔다. 정부부처의 경우 기업의 사업영역과 밀접한 부처를 타깃으로 삼는 셈이다. 금융계열사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기획재정부·한국은행 등을 집중적으로 체크하고, 건설계열사는 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노동부·국세청과 관급공사 발주가 많은 부처 등이 관리 대상이 된다.

이들처럼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대관파트’ 말고, 명함에 적힌 부서 업무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임직원도 대기업마다 상당수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분을 노출시킨 채 활동하는 대관파트 임직원이 이른바 ‘화이트 요원’이라면, 신분을 위장해 움직이는 요원들은 ‘블랙 요원’인 셈이다. 이들 블랙 요원 중에는 명함에 ‘고문’ 등의 직함을 달고 다니며 대기업들의 해결사 노릇을 한다.

대기업 이외에 대형 로펌에서도 이들 부서 공직자 출신들을 선호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몇 년 전 장관을 지낸 한 인사가 대형 로펌에서 연봉 30억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준 적이 있다. 검찰이나 법원 요직을 거쳐 대형 로펌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것은 일상 이해가 가는 부분이나 변호사 자격증도 없으면서 대형 로펌에 스카우트돼 고액 연봉을 받는 것은 사실상의 ‘부패’로 연결될 소지가 충분하다.

고위 공직자들은 주로 자기가 근무했던 부서의 기밀을 노출할 수 있고 후배 공직자에게 무언의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들은 주로 정부나 공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 조언을 주거나 외국계 다국적 기업의 송사에 앞장선다. 대기업에서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으로부터 과징금이나 추징금을 선고받았지만 실제 재판에서 승소하는 경우 이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개인이나 개인 기업이 손실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충 묻어가는 것 또한 현실이다. 공기업의 벌금이나 정부 기관의 추징금 등은 국민 혈세나 다름없는 돈이다.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병폐는 권력과 재벌의 유착관계다. 재벌이 가진 돈을 탐하는 권력과, 권력이 가진 힘을 필요로 하는 양자의 유착은 사회 전반에 부패를 조장하고 사회정의를 유린한다. 여기에 공직자들까지 ‘공생’을 목적으로 재벌이나 외국계 기업 등의 로비스트가 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를 감시해야 할 정치권이 막강한 권력으로 기업을 괴롭히는 일에 앞장선다면 또 다른 부패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어 문제다.

홍성추 재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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