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관련 법안 반대 마마회’는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 엄마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사이고 미나코씨. ‘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제안자인 다카스 나오미씨(왼쪽에서 두 번째)도 ‘마마회’의 활동을 돕고 있다. ⓒphoto 마마회
‘안보 관련 법안 반대 마마회’는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 엄마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사이고 미나코씨. ‘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제안자인 다카스 나오미씨(왼쪽에서 두 번째)도 ‘마마회’의 활동을 돕고 있다. ⓒphoto 마마회

일본의 성난 엄마들이 오는 7월 26일 일본 도쿄의 중심인 시부야역 일대를 점령한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던 엄마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든 것은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은 지난 7월 16일 일본 중의원 본회의에서 야당이 투표를 거부한 가운데 단독표결로 11개 안보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안보 관련법의 핵심은 집단자위권 허용과 자위대의 해외활동 확대가 골자다. 부전(不戰)국가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바꾸려는 아베 내각에 맞서 ‘전쟁으로부터 자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일본 전역의 엄마들을 시부야로 불러 모으고 있다.

엄마들의 저항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은 ‘안보 관련 법안 반대 마마회’(이하 마마회)이다. 마마회는 지난 7월 13일 도쿄 치요다구 나가다죠의 참의원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쟁 입법 반대 엄마들의 시부야 잭(jack·시부야 잭은 시부야를 하이재크, 납치한다는 뜻)’을 선언하고 일본 엄마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자식의 안전을 걱정하는 엄마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엄마들은 역시 강했다. ‘마마회’가 만들어지자마자 수천 명의 엄마들이 순식간에 목소리를 모았다. 앞치마 대신 ‘전쟁 반대’ 피켓을 들고 나선 ‘마마회’의 기자회견장에 TV·신문 등 일본의 주요 언론이 취재에 나섰다.

‘엄마들의 전쟁’에 불을 붙인 사람은 교토에 사는 27세의 주부 사이고 미나코씨이다. 사이고씨는 교토대에서 임상교육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세 아이의 엄마이다. 사이고씨는 페이스북에 ‘마마회’ 설립을 알리고 7월 4일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5일 만에 서명자는 1700명을 넘어섰고 ‘내 아이들이 처참하게 전쟁에 소모되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다’는 사이고씨의 의견에 동의하는 ‘좋아요’는 3000건에 가까웠다.

기자회견 다음 날인 7월 14일 주간조선은 사이고 미나코씨와 전화 인터뷰를 하고, 이메일을 통해 보충 취재를 했다. 사이고씨는 주간조선에 “세 아이를 키우고 학업을 하느라 신문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처지다. 하지만 안보법안만큼은 내가 침묵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서명운동에 대한 믿기 어려울 정도의 반응에 나도 깜짝 놀랐다. 아이들 키우느라 외출도 제대로 할 수 없지만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엄마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다.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를 쏟아낼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온라인 공간에 가둬둘 수 없다는 생각에 ‘전쟁 입법 반대 마마들의 시부야 잭’을 계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이고씨는 “‘마마회’의 기자회견이 TV에 보도되면서 동참하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어 현재 서명자는 3579명이다”면서 “‘7·26 시부야 잭’에는 적어도 1000명의 엄마들이 전국에서 참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마마회의 기자회견장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일본의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 국민에게 노벨평화상을’ 운동을 시작한 다카스 나오미(38)씨였다. 다카스씨는 ‘9조 없는 세상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면서 2년 전에 ‘엄마의 전쟁’을 시작했다. 평범한 주부였던 다카스씨의 생각은 시민단체 ‘9조에 노벨평화상을 실행위원회’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그의 제안대로 ‘헌법 9조를 지킨 일본 국민’이 지난해 노벨평화상 유력후보에 오르면서 다카스씨는 일본은 물론 국제적으로 유명인사가 됐다. 주간조선은 다카스씨가 만든 기적을 2014년 7월 14일자(2315호)에서 커버스토리로 소개했다. 한국 내에서도 헌법 9조를 지키기 위한 ‘9조회’와 다카스 나오미씨를 노벨평화상에 추천하자는 단체가 만들어지고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다카스씨가 이번에는 사이고씨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마마회’의 활동을 돕고 나섰다.

‘마마회’의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사이고씨는 ‘마마회’의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축이 돼서 새로운 모임이 생겨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치 피라미드 조직처럼 전국 각지에 수많은 소마마회가 조직되고, 일본을 넘어 세계 모든 엄마들이 ‘전쟁 반대’에 나선다면 전쟁 없는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사이고씨는 “전문가 외에는 자신의 의견을 말해서는 안 되고 발언의 가치가 그 사람의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세상이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삼켜버리는 것은 민주주의를 헛되게 하는 일이다. 몇 년 만에 행사하는 투표권으로, 또는 투표를 거부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행선지가 지금의 아베 정권이다. 아베는 해석개헌이라는 명분 아래 헌법을 짓밟고 있다. 누군가의 바둑돌밖에 되지 않는 세상은 끝나야 한다. 안보법 저지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마마회를 혼자 일으켰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면서 “이런 생각은 나뿐만이 아니다. ‘마마회’에 모여진 수천 건의 메시지에는 나와 같은 생각이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고씨의 말처럼 ‘마마회’에 서명한 엄마들이 페이스북에 남긴 메시지는 절실했다. 아베 내각의 안보법안 강행 처리에 대한 일본 엄마들의 위기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아이들을 태어나게 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슬프고 아프다.’(후쿠시마현에 사는 2세, 7세의 엄마)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아이를 목숨 걸고 낳은 것은 아니다.’(교토에 사는 10세의 엄마)

‘18살 딸이 일본이 너무 후지다고 투덜거렸다. 그런 일본을 만든 것은 부모들의 책임이다.’(가나가와현 11세, 18세의 엄마)

‘엄마들의 메시지를 읽고 나부터 한 발자국 나가자고 생각했다.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겠다.’(야마구치현 1세, 3세의 엄마)

‘70년 전의 전쟁도 모두 자기 생활에 몰두하느라 침묵하고 있는 사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이 사람을 죽이고 죽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도쿄 1세의 엄마)

안보법안에 대한 반대 시위가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도 추락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7월 11~12일 벌인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 39%, ‘지지하지 않는다’ 42%로 제3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처음으로 ‘반대’가 ‘지지’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아시히신문이 보도한 일본 주요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그래프 참조>에서도 안보법안에 대한 일본 국민의 반대는 압도적이다.

아베 내각은 지난해 7월 1일 헌법 해석을 변경, 집단자위권(제3국이 공격당한 경우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반격하는 권리) 행사가 가능하다는 방침을 각의에서 결정한 후 11개 안보관련 법안을 이번 국회 회기 내에 처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7월 16일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참의원으로 넘어가 60일 이내(9월 14일) 처리를 앞두고 있다. 만일 참의원에서 통과가 되지 않는다면 60일 이후 중의원으로 되돌아간다. 이 경우에 중의원 전체회의 참석 인원의 ‘3분의 2’ 찬성을 얻으면 참의원 찬반 여부와 상관없이 법안이 채택되기 때문에 안보법안은 사실상 통과된 것으로 봐야 한다. 아베 정부와 여당은 필요한 의석을 이미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의 독주에 맞서 일본 시민들의 반대 시위도 거세지고 있다. 안보법안이 중의원 소위를 통과한 지난 7월 15일부터 일본 전역에서 시위대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날 국회 정문 앞 시위에는 2만5000여명의 시민이 참석해 수백m의 보도를 꽉 메웠다. 이들은 ‘아베 정권의 폭주를 저지하자’ ‘헌법 9조를 지키자’를 외치며 비가 내리는 가운데 밤 11시30분까지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도쿄뿐만 아니라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시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이 많았다. 아사히신문은 7월 16일자에서 ‘전날 아들, 손자와 함께 3대가 시위에 나선 68세 할아버지는 “역대 정권 중 현재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나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규슈 구마모토시에서 세 살 딸을 데리고 시위에 참석한 주부 히라무라씨의 아사히신문 인터뷰도 눈에 띄었다. 히라무라씨는 “26일 도쿄에서 열리는 마마회의 시부야 잭 시위에도 꼭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구마모토에서 도쿄까지 가기 위해서는 신칸센을 타도 7~8시간이 걸린다. ‘마마회’의 호소는 벌써 일본 전역의 엄마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7월 13일 사이고씨를 비롯해 ‘마마회’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엄마들의 손에는 ‘NO WAR’ 플래카드와 함께 ‘거베라’ 꽃이 들려 있었다. 사이고씨는 “거베라의 꽃말은 희망, 전진이다”라면서 “7월 26일에도 거베라 꽃을 들고 시부야의 거리에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겠다”고 말했다. 이날 도쿄 시부야를 뒤덮은 일본 엄마들의 꽃은 어떤 무기보다 강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주창자 다카스 나오미 인터뷰

“안보법안은 위헌… 폐지 운동으로 아베 내각 심판하겠다”

 ⓒphoto 마이니치신문
ⓒphoto 마이니치신문

일본 시민단체 ‘안보 관련 법안 반대 마마회’의 소식을 접한 것은 다카스 나오미씨를 통해서였다. 지난 7월 10일 일본의 평화헌법 9조 지킴이인 다카스씨는 내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마마회’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주간조선에 보도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카스씨는 지난해 노벨평화상 유력후보로 주목을 받았던 ‘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 국민에 노벨평화상을’의 제안자. 두 아이의 어머니인 그는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당시 쏟아지던 언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공식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다카스씨는 자신이 출발점이 된 시민단체 ‘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실행위원회의 공동회장에서도 물러났다. 그렇기에 다카스씨가 이메일을 보내온 건 의외였다. 올해도 ‘9조를 지킨 일본 국민’은 노벨평화상 수상후보로 노미네이트됐다. 올해 수상 가능성은 지난해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보인다. 헌법 9조 실행위의 최근 활동도 궁금하고 ‘마마회’ 활동에 나선 계기도 궁금했다.

지난 7월 14일 다카스씨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다카스씨는 “페이스북에서 마마회의 소식을 접하고 젊은 주부가 혼자서 용기를 낸 것을 알았다. 2년 전 혼자 시작한 내 경험을 생각해서 그를 도와주고 싶어 사이고씨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다카스씨는 마마회에서 실행위원으로, 7월 26일 예정된 ‘전쟁 입법 반대 엄마들의 시부야 잭’ 시위 기획과 엄마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아베 신조 총리 내각이 안보법안 개정을 채택하면 ‘헌법 9조’ 노벨평화상 운동은 의미가 없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다카스씨는 “안보법은 해석을 달리한 법안이기 때문에 헌법 지키기는 변함이 없다. 헌법은 절대 바뀔 수 없다. 노벨상을 탈 때까지 우리의 운동은 계속된다. 아베 내각의 안보 관련 법안은 위헌이다. 재판을 걸어 이길 수도 있고 선거로 아베 내각을 심판할 수도 있다. 아베가 법제화에 성공해도 충분히 뒤집을 수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실행위원회의 서명운동에 동참한 사람은 7월 14일 현재 54만2590명에 이른다고 한다. 실행위의 활동에는 각계에서 힘을 싣고 있다. 초당파 국회의원 61명은 노르웨이 노벨평화위원회에 추천서를 제출했다. 다카스씨는 “우리의 목표는 노벨평화상 수상 자체가 아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노벨평화상 후보가 돼서 9조를 배우고 생각하는 것이다. 안보법안 폐지 운동도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이다. 그것은 노벨평화상과도 연결돼 있다”면서 “헌법 9조는 세계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전쟁을 포기한다고 명백하게 규정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헌법이다. 9조와 같은 헌법이 세계 각국에 생겼으면 좋겠다. 세계가 전쟁 반대에 동참하고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이다”라고 덧붙였다. 실행위원회는 한국, 미국, 중국 등 세계 각국 리더에게 “어떤 이유에서도 전쟁은 하지 말아 달라. 평화적으로 해결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서명받기 운동도 전개해 왔다.

아베 내각의 안보법안 강행에 맞서 지난 7월 15일 오후 실행위원회는 참의원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헌법학자를 비롯해서 많은 전문가들이 위헌이라고 지적하는 안보법안은 폐기돼야 한다. 국민이 원하지도 않은 법안이며, 일본이 전쟁으로 가는 길을 여는 안보법안은 폐지가 마땅하다”면서 안보법안 철폐를 요구했다.

다카스씨는 거리에 나가 보면 최근 아베에 대한 여론의 변화를 실감한다고 전했다. 다카스씨는 “전단지를 돌리거나 서명운동을 하다 보면 시민들의 반응이 급격하게 달라졌다. 서명자도 늘었고 격려해주는 사람도 많아졌다”면서 “내 아이뿐만 아니라 세계의 어린이들이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자식을 생각하면 모든 엄마들은 강해진다. 힘을 합치면 뭐든 할 수 있다”면서 마마회에 대한 응원도 부탁했다.

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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