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총선에서 압승한 후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photo 연합
지난 5월 총선에서 압승한 후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photo 연합

지난 5월 총선에서 압승한 영국 보수당이 재집권 100일 동안 내놓은 정책들의 추진 속도를 보면 현기증이 난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지난 5년간 연립정부를 같이 구성했던 좌파 성향의 자민당에 잡혀 있던 족쇄가 풀리자 각종 개혁을 보란 듯이 밀어붙이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 복지제도 100여년 역사상 최대의 개혁”이라고 평가받은 복지개혁을 시작으로 사회 각 부문에서 개혁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특히 영국 사회를 지탱하는 3대 권력 기둥인 노동당·노동조합·공영방송 BBC에 대한 개혁에도 나서고 있어 영국이 시끄럽다. 이 세 개의 집단은 보수당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로 인해 명분 있는 개혁이라기보다 ‘복수와 보복의 칼날’이고, 2020년 보수당 3기 정권 창출을 위한 장애물을 치우는 작업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도 많다.

보수당 내 상당수도 캐머런 총리가 하필 왜 이 시점에 굳이 노동조합 개혁에 나서는지 의문시 한다. 노동당의 대주주인 노동조합을 곤경에 몰아넣어 반발이 일어나면 노동당도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노조 반발→노동당의 대여(對與)투쟁→정국경색→보수당 개혁 난항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표면으로는 노동조합 개혁이지만 숨은 칼날이 결국 노동당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노동당과 노동조합의 태생적인 연계를 법적으로 절단해 노동당을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놓고 향후 20년간 집권하겠다는 음모 아니냐고 일부 영국 언론은 분석한다.

이번에 보수당 정부가 개혁 대상으로 삼은 노동조합은 영국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사실상 이미 ‘빈사(moribund)이거나 고사(withered) 상태’다. 1867년 ‘비범죄화’되고 4년 뒤인 1871년 합법화된 이후 지난 150년 동안 영국 노조가 지금처럼 위기를 맞은 적이 없다. 영국 노동조합의 총 연합체인 영국 노동조합총연맹(TUC·The Union Congress)의 회원 수는 1940년 500만으로 시작해서 최전성기인 1980년에는 1220만명이 넘었다. 당시 영국 인구가 5600만명이었으니 인구의 거의 20%가 꼬박꼬박 회비를 내는 정식 노조원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절정을 기점으로 영국 노조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노조원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TUC 노조원 숫자가 2014년 기준 620만을 조금 넘을 정도이니 35년 만에 숫자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노조 활동의 위축은 조합원 숫자의 감소만이 아니다. 2015년 4월 기준, 지난 12개월 동안 영국 내 전 산업에서 노조의 파업으로 잃어버린 노동시간은 70만시간이다. 이는 1970년대의 연간 1300만시간에 비하면 정말 조족지혈이다. 이제 영국에 노조가 파업을 하기는 하느냐는 의문이 들 정도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표현대로 영국 노동조합은 ‘길이 들었다(tamed)’. 그런데도 캐머런 정부는 노조를 더 길들이겠다고 한다.

보수당이 추진하는 노조개혁법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영국 노조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 영국 노조는 파업으로 점철된 1978~1979년, 소위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 당시에는 정부를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했다. 노조가 무너뜨린 정권은 바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제임스 캘러헌 노동당 정부였다. 당시 캘러헌 정부는 임금인상 상한선을 5%로 정했다. 이 이상은 당시 영국 경제로 볼 때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노조는 불복했고, 이때 노조의 파업이 영국 전역을 사상 최악의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신도 못 고친다’는 ‘영국병(The British Disease)’이 절정이었던 때다. ‘불만의 겨울’ 바로 전인 1978년 10월 말 여론조사는 노동당의 5% 우세였으나 4개월 후인 1979년 2월이 되면 보수당 지지율이 20%를 앞설 정도가 되었다. 거의 4분의 1의 유권자가 무정부 상태를 자아낸 노조의 파업에 염증을 내고 등을 돌렸다. 이는 중산층뿐만이 아니라 파업의 주체였던 노동자 계급까지 가세해야만 나타날 수 있는 표의 이동이었다. 바로 두 달 뒤에 치러진 1979년 5월 총선에서 마거릿 대처 당 대표가 이끄는 보수당이 과반수보다 43석이나 더 차지하며 9년 만에 집권했다. 역사가들은 ‘노동당과 노조의 공동 자살행위’ 자충수가 당시 보수당 정권의 최대 승인이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노조는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결국 자만이 불러온 자멸이었다. 대처 총리는 ‘노조를 길들이겠다’는 자극적인 용어를 쓰면서 파업에 넌더리가 난 유권자들을 설득해 집권을 했고 그리고는 바로 개혁을 시작했다.

대처 총리와 노조의 대결은 정말 대단했다. 내가 영국에 처음 왔던 1982년은 그 대결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점이었다. 대처 정부는 1983년 총선에서 1979년 첫 집권 때보다 무려 101석을 더 얻는 압승을 거두며 집권 2기를 맞았다. 재집권 1년 뒤인 1984년 대처 정부는 적자가 계속되던 석탄 탄광 200개(20세기 초 영국에는 1000 여개의 탄광이 있었다. 그러다가 경제적 이유로 계속 문을 닫아 200개만 남았다) 중 20개의 폐쇄를 결정했다. 당시 영국산 석탄은 국제시가보다 25%가 더 비쌌다. 영국 정부로서는 적자탄광을 계속 보조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20개 탄광 폐쇄는 2만명의 광부가 일터를 잃는 일이라 1984년 3월 탄광노조는 파업을 시작했다. 탄광노조는 당시 영국 노조 중 가장 크고 강성인 노조였으니 쉽게 물러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당시 탄광노조는 아서 스카길이라는 전형적인 노동귀족이자 극좌파 인물이 이끌고 있었다. 탄광노조의 파업을 시작으로 영국의 각 노조들이 다 파업에 동참했다. 런던 시내 지하철과 버스가 동시에 파업을 해서 런던이 완전히 서버리는가 하면 항만노조의 파업으로 해외 수입이 중단되기도 했다. 슈퍼마켓에 생필품이 떨어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정부와 노조의 힘 겨루기는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전투였다. 선거 압승에 힘입어 개혁에 속도를 내던 대처 정부는 여기서 물러서면 결국 노조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어 개혁은 물 건너 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탄광노조로서도 자신들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탄광의 폐쇄를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양쪽 다 자신만만했다. 대처 정부는 집권 이후 거의 5년을 아주 주도면밀하게 석탄 비축과 대체연료 대책을 세우고 노조와의 전쟁을 준비했다. 물론 석탄노조도 역대로부터 내려오던 비축된 파업준비자금(strike funds 혹은 war chest, fighting funds)이 있어 자신만만했다. ‘무노동 무임금’이라 광부들이 임금을 못 받더라도 노조에서 6개월간 임금을 줄 수 있는 자금이 있었다. 이때 탄광노조 지도자 아서 스카길이 한 말이 ‘자금이야말로 전쟁의 힘줄이다(Finance is the sinews of wars)’라는 레닌의 명구였다.

탄광노조는 자신만만하게 전투를 시작했다. 자금이 고갈되기 전에 대처 정부를 무릎 꿇릴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탄광노조는 대처 정부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대처 정부는 1년은 파업을 버틸 각오로 준비를 했고 실제 1년간 협상을 끌었다. 결국 딱 1년 만에 탄광노조의 무릎을 꿇렸다. 노조원들이 노조지도부의 지시를 거스르고 자체적으로 파업을 끝내겠다는 투표를 승인했다. 사실 대처 정부의 준비와 각오도 대단했지만 이미 그때는 석탄이 영국의 주요 에너지원에서 밀려나던 시점이었다. 마침 영국 산업에서 석탄 의존이 줄어드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노조는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채 과거의 힘만 믿고 파업을 시작했다가 결국 수요자들로 하여금 대체에너지원을 더 급히 찾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사망날짜를 앞당긴 셈이 되어버렸다. 한때 20만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던 탄광노조는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쇠약해 버려 현재 겨우 1300명의 노조원을 가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석탄노조가 파업을 중단하겠다는 투표를 한 1985년 3월 3일을 영국 전통 노조의 사망일로 친다. 그 이후 영국 노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옛 영광을 찾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절대 찾을 전망도 없다.

대처 정부는 영국 역사상 어느 정권도 못했던 노조개혁법을 탄광노조 파업이 극에 달해 있던 시점에 기어코 통과시키며노동조합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영국 조야는 대처 정부의 단호한 의지에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아연해 했다.(이는 북아일랜드 무장저항군(IRA) 죄수들이 정치범 대우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가 10명이 줄줄이 아사를 해도 눈도 깜짝 안 하던 일과 함께 대처 총리의 단호함을 얘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일화다.) 이 법으로 대처 정부의 노조개혁은 날개를 달았다.

이번에 캐머런 정부가 개정하려는 노조법은 대처가 1984년 만든 법에서 한 발짝 더 나간 것이다. 노조법 개정의 명분은 노조의 민주화와 현대화다. 대표적인 개혁 내용을 보자. 지금까지 노조가 행하던 파업 결정은 파업투표에 몇 명이 참여하든지 그냥 펍이나 운동장 구석에서 모여 결의를 하면 그만이었다. 제대로 된 기록도 안 남겼고 누가 파업 결의에 참석했는지, 얼마가 반대를 하고 찬성을 했는지 기록을 남길 이유도 없었다. 실제 그런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도 않다. 이런 파업 결의 같은 사항들에 대한 규정을 법으로 정하겠다는 게 캐머런 총리의 개혁의 취지다.

특히 국민 편의와 관련이 있는 공공기관 노조의 파업은 최소한 노조원 50% 이상이 참여한 투표에 노조원 40%(유효표 40%가 아니다) 이상이 찬성을 해야 적법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투표지에는 무슨 이유로 파업을 하는지를 명확하게 명시해야 한다. 노조들은 새 법처럼 엄격하게 파업 조건을 만들면 결국 노동자들의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생존수단인 파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난리다. 이렇게 되면 고용주는 노동자의 의견을 무시하게 되어 결국 노사관계를 악화시켜 누구에게도 유리하지 않다는 주장도 한다. 사실 지금까지 대규모 노조 파업 결의에서 노조원 50% 정도의 참여도를 기록한 적이 거의 없다.

직장의 노조 간부가 노조 업무에 할애하는 시간도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고용자와 ‘적절한 수준에서(reasonable paid time off)’ 합의가 되면 얼마든지 노조 업무가 가능했다. 물론 입법과정에서 노조 업무 할애시간을 얼마로 하겠다는 협상이 이루어지겠지만 일단 노조들은 비상이다. 또 피케팅(picketting)을 비롯한 모든 쟁의 활동에 소요된 각종 경비를 확실하게 회계사로부터 검증(audit)받아서 제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최고 2만파운드까지 벌금을 매길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금도 노조 경비를 검증받지 않는 것은 위법이지만 관련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거의 유명무실한 법 조항이었는데 이제는 벌금 액수까지 분명하게 정해버렸다.

영국 노동법의 부속조례 비슷한 ‘피케팅 규정(Code of Picketting)’도 앞으로는 엄격하게 적용할 방침이다. 기존의 피케팅 규정을 보면 ‘회사 밖(대개 정문 인근)에서 피케팅으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민법(civil)상의 문제’라고 ‘특별하고 분명하게’ 명시된 점이 특이하다. 피케팅이 규정대로 이루어지면 고용주가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노조는 면책을 받는다. 피케팅이 불법으로 이루어져도 민사소송만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동료 근로자를 위협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비롯해 고용주나 일반 시민이 위협을 느낄 시위를 금지하고는 있지만 이도 민사상의 문제이지 형법의 문제는 아니다. ‘동정(sympathy)’ 혹은 ‘연대(solidarity)’ 피케팅도 합법은 아니지만 형사상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앞으로는 피케팅 규정도 엄격하게 적용해 규정을 어길 시 범죄화해서 제대로 다루겠다고 칼을 빼들었다.

새 법은 또 노조가 파업 결의 후 14일이 지나서야 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정했고, 기업체에는 파업기간 중 외부 대체인력을 고용할 수 있고 이런 일을 해줄 대행업체(strikebreaker agency)를 선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파업 결의 후 14일간 고용주가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노조의 파업은 무력화되는 셈이어서 이 법 조항에 노조가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제 노동당과 밀접하게 연관된 노조법 개정 조항을 살펴보자. 영국 노동당의 활동자금은 거의 노동조합에서 나온다. 노동당과 직접 연계(affiliated)된 노조가 노동당에 내는 자금은 연간 2500만파운드에 이른다. 이는 노동당 연 예산 3300만파운드(2013년) 중 76%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다. 1983년 총선의 경우 노조에서 노동당 총선 경비 중 98.4%를 부담했다. 2001~2011년 노동당이 쓴 경비의 63%가 노조에서 나왔다. 노동조합이 기부를 하지 않으면 노동당은 돌아갈 수가 없다.

2012년 캐머런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영국 노동조합총연맹(TUC) 회원들. ⓒphoto 연합
2012년 캐머런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영국 노동조합총연맹(TUC) 회원들. ⓒphoto 연합

그런데 캐머런 정부의 노조개혁은 노조뿐만 아니라 노동당이 그동안 받고 있던 제도상의 특혜도 모두 없애버리겠다고 하고 있다. 노동당과 연계된 450만명의 공공노동조합 노조원의 월급에서 노조비가 매달 해당 노조 계좌로 ‘자동이체(check-off)’ 되는데, 보수당 정부는 이것이 전근대적인 제도라며 각자가 알아서 노조비를 내도록 하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해서 매년 국민의 세금에서 나가는 650만파운드의 자동이체 경비를 줄이겠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제도가 시행되면 몇 퍼센트의 노조원이 조합비를 낼 것인지 의문이다. 언론들은 10%를 넘으면 많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결국 조합비 수입이 10분의 1로 줄어드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조합비를 내지 않는 사람은 사실상 노조원이라고 할 수도 없다. 노조로서는 돈과 함께 노조원을 동시에 잃는, 거의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다. 노조와 노동당의 태생적인 특수관계도 법적으로 결별을 시키겠다는 게 캐머런 정부의 계획이다. 정부가 강제이혼을 시키겠다는 뜻이다. 노동당과 연계된 노조는 지금까지 조합원 의사와는 상관없이 각 노조원이 낸 조합비 중 일부를 노동당에 정치자금으로 냈고 그래서 해당 노조원은 자동으로 노동당 ‘후원자(affiliated supporter)’가 되었다. 그런데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렇게 노조비가 관행적으로 자동이체되는 노조원 중 노동당이 아닌 다른 당을 지지하는 노조원이 49%에 달한다. 만일 자동이체를 없애는 새 제도가 시행되면 노조가 노동당에 내는 자금의 반이 줄어들게 된다는 의미다.

이러한 개혁이 시행되면 노조는 노동자의 10%만을 대표하는 조직이 되고 노동당도 더 이상 노조와 특수한 관계가 아닌 것이 된다. 노동당이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당이라는 명분이 위협받는 상황까지 올 수 있다. 노동당의 존재 이유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셈이다. 노조개혁의 파편이 노동당까지 빈사 상태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영국 정계에는 묵계가 있었다. 어떤 집권당도 여야의 충분한 합의 없이는 정당의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개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수·자민 연정 때 자민당이 정치자금법을 제정하자고 했을 때 보수당은 자신들이 대기업으로부터 받는 정치자금에 불똥이 튈까 싶어서 반대를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들의 정치자금은 손을 안 대고 노조와 노동당의 정치자금줄만 말리는 일석이조의 교묘한 법을 노조개혁법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는 평이다. 더군다나 보수당이 내놓은 개혁안은 사실 노동당도 오래전부터 자체적으로 개정한 제도들이다. 그런데 보수당이 법제화까지 해서 확인 사살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니 노동당과 노조는 ‘보복성(partisan), 앙심 품은 (spiteful)’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해 아우성이다.

노동당과 노조의 항변을 들어보면 분명 일리가 있다. 노동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에드 밀리반드는 2013년 7월 “노동당은 자신이 낸 노조비 중 일부가 노동당으로 들어가는 데 분명하게 동의를 하는 노조원에게서만 돈을 받자”고 했다. 노조원이 되면 자동으로 노동당원이 되는 제도도 없애자고 했다. 또 노동당 대표 선출에서 노조가 3분 1, 하원의원과 유럽의회 의원이 3분의 1, 당원이 3분의 1씩 행사하는 투표권을 당원 모두가 동일하게 한 표씩 행사하게 하여 노조의 입김을 줄이자고도 제안했다. 2014년 9월 노동당 전당대회에서는 노동당원 86.29%가 이 혁명 같은 개혁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노동당으로 봐서는 역사적인 결정이고 아주 용감하고 위험한 결단이었다. 역사적으로 보수당이 항상 주장해 왔던 ‘노동당은 노조의 꼭두각시’라는 비난을 불식하려는 시도였다. 노동당 115년 역사 중 가장 큰 결단이라고 지금까지 평가되고 있다.

사실 영국 노동당과 노조·노조원과의 특수한 비상식적인 연관 관계는 역사적으로 이유가 있다.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존재해야 하고 노조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노동당이 존재해야 하기에 그동안 영국 사회가 셋의 특수관계를 양해해 왔다고 정치학자들은 분석한다. 역대 보수당 정권도 분명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 문제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었다. 노동당은 창당 후 첫 100년(1900~2000년) 동안 집권 기간이 23년에 불과했으니 보수당은 승자로서의 여유와 아량을 부릴 만했다. 그러나 이번 캐머런 정부의 개혁은 ‘이제는 노동자 노조나 노동당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니므로 셋의 관계를 객관화해서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보수당의 철학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듯이 보인다.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내려온 셋의 ‘응석’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노동당도 2년 전에 자체적으로 개혁을 서두르고 조치를 했는데도 이제 와서 보수당이 법으로 다시 대못을 박고 나오니 치사하다는 입장이다.

노동당과 노조가 강제로 이혼 수순을 밟고 있지만 문제는 아이들 격인 노동자다. 이제 아이들이 다 커서 양쪽 부모 어느 쪽도 따라가지 않으려고 하는 데에 노조와 노동당의 고민이 있다. 이렇게 되면 부모 모두 존재 이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지금까지 영국 노동자들은 월급에서 조합비를 자동으로 냈고 노조원이 되면 당연히 노동당원이 되는 것이라 여겼고 그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인식이 바뀌었다. 대처 총리 정부의 공공주택 불하로 주택을 소유하고, 국영기업 사유화로 해당 기업 노동자들이 주식을 보유하고, 전에는 감히 생각도 못하던 개인연금을 내면서 자식이 대학교육도 받는 것을 보니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과거의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술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노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노조원이 아니었고 아들도 노동자이지만 더 이상 노조원이 아닌 경우가 많다.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는 노동자는 더 이상 전형적인 노동자가 아니다. 영국 노동자들의 절반은 자신을 더 이상 노동자로 부르는 것도 싫어하고 자신이 노동자인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믿는다. 공공주택에 사는 약 500만의 서민들만 자신들을 노동자라고 생각할 만한데 이들은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도 아니다. 보수당의 표현을 빌리면 ‘복지 위에 누워서 잠만 자는’ 사람들이다. 노동당과 노동조합은 이제 모든 추종자들을 잃을 판이다.

그래서 “영국 노동조합은 엔지니어 클럽으로 변신을 하라”는 말이 나온다. 영국 노동당도 이제 당명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도 다시 나온다. 노동당 당명 변경은 당초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제3의 길’을 제시할 때 하던 말이었다. 자신을 더 이상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향해 노동조합이나 노동당이 짝사랑을 아무리 구걸해 본들 ‘가신 님이 다시 돌아올 일은 없다’는 말이다. 영국 노동운동, 노동당의 위기다.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영국인 재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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