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지난 8월 25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 한의원.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원장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착상탕 얘기 듣고 오셨죠?”라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는 착상탕 얘기를 했다. 수정란이 자궁 내막에 안정적으로 착상하게 도와준다는 한약이다. 착상탕이 요즘 인기가 더 높아졌다고 했다. 원장이 내게 먼저 쌍둥이 얘기를 꺼냈다. “요즘 TV에 쌍둥이 많이 나오잖아요. 이 동네에서 임신 준비하는 사람은 착상탕 많이 먹어요. 이거 먹고 인공수정 받으면 쌍둥이가 열이면 열 생긴다니까요. 쌍둥이탕이라고 불러도 돼요.”

올해 초, 한의사협회는 ‘쌍둥이 낳는 한약’이 있다고 주장했던 한의사를 협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기도 했다. 착상탕 얘기를 한창 하던 원장은 혹시나 싶었는지 마지막에 덧붙였다. “쌍둥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게 아니에요. 그냥 쌍둥이 낳고 싶다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이걸 먹으면 쌍둥이를 ‘노려볼 수 있다’고 말한 거죠.” 이 원장에 따르면 착상탕을 지으러 오는 환자 중 과반은 ‘쌍둥이가 생기면 좋겠다’고 말한다고 한다.

지난 8월 2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다태아(쌍둥이 이상) 출산이 43% 이상 증가해 전체 신생아 중 비율도 꾸준히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쌍둥이가 늘어난 이유는 체외수정 등의 난임(難姙) 시술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주된 해석이지만, 그와 비례해 쌍둥이에 대한 선호 현상도 점차 늘고 있다. 임신·출산을 계획 중인 부부라면 “쌍둥이 낳을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쌍둥이 낳고 싶다”는 사람도 늘어났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혼남녀’가 선호하는 자녀 연령 형태는 ‘3살 차 이상’이 34%로 가장 많았고, ‘쌍둥이’가 31%로 그 다음이었다.

TV 예능 프로그램이 쌍둥이 선호를 키웠다. 공인회계사로 일하는 32살 김모(여)씨는 “쌍둥이는 생각도 않고 있다가 TV 프로그램을 보고 방법이 없나 찾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 둘 낳으면 일을 두 번 쉬어야 하잖아요. 육아 부담도 두 번 지는 거고. 쌍둥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평생 친구이자 형제가 생기는 것 같아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요.” 김씨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 요즘은 ‘과배란 주사’를 맞고 싶다는 가임기 여성도 부쩍 늘었다. 과배란 주사는 난임 시술의 한 방법인데, 대개 미성숙된 난자를 자극해 한꺼번에 여러 개의 난자가 배출되도록 해 수정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난임이 아닌 여성이 맞더라도 별다른 제재가 없는데, 쌍둥이를 낳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산부인과마다 문의를 해오는 가임기 여성이 많다고 한다.

김씨의 직장 동료인 이현정(35)씨는 실제로 이란성 쌍둥이를 낳아 기르는 쌍둥이 엄마다. 이씨는 “예전에는 쌍둥이를 낳았다고 하면 ‘신기하다’고 말했는데, 막상 낳고 보니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TV에서도 쌍둥이들이 나와 예쁜 모습 많이 보여 주고, 둘 낳아 기르던 것이 산술적으로는 한 번으로 줄어드는 것 같으니 잘했다, 좋겠다는 말을 무척 많이 들어요.” 하지만 이씨는 “쌍둥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하기 전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변경애씨는 이 어려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변씨는 쌍둥이를 낳아 기르면서 유아교육 박사과정까지 밟고 ‘영아 쌍둥이 육아 경험에서 어머니가 인식하는 어려움에 대한 질적연구’라는 논문까지 썼다. 그는 “자연적인 상황에서 쌍둥이가 생길 확률은 매우 낮죠. 요즘 늘어나는 쌍둥이는 대부분 난임 시술을 통해 태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변씨에 따르면 쌍둥이 선호 문제는 난임 시술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쌍둥이 출생아들에 대한 인식이 호의적으로 변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쌍둥이는 완전한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거나, 이상한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잖아요. 이제는 그런 시각이 줄어들면서 ‘쌍둥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현실은 만만치 않다. 2013년 8월 한정애 의원(비례대표·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에서 연 ‘다태아 산모 보호와 지원을 위한 제도 개선 간담회’ 내용을 보면 쌍둥이를 낳고 기르는 어려움이 통계적으로 제시돼 있다. 쌍둥이의 조산율은 54.2%로 하나를 낳을 때(단태아)의 조산율 4.5%에 비해 월등히 높다. 저체중으로 태어나는 쌍둥이의 비율은 55.4%로, 하나를 낳을 때의 비율이 3.7%에 그치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높은 수치다. 대한의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보통 임산부는 2~4%만이 임신성 당뇨, 임신중독증 등에 걸리지만, 쌍둥이 임산부는 전체의 40%가 이 같은 질병을 걱정해야 한다. 부담은 임신 기간 내내 이어진다. 쌍둥이를 임신하면 하나를 임신했을 때보다 필요한 열량도 300~600㎉ 더 많다. 필요한 엽산은 2.5배, 철분은 2배다.

변경애씨는 쌍둥이 임신 전에는 몰랐던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들려줬다. “시험관 시술을 하다 보면 더러 쌍둥이를 넘어 세 쌍둥이, 네 쌍둥이가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선택적 유산’을 해야 해요. 심장 소리가 약하다거나 크기가 작은 아이를 지우죠.” 아이를 지우는 기준은 단순하다. 눈에 보이는 크기, 심장 소리가 전부다. 다태임신감수술(Multifetal Pregnancy Reduction)이라고 부르는 이 시술은 산모에게 정신적 후유증을 불러올 수 있다.

KBS 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쌍둥이들. ⓒphoto KBS
KBS 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쌍둥이들. ⓒphoto KBS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난임 시술에서 쌍둥이 출산을 줄이는 것이 권장되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은 체외수정 시술에서 이식할 수 있는 배아의 수를 법적으로 제한한다. 스웨덴은 1개가 원칙이다. 독일은 38세 이하의 경우 최대 2개, 일본은 36세 미만은 1개가 원칙이다. 법률로 정하지 않더라도 미국과 영국처럼 각 기관에서 지침을 마련해둔 경우도 많다. 영국 ‘인공수정배아관리국(HFEA)’에 따르면 40세 미만 여성은 최대 2개의 배아만 이식받을 수 있다.

한국도 지난 5월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위원장 박상은 안양샘병원장)가 체외수정 시술 때 이식할 수 있는 배아 수를 최대 3개로 줄이라는 권고를 내놓았다. 위원회 소속인 이원돈 마리아병원 원장은 “예전에는 여러 개의 배아를 넣어 쌍둥이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하면 배아 수를 줄이려는 산모도 더러 있었다”면서 “요즘은 그러나 ‘2~3개 정도 넣어보고 쌍둥이가 생기면 키우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쌍둥이를 낳아도 좋고, 성공 확률은 높이고 싶다 보니 최대 5개까지도 배아를 이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위원회에서 이 같은 제한을 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과배란 주사도 마찬가지다. “과배란 주사의 효과는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사람은 과배란 주사를 맞고도 배란이 안 될 수 있습니다. 반면 난자가 10개씩 생기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은 거의 세 쌍둥이, 네 쌍둥이를 가지게 되는 거죠.” 이 원장의 말에 따르면 요즘 의학계에서는 과배란 주사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용량을 적게 주입하는 등 “최대한 쌍둥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시술한다”고 한다.

쌍둥이가 커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무작정 쌍둥이를 낳아 기르기에는 육아의 어려움도 매우 크다. 변경애씨는 “무엇보다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정애 의원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임신 기간 중에 쌍둥이 산모는 하나를 임신한 산모보다 최소 2배 이상의 의료비가 든다. 조산의 위험이 높은 만큼 제왕절개 수술을 할 확률도 높고, 대부분 미숙아로 태어나기 때문에 관련 치료비도 든다. 여기에 따르면 쌍둥이 한 번 낳는 데 추산되는 비용만 약 5000만원에 달한다. 똑같이 제왕절개를 하더라도 하나를 낳을 때는 약 2000만원이 드는 것과 대비된다. 출산이 끝이 아니다. 기저귀 값도 2배, 분유 값도 2배가 든다. 학비도 2배 들어, 한꺼번에 목돈이 필요한 셈인데 아직 우리나라의 쌍둥이 지원 정책은 부족한 편이다. 임산부에 지원되는 ‘고운맘카드’만 하더라도 한 명을 가질 때는 50만원이 지원되는데, 쌍둥이는 20만원 늘어난 70만원만을 지원한다.

취재 도중 만난 쌍둥이 부모들은 “한국에서는 쌍둥이가 ‘1+1’이 아닌 1.5로 인식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법률상 출산휴가, 육아휴직 문제에서 그런 인식이 잘 드러난다. 2013년 발의된 모자보건법과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에 따라 쌍둥이 임산부의 출산휴가는 기존 90일에서 120일로 늘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육아 휴직은 하나를 낳았을 때와 같이 1년에 그친다. 한정애 의원은 “쌍둥이 육아는 한꺼번에 진행되거나 조금 보태지는 수준이 아니라 2배 더 힘든 것이라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면서 “쌍둥이 출생률이 점점 더 높아지는 만큼 외국 수준에 맞춰 규정 등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학적으로 볼 때도 쌍둥이 육아는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유아 교육에서 애착 육아는 부모와 자녀 양쪽에 중요하다. 많은 스킨십을 통해 정서를 공유할수록 서로 안정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쌍둥이 육아에서 자녀의 애착 욕구를 충족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저만 해도 6살 아들 중 하나가 정서결핍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상담센터를 찾아 상담받고 있지요. 센터를 통해 들어보면 쌍둥이의 상당수가 정서결핍 문제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변경애씨는 “육아 부담은 크고 지원은 부족하니 자연스럽게 우울증을 앓는 쌍둥이 엄마들도 많다”고 말했다.

김모·이현정씨와 함께 만났던 8년차 쌍둥이 엄마 최문희(37)씨의 얘기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한번은 오랜만에 모임에 나갔다가 TV에 나오는 쌍둥이 사진을 스마트폰 배경화면으로 해둔 아이가 있기에 제가 그랬죠. 저렇게 입히고 튼튼하게 키우려면 돈이 많아야 해.” 최씨의 딸 쌍둥이 중 하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체중으로 고생하고 있다. 최씨는 “대개 쌍둥이 육아의 밝은 면만 보는데, 대부분의 쌍둥이 부모는 상당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쌍둥이 선호 현상에는 쌍둥이 출산·육아의 현실적 어려움을 제대로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 황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쌍둥이 출산으로 한국 사회의 저출산을 극복한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쌍둥이 출산 증가는 모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를 다시 파생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생식의학회(European Society of Human Reproduction and Embryology)에서는 난임 시술의 정상적인 결과는 출생아 1명이고, 쌍둥이 임신은 합병증 내지는 부작용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난임 시술을 할 때도 무작정 여러 개의 배아를 넣는다고 임신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고, 쌍둥이 임신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바르게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원돈 서울마리아병원 원장

국내외에 10개 분원을 가진 마리아병원은 난임 전문병원이다. 이원돈 서울마리아병원 원장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난임 전문의인 이 원장에게서 지난 5월 위원회가 체외수정에 이식할 배아 수를 제한한 이유와 쌍둥이 임신·출산에 대한 의학적인 조언을 들어봤다.

지금까지 의학적으로 규명된 바로는 이식 배아 수가 체외수정의 성공률을 무조건 높여주는 것이 아니다. “1개 배아와 2~3개 배아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2~3개 넣을 것을 5개 넣는다고 해서 성공률이 높아지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쌍둥이 임신의 확률만 높여주는 것이죠.” 이 원장에 따르면 체외수정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건 산모의 나이다. “배아의 숫자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35살 미만의 산모라면 1개의 배아를 이식해도 됩니다. 35살에서 40세 미만은 2~3개로도 충분해요. 40살 이상의 산모만이 문제가 됩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도 이식 배아 수를 제한하고 있다. 체외수정이 많이 이뤄지는 선진국에서 체외수정 시술 수에 비해 쌍둥이 출생아 비율이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주나 스웨덴은 체외수정 시술의 90% 넘는 수가 한 명만 임신해 출산한다. 가장 낮은 미국도 70%에 가까운데, 한국은 2012년 기준으로 56.4%만이 한 명만 임신한다. “예전에는 체외수정 기술이 부족해 여러 배아를 이식했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원장은 “요즘 난임 시술의 목표는 건강하고 부작용 없이 임신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은 아예 임신 계획을 세우며 미리 생식능력을 검사해보는 부부도 있다고 한다. “예전처럼 임신만 성공하면 끝이라는 게 아니라 건강한 태아를 낳는 게 목표인 사람이 많습니다. 난임 시술에 대한 연구도 그런 식으로 발전하고 있어요. 이런 입장에서 보면 쌍둥이 선호 현상은 임신·출산 과정을 건너뛰고 겉만 보는 것이 아닐까 조금 우려스럽습니다.”

이 원장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아직 미숙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쌍둥이를 임신해도 임신 과정에서 조금 불편하고 어려움을 감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쌍둥이가 모두 건강하게 태어나는 건 여전히 축복입니다.” 출산 과정에서 쌍둥이 중 한 명만 살아남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미숙아로 태어나는 건 비일비재하다. “인큐베이터 기술도 발전해서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도 많지만,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아이도 많습니다.” 이 원장은 “합병증과 출산 후 후유증을 고려할 때 건강한 임신·출산을 목표로 하는 의사라면 가급적 쌍둥이 임신을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과배란 주사를 놓을 때에도 용량을 적게 하거나 자연배란에 맞춰 미성숙된 난자를 인공 배양하는 식으로 다양한 대안을 함께 사용한다. “기본은 한 번 임신에 한 명 태아입니다. 혹 개인적인 계획과 꿈 때문에 쌍둥이를 낳고 싶다면 위험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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