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희 간호부장(왼쪽 앞에서부터 반시계방향), 권명은 간호사, 국지은 간호사, 박정희 특수병동팀장, 김재연 감염관리실 책임간호사, 이소진 간호사, 권선혜 간호사, 이임선 외래진료파트장.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배영희 간호부장(왼쪽 앞에서부터 반시계방향), 권명은 간호사, 국지은 간호사, 박정희 특수병동팀장, 김재연 감염관리실 책임간호사, 이소진 간호사, 권선혜 간호사, 이임선 외래진료파트장.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지난 12월 11일 오후 6시 대전 서구 건양대병원 3층 연구 2동. 병원 서쪽 끝에 있는 이 병동 복도에는 희미한 형광등이 켜져 있을 뿐 정적이 감돌았다. 복도 끝 벽면에 설치된 발판을 밟자 철문이 열렸다. 문 안에는 병실이 네 개 있었다. ‘방호복 착용 수칙’이 인쇄된 종이가 붙은 벽면 위에는 동그란 음압(陰壓)장치가 보였다. 위쪽을 가리키는 빨간 바늘은 음압이 제대로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깜깜한 병실 안에 놓인 매트는 한때 이곳이 격리병실로 쓰였음을 보여줬다. 6개월 전 이곳은 건양대병원의 메르스 감염 의심자와 확진자를 수용한 33 격리병동이었다.

지난 6월 3일 오후 5시, 외과계 중환자실을 담당하던 박미용(38) 파트장(수간호사)은 메르스와 사투하는 후배들을 돕기 위해 격리병동으로 달려갔다. 전신을 가리는 방호복을 2분 만에 입고 음압병실에 들어갔다.

폐렴이 심한 데다 고열도 있던 82세 남성 환자는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었다. 전공의가 환자의 기도에 산소를 주입하기 위해 기관지 삽관술을 시행하자 피가 뿜어져 나와 침대 시트를 흥건히 적셨다.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들도 피투성이가 됐다. 박씨는 환자의 가래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았다. 빼내도 빼내도 가래 대신 선혈이 나왔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서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환자가 발생했다는 ‘코드 블루’ 방송이 울렸다.

의학적으로 볼 때, 심폐소생술을 30분 이상 지속해도 회복되지 않는 환자는 사실상 소생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환자의 자녀들은 아버지에 대한 심폐소생술을 그만두라고 할 수 없었고, 의료진들은 무의미한 심폐소생술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도 안 돼 환자는 숨졌다. 숨진 다음 날에야 환자는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국가지정병원인 충남대병원으로 전원(傳院)되기 전에 건양대병원에서 메르스로 숨진 유일한 환자였다.

정부 실책 메르스 환자 입원 뒤늦게 파악

2015년 여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5월 20일 국내 첫 번째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고, 정부가 7월 28일 메르스가 유행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상 종식 선언’을 발표하기까지 메르스는 두 달간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지난 11월 25일 마지막 환자가 숨지면서 현재 한국에 메르스 감염자는 한 명도 없지만,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종식 선언’은 아직까지 언제 발표될지 불분명하다.

전 국민이 메르스 공포에 떠는 동안 한쪽에서는 묵묵히 병마와 싸운 이들이 있었다. 가족조차 만날 수 없는 메르스 환자들을 위해 가장 험한 곳에서 위험한 일들을 도맡은 이들은 간호사들이었다. 건양대병원 내 747명의 간호부원 전체를 통솔하는 30년 경력의 간호부장부터 1년차 새내기까지, 간호사들은 생명을 걸고 현장에서 정체불명의 메르스와 싸웠다.

주간조선은 특히 건양대병원에 주목했다. 건양대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돼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총 11명(16번 환자 제외)이다. 이 중 7명이 숨졌다. 건양대병원에서의 메르스 감염은 5월 28일 수퍼전파자인 16번 환자가 입원하면서 시작됐다. 16번 환자는 대전 대청병원에서 4명, 건양대병원에서 7명을 감염시킨 수퍼전파자다. 게다가 대전은 지리적으로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외래환자만 하루에 2300명 이상이 드나드는 건양대병원에는 각지에서 온 환자들이 입원해 있었다. 실제로 16번 환자는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돼 대청병원을 거쳐 건양대병원에 온 환자였다. 만약 이곳에서 메르스 환자를 한 명이라도 놓쳤다면, 메르스 환자가 전국 각지에 퍼질 수 있었다. 기자는 지난 12월 11일 건양대병원을 찾아 9명의 간호사들과 각각 개별 인터뷰를 진행했다.

건양대병원의 메르스 일지(日誌)는 평택성모병원의 메르스 확진자와 같은 병동에 있었던 환자가 건양대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5월 30일 시작된다. 토요일이던 이날 오후 6시46분, 병원 10층 101병동에 입원해 있던 16번 환자의 부인은 담당의사에게 전화번호가 쓰인 종이를 보여주며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이라고 자신을 밝힌 사람이 지금 남편(환자)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연락처로 다시 전화한 의사는 질병관리본부의 전화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병원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다. 아직 지방에는 메르스 감염자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보건 당국은 평택성모병원에서는 메르스 발병 범위를 한 병실로 잡았다가 뒤늦게 한 병동으로 변경했다. 16번 환자는 1번 환자와 다른 병실을 썼지만 메르스에 감염됐다.

간호사들은 기민하게 대응했다. 배영희(51) 간호부장의 지시에 따라 간호사들은 우선 16번 환자를 포함해 같은 병실 내에 있던 환자 4명을 모두 병원 내 음압병실에 격리했다. 마침 ‘메르스 감염자가 대전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전날 밤 11시까지 음압병실 점검을 마친 상태였다. 환자 67명의 입·퇴원이 제한됐고, 의료진과 직원 63명, 실습 나왔던 건양대 의대와 간호대 학생 19명은 자택에 격리됐다.

10일간 퇴근하지 못한 건양대병원의 정미희 간호사(좌)를 위해 병원을 찾은 남편과 두 자녀. ⓒphoto 건양대병원
10일간 퇴근하지 못한 건양대병원의 정미희 간호사(좌)를 위해 병원을 찾은 남편과 두 자녀. ⓒphoto 건양대병원

악전고투하는 간호사들

16번 환자가 있던 101병동에는 폐암과 폐렴 등 호흡기 질환자들이 주로 입원해 있었다. 원장의 지시를 받은 간호사들은 101병동을 즉시 폐쇄하고 병동에 있던 모든 환자에게 메르스 검체(檢體)를 실시했다. 동시에 CCTV를 통해 접촉자를 파악했다.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 5명 중 4명이 이미 메르스에 감염된 상태였다. 같은 병동의 다른 병실에 있던 환자도 2명이 감염됐다.

거점병원인 건양대병원 의료진은 직접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기보다는 감염 의심자를 격리하고 발열 여부를 확인해 확진자를 근처 국가지정병원으로 보내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감염자라고 해도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감염 의심자는 병원 내 격리병동에 수용해야 했다. 메르스는 잠복기가 있어 증상이 없다고 퇴원시켰다가는 질병이 지역사회에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양대병원에서 메르스 환자들은 주로 33병동에 격리돼 있었다. 건물 양쪽에 있는 철문을 열쇠로 열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이 병동에는 4개의 음압병실이 있다. 문제는 누군가 돕지 않으면 안에 있는 환자들의 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내부를 청소하는 용역직원들은 물론, 음식을 나르는 영양사들도 ‘감염될 우려가 있다’며 33병동에 들어가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모든 업무를 도맡아야 했다.

33병동을 담당하는 간호사 12명은 3교대로 조를 짜 환자의 경과를 관찰하고 필요한 처치를 했다. 외과계 중환자실 간호사 중에서도 체력과 정신력이 강한 근무자들로 최소 인원만을 선발했다. 의료진이 격리된 데다 최대한 환자와의 접촉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침저녁으로 환자들의 세탁물과 폐기물을 나르고, 환자들이 사용하는 변기와 복도를 닦았다.

환기 필터가 없는 D등급 방호복은 불편하기로 악명이 높다. 숙련된 간호사도 입고 벗는 데 최소 5분이 필요하다. 혹시라도 여밈이 잘못돼 신체가 노출되면 벗고 처음부터 다시 입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방호복을 입고 일을 하다 보면 속옷까지 흠뻑 젖어 걷기조차 어려워진다.

이런 옷을 입고 하루에 열 시간 넘게 중노동에 시달리는 간호사들은 건강을 위협받았다. 비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물 한 잔 마시기 어려워 열에 아홉은 탈수증상을 호소했다. 안경을 쓴 한 간호사는 마스크에서 올라오는 입김과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각막염에 걸려 몇 주를 고생해야 했다. 한 근무당 최소 15번에서 많게는 20번 넘게 방호복을 입고 벗어야 해 과로로 탈진하는 간호사도 있었다.

간호사들은 두려움에 떠는 환자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격리된 환자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격리는 전염병 의심환자를 떨어뜨려 놓는 것이지만, 환자들 입장에서 보면 격리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갇혀 있는 것이다. 배영희 간호부장은 폐쇄한 101병동에 입원했던 환자의 보호자들을 일일이 만나 33병동으로 환자를 옮기고 격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격리만 하면 되냐”고 묻는 보호자들에게 부장은 “격리가 우선이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메르스라는 초유의 재난 앞에서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죽어도 영감과 떨어질 수 없다”며 지팡이를 휘두르는 보호자에게 머리를 맞기도 했다.

400명을 통솔하는 팀장급 간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수부서를 담당하는 박정희(40) 특수병동팀장은 아예 아침이면 방호복을 입고 33병동에 들어가 밤 11시경 퇴근할 때까지 상주했다. 격리된 환자들을 직접 돌보는 간호사들 대신 화장실과 복도를 청소하고, 식사시간엔 음식을 날랐다.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는 생활이 1주, 2주 길어지면서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었다.

메르스의 공포는 간호사들의 집에도 따라왔다.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린 아이들을 안아주기는커녕 손을 대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남편과도 각방을 써야 했다. 혹시나 전염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화장실 수건부터 식탁의 컵, 침대까지 모든 생활 집기를 따로 써야 했다. 매일 11시가 넘어 퇴근했기 때문에 식사는 병원에서 모두 해결했다. 병원에서도 따로 식사해야 했다. 환자들과의 접촉이 많아 감염 우려가 높은 간호부 간호사들은 직원들이 사오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잠시도 자리를 떠날 수 없는 QI팀과 감염관리실 간호사들은 사무실에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입원한 환자들만 간호사들의 몫은 아니었다. 행정업무도 평소의 몇 배로 늘었다. 감염관리실 인력만으로는 밀려드는 민원과 요청을 감당할 수 없었다. 평상시 외부 기관과 내부 직원들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QI(Quality Improve)팀이 감염관리실을 지원했다. 1500명에 달하는 병원 직원들에게 매일 감염 대비 지침도 보내야 했다. 김재연(35) 감염관리실 책임간호사는 “여러 기관에서 새벽 2시든 3시든 때를 가리지 않고 전화했다”며 “그때 전화 벨소리로 해 뒀던 노래를 들으면 지금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주위의 멸시

이미향  QI팀장
이미향 QI팀장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간호사들을 ‘메르스 잠재 전파자’로 보는 주변의 시선이었다.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던 6월 어느 날, 이미향(40) QI팀장은 초등학생 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부모님이 건양대병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해 집에 가고 있다는 전화였다. 동료 간호사들과 얘기해 보니 근처 초·중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메르스 환자가 아닌데 아이들까지 선별해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료진들의 항의를 접수한 교육감은 근처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주위의 보이지 않는 감시는 가정에서도 계속됐다. 이웃들은 수시로 이 팀장의 딸에게 “엄마는 집에 왔냐” “요즘 어디서 자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교 5학년생 딸은 사실대로 “엄마는 요즘 친척 집에서 자고 온다”고 말했지만, 딸에게 그 말을 전해듣는 이 팀장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이 팀장은 “간호사 생활 18년 만에 처음으로 이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며 “그때 이후로 어디 가서 간호사라고 잘 밝히지 않는다”고 했다.

외래진료를 맡는 부서는 “메르스에 걸릴까봐 병원에 못 가겠으니 우리 집까지 약을 가져오라”는 환자들에게 시달렸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는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하는데, 메르스에 대한 공포 때문에 환자들은 병원을 찾지 않으려 했다. 외래 부서는 직접 메르스 환자를 접촉하지 않는다는 설명에도 막무가내인 환자가 많았다. 16번 환자에게 기관지 내시경을 했던 호흡기내과 교수는 메르스 환자를 진료했다는 이유로 SNS상에서 신상이 공개돼 곤욕을 겪기도 했다.

반면 따뜻한 손길도 이어졌다. “뉴스로 봤는데 집에도 못 가고 힘드시겠어요”라며 초등학생이 상자에 과자와 함께 담아 보낸 손편지는 꽁꽁 언 간호사들의 마음을 녹였다. 병원 정문 맞은편에 붙은 주민들의 격려 현수막도 의료진들에겐 큰 힘이 됐다. “메르스와 싸우느라 고생했다”며 병원 직원들에게 3일간 돼지국밥을 무료로 제공한 음식점도 있었다.

간호사들은 최전선에서 최선을 다했는데도 ‘병원 내 감염’이라며 의료진에 책임을 돌리는 정부가 가장 서운하다고 했다. 메르스 사태 때 보건 당국의 부실한 초동 대처는 이미 잘 알려진 문제다. 16번 환자는 자신이 메르스의 진원지인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사실을 병원 의료진에 밝히지 않았었다. 정부는 병원 운영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확진자가 발병하거나 경유한 병원을 6월 7일에서야 공개했다. 질병관리본부가 건양대병원에 메르스 감염 가능성을 알렸을 때에는 이미 16번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 4명과 보호자 2명, 간병인 1명이 메르스에 감염된 후였다.

내과계 중환자실 수간호사인 신교연(39) 파트장이 6월 14일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병원에는 다시 비상이 걸렸다. 신씨는 후배 간호사들을 도와 36번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다 메르스에 감염됐다. 흘러내리는 땀에 섞인 환자의 체액이 마스크 사이로 들어가면서 감염됐다는 것이 질병관리본부의 추정이다.

간호실은 울음바다가 됐다. 환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매일 발열체크를 하고 감염관리를 철저히 했는데도 벌어진 일이었다. 게다가 이날은 5월 31일에 격리된 의료진들이 하루만 있으면 돌아오는 날이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생각에 간호사들의 마음은 더욱 어두워졌다.

바로 응급실이 폐쇄되고,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간호사 62명이 격리됐다. 간호부장과 QI팀장 등 주요 보직을 맡은 간호사들도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병원에 나오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격리돼도 쉴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가기도 시간이 부족할 만큼 상황이 긴박했기 때문이다. 병원 직원들은 배영희 간호부장이 격리된 62병동의 방에 PC를 3대 설치했다. 배씨는 이 PC로 매일 보고서를 만들고 실시간으로 간호사들을 지휘했다. 메르스에 대응하기 위한 카카오톡 방도 네댓 개 운영하면서 상황이 어떤지 실시간으로 주고받았다. 옆방에 격리된 이미향 팀장은 PC 2대로 매일 아침 7시에 열리는 회의 자료를 준비하고 관리해 병실 밖에 있는 업무대행자에게 보냈다.

다행히 건양대병원에서 더 이상의 환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2차 격리자들의 잠복기간이 끝난 6월 29일, 건양대병원은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됐다. 긴박한 순간은 사실상 이날로 지나갔다. 박정희 팀장은 “매일 울면서 일했기 때문에 막상 메르스가 끝났다는 발표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며 “메르스가 더 번지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만 잠시 들었다”고 했다.

메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6월 7일 대전 건양대병원의 33격리병동에서 의료진이 메르스 감염 의심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photo 건양대병원
지난 6월 7일 대전 건양대병원의 33격리병동에서 의료진이 메르스 감염 의심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photo 건양대병원

메르스가 ‘사실상 종식’된 지난 7월 이후 일반인에게 메르스는 과거의 일이 됐다. 하지만 간호사들에게 메르스는 현재진행형이었다. 간호사들은 메르스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꺼렸다. 박미용 파트장과 함께 36번 환자를 돌보다 메르스에 감염됐던 신교연 파트장은 “악몽 같았던 시간을 회상하고 싶지 않다”며 끝내 인터뷰를 거절했다.

육체적·정신적 후유증도 남았다. 당시 특수병동을 담당하던 한 간호사는 “눈이 침침하고 쉽게 피로하며 기억력이 감퇴된 것 같다”고 했다. 의료진을 대상으로 보건소에서 실시한 우울증 검사에서 “죄책감을 느끼냐”는 문항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 간호사도 있었다.

간호사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강해졌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임선(39) 외래진료 파트장은 “메르스와 전쟁을 벌이면서 간호사들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새삼 느꼈다”며 “간호사 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미향 팀장도 “메르스를 겪으며 어떻게 대처하고 소통해야 하는지 경험을 많이 쌓았다”며 “응급실 체류시간을 줄이고 간병하는 인원을 줄이는 등 전염병에 대비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진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간호사들은 메르스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봤다. 한 해에 해외에 나가는 국민이 1600만명을 넘는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감염관리를 전문으로 맡는 간호사들은 메르스나 에볼라 등 해외에서 유행하는 전염병이 국내로 들어올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고 말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의료진은 환자를 구호할 의무가 있다. 취재 중에 만난 한 간호사는 “언제든 전염병이 오면 다시 주저 없이 맨 앞에 나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간호사도 누군가의 딸이고 어머니다. 배영희 부장은 “‘우리 아이는 메르스 병동에 보내지 말아달라’는 후배 부모님들의 전화를 받았을 땐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전염병 최전선에 있는 간호사들에게 메르스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적(敵)이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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