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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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병원은 공공성(公共性)을 띠고 있습니다. 공립이든 사립이든 마찬가지죠. 건양대병원은 민간병원이지만, 국가 재난사태인 메르스 때는 공공에 대한 책임을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지난 12월 11일 대전 서구 건양대병원 원장실에서 만난 박창일(69) 건양대병원 의료원장의 말이다. 건양대병원은 지난 5월 28일 수퍼전파자인 16번 환자가 입원하면서 메르스에 노출됐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5월 30일에야 메르스 환자가 입원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환자가 자신이 평택성모병원을 거쳤다는 사실을 숨겼고, 보건 당국도 환자가 어떤 병원을 다녀왔는지에 대한 정보를 의료기관에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원장도 이날이 되어서야 건양대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있다’는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메르스 환자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경험 많은 의료진들도 메르스라는 초유의 재난에 우왕좌왕했다. 전파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치 않은 메르스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병동을 폐쇄해야 하는데, 병동 하나를 하루만 폐쇄해도 수천만원의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병원장이라 해도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제 평소 신념입니다. 메르스 때 원칙은 한 가지였죠. 단 한 명의 감염자라도 지역사회에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박 원장은 16번 환자가 입원해 있던 101병동을 즉시 폐쇄하고 병동에 있던 모든 환자에게 메르스 검체를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동시에 CCTV를 통해 접촉자를 모니터링하고 수시로 발열체크를 했다.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 5명 중 4명이 이미 메르스에 감염된 상태였다. 같은 병동의 다른 병실에 있던 환자도 2명이 감염됐다. 경영 손실을 우려해 병동 전체가 아닌 병실만 폐쇄했다면 지역사회에 메르스가 퍼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덕분에 메르스 환자를 한 명도 내보내지 않는 데는 성공했지만, 병원은 한 달 동안 여러 병동을 폐쇄하면서 약 15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24시간 운영되는 카카오톡 방도 메르스 확산 방지의 일등공신이었다. 박 원장은 병원의 주요 보직자 18명이 참여하는 카카오톡 방을 개설해 “최종 결정과 책임은 모두 내가 질 테니 자유롭게 의견을 내라”고 했다. 밤 12시가 넘도록 보고가 올라오는 카카오톡 방을 확인하면서 의료진들은 메르스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6월 2일부터 한 달간 건양대병원 보직자들이 나눈 메시지를 인쇄해 출력하면 A4용지로 400장이 넘는다.

“건양대병원이 단 한 명의 메르스 환자도 지역사회에 내보내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전염병 환자를 병원이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생소한 전염병에 대처하는 것은 보통 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메르스와 싸워준 우리 의료진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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