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에스더앤컴퍼니
ⓒphoto 에스더앤컴퍼니

수능을 끝낸 서울 송파·광진 지역 고등학교 3학년 학생 15명이 모였다. 이들에게 1년 뒤,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달라고 부탁했다. 학생들이 상상한 1년 뒤 모습은 15명이 거의 비슷하다. “대학에 가서 친구를 사귀고, 아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고 있을 거 같아요.” “대학교 1학년을 마쳤으니까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가지고 여행을 갈 것 같아요.” 여행을 다녀올 것 같다는 4명에게 어디로 여행을 갈 예정인지 물었다. 4명 모두 서유럽으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무작위로 모은 고교 3년생 15명이지만,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학생은 없었다. 아직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은 있었지만 2년제 대학을 포함해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말한 학생은 없었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자리 잡을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6살 차이 누나가 있는데, 아직 취업을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려고요.” “취업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어요. IT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그쪽 회사 취업을 일찍 준비하려고요.” “임용고사에 합격해 교사가 돼 있을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대답한 13명 중 7명은 변호사, 변리사, 교사, 경찰, 공무원 등 각종 시험에 합격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기업에 취업하겠다는 학생이 2명이었고, 2명은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했다. 국제 NGO 직원, 아나운서 등이 눈에 띄는 답변이었다.

공통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15명 중 9명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나이가 들다 보면 저절로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을 배울 거라고 생각해요.” “경쟁률 높은 시험을 마냥 준비할 수 없어서, 결국 취업하게 될지도 몰라요.”

생애선택자유지수 0.33

생애선택자유(freedom to make life choices)라는 개념이 있다. 유엔 지속가능위원회가 발표한 세계행복지수(World Happiness Report)에서 언급된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58개국을 대상으로 3년간 펼친 이 조사에서 47위에 이름을 올렸는데 미국(15위)과 싱가포르(24위)보다는 한참 낮고, 일본(46위) 바로 아래다. 이유는 사회적 지지, 부패 인식 그리고 생애선택자유에서 낮은 수치를 보였기 때문이다.

생애선택자유가 낮은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한 계단 높은 일본의 경우 생애선택자유지수가 0.5로 나왔다. 북유럽 선진국의 경우는 0.6~0.7에 가깝고, 유독 낮은 미국도 0.55인데 우리는 0.33에 그쳤다.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 중에서 우리와 비슷하거나 낮은 생애선택자유지수를 보이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슬로바키아 정도밖에 없다.

생애선택자유를 측정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까?(Are you satisfied or dissatisfied with your freedom to choose what you do with your life?)” 직업 선택의 자유(Freedom of Occupation)와는 조금 다르다. 직업 활동을 하는 것뿐 아니라 진로, 인생의 방향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느냐를 측정하는 것이다.

행복지수 비교 연구를 담당한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원래 이 문항은 저개발 국가에서 정치·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제 진로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들을 측정하기 위해 나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다르다. 1인당 GDP는 선진국에 못지않고, 건강수명은 오히려 행복지수 1위인 스위스를 넘는 수준이다. 조병희 교수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물질적·신체적 수준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 같은 질적인 부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즉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1인당 3500만원꼴이라는 가계빚이나 30%를 웃도는 비정규직 비율 때문만이 아니다. 자유롭게 진로를 찾고 결정하며 도전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부족하다. 왜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누리지 못할까.

하고 싶은 일을 모른다

겨울방학에 들어서 계절학기 수업이 시작된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을 찾아 설문조사를 해봤다. 수업을 듣는 120여명의 학생 중 오는 2월이나 8월 졸업을 앞둔 학생은 37명. 이들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져 봤다. 37명 중 34명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 이유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한 학생이 14명이고,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경제적 이유를 든 학생이 12명, 사회적 지위와 주변인의 평가를 든 학생이 7명, “실패가 두려워서 미처 선택하지 못했다”고 말한 학생이 1명이었다.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려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커녕 ‘할 수 있는지’조차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 당장 교과서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펴낸 ‘교과서의 일-직업 관련 내용 분석 연구’를 보면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서 16종에 등장한 직업명은 1140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 중 1100여개의 직업은 10회 미만으로 등장만 한 수준으로, 나머지 40여개 직업이 반복해 제시되고 있다. 박선미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도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9종을 분석한 결과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특히 전문가와 관리자에 해당하는 직업으로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 교사·법조인·기자·의사·연예인 등이 속한 전문가와, 국회의원·정치인·기업 임원 등이 속한 관리자는 전체 직업의 21.4%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에서 이들은 77.8%의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전체 직업 인구 중 판사, 변호사 등 법률·행정 전문직은 0.3%밖에 되지 않지만, 교과서에 나온 직업 중에는 13.4% 비중으로 나왔다.

교과서의 직업이 한정적인 이유는 학교에서 진로 교육의 목표가 결국 ‘진학’에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성남의 한 고등학교 진로 교사의 설명이다. “요즘 학교에서는 진로 상담도 정기적으로 하고, 적성검사도 꼬박꼬박 받게 합니다. 하지만 진로 상담의 끝은 어느 대학, 어느 과에 진학할 것인지를 의논하는 것입니다. 진로 교육이 곧 직업 교육입니다.”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지만, 그 ‘꿈’의 종류는 정해져 있다.

‘꿈을 알게 하자’는 취지로 올해부터 시행될 제도가 자유학기제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1년 동안 다양한 체험학습과 진로교육을 받도록 하는 이 제도는 이미 시범시행된 바 있다. 일선 교육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부모와 교사 50~70%는 ‘다양한 진로 체험 학습에 만족한다’ ‘자녀의 진로 문제에 관심을 더 갖게 됐다’며 자유학기제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자유학기제의 장기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많다. 단적인 예로 자유학기 동안에도 학부모의 70% 가까이 “보충 학습이 필요하다”고 답한 설문조사가 있다.

지난해 6월 서울시 공무원 시험장을 찾은 수많은 수험생들.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6월 서울시 공무원 시험장을 찾은 수많은 수험생들.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좋아하는 것보다 안정적인 것

서울 강서구의 한 중학교 교감 A씨 역시 “자유학기제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기 중에는 과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직업을 관찰하고 체험합니다. 그러나 이때 키운 꿈도 ‘현실’에 부딪혀 사라질 가능성이 높지요.” 그의 말에 따르면 단순히 꿈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다양한 삶의 진로가 나타나지 못한다.

가장 큰 이유는 ‘안정성’ 때문이다. 건국대 교육학과 배기연씨가 자신의 박사 논문으로 제출한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국과 일본 어머니의 직업가치관, 자녀진로기대와 진로지도의 비교’를 보면 우리나라 부모는 자녀의 성취를 강조하고,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본다. ‘전문성 있는 직업’ ‘경제적 안정’을 얻는 직업을 가지길 원한다. 일본 부모들이 관계를 중시하고 자녀가 ‘좋아하는 일’ ‘행복한 일’을 찾길 바라는 것과 다소 대조적인 모습이다. 배기연씨는 이에 대해 “일본은 직업 선택지가 많은 편이고, 직업 계층이 안정화돼 보람을 강조하는 반면 한국은 불안정한 고용시장을 고려해 직업 중 안정적이고 위세가 높은 직업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부모뿐 아니라 자녀들도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한다. 서울 강서구의 중학교 교감 A씨는 지난 2학기에 이 학교에서 3학년을 대상으로 한 진로지도 결과를 설명했다. “교사가 되겠다는 학생이 거의 30%가 넘어요. 이유를 물어보니 대부분 ‘안정적인 직업이라서’ ‘정년이 있어서’라고 합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라는 대답은 거의 없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자유학기를 통해 과학에 대한 꿈을 키워도 현실적으로 ‘과학 교사’가 되겠다고 꿈꿀 학생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미래가 불투명한, 불안정한 한국 사회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이성균 울산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1955년에서 1963년 사이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의 진로를 추적해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첫 직업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직업을 바꾼 적 있는 베이비붐 세대가 가장 많이 선택한 직업군은 판매·서비스직이었다. 그런데 이들 판매·서비스직의 평균 연봉은 1895만원으로, 전문·관리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많은 경우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된 일자리로부터 밀려났으며, 과거의 직업과는 전혀 다른 일자리에서 새롭게 직장 생활을 한다”고 설명했다. 베이비붐 세대 역시 부모 세대의 관존민비(官尊民卑) 사상을 답습하게 되는 이유다.

베이비붐 세대를 보고 자란 젊은 세대에게 직업의 안정성은 가장 중요한 직업 선택 요인이다. 2015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15~29세 청년들이 가고 싶어하는 직장은 국가기관(28.3%)이었고, 대기업(22.9%)과 공기업(13.1%)이 그 뒤를 이었다. 모두 고용 안정이 비교적 보장되는 곳으로 연봉도 높은 곳이다.

고용 불안정과 높은 청년 실업률은 세계적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유독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싶었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업과 진로를 선택하는 데 나의 의지보다 주변의 시선이나 사회적 인정에 더 신경 쓰기 때문일 수 있다.

남과 다른 나는 없다

사회학자들은 집단주의적 문화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평가하려는 경향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사회비교와 행복의 관계에서 문화적 자기관의 역할’이라는 논문을 써 한국인의 ‘자기관’에 대해 연구한 한민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는 “서구 사회에서는 ‘남과 다른 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반면, 한국처럼 집단주의적 문화에서는 ‘남보다 나은 나’를 만들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유교적 가치도 그렇다. 유교에서는 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君子)이 되도록 수련하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는 것은, 내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높은 목표를 보며 계속 자신을 향상시키려고 합니다.” 유독 한국인에게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향상시키려는 동기가 강한 이유다.

즉 우리 사회에서 진로는 곧 직업을 찾는 일이고, 직업은 가급적 경제적 안정과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적성에 맞는 일’만이 아니다. 나아가 ‘남보다 뛰어난 일’을 찾고, ‘남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일’을 구하고 싶어 한다. 진로는 자신에 맞춰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진로에 맞춰 찾아가야 한다. 설문에 응한 대학 졸업 준비생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용돈을 모아 자동차 잡지나 피규어를 사 모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때 부모님께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가 몇날 며칠을 혼났습니다. 대화와 토론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직업과 취미는 별개라는 거였습니다. 취미를 즐길 수 있는 돈과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다음 진로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을 받고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를 한참 동안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학생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지, 하고 싶은 일을 찾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직업만이 아니다. 진로(進路) 역시 직업처럼 성취를 인정받을 수 있고, 남과 비교해도 그럴듯하며 안정적인 것을 선택한다. 그러다 보니 문제는 모두가 비슷한 진로를 선택하고, 대부분 사람의 삶의 단계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5~10년이 지난 직장인 25명에게 설문조사를 해봤다. 30대 초중반인 이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걱정하고, 이직을 한 번쯤 했거나 이직을 고민하며, 노후를 대비하고 있거나 노후를 대비할 방법을 고민 중이었다. 이들 중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3명에 불과했고, 17명은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 얻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보험사에 다닌 지 7년이 되는 33살 서은혜씨는 지난해 12월 초 처음으로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다고 했다. “친구들이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는데 ‘다들 비슷비슷하게 사는구나’라는 아쉬움 반, 안도 반의 감정을 느끼고 돌아왔다”고 한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구나”라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혼 안 한 친구에게는 왜 결혼을 안 했냐고 묻고, 결혼한 친구에게는 왜 아이를 안 낳고 있냐고 묻더군요. 사람들은 20살에는 대학에 들어가고, 25살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30살에는 결혼할 거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도전은 아직 먼 나라의 일

지난해 4월 한국을 찾아 강연하는 빌 게이츠.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4월 한국을 찾아 강연하는 빌 게이츠.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이런 사회 분위기는 다들 선택하는 진로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혹하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커밍아웃을 한 37살 남성 동성애자 박정우(가명)씨는 요즘 연말 모임에 나가는 일이 두렵다고 한다. “한번은 친구들이 저를 앉혀 놓고 왜 결혼을 하지 않는지 진지하게 물어보더군요. 그 모임에서 결혼 안 한 친구도 두셋 있었어요. 그런데 결혼 안 한 친구도 ‘결혼해야지’ 하고 저를 닦달하는 걸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어떤 정해진 길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살든 살지 않든 ‘바람직한 진로’가 있다. 그리고 ‘지켜야 할 것’처럼 여겨진다. 세종시에 있는 공공기관에 6년째 다니는 신재웅씨는 곧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다. “한동안 여행을 다니며 재충전하다가 평소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로 스타트업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변의 반응이 썩 좋지 않다고 한다. “특히 부모님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도 ‘결혼 안 할 거냐’면서 밀어붙여요. 다들 안정적인 직장에 있으니까 위험을 감수하지 말라고 합니다.” 신씨는 “나이가 들어서 엉뚱한 짓 하는 거 아니라며 진지하게 충고하는 선배도 있었다”고 말했다. 어릴 때는 방황하다가 남과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 “어른이 돼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은 다른 진로를 선택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오히려 반대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목받기도 한다.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떠난 사람, 좌절을 딛고 각종 모험에 도전하는 사람, 평소 하던 일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 길어진 평균 수명에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까지 겹쳐 30, 40대에 들어 비로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박주형(가명)씨는 이전 회사에 다닌 지 10년이 지나던 2010년, 홀연히 회사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용기 있다고 칭찬해주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곧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요즘 들어 저에게 ‘나도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웬만하면 말리는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하이리스크, 로리턴’이라고 조언합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며 도전하다가는, 어떻게 살지 막막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어요.”

박씨는 스타트업에 실패한 후 쌓인 빚을 갚으려 한 통신사 대리점에서 스마트폰을 파는 ‘폰팔이’로 취직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사(MS)를 창업한 빌 게이츠, 델(Dell) 컴퓨터사를 세운 마이클 델 같은 창조적 기업가가 나오기 어렵다. 빌 게이츠나 마이클 델의 경우 원래 부모의 바람대로 의사가 되려 하다가 진로를 바꿨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 것이다. 페이스북을 만들어낸 마크 저커버그 같은 청년이 나오려면 남과 다른 진로가 ‘모험’이 아니라 ‘도전’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되는 사회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은 사라질 뿐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해 보니 보람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고, 뒤늦게라도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으려면 사회 전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키워드

#커버스토리
김효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